"인간백정 주한미군을 반드시 심판할 것"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문정현 신부 이야기 中
지난 해 촛불집회 중 국제 엠네스티 소속 노마 강 무이코과 이야기하는 문정현신부
좌파는 많은 경우 목숨을 건다. 근거 없는 반미(反美)-친북(親北)선동이 판을 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목숨 걸고 덤비니 사회는 원 클릭씩 좌경화된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도 이런 구조적 좌경화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아래는 좌파 인물 분석 중 문정현 신부에 대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문정현 신부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의 소위 「시민운동가(?)」이다. 시민의 신문은 2002년 최고의 시민운동가로 文신부를 선정했다. 1940년 전북 익산 출생인 文신부는 가톨릭대 신학부와 미국 메리노 신학대학원을 졸업했고, 70년대 소위 민주화 투쟁을 거쳐 90년대부터는 반미(反美)운동에 몰입해왔다.

文신부의 반미운동은 주한미군 철수 투쟁으로 요약된다. 2002년 효순이·미선이 사건, 2003년 이라크파병반대, 2004년에는 평택미군기지이전 등 이슈는 달라졌지만 결론은 미군철수였다. 그의 발언 일부를 모아보자.

『노동자가 해고되는 문제는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질서에 기인한 것이다...주한미군철수 투쟁에 우리 노동자들이 앞장서야 한다. (2002년 1월15일 광화문 미 대사관 옆 노동자 반미연대집회)』

『미국에 예속되어 비굴하게 사느니 차라리 이 자리에 주저앉아 죽겠다(2002년 3월12일 광화문 美대사관 앞 반미연대집회)』

『(미국과 맞서다) 죽을 수도 있으나 그것은 역사에서 사는 길이다(2003년 11월11일 이른바 「평화바람 유랑단」을 발족해 1년간 전국순회 반미강연을 하기 직전 발언)』.

『전동록, 신효순, 심미선의 죽음은 옛날 같으면 「개죽음」이었을 것이고 그렇게 죽고도 말 한마디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미군의 주둔을 원치 않는다. 당장 떠나라(2002년 7월4일 용산 전쟁기념관 앞 반미집회)』

『미군 고압선에 사망한 전동록씨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전동록씨와, 효순이, 미선이를 죽인 미 2사단 캠프하우즈를 즉각 폐쇄해야 한다(2002년 7월27일 서울 종묘공원 반미집회)』

『미국당국은 독선 거짓 오만으로 가득 차, 하는 짓마다 기고만장하고 우리 정부는 맹종 아니면 굴종하고 있을 따름이다(2002년 7월31일 시청 앞 효순이·미선이 추모제. 당시 춤패 「출」은 성조기를 불태우며 소위 두 여학생의 죽음을 추모하는 공연을 했다)』


<『미군부대만 지나면 저주의 마음이 든다』>

文신부는 2002년 9월30일 朴모라는 시민이 미군 트레일러의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장례식장에 참석, 『이제 미군부대만 지나면 저주의 마음이 든다』며 『사람을 죽여 놓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는 저들이 사람이냐』고 말했다. 오종렬 전국연합 상임의장은 『점령군이 주둔하는 한 우리 목숨은 파리 목숨이며 우리의 주권은 한낱 쓰레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전문적(?) 선동에 격앙된 유족들은 오열했고, 고인의 동생 朴모씨는 『미군 놈들 다 죽여버릴거야』라고 외치며 울부짖었다(출처 : 통일뉴스).

文신부는 2002년 11월21일 동두천 캠프케이시 정문 앞에서 열린 효순이·미선이 추모집회에 참가, 한상렬 목사와 함께 태극기를 몸에 두른 채 「삭발의식」을 가졌다. 그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한국민은 인간백정 주한미군을 반드시 한국 재판대에 세우고 한국민의 이름으로 심판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구 모라는 여성(36)은 『양심 없는 악마들 용서해서는 안 된다』는 피켓을 만들어와 나 홀로 시위를 벌였고, 최 모라는 고교생은 반미(反美)혈서를 써 와 『너무 많이 베어가지고 병원에 다녀왔다...혈서를 쓴 심정으로 목숨 걸고 싸워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튿날 같은 장소에서 진행된 집회에선 성조기를 불태우는 의식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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