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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의 著者 블라디슬라브 슈필만 (1911 - 20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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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피아니스트는
2002년, Wladyslaw Szpilman(블라디슬라브 슈필만)의 自傳的 스토리를
폴랜드, 독일, 영국의 영화 회사에서 製作하고 로만 폴란스키(Roman Polanski) 감독이 만든 영화로
미국의 아카데미 受賞式, 프랑스의 칸느 영화제에서
최우수 監督, 최우수 배우, 베스트 스크린 映像賞을 받은 센세이셔널한 映畵이다.
로만스키 監督과 호센휄트 役의 토마스 크레츠만
히틀러가 독일을 리드할 때까지 베를린에서 피아노 수업을 받던 블라디슬라브 슈필만이
폴랜드에 돌아와 라디오 방송국에 근무하며 피아노 연주를 放送으로 보내다가,
독일의 폴랜드 占領후 유태인의 참혹한 생활과 마지막 순간 독일장교의 도움이
기적과 같은 그의 生存이 되었던 자전적 著書를
1950년에「都市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出版하였고 이것은 곧 널리 알려졌다.
숨어있는 슈필만에게 음식을 갖어다 주는 호센휄트
슈필만의 아들 안드레이는 아버지의 著書를 1998년 제목을 「奇蹟的인 生存」 이라고 바꾸며
독일의 가장 큰 출판회사에서 出版하였고 제목은 다시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이 책은 영국에서도 2002년 출판되어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슈필만은 1998년 폴란드 대통령에게서 最高의 명예훈장인 「다시태어난 폴랜드」 명예훈장을 받았다.
이어서 폴랜드의 대통령은 슈필만 外에도 폴랜드 전쟁포로와 다른 유태인을 도와준
독일 장교 호센휄트 에게도 義人으로 존중, 슈필만과 같은 명예훈장을 주었다.
2009년 이스라엘 외교관은 베를린에 있는 호센휄트의 아들 델트레프에게 感謝의 賞을 전달하였다.
슈필만의 아들 안드레이는 'Mr.호센펠트가 아니었으면 아버지의 生存은 물론 이 책도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것'
이라며 깊이 感謝하였다.
호센휄트에 대하여 영화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그에 관하여 알려진 것을 보면
그는 훌륭한 人格을 갖춘 사람으로 狂人 히틀러의 불행한 犧牲者 임에 틀림없다.
25년의 중노동을 宣告받고 복역중인 그를 求하기 위해
Mrs.호센휄트의 편지를 받은 슈필만과 유태人들, 그리고 폴랜드人들의 노력으로
소비에트 군대에 그의 善行을 陳情하고 구하려 했으나 소비에트는 거절하였다.
1952년 8/13 소련의 스탈린그라드 수용소에서 그의 죽음은
저녁 10시경 짧은 순간에 일어났다고 하며 拷問後 흉부 동맥파열로 짐작된다고 한다.
빌헬름 호센휄트
Wilhelm Hosenfeld(빌헬름 호센휄트)는 독일의 가톨릭 집안으로 보수적인 가정에서 교육받았고
그자신은 가톨릭계의 敎師였다고 한다
그는 1차대전의 복무기간중 크게 負傷당하였고 1939년에 다시 徵集되어
소비에트 군대에 체포되는 1945년 1월까지 폴란드에 駐屯하였다.
그의 일기에는 '폴란드를 占領하고 독일인이 저지르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써 있다.
1940년 12/14일에 쓴 그의 日記에는
'나는 이 모든 불행한 영혼을 위로 하고싶다. 그리고 그들에게 용서를 求하고 싶다.
독일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죄를 졌는지'
그가 1943년 2/14일에 쓴 日記에는
'끔찍한 유태인의 大量학살에 몰두하던 지난 여름 아이들과 여성이 虐殺되었다.
나는 독일이 이 전쟁에 질 것을 確信한다.
그들이 자유로운 생활과 장소를 찾는것에 正當한 것은 단 한 점도 없다.
이것은 非人間的인 대량학살로 文化的 가치를 否定하는 인간의 退化일 뿐이다.
이 일은 어느 것으로도 독일인을 正當化할 수없고 모든 국가에게 독일은 沒收될 것이다.
전쟁포로로 체포된 폴란드인을 拷問하고 射殺하고 동물취급 하는일을 正當化할 수 있는가'
블라디슬라브 슈필만의 피아노 演奏
쇼팽의 夜想曲 C# minor 20 Posthumous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