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회고록에 보면 日帝시대 金日成의 삼촌이 서대문 형무소에서 獄死(옥사)했지만 屍體(시체)는 가족에게 돌려주었다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北韓은 감옥에서 獄死를 하면 黨(당)과 民族(민족)에게 지은 죄를 씻지 못하고 죽었기에 더 큰 反逆(반역)으로 봅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바로 屍體를 묻어버리고 가족에게 돌려주지 않고 어디다 묻었는지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총살을 했으면 시신을 가족에게 돌려주어야 마땅하지만 북한은 길가에 묻어버립니다. 함흥에서 제 친구 중 한 명이 銅(동)을 팔다가 잡혀 공개처형(총살) 당했습니다. 시신이 묻힌 곳을 수소문해서 밤에 파내 산에 다시 묻어줬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金日成의 회고록을 읽으며 오히려 日帝가 더 신사적으로 행동했다고 말합니다.
北韓에서는 공개처형이 원칙입니다. 감옥에서 옥살이 하는 경우도 있지만 金正日이 “총소리 한 번 내라!”, “요즘 조용하다”하면 공개처형이 이루어집니다. 공개처형의 주된 죄목은 竊盜(절도)입니다. 그것도 생계형 竊盜입니다. 북한은 절도하면 사형하고 시체도 안주는 나라입니다.
저는 성인이 되어서도 공개처형을 여러 차례 봤습니다. 北韓은 공개처형을 할 때 아이들을 강제로 동원합니다. 소학교(우리나라의 초등학교 1~4학년)와 중학교(우리나라의 초등학교 5학년~고등학교 1학년)학생들을 동원해 공개처형을 눈 앞에서 보게 합니다.
실제로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어 공개총살당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2000년도 8월 함흥 성천구역 중앙동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당시 46세의 여성이 꽃제비 같은 어린 아이들을 집으로 유인해 살해 후 人肉을 먹었습니다. 또 그 人肉을 밥 위에 고기처럼 얇게 덮어 국밥을 만들어 시장과 주변 사람들에게 내다 팔곤 했습니다. 그 국밥이 맛있어 여러 사람들이 사 먹었습니다. 나중에 그 국밥의 재료가 人肉이라는 것을 알고 그 국밥을 사 먹은 사람들이 경악을 했습니다. 그것을 사 먹은 사람들이 모두 다 불려가 조사를 받았습니다. 조사에서 밝혀진 내용은 이 여성의 남편은 굶어 죽었고, 아이는 영양실조가 걸렸었는데, 한 아이를 집에서 우연히 실수로 죽이고 너무 배가 고파 그 아이의 人肉을 먹게 되었고, 그것(인육)에 맛들이게 된 것입니다. 이 여성은 총 6명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이 여성을 사포 영대다리에서 공개처형 당했습니다.
북한에선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일이 많았습니다. 특히 1995년엔 더 많았습니다. 이건 제가 1997년 8월 혹은 9월경 평남 덕천에 갔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재남 탄광 보일러실에서 일했던 사람 이야기인데, 겨울에는 그 지역이 추워서 휴식시간에 사람들이 보일러실에 불을 쬐러옵니다. 그런데 보일러실에서 일하던 이 사람이 보일러에다가 사람을 구워 먹었습니다. 이 사람은 약 3년 동안 20명 정도를 죽여서 구워 먹었습니다. 人肉은 먹고 나머지 부위는 큰 보일러에 집어넣어 흔적이 남지 않았습니다. 보일러가 작은 보일러가 아닌 3000여 명을 수용하는 시설의 대형 보일러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방불명됐었는데, 이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결국 이 사람은 공개처형(총살)당하였습니다.
북한에선 공개처형 전에 遺言(유언) 같은 것을 남길 수 없습니다. 공개처형 전에 반쯤 죽여 놓습니다. 말을 할까봐 망치나 큰 돌과 같은 鈍器(둔기)류로 입과 齒牙(치아)를 다 망가뜨려 아무 말도 못하도록 해 놓습니다. 예전에 함흥에서 공개처형(총살)을 하는데, 한 사람이 “억울하다. 왜 나 혼자 죽느냐”며 말을 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입에 재갈을 물리라”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재갈을 물리면 반항을 하니, 그 때부터 鈍器류로 齒牙를 깨고 말을 못 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공개처형(총살)을 안전원들이 집행하는데, 안전원들도 집행하고 난 후에는 부담감 때문에 괴로워한다고 합니다.
정리 - 조갑제닷컴 李庚勳 인턴기자
"北韓은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곳"
- 김대성(NK지식인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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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2-02, 14: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