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강연은 '수용소의 노래' 저자로 알려진 강철환 기자의 강연으로 시작했다. 강 기자는 92년 탈북해 한국으로 들어와 조선일보 정치부를 거쳐 현재 조선일보 북·중 전략문제 연구소 연구위원과 (사)북한민주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강 기자는 '북한에서 祖父(조부)와 祖母(조모)가 朝總聯(조총련)계 핵심간부였으나, 조부가 金日成·金正日의 세습독재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함남 요덕에 위치한 정치범 수용소에서 10년 동안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았었다'고 했다.
그는 '북한 정권은 단 한 번도 굶어죽은 통계를 낸 적이 없으나, 金正日의 성격은 세밀해 사소한 것까지 사실로 보고 한다'며 '김정일은 300만이 굶어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이어 '대량의 餓死(아사)자가 발생할 당시 북한 정권은 망하기 직전이었다'고 했다. 그는 '金正日은 97년 金大中 정부가 집권한 후, 김대중을 신뢰하지 않았지만, 김대중이 북한을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고 한다는 사실(노벨평화상)을 알고 이를 이용했다'고 했다. 그는 '노동당 통일전선부가 햇볕정책 역이용전략을 만들었고, 이로 인해 북한으로 막대한 현금과 식량, 물품 등이 들어가 결국 북한이 붕괴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북한 정권의 붕괴를 한국 정부가 막았다'며 햇볕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김정일의 마지막 보루는 군대밖에 없기에, 식량도 모두 인민군으로 유입된다'며 '인민군이 먹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북한에 식량을 지원한 것은 國家反逆(국가반역)행위'라고 했다. 이어 '김정일은 인민군대의 兵站(병참)을 남한으로부터 얻고, 이를 바탕으로 有事時(유사시) 남한을 再兵站化(재병참화)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여기에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협조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6자회담은 김정일이 全(전)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것'이라며 '核과 미사일이 북한이 살아남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했다. 그는 '이를 굴복시키기 위해선 북한을 압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타락한 민주주의는 결집한 독재를 못 이긴다'며 '지난 10년 동안 말도 안 되는 짓거리들이 벌어졌다. 김대중·노무현은 우리 민족사의 悲劇(비극)의 歷史(역사)'라고 비판했다.
그는 '韓半島(한반도)에는 두 개의 기적이 있는데, 하나는 남한의 발전에 대한 기적이고, 또 하나는 북한이 이렇게 망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은 사회주의가 아닌 사이비봉건 국가이며, 북한을 공산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공산주의를 모독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김정은 후계구도와 관련되어, '한반도 역사상 막내를 세워서 재미를 본 적이 없다'며 '김정은 후계구도는 북한이 망하는 促進劑(촉진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90년대 초반에서 중반까지 國防部(국방부)가 삐라(대북전단 - 對北傳單)를 날렸고, 그 삐라가 요덕수용소까지 날아와 人民軍(인민군)들이 가 보낸 라면을 먹고, 치약도 썼다'며 '당시 북한은 남한의 심리전에 瓦解(와해)돼가고 있었는데, 6·15공동선언 이후 이러한 것들이 모두 중단됐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自由의 바람이 核武器(핵무기)의 몇 십 배에 버금간다'며 '북한 내부에 自由의 소식을 전달해 민중의 힘으로 북한 정권을 붕괴시킬 수 있도록 라디오 사업에 관심을 갖길 바란다'며 강연을 마쳤다.
두 번째로 강연한 김대성 씨는 2004년 2월에 탈북했다. 그는 자유북한방송 국장을 거쳐 현재 NK지식인연대 미디어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NK지식인연대는 얼마 전 북한의 화폐개혁 내용을 최초로 보도한 바 있다.
김대성 씨는 북한의 情報通(정보통)을 통해 얻은 소식을 인용해 '6일까지 북한 전체의 화폐개혁이 완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화폐개혁이 시장으로 실추된 김정일 정권의 마지막 몸부림'이며 '꾸준한 시장화의 흐름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예로 장마당의 증가로 인한 북한 정권의 주민통제의 어려움을 들었다. 이어 17년 전 화폐개혁과 이번에 단행된 화폐개혁을 비교하며, '현재 북한의 돈은 모두 시장에 다'며, '당시(17년 전)에는 화교의 돈을 뺐어왔지만, 이번의 화폐개혁은 시장(북한주민)의 돈을 뺐어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 사정을 예로 들며, '한 여성이 일생동안 貯金(저금)한 60만 원을 찾으려 은행에 찾아가니, 은행장이 금고에 있는 8만원을 보여주며, '이것이 전 재산인데, 이것도 非常用(비상용)이기에 줄 수 없다'고 말했다'며 '북한의 돈이 모두 市場(시장)에 있다'고 했다.
그는 '90년대 초 북한에서 市場(시장)이 확대될 즈음에 북한주민들은 직장 나가는 사람을 1등 머저리, 2등 머저리는 집에서 돼지 기르는 사람, 제일 똑똑한 사람은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며 북한주민의 의식 변화를 설명했다. 이어 '당시 시장에 물건보다 장사하는 사람이 더 많았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한 내부소식을 인용해 '평양에서 都賣(도매)로 담배를 사 신의주로 넘기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북한 돈 800만 원을 高利貸金業者(고리대금업자)에게 빌린 후 3시간 만에 화폐개혁이 이뤄지는 바람에 빚더미에 앉아 결국 자살을 시도 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의 黨(당)에선 예상 외로 반발이 크자 이러한 반발을 막기 위해 1개월분 配給(배급)을 주며, '우리가 가장 잘 살았던 계획경제로 돌아가기 위한 것이기에 화폐개혁에 대해 절대로 불만을 갖지 말라'고 북한 주민들을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배급이 90년대 배급이 끊긴 이후 첫 배급'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배급이 극심한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1~2개월간만 이루어질 미봉책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현재 북한에서 100대 1의 비율로 신·구권 교환해주며, 15만 원이 限度(한도)'라고 했다. 이어 '교환 한도가 계속 변동해 10만원에서 20만원, 30만원으로 바뀌고 있다는 첩보도 들어오고 있다'고 추가 설명했다. 화폐개혁으로 인해 구권 15만원을 신권으로 교환할 경우 1000원에서 1500원밖에 가질 수 없다. 그는 '2000년 7·1 경제조치실시 이후 북한의 물가가 100배 이상 뛰었을 때도 월급을 2000원 이상 주지 않았는데, 이번엔 화폐개혁을 단행한 후 월급을 6000원으로 올리는 파격적인 조치를 취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과거 人民軍隊(인민군대)가 愛國心(애국심)이었지만, 지금은 物質主義(물질주의)'라며 북한 군대의 의식변화도 설명했다. 그는 '지금 북한 군대는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까?'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 광우병 촛불亂動(난동) 때 좌절을 느꼈다'고 했다. 이어 '탈북자들 1000여 명이 모여 촛불 시위 반대 시위를 하는데, 촛불 시위하는 사람들이 우리(탈북자)를 향해 배신자라고 했다'며 '촛불 시위하는 사람들을 트럭에 실어 북한에 보내, 강냉이 죽 먹으면서 김정일이 얼마나 악독한지 느껴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과거 비전향장기수 이인모 이야기를 하며, '이인모가 비전향장기수로 북송됐을 때 북한에서 영웅대우를 받았고 黨(당)으로부터 100평이 넘는 2층 집도 받았었다. 그런데 이인모가 '공화국의 감옥은 어떤지 궁금하다'고 해, 북한 당국이 고심 끝에 북한 최고급 시설을 자랑하는 사리원 외국인 감옥을 데려다 줬는데, 이인모가 그 곳을 보고 '이런 한심한 감옥이라면 1년도 못 버텼을 것'이라고 말해 죽을 때 까지 가택연금을 받았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대북방송을 듣고 생각이 변해 탈북한 후, 노무현 정부시절 한국 영사관을 찾아가 '북한을 민주화시키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하자, 영사관에선 '꿈같은 소리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실망했었던 경험도 털어놨다. 이어 '500만원이면 북한 주민 한 명을 남한으로 보름 만에 오게 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과거 회령의 人民軍(인민군) 1개 中隊(중대)를 西海(서해)상으로 탈북 시킬 계획도 갖고 있었으나, 중개인이 중국 공안에 체포되는 바람에 무산됐었다'는 일도 밝혔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 주민들도 문제의식을 갖는다'며 '이를 위해 자극을 줘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는 工學徒(공학도)였지만, '인민의소리방송(국가정보원)'이라는 대북방송을 듣고 북한 민주화를 위해 탈북했다'며 '이러한 생각 변화가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했다. 또 '북한 주민들이 탈북자들의 소식을 궁금해 한다'며 기독교와는 아무 상관없는 북한 주민이 5년 동안 극동방송을 듣고 탈북한 일화를 소개했다. '이 사람은 극동방송에서 하는 2시간 분량의 방송 중 가장 마지막에 배정된, 탈북자들의 근황을 알려주는 10분짜리 코너가 있는데, 이 10분짜리 코너 하나를 듣기위해 2시간 동안 방송을 들었고, 결국엔 기독교인이 돼 탈북까지 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현재 북한 내부의 한류열풍은 남북교류 이전부터 형성된 것'이라며, '지난 10년 동안의 남북교류협력과는 전혀 별개'라고 했다. 그는 김정은 후계구도와 관련되어서도 비관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NK지식인연대에서 USB에 南韓(남한)정보를 담아 북한에 보내는 작업을 계획하고 있다'며, '북한 인텔리(상류층)의 의식 변화를 유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북한 내 親韓(친한)세력 養成(양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국정원이 했던 공작을 재개한다면 반드시 북한을 내부적으로 와해시킬 수 있다'며 공격적 대북공작을 통한 親韓(친한)세력 양성을 주장했다.
그는 '탈북 하는 것이 북한 정권에 가장 反(반)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남과 북 중 어느 곳이 더 좋은지 확실히 알고 자기 목소리를 낸다'며 '탈북자들이 더 많이 와야 하고, 탈북자 중에서도 국회의원도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잘 되는 것이야 말로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가장 잘 알리는 길'이라고 했다.
李庚勳(조갑제닷컴 인턴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