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斗煥 전 대통령은 1995년, 12.12 사건과 관련하여 구속되어 안양교도소에 수감된 후 검찰로부터 피의자 신문을 받았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인 대통령 재가 없는 鄭昇和 계엄사령관 연행에 대하여 이렇게 진술하였다.
'대통령 결재를 사전에 받아야 한다는 법적인 근거는 없지만, 저는 鄭 총장이 계엄사령관이기 때문에 예우 차원에서 재가를 받으려고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검사가 '그러면 왜 崔圭夏 대통령을 설득하여 재가를 받으려고 그날 밤에 그렇게 노력하였는가'라고 캐묻자 全씨는 '鄭 총장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그렇게 하였다'고 답하였다.
12.12 사건 당시 全斗煥 소장은 계엄사령관 직속의 합동수사본부장 겸 국군보안사령관이었다. 그는 10.26 사건과 관계되는 인물은 그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이 누구든지 연행 조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다른 검사가 당시 국무총리 申鉉碻씨에게 '鄭 총장을 연행하려면 사전에 대통령 재가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하였다.
'당연하지요. 鄭총장은 당시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으로서 비상시국에 막중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떤 범죄에 연루되었다 해도 대통령 재가 없이 연행한다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생각합니다.'
12.12 사건 수사기록을 精讀하면 崔圭夏 당시 대통령이 전두환 본부장이 들이민 鄭昇和 장군 연행 건의서에 서명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였다는 느낌이 든다. 그는 '노재현 국방장관의 재가를 먼저 받아오라'고 했고, 親전두환 계열의 육군 장성들이 몰려가 재가를 호소하여도 국방장관을 불러오라는 지시를 되풀이하였다. 그가 건의서에 서명한 것은 鄭총장이 연행되고 육군본부와 국방부가 全斗煥 측 병력에 의하여 장악된 뒤인 12월13일 새벽 5시10분이었다. 전두환 측이 노재현 국방장관을 끌고가다시피하여 서명하게 한 서류를 盧 장관으로부터 받아 거기에 일자와 시간을 기입하고 서명한 것이다. 崔 대통령이 시간까지 기입한 것에 대하여 申 전 총리는 이렇게 진술하였다.
'그 이유는 제가 국무총리 재직시에는 물론이고 12.12 사건 이후 여러 해가 지난 뒤 여러 차례 崔 대통령으로부터 들은 사실이 있습니다. 崔 대통령께서는 그 당시 사전 재가 없이 鄭 총장을 연행한 것은 불법이라고 생각했고, 12월13일 새벽에 더 큰 혼란과 희생을 방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재가했지만, 事後에 재가를 했다는 점, 국방장관의 결재 등 정식결재 절차를 거쳤다는 점, 장시간 고민 끝에 어쩔 수 없이 결재했다는 점 등을 서류상 명백히 하기 위해 그와 같은 방식으로 재가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申鉉碻씨는 당시의 전두환 장군에 대하여 '한편으로는 괘씸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겁도 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라고 평하였다.
全斗煥씨는 '박정희 장군이 집권한 과정과 피의자가 집권한 과정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가요'라는 검사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였다.
'박정희 장군은 분명히 혁명을 하여 정권을 잡았고, 저는 정권을 잡을 생각이 없었는데 결과적으로 대통령이 되었을 뿐입니다.'
"12.12 밤, 崔圭夏 대통령은 잘 버티었다"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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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2-13, 2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