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탈북자가 바라본 남조선’ 시간 진행의 김춘애입니다.
올해의 마지막을 장식할 12월도 깊어가고 있습니다. 날씨도 갑자기 추워지기도 해 사람들의 목을 움츠리게 할 때가 많습니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을 보니 쓸쓸한 마음이 드네요. 아마 나이는 어쩔 수가 없는가 봅니다.
계절이 바뀌면 누구나 그러하듯이 저도 쇼핑하고 싶은 충돌이 생깁니다. 얼마 전에 저는 두툼한 겨울옷을 한 벌 구입할까 하고 친구 영숙이와 함께 동대문 시장을 다녀왔습니다. 집에서 동대문 시장까지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약 40분 걸립니다.
주말이라 낮에는 집에서 서로 각자 할 일을 하고 저녁에 갔습니다. 동대문운동장역에 도착해보니 번쩍번쩍 화려한 네온사인과 경쾌한 음악소리, 그리고 밤 늦게까지 이어지는 사람들의 행렬이 많아 그것을 보고 우리는 덩달아 신이 났습니다.
“골라, 골라” 박수소리에 맞춰 리듬을 타는 듯한 장사꾼 아저씨의 익숙한 골라 타령에 이끌려 한 무더기씩 쌓아놓은 신발이며 옷들을 골라잡을 때 마음은 어느덧 부자가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리저리 손에 잡혀진 물건 중에는 싼 가격에 비해 꽤 괜찮은 것도 많이 있었습니다.
값비싼 백화점 물건과는 비교도 안 되겠지만 우리 아줌마들에게는 동대문 쇼핑도 하나의 큰 사치였습니다. 저는 봉급도 탔고 해서 그전 같으면 밖에서 파는 옷더미 속에서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겠지만 그날만은 좀 더 좋은 것을 사기 위해 쇼핑몰로 영숙이를 이끌고 들어갔습니다.
정말 알록달록 가지각색의 다양한 옷들이 많았는데 이 옷도 예쁘고 저 옷도 예쁘고, 우리 아줌마들에게는 너무도 희한한 옷들도 많았습니다. 조금만 나이가 젊었어도 저런 예쁜 옷들을 한 번씩 다 입어 볼 텐데…하면서 우리는 아쉬워했습니다.
남대문 시장이나 동대문 시장에 갈 때마다 갖는 심정이랍니다.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아래층, 위층 할 것 없이 모두 구경하며 돌아다녔습니다. 바지를 사고 나면 면 티셔츠가 사고 싶고, 면 티셔츠를 사면 이번엔 치마가 사고 싶고…
물건을 담은 쇼핑백을 주섬주섬 쥐면서 우리는 서로 너무 많이 산다면서 그만 사자고 충고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둘씩 사다 보니 이제는 지갑에 돈도 얼마 안 남은 듯했습니다. 마지막으로 1층으로 내려와 아기 옷을 파는 데로 갔습니다. 쇼핑할 때마다 항상 손녀 옷은 빠지지 않습니다. 영숙이도 덩달아 ‘이 옷이 예쁘다는 둥 저 옷이 예쁘다는 둥’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날 저는 손녀의 겨울옷을 두 벌 구입했습니다.
그리고는 더 이상 발이 아파서 못 걷겠다며 돌아섰습니다. 그런데 금방 제 곁에서 수다를 떨던 영숙이가 없어졌습니다. 나는 출입구마다 헤매며 이름을 크게 부르기도 하고 손전화기로 전화도 했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영숙이는 나보다 길눈이 어두워 한두 번 갔던 길은 찾지 못하기에 저는 더 속이 탔습니다.
아무리 찾고 찾아도 영숙이는 좀처럼 보이지가 않았고, 온몸에 기운이 다 빠진 것 같아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고 있었는데 문뜩 생각나는 것이 있었습니다.
쇼핑몰에도 공개 방송실이 있기에 저는 방송실로 가서 안내원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방송을 하고 봤더니 ‘애기를 잔등에 업고 찾는다는 속담’ 그대로 영숙이는 옆 가게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었다고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뭐니 뭐니 해도 손녀의 옷을 잘 샀다는 영숙이의 말에 저는 어린아이처럼 또 하나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저는 어린아이마냥 지난 주말에도 둘째 딸의 해산 준비로 애기 옷과 띠와 이불을 사주었다는 자랑을 했답니다.
만약 우리가 북한에 있었다면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미리 준비나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한강철교의 아름다운 야경을 바라보며 북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곳 남한 생활의 이모저모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곳 남쪽에 와서 하나둘 늘어나는 새 식구와 함께 이렇게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오늘과 같이 쇼핑을 할 수 있는 것도 늦게나마 저는 선택받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날 고향에서 내 아이들을 키울 때에는 해주고 싶어도 해 줄 수가 없었고 이것저것 요구하는 아이들을 욕설로 대치해 왔습니다. 지금 무럭무럭 자라나는 손자손녀를 바라보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마냥 즐겁고 행복하기만 합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이 시간 또 기다려 주시길 바라며 안녕히 계십시오,
동대문시장 쇼핑의 즐거움
- 김춘애(자유북한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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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2-16, 1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