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조각공원을 선물한 朴世直의 發想

90억원 들여 155인의 세계적인 조각가들로부터 수 兆 가치 있는 155개 작품을 얻다.
(左) 올림픽 공원 '평화의 문' (右) 朴世直 전 서울올림픽 조직 위원장
올해 별세한 朴世直 전 서울올림픽 조직 위원장이 쓴 올림픽 관련 회고록('하늘과 땅, 東西가 하나로', 고려원)에는 세계적인 조각공원이 탄생한 배경에 대하여 이런 설명이 나온다. 아래 글을 읽어보면 위대한 CEO의 창조적인 發想이 國格을 높이는 예술공간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0여개국을 대표하는 155명의 조각가들이 서울올림픽의 大義('벽을 넘어서')에 공감하여 155개의 작품을 만들어 한국에 놓고 간 것이 조각공원이다. 세계 5大 조각공원에 들어간다는 평이다. 이 작품들의 時價를 합치면 兆(조) 단위라고 한다. 그런데 朴 위원장이 들인 原價는 90억원이었다. 훌륭한 군인의 예술혼을 다시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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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소된‘평화의 문’

서울올림픽공원의 정문 역할을 하고 있는 ‘평화의 문’은 이름이 붙여지기 전까지는 상징 조형물로 불렸었다. 높이 24m, 두께 37m, 너비 62m인 ‘평화의 문’은 앞으로 서울올림픽의 형상적 이미지로서 오랫동안 인용될 것이다. 그러나 이 조형물에 대해서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언론과 일부 여론의 반발이 있었고 당초 계획되었던 기념관의 기능도 제외되었으며 폭풍을 견딜 수 없다는 설계공법상의 이유 때문에 서울시가 주관하였던 이 조형물이 원래 계획보다 축소 조정됨으로써 서울올림픽의 장대한 드라마와 역사성을 기념하는 건축물로서는 약간 빈약한 존재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파리의 에펠탑의 예에서 보듯 기념물은 수백·수천 년의 장래를 위해서 만드는 것이므로 당대의 世論에 너무 좌우될 때 실패하기 쉬운 것이다.
나는 상징 조형물의 설계를 맡았던 고 김중업 씨의 애당초 뜻과는 달리 끝내 축소되는 방향으로 결정되자 허전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이와 관련하여 과연 50여 만 평이나 되는 올림픽공원을 장차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시민들을 위하여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되는가를 더욱 골똘히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예술인은 식물원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고, 한 미국인은 어린이 조각 콘테스트를 해서 입상 작품을 야외에 전시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여기서 나는 어른 조각공원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었다.

당대 최고의 조각가들이 혼을 불어 넣어 만든 예술품 사이로 산책하며 명상한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사실 스포츠만을 내세운 종래의 올림픽이 아니라 세계인의 예술을 곁들인, 말하자면 智德體(지덕체)의 종합문화 올림픽을 통해 올림픽 문화의 신기원을 마련하겠다는 서울올림픽 특유의 주제가 있었다.


*한스 에르니 翁(옹)의 助言(조언)

1986년 10월에 스위스 로잔느에서 IOC 총회가 열렸다. 나는 이 자리에서 조각공원 조성 계획을 보고하고 승인을 받았다. 만찬장에서 나는 스포츠 미술계의 大家인 스위스 화가 한스 에르니 옹과 같은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에게 조각공원 계획을 설명했더니 한국에 한번 와서 직접 부지를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즉석에서 訪韓 초청을 했다. 오는 길에 일본 하코네의 조각공원을 둘러보고 오도록 부탁했다.

에르니 옹 부부는 칠순이 훨씬 넘었는데 건강도 의욕도 왕성하였다. 이들 부부는 한국에 왕서 단숨에 경주 관광을 마치고 한국 문화에 대한 감을 잡은 뒤 조각공원의 부지가 될 올림픽공원을 구경하고는 “현대와 古代가 같이 숨 쉬는 장소에 인류화합의 축제인 올림픽을 기념하여 세계적인 조각품을 모아 설치하는 것은 금세기 미술사의 획기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에르니 옹의 평가로 조각공원의 가치에 대한 확신은 더욱 굳어졌으나 역시 국제적인 知面을 가진 조각인이 나타나지 않아 제자리걸음이었다.

1986년 12월 ROTC 장교 출신이며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각가 한창조 씨와 문장철 씨가 일시 귀국했다가 나에게 인사차 들렀다. 나는 지나가는 말로 조각공원 추진의 애로사항을 이야기하였다. 그 이듬해 1월 말, 이 두 사람은 상세한 추진 계획서를 만들어 나를 찾아왔다.
나는 이들이 뜻밖에도 나의 이야기를 잊지 않고 준비를 해준 데 대하여 고마웠고, 그의 추진 계획이 비로소 현실성 있는 내용으로 판단돼 무릎을 쳤다. 이 계획은 다섯 사람의 예술가를 동원하여 세계의 유명 조각가들을 서울로 초빙하여 조각공원 현장에서 예술품을 즉석제작, 전시토록 하자는 요지였다.

韓씨가 추천한 다섯 명은 프랑스의 미술평론가이자 문화부 고문 제럴드 슈리게라, 피에르 레스타니(서유럽 및 아프리카 담당), 미국의 미술평론가 토머스 메서(미주지역 담당), 일본의 미술평론가 나카하라 유스케(아시아 담당), 유고 태생의 미술평론가 안테 리보타(동유럽 담당) 씨였다. 이 다섯 사람은 세계적인 전시회를 조직해 본 경험이 있고 조각가들과 친면이 넓어 현대의 거장들로부터 협조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조직위는 이 다섯 사람을 국제 운영위원으로 위촉하는 동시에 前 이대 미술대학장 이준 씨를 비롯한 18명의 저명한 국내 예술가 및 교수를 국내 운영위원으로 위촉하여 세계 현대미술제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나갔다.

*90억 원의 성금

그런데 조각공원 조성은 예산에 반영돼 있지 않았다. 천상 내가 나서서 평소 예술 활동과 관계가 있는 여섯 개 기업의 총수를 만나 취지를 설명하고 성금을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올림픽과 연관시켜 後世에 영원한 문화 유산이 될 세계적 예술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에 공감하여 큰 어려움 없이 동의해 준 결과, 한 기업에서 15억 원씩 모두 90억 원의 예산이 확보되었다. 삼성(회장․이건희), 현대(회장․정주영), 럭키금성(회장․구자경), 대우(회장․김우중), 선경(회장․최종현), 쌍용(회장․김석원)이 성금을 낸 기업체였다.
이와는 별도로 포항제철(회장․박태준)은 조각공원내 음악분수제작을 위해 15억 원의 성금을 기탁해 주었다.

세계 조각계의 거장들도 자신의 작품이 올림픽 정신을 구현하는 기념 공간에 영원히 전시된다는 명분에 동감, 금적적 이해 타산을 떠나 적극 호응해 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국제 野外조각 심포지움을 비롯하여 세계 야외조각 초대전, 국제 현대회화전, 그리고 한국 현대미술전 등 4종을 다룬 세계 현대 미술제가 추진되었고, 그중의 하나인 제1차 국제 야외조각 심포지움이 1987년 7월1일부터 50일간 올림픽공원에서 맨 먼저 개최될 수 있었다.
한국 조각가 2명, 동구권 조각가 8명을 포함한 15개국의 대표적 조각가 15명이 현장에서 작품을 제작, 기증하였다.
1988년 3월11일에는 17개국 19명이 참가한 제2차 야외조각 심포지움이 열렸고, 그해 9월에는 국제 야외조각 초대전을 열었다. 66개국 155명의 조각가들이 155점을 출품하여 그대로 조각공원에 기증하였다.
그리하여 20세기 후반의 세계적인 조각가들이 세계의 화합이라는 공동 주제 아래에 제작한 200여 점의 국내외 예술품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들어간 경비는 조각품 1점당 평균 4000만원이었다. 이 4000만 원도 여비, 숙식비, 素材 값이 대부분으로 이 조각가들은 순전히 인류의 유산을 만든다는 열정으로써 자원봉사를 한 셈이었다. 뿐만 아니라 국제 현대회화전에는 62개국에서 156점이 출품되었는데 그중 62점이 국립 현대미술관(과천)에 기증되어 한국에 영구히 보전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 역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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