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작년 10월호 월간조선에 실렸던 편집장의 편지 중 일부이다. 요사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하는 일들을 참고로 하면서 읽어보면 보이는 것이 있을 것이다.
기자가 기사를 쓰기 시작한 그날부터 가장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은 「…라고 한다」와 「…이다」의 구별입니다. 「경찰은 A씨가 강도라고 한다」와 「A씨는 강도이다」는 천당과 지옥의 차이, 사실보도와 誤報(오보)의 차이랍니다. 「A씨는 강도이다」라고 기사를 썼을 때는 기자가 그 사실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사실이 아닌 경우에는 감옥에 갈 수도 있고, 거액의 손해배상을 물어야 합니다. 「…이다」라고 쓰기 위해서는 기자의 확신만으로는 안 되고 물증이나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따라야 합니다. 그런 확정 판단에 도달하려면 기자는 엄청난 취취재를 해야 합니다. 「…라고 한다」고 쓰는 것은 발표문을 인용하는 것으로 족하지만 「…이다」라고 쓰려면 수사식 취재와 입체적 검증을 해야 합니다.
지난 8월20일 신문과 방송은 흥분된 표현으로써 「허원근 육군 일병이 상관의 총에 맞아죽었는데 자살로 은폐 조작되었던 사실이 18년 만에 밝혀졌다」고 단정하는 보도를 했습니다. 제가 車中에서 들은 MBC TV의 아홉 시 뉴스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앵커:군복무 중이던 사병이 술 취한 상관이 쏜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을 군부대가 조직적으로 자살인 것처럼 은폐했던 사실이 18년 만에 밝혀졌습니다.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서 사체에다가 추가로 총질까지 해댔습니다. 철저하게 진상이 밝혀져야 할 것이고 또 책임을 져야 할 줄로 압니다>
「총질까지 해댔습니다」란 표현은 보도문에서 쓰지 않아야 할 감정적 단어들입니다. 앵커는 이 은폐사실을 확신하고 자신의 분노를 집어넣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앵커의 소개에 이어 기자의 보도가 이어졌는데 이런 표현도 있었습니다. 「군헌병대는 (유가족들에게) 몸조심하라며 오히려 협박했습니다」, 「군당국의 주장은 완전한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보도 중간에 기자는 이 사실의 근거를 이렇게 내놓았습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오늘 許일병이 부대內 모 하사관이 쏜 실탄에 가슴을 맞고 숨졌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습니다. (중략) 의문사위원회는 이번 사건이 권력과 돈이 없으면 자살로 은폐되기 쉬운 軍 의문사의 전형이라고 말하고… (하략)>
거의 모든 誤報에는 그 기사 안에 誤報라는 자백이 들어 있습니다. 이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토록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게 만든 근거는 너무나 허술합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발표뿐입니다. 그 발표를 근거로 기자가 만나 인터뷰로 내보낸 사람은 총을 쏘았다는 상관이 아니고 許일병의 아버지입니다. 이 기사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許일병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직하게 「…라고 한다」고 해야 하는데, 「…이다」라고 단정했습니다.
즉, 일방적 주장을 진실로 승격시킨 것입니다. 이 승격에 의도가 들어갔다면 造作(조작)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의문사위원회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현재로는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기사가 誤報라는 점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요행으로 맞는 것은 도박이지 正報가 아닙니다.
우연히 車中에서 제가 듣게 된 MBC를 예로 들었을 뿐 KBS, SBS, 한겨레신문, 문화일보, 경향신문 등 거의 모든 방송과 신문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許일병 아버지의 주장을 진실이라고 보도하는 형식의 誤報를 했습니다. 조선일보와 국민일보 및 연합뉴스는 기자가 단정하지 않고 「의문사위원회가 밝혔다」는 식으로 보도함으로써 誤報를 면했습니다.
이날 지옥 문턱에 가는 공포를 느꼈을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의 모든 방송과 신문으로부터 범인으로 지목된 모 하사관, 타살을 자살로 은폐했다는 軍 간부들이 그들입니다. 이들의 법적 신분은 현재 무죄인들입니다. 그런데도 방송과 신문들이 확인 사살, 조직적 은폐,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집중 보도를 하니 제 정신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무고한 사람이 언론으로부터 집중적인 의심을 받아보면 그런 심리적 고통이 육체적 고문에 못지않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1975년에 등산 중 失足死(실족사)한 張俊河씨(전 思想界 발행인)와 사고 당시 같이 있었던 金龍煥씨(고교 교사)가 그런 사람입니다. 張俊河씨를 국가기관이 죽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단체, 그리고 이들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수용하여 의혹을 제기한 방송·잡지·신문으로부터 시달림을 당한 그는 1993년 6월호 月刊朝鮮 기고문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金씨는 張俊河씨의 장례 직후 잠적했고 최초의 진술 외엔 아직도 입을 열지 않고 있다」고 적고 있었다. 이 초라한 사람이 갈 곳이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나 슬플 때나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도 잠적인가>
<나는 할 말을 다했는데 나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내가 말을 하지 않았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없었던 일을 지어서 말하라는 것인가. 말해도 믿지 않을 것이고 없는 말도, 없는 것도 마음대로 만들어 한 방향으로만 몰아가고 있는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하란 말인가. 나는 말할 수도, 말하지 않을 수도 없는 처지에 서서 갈 곳을 잃은 거리의 고아가 되어 버렸다. 신문, 잡지, 텔레비전, 정치권에서 나를 향해 공격해 오고 있다. 유일한 등산 동반자이며 목격자의 증언도 부정한다면 그곳에서 어떤 진실이 밝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한방에 같이 있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면 자식이 부모님을 돌아가시게 했다고 말할 것인가>
작년 여름 의문사委가 했던 일
- 조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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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12-23, 1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