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羅통일 비판에 문제 많다

新羅통일 비판에 문제 많다

李文烈

<편집자 注: 소설가 李文烈씨는 지난 2월에 발간된 「韓國史 시민강좌」32호에 「한국 史學에 바란다: 역사와 관점」이란 題下의 글을 기고했다. 중요부분을 뽑아 싣는다.>

‘김유신은 민족반역자’이며, ‘삼국통일은 5천년 우리 역사에 최대의 비극이자 치욕’이라는 삼국통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상당수 지식인과 70년대 이후 태어난 젊은이들 사이에 널리 퍼지고 있다. 부정적 시각의 원인 중에 가장 큰 것은 민족주의적 觀點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異民族인 唐나라의 군대를 끌어들여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켰다는 게 신라를 비난하는 이유다.

우리가 알기로 민족주의 개념은 발상지인 서구에서도 17세기 중엽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에야 싹이 텄다. 고구려와 신라는 통역이 필요할 만큼 민족적 동질성도 없었다. 고구려와 백제도 이민족인 돌궐ㆍ일본과 橫軸(횡축)으로 이어진, 羅唐연합에 비견되는 縱軸(종축)세력을 구축했었다. 삼국통일 뒤 30년에 걸친 신라의 對唐항쟁은 쉽게 무시되고 있다.

신라의 삼국통일을 領土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적 假定에서 부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만약 고구려가 통일했다면’하며 시작되는 가정의 연쇄는 화려한 역사적 상상력을 펼쳐 나간다. 이 상상은 오늘날의 우리를 대륙의 강대국으로 상상 속에서 번성하게 하고, 그걸 막은 신라의 삼국통일을 비난한다. 그 밖에 신라의 문화적 異質性과 後進性을 들어 신라의 삼국통일을 貶下(폄하)하기도 하는데 이는 근거가 애매하고 검증하기 어렵다.

억지를 써 가며 삼국통일의 의미를 축소하고 가치를 부인하는 배후는 고구려에 우리 민족국가의 정통성을 부여하는 관점, 즉 고구려 중심사관이다. 요즘 은연중에 만연한 고구려 중심사관에는 고대사에서 이끌어낸 상징성을 현대사에 선동적으로 적용, 현실정치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북한이 공식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사관을 살펴보는 것도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동학운동은 단기간에 급격히 평가절상 됐다. 머지않아 ‘혁명’으로까지 불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틀림없이 동학운동에는 혁명적인 외양과 요소가 있다. 民亂의 성격도 갖추고 있다.
어떤 역사적 사건을 혁명으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충족시켜야 할 조건들이 있는데, 대표성과 代案性, 기여도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우선 동학운동을 대표성 측면에서 보자. 당시 朝鮮 사정을 훤히 알던 조선 浪人들은 일본군부에게 “황해도 이북에는 이렇다 할 동학세력이 없고 三南도 東과 西가 다르다”고 했다. 일본군부는 고작 700여명의 병력으로 동학농민군을 제압했다. 일본도 조선 민중을 대표하는 세력을 그 정도의 병력으로 제압할 수 있다고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대안성에서 봤을 때, 동학이 정권을 장악하더라도 봉건왕조 말기의 모순을 극복할 대안이 됐을지도 의심스럽다. 외세축출을 내세운 동학운동이 오히려 청일전쟁과 노일전쟁을 부추겨 조선왕조의 수명을 단축시켰다는 점에서 기여도를 인정하는 데도 소극적이 된다.

동학운동의 의도적 평가절상은 삼국통일의 평가절하와 마찬가지로 특정 사관과 聯關이 있는 듯하다. 민중사관이란 애매한 관점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정치적 목적이나 특정 이데올로기가 의심된다.

요즘 역사학계를 보면 뻔한 정치적 의도가 史觀을 위장, 목소리를 높이고 명백한 사실도 멋대로 염색되고 재단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특히 우리 체제를 바닥부터 부정하는 사관의 무분별한 적용으로 젊은이들의 역사의식을 오도하고 있다. 일부 젊은이들에게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는 없으며, 대한민국은 부정되고 해체되어야 할 허구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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