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의원의 이념(理念)을 묻는다

6.15선언을 이행하고, 김정일과 소위 평화통일을 실천하며, 반대세력은 지금처럼 온갖 공갈·협박에 시달리는 미래가 오지는 않을 것인가?
1.
강남교회 김성광 목사가 7일 「박근혜 비판 발언」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朴의원의 정체성과 이른바 「이명박 발목잡기」를 지적하며 朴의원을 『우는 닭』에 비유한 게 문제가 된 것이다.

비유의 과격성 여부를 떠나, 박근혜 지지세력의 강남교회 비난은 살벌(殺伐)하기만하다. 발언이 나온 지 19일이 지났지만 강남교회 측은 온갖 공갈·협박전화에 시달린다. 박사모 회원들은 12월20일에 이어 27일에도 교회 앞에서 항의집회를 가질 계획이다. 20일에는 한 여성회원이 교회 안으로 몰려와 욕설을 퍼붓고 갔었다.

보수논객 양영태 박사 역시 김성광 목사를 지지하는 칼럼을 썼다는 이유로 공갈·협박 문자와 전화를 받고 있다. 그는 최근 칼럼에서 『친ㅇㅇ계에 있는 잘 아는 X모라는 사람한테서 「양영태는 제거 대상 1호」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면서 신변을 조심하라』고 나를 위해 선의의 충고를 해주고 돌아갔다.』고 말한다.

2.
김성광 목사의 7일 설교영상을 다시 보면, 박근혜 의원의 애매모호한 정체성을 지적하며 국민들에게 견제를 촉구하는 내용이다. 사실 박근혜 의원과 지지세력은 金목사의 표현 하나를 트집 잡는 대신 그의 질책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당시 金목사가 가장 문제 삼은 것은 朴의원의 김정일 면담이었다. 金목사는 『박근혜 의원이 김정일 전세기 타고 북한에 가 김정일과 나란히 사진을 찍고 햇볕정책에 동의를 해주고 왔다』며 『아버지를 죽이려 하고 어머니를 죽인 집안, 그야말로 원수 집안인데 사과를 받아야지 딸이 아들한테 가서 햇볕정책을 지지한다고 발언하면 문제가 아니냐』는 요지로 발언하기 시작했다.

이어 金목사는 朴의원이 경선 굴복 이후부터 『딴 소리나 하고 뒤에 가만히 앉아서 훈시만 하고 앉았다』며 朴의원의 용산사태 및 세종시 발언을 지적했다. 『(뒤에 앉아서) 용산참사는 경찰의 과잉진압이다, 과잉진압이다 하고, 이번에도 세종시는 원안대로 하라, 원안대로 하라』고 한다며 비판한 것이다.

3.
金목사가 지적한 박근혜-김정일 면담은 愛國세력이 계속 문제제기해 온 부분이다. 朴의원은 2002년 5월14일 김정일을 만나고 돌아와 『어떤 의견을 교환했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7.4 남북 공동성명 얘기를 했다. 6.15 공동선언도 7.4 공동성명에서 뜻이 뿌려진 것이다. 7.4 공동성명 채택 당시 씨앗이 뿌려졌지만 아직 완성이 안됐는데 우리 시대에 결실을 보아 평화통일을 위해 같이 힘을 합쳐 노력하자는 얘기를 했다. (내가) 「약속하셨죠」라고 하자 김 위원장이 「약속합니다」라고 말했다.』라고 말했다.

김정일과 소위 평화통일(?) 약속을 맺고 돌아 온 朴의원은 이후에도 6.15선언을 지지하는 스탠스를 유지했다. 2004년 서울에서 열린 6.15국제토론회에 참석해서는 『4년 전 당시 평양에 경험들이 아주 생생하다』며 『(6.15선언을) 잘 발전시켜 나가야죠』라고 공언했다.

4.
朴의원의 「세종시 원안(原案) 플러스 알파」 주장 역시 愛國세력의 비판을 받아왔다. 朴의원이 국익(國益)은 외면한 채 「충청표」를 위해 수도(首都)를 쪼개자는 포퓰리즘에 앞장서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불법·폭력·좌파를 옹호하는 朴의원의 잇따른 발언도 愛國세력에게 실망을 안겨왔다. 金목사가 지적한 용산사태만 해도, 朴의원은『왜 그렇게 빨리 진압에 들어갔는지 이해할 수 없다...왜 그렇게 기다리지 못했는지 잘 모르겠다(1월22일 연합뉴스)』며 경찰의 진압을 거듭 비난했다.

당시 발언은 법치(法治) 대신 불법(不法)을 감싸는 것이었다. 용산사태 상황은 도심 테러에 가까웠다. 不法농성자들은 화염병을 100개 이상 투척하며 용산 일대를 무법천지로 만들어 버렸다. 연쇄적으로 불이 났다. 한 곳을 끄면, 또 다른 군데서 불이 났다. 경찰은 18차례나 설득을 시도했다. 모두 실패했다. 경찰특공대가 들어갔지만, 不法농성자들이 신나를 통째로 부어놓은 탓에 사고가 터졌다. 경찰의 진압은 강경진압도, 과잉진압도, 살인진압도 아니었다. 사람이 죽고 다친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정당한 법집행이었다.

朴의원은 용산사태 당시 무정부 상태에 대한 의분(義憤) 대신 공권력 비난에 나섰다. 그가 진압 당시 순직한 김남훈 경사를 위로(慰勞)하거나 조문(弔問)했다는 말 역시 들어보지 못했다.

5.
김성광 목사가 지적한 부분 외에도, 朴의원은 지난 2년간 대다수 이슈에서 좌파 편을 들어왔다.

7월19일 미디어法 처리를 위한 국회 본회의 참석과 관련, 『참석하게 된다면 반대(反對)표를 행사하기 위해 참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전문가들 지적처럼, 미디어法은 여야(與野)-좌우(左右) 또는 친이(親李)-친박(親朴) 사이 정쟁의 대상이 아니었다. 좌경화된 방송의 독과점(獨寡占) 구도를 선의의 경쟁(競爭) 구도로 바꾸고, 방송의 철밥통 구조를 개혁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朴의원은 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를 무렵 좌익들의 미디어法 반대논리에 힘을 실어줬다.

朴의원은 2008년 5월6일 광우병 난동이 시작되자 『쇠고기 문제의 초점이 잘못돼 있다. 지금 협상에 대해 반대하는 네티즌이나 국민들이 미국산 소고기 수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가 확산되는 이유는 쇠고기 협상 전후에 정부의 자세와 태도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달 10일 李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도 『국민들이 정부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것(광우병 파동)은 국민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할 일이지, 이념(理念)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朴의원의 당시 발언은 한국진보연대 등 친북좌파 단체들이 주도했던 광우병 난동의 본질을 외면하고, 미국산 쇠고기가 독극물인 양 떠들어대던 온갖 거짓을 옹호하는 발언이었다. 그리곤 국익 대신 깽판세력의 불법, 폭력, 무질서 공권력 파괴에 면죄부를 주었다.

6.
반면 金목사는 확고한 국가관(國家觀)을 보여 온 인물로서 「친이(親李)」나 「명빠」로 부르기 곤란해 보인다.

예컨대 그는 월간조선 11월호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의 소위 중도실용에 대해『성격상 자신감이 부족해서이거나, 좌파와의 싸움에 대한 준비가 안됐기 때문에 적당히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며 『중도실용이라면서 좌파세력을 강력히 제재하지 못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인터뷰에서 「중도실용정책 덕분에 지지도가 오르고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도, 그는 『중요한 건 인기가 아니라 정체성과 노선』이라며 『「침묵하는 다수」의 뜻을 외면하고 선동하고 촛불 드는 사람들에게 좌우되면 배가 흔들린다』는 말로 반박했다.

또 김대중 前대통령이 국립묘지에 묻힌 것과 관련해서도 『말도 안 되는 얘기다. 국립묘지는 과거 국군묘지다. 공산당하고 싸우던 사람이 가는 곳에 왜 그가 묻히냐』며 『이명박 대통령은 싸우기 싫어서 할 수 없이 허락했겠지만,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그런 것은 나중에 역사적으로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金목사는 북한에 대해서도 『평양에 선전용으로 교회를 지어 놓았다고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며 소위 남북교류(南北交流)하는 한국 목사들에 대해, 『마귀·사탄을 자꾸 만나서 도움 될 게 없고, 지난 10년 동안 김정일이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고 비판했다.

7.
이른바 『우는 닭』 표현에 돌을 던지기 전에 정작 돌아볼 문제는 金목사가 지적한 박근혜 의원의 이념이다.

과연 朴의원이 2012년 차기 대통령이 된다면 김정일과 맞서 북한동포를 해방하고 자유통일을 이루어 일류국가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인가? 오히려 그의 평소 언행대로 6.15선언을 이행하고, 김정일과 소위 평화통일을 실천하며, 반대세력은 지금처럼 온갖 공갈·협박에 시달리게 되지는 않을 것인가? 「김성광 목사 논란」 이면에 숨겨진 진정한 두려움은 바로 그런 것들이다.

(아래는 논란이 된 김성광 목사의 설교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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