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와 좌경세력이 지배하는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지 않는 것들.
1. 대한민국 建國과 李承晩의 역할
2. 韓美동맹의 기적
3. 6.25 동란의 책임자: 김일성 스탈린 모택동의 역할
4. 트루먼의 미군 파병결정 과정
5. 흥남철수 때 미군이 10만 명의 한국인을 구출한 것
6. 6.25 동란 때 공산당에 의한 학살과 납북, 그리고 국군포로 강제억류
7. 학도병과 소년병들의 활약. 2500명의 소년병이 戰死하였다.
8. 한국전쟁중 5만4000명의 미군이 戰死한 사실
9. 1990년대 후반 북한에서 수백만 명이 굶어죽은 사실
10. 북한정권이 KAL기 폭파, 아웅산 테러를 일으킨 사실
11. 서울올림픽의 세계사적 성공과 북방정책의 전개과정
12. 유신시절에 중화학공업 건설로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다가간 사실
13. 全斗煥-盧泰愚 합작의 6.29 선언이 한국의 민주화 시대를 연 사실
14. 한국이 양극화 문제를 세계에서 가장 잘 극복하였다는 사실
15. 김정일-김대중의 6.15 선언이 헌법위반이란 사실
16. 연방제 통일방안은 공산통일방안이란 사실
17. 1961년에 한국은 파키스탄, 필리핀, 그리고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못 살았다는 사실
18. 김정일이 호화판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
19. 북한에선 형법이 국가비밀이란 사실. 공개처형장에 어린이들을 강제동원한다는 사실. 북한남자의 평균키가 한국보다 13cm나 짧다는 사실
20. 결론적으로 이 나라의 학교들은, 북한정권이 잘못한 일을 가르치지 않고 동시에 대한민국과 미국, 특히 이승만과 박정희와 국군과 미군이 잘 한 일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 결과물은 조국에 대하여 고마움도 자부심도 없고, 敵과 惡에 대한 분노와 정의감이 결여된 괴물형 젊은 세대의 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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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생 설문조사 : 33%가 '전쟁나면 외국으로 도망가겠다'
'祖國을 위해 싸우겠다'는 27%. 6·25 한국전쟁의 원인을 알고 있는 학생은 50% 정도
李庚勳(조갑제닷컴 인턴기자)
다가오는 2010년은 6·25전쟁 발발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6·25전쟁을 경험한 세대는 줄어들고, 北韓정권과 親北(친북)·左翼(좌익)세력은 역사적 眞實(진실)을 왜곡하고 있다. 거짓되고 왜곡된 주장이 그치지 않고 있으니 어찌 6·25가 끝났다고 할 수 있겠는가? 6·25는 아직도 진행 중이며, 그 樣相(양상)은 武(무)가 아닌 文(문)으로 바뀌어 思想戰(사상전)이 돼버렸다. 이 思想戰에 의해 大韓民國(대한민국)은 보이지 부분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것이 바로 歷史觀(역사관)과 國家觀(국가관)이다.
1990년대 후반 한국사회는 고도의 경제성장과 신속한 民主化(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先進統一國家(선진통일국가)로 진입할 역사적 기회를 맞았다. 하지만 지난 10년 親北·左派(좌파)政權(정권)의 등장으로 그 꿈은 산산조각 나 버렸고 갈등과 분열의 시기를 맞았다. 그 근본 원인은 기존의 대한민국적 가치에 反(반)하는 歷史觀(역사관)과 國家觀(국가관)을 가진 이들이 국가 권력을 장악해 기존의 대한민국적 가치를 파괴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파생된 價値觀(가치관)의 혼돈과 사회 각 분야의 혼란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歷史觀(역사관) 顚倒(전도)의 핵심에 6·25가 존재한다.
지난 4월 행정안전부가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6.9%가 6·25전쟁 발발 연도를 모른다고 대답했다. 연령대로 보면 20대가 56.6%로 가장 많았고, 30대 28.7%, 40대 23.0%가 6·25전쟁 발발 연도를 모른다고 답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11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진행됐다. 서울의 한 학원에서 100 명의 학생들에게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설문 대상은 13(초6)~19(고3)세까지이다. 설문의 주된 내용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식 여부와 마지막 문항의 國家觀(국가관)에 대한 것으로 진행됐다. 적은 표본이지만 6·25전쟁에 대한 학생들의 認識(인식)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설문의 내용과 결과는 아래와 같다.
1번 문항 '6·25 한국전쟁이 무엇인지 아는가'에 대해 '안다' 93%(93명), '모른다' 7%(7명)로 조사됐다.
2번 문항 '6·25 한국전쟁은 누가 일으켰는가'에 대해 '북한이 일으켰다' 71%(71명), '남한이 일으켰다' 3%(3명), '미국이 일으켰다' 10%(10명), '일본이 일으켰다' 4%(4명), '모른다' 12%(12명)로 조사됐다.
3번 문항 '6·25 한국전쟁은 누구와 누가 싸웠는가'에 대해 '남한과 중국' 0%(0명), '남한과 일본' 4%(4명), '남한과 북한' 86%(86명), '북한과 미국' 3%(3명), '모른다' 7%(7명)로 조사됐다.
4번 문항 '6·25 한국전쟁은 언제 일어났는가'에 대해 '1945년 6월 25일' 14%(14명), '1948년 6월 25일' 14%(14명), '1950년 6월 25일' 50%(50명), '1952년 6월 25일' 5%(5명), '모른다' 17%(17명)로 조사됐다.
5번 문항 '6·25 한국전쟁은 언제 끝났는가'에 대해 '1948년 3월 1일' 7%(7명), '1951년 8월 15일' 15%(15명), '1953년 7월 27일' 41%(41명), '1955년 6월 15일' 7%(7명), '모른다' 30%(30명)로 조사됐다.
6번 문항 '6·25 한국전쟁의 책임(잘못)은 누구에게 있는가'에 대해 '남한' 4%(4명), '미국' 13%(13명), '북한' 50%(50명), '일본' 9%(9명), '모른다' 24%(24명)로 조사됐다.
7번 문항 ‘6·25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남한)의 대통령은 누구인가’에 대해 '이승만' 72%(72명), '박정희' 12%(12명), '김대중' 2%(2명), '김구' 1%(1명), '모른다' 13%(13명)로 조사됐다.
8번 문항 '6·25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지도자는 누구인가'라는 설문에 대해 '김구' 6%(6명), '김일성' 74%(74명), '김정일' 9%(9명), '고이즈미' 0%(0명), '모른다' 11%(11명)로 조사됐다.
9번 문항 '6·25 한국전쟁 당시 북한을 도운 국가는 어디와 어디인가'에 대해 '중국(중공)과 소련' 68%(68명), '중국(중공)과 일본' 4%(4명), '소련과 일본' 12%(12명), '미국과 일본' 3%(3명), '모른다' 13%(13명)로 조사됐다.
10번 문항 '6·25 한국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미군이 얼마나 전사했는가'에 대해 '500여 명' 8%(8명), '3,500여 명' 13%(13명), '10,000여 명' 20%(20명), '50,000여 명' 17%(17명), '모른다' 42%(42명)로 조사됐다.
11번 문항 '대한민국(남한)을 돕기 위해 참전한 유엔군은 6·25가 발발한 그 해 9월 15일『 □』을(를) 감행(실행)했습니다. □으로 알맞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설문에 대해 '노르망디상륙작전' 1%(1명), '인천상륙작전' 73%(73명), '부산상륙작전' 9%(9명), '한강상륙작전' 0%(0명), '모른다' 17%(17명)로 조사됐다.
11-1번 문항 '인천상륙작전을 누가 지휘했는가'에 대해 '이순신' 1%(1명), '트루먼' 3%(3명), '맥아더' 81%(81명), '케네디' 0%(0명), '모른다' 15%(15명)로 조사됐다.
12번 문항 '학교나 학원 수업을 통해 또는 언론매체(신문, 텔레비전)를 통해 6.25 한국전쟁에 대해 듣고 배웠는가'에 대해 '그렇다' 76%(76명), '아니다' 24%(24명)로 조사됐다.
13번 문항은 주관식으로 '6·25에 대해 알고 있다면 <어떻게 알았는지>, 모른다면 <왜 모르는지>'에 대해 물었다. '알고 있다'고 답한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웠다', '부모님과 할아버지·할머니께로부터 들었다', 'TV를 통해 봤다'. '책을 읽고 알게 됐다' 순으로 답했다. '모른다'고 답한 학생들 가장 많이 적은 답은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다'였다.
14번 '6·25 한국전쟁을 올바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에 대해 '그렇다' 84%(84명), '아니다' 4%(4명), '모른다' 12%(12명)로 조사됐다.
國家觀(국가관)과 관련된 15번 문항 '대한민국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대한민국(남한)을 위해 싸울(지킬) 것인가'에 대해 '그렇다' 27%(27명), '아니다' 15%(15명), '적에게 항복한다' 1%(1명), '외국으로 도망간다' 33%(33명), '모른다‘ 24%(24명)로 조사됐다.
'6·25하면 가장 생각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학생들은 '柳寬順(유관순)', '38선', '전쟁', '인천상륙작전', '맥아더', '현충원', '미국과 소련', '金日成(김일성)' 등이 떠오른다고 대답했다.
설문은 총 16개의 문항으로 구성됐으며, 이중 11개의 문항이 역사지식을 필요로 하는 문항이다. 이 11개의 문항으로 학생들의 6·25에 대한 역사인식을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다. 나머지 5개의 문항은 정답이 없는 문항이다. 역사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문항은 2번 문항부터 11-1번 문항까지다. 이 11개의 문항 중 9개 이상의 문항을 맞춘 학생은 39명이었다. 그 중 3, 4번 문항(6·25의 발발일과 휴전일)까지 모두 맞춘 학생은 26명뿐이었다. 100명 중 26명 정도만이 6·25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지식을 필요로 하는 11개의 문항을 모두 맞춘 학생은 100명 중 6명이였으며, 남학생 4명, 여학생 2명이었다. 이들 6명 중 15번 문항('대한민국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대한민국을 위해 싸울 것인가')에서 '1번(싸운다)'을 선택한 학생은 여학생 한 명뿐이었다. 남학생 4명은 모두 '4번(외국으로 도망간다)'을 선택했고, 나머지 여학생 한 명도 '4번(외국으로 도망간다)'을 선택했다.
설문 문항 중 정답률이 가장 높았던 설문은 3번 설문('6·25 한국전쟁은 누구와 누가 싸웠는가' - 86%)이다. 가장 낮았던 설문은 10번 설문('6·25 한국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미군이 얼마나 전사했는가' - 17%)이다.
2번 문항(6·25 한국전쟁은 누가 일으켰는가)과 3번(6·25 한국전쟁은 누구와 누가 싸웠는가), 6번 문항(6·25 한국전쟁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은 서로 연관되는 문항이다. 3번 문항에서 '남과 북이 싸웠다'고 답한 학생은 86%(86명)이고, 2번 문항에서 '북한이 일으켰다'고 답한 학생은 71%(71명)이지만 6번 문항에서 '북한에 잘못이 있다'고 답한 학생은 50%(50명)뿐이었다.
이 대목에 주목해야 한다. 학생들은 6·25전쟁이 '남과 북이 싸웠다'는 사실을 알고 북한이 먼저 기습 남침한 사실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6·25의 책임이 북한에게 있다고 답한 학생은 전체의 절반뿐이었다는 것이다.
6번 문항에서 '북한의 책임(50명)'을 선택한 학생과 '모른다(24명)'를 선택한 학생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26명)의 답은 다음과 같다. 첫째, 6·25는 '남한이 잘못했다'는 것(4명). 둘째, '미국이 잘못했다(13명)'는 것. 셋째, 1945년 광복 후 신탁통치 과정에서 남과 북이 분단됐고, 분단이 6·25의 始初(시초)라는 인식을 바탕에 두고 '일본에 원인이 있다'는 것. 넷째, '남한과 일본의 전쟁'으로 알고 있다는 것(9명)이다.
'모른다(24명)'를 선택한 경우는 두 가지이다. 남과 북이 싸운 것은 맞는데 '누구의 잘못인지는 모른다'는 것과 남과 북 둘 다 책임이 있는데, 한 곳만 선택하도록 돼있어 '모른다'를 선택한 경우가 있다. 後者(후자)는 6·25를 內戰(내전)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內戰(내전)’이라는 것이 동등함을 의미하기에 누구의 잘잘못이 없고 서로 싸웠다는 의미가 강하다. 학생들은 북한이 기습남침을 해 同族相殘(동족상잔)이 벌어진 것이 아닌, 남과 북이 서로 싸웠기에 同族相殘(동족상잔)의 비극이 발생했다고 인식하고 있다. 순서가 바뀐 것이다. 이것은 兩非論(양비론)의 근거가 된다. 종합하면 6·25전쟁의 책임 소재를 가릴 수 있는 학생은 절반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10번 문항 '6·25 한국전쟁에서 大韓民國(대한민국)을 위해 美軍(미군)이 얼마나 戰死(전사)했는가'에 대한 설문에서 대부분의 학생이 전사자의 數値(수치)를 알지 못했다. 비록 17%의 정답률이 나왔지만, 이는 '무작위로 선택'했거나, '숫자가 가장 커서'선택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 문항이 주관식이었다면, 정답률은 더 낮았을 것이다. 10번 설문 도중 한 학생은 '50,000여 명'이라는 숫자를 본 후, '미군이 이렇게나 많이 죽었을까? 치사하게 싸우는 척하고 싸우진 않았을 거야, 한 500명 죽었을라나'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12번 문항 '학교에서 6·25전쟁에 대해 배우지 못하거나 언론을 통해서도 접하지 못했다'는 학생은 24%, 전체 4분의 1을 차지했다. 학생들의 6·25전쟁에 대한 역사적 인식부족은 학교에서 교과목을 통한 수업에서 6·25전쟁을 배우지 않거나 배우더라도 그 내용이 충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론매체 역시 6·25에 대한 보도를 많이 하지 않는다. 또 영화를 통해 왜곡되거나 잘못된 인식을 갖기도 한다.
13번 주관식 문항에선 '학교에서 배웠다(들었다)'고 쓴 학생이 가장 많았으나, 이들의 2번 문항부터 11-1번문항까지의 정답률은 높지 않았다. '부모님이나 할아버지·할머니께로부터 들었다'고 쓴 학생들은 북한의 남침여부, 책임 소재 등 6·25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 다소 높았다. 이어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6·25전쟁을 알게 됐다'고 답한 학생들은 ‘전쟁의 원인’에 대한 인식은 부족했다.
최근에 만들어진 영화 중, '6·25의 책임이 북한에 있다'고 직접적으로 그리는 영화는 없었다. 10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는 국군과 인민군을 둘 다 惡(악)으로 그려냈다. 근래 선보인 영화 중에는 국군과 인민군이 서로 협력하는 내용의 영화(천군, 웰컴투동막골 등)도 있었다. 학생들은 이러한 영화를 통해 '왜 6·25가 발발했는지', '왜 북한이 기습남침했는지'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없다. 영화에선 그런 내용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주로 '同族相殘(동족상잔)의 悲劇(비극)', '南과 北이 화해·협력해야 한다', '북한은 나쁜 집단이 아니다' 와 같은 내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TV에서 하는 다큐멘터리의 내용도 주로 '분단', '전쟁의 참혹함', '양민학살', '남북화해협력', '통일' 이라는 주제에 무게가 실렸다. '北韓의 南侵(남침)', '유엔군의 犧牲(희생)'과 같은 주제는 찾기 어렵다. 매년 6월이면 각 방송사마다 연례행사로 6·25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하지만 제작의도가 명확하지 않다.
15번 문항 '대한민국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대한민국(남한)을 위해 싸울(지킬) 것인가'에 대해 27%, 약 4분의 1만이 '대한민국을 지키겠다'고 답했다. 우리의 국민 교육이 27%만 성공했다는 것이다. '외국으로 도망간다' 33%, 약 3분의 1로 가장 높았다. '싸우지 않겠다'는 15%였다. '모른다'는 답도 24%, 약 4분의 1정도 된다. '모른다'를 선택한 경우는 '상황을 봐가면서 판단·결정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적극적인 자세'라고 평가할 순 없다. '100명 중 27명만 대한민국을 지키겠다'는 통계를 보고 가장 기뻐할 사람은 金正日(김정일)일 것이다.
60년 전 당시 중-고등학생에게 이런 설문을 했다면 무엇이라고 답했을까? 너나없이 모두들 '싸우겠다', '지키겠다'고 답했을 것이다. 그들은 펜 대신 총을 잡았고 學徒兵(학도병)이 됐다. 그들은 북한 공산군과 싸웠고 지금 祖國(조국)의 山河(산하)에 묻혀 있다.
6·25발발 60주년(2010년)을 맞아 국민정신교육에 힘써야 한다. 그 시작은 6·25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서 출발한다. 그렇지 않으면 自由統一(자유통일)도 없고, 一流(일류)국가도 없다. 風前燈火(풍전등화)에 놓인 大韓民國(대한민국)을 지켜 준 참전국의 勞苦(노고)를 忘却(망각)하는 背恩忘德(배은망덕)한 나라는 잘될 수가 없다.
6·25의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 '6·25 잊으면 6·25가 다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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