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온 2003년12월29일-2004년1월5일자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올해의 인물(Person of the Year)]은 [미국 군인들(Amrerican Soldier)]이었습니다. 표지사진에는 미군, 여군, 백인 사병 세 사람이 총을 잡고 서 있습니다. 이 잡지의 편집장 편지에는 편집장 제임스 켈리가 쓴 취재 秘話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타임誌에선 지난 가을 올해의 인물을 내정한 다음 기자 세 명을 이라크 전선으로 파견하여 취재를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세 명은 뉴욕에 사는 작가 로미시 라트니살, 타임본사의 고참기자 마이클 바이스코프, 사진기자 제임스 나하트웨이였습니다. 세 기자 모두 지난 봄 이라크 전쟁을 취재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난 11월에 그들이 동행 취재 대상으로 선택한 부대는 미 육군 제1기갑사단의 포병수색소대였습니다. 독일에 있다가 지난 5월에 이라크로 배치된 이 부대는 '툼 레이더스(Tomb Raiders)'라는 별명을 가졌습니다. 이라크 반군들이 공동묘지에 숨겨놓은 무기들을 찾아다니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타임지의 세 취재팀은 이 소대와 함께 자고 먹고 순찰을 나가곤 했습니다.
지난 12월10일 저녁 세 기자를 태운 군용트럭이 바그다드를 지날 때 이 트럭으로 수류탄이 날아왔습니다. 타임지 기자 마이클이 순간적으로 이 수류탄을 줏어 올려 던지려고 했습니다. 수류탄은 마이클 기자의 손에서 터졌습니다. 그의 손은 날아갔고, 사진기자 제임스는 하복부에 파편을 맞았습니다. 동행했던 두 사병도 크게 다쳤습니다.
이런 수류탄이 터지면 치명적인 파편들이 5미터 반경을 따라 사방으로 퍼져나가는데 마이클 기자가 터지는 순간 손으로 막는 형국이 되었으므로 파편의 확산이 저지되어 다친 사람들이 훨씬 줄었다는 것입니다.
다친 두 기자는 후송되어 再活치료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마이클 기자는 독일 병원에서 1차 치료를 받았는데, 이 병원에는 두 팔을 잃어버린 부상병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부상병은 '나는 귀향하면 결혼하게 되어 있는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결혼 반지를 어디에 껴야 하지요'라고 말하더라고 한다. 간호사는 부상병의 윗팔을 꼭 끼더니 이렇게 말하더란 것이다.
'결혼 반지를 메달처럼 매달아 목에 걸면 되지 않겠어요. 그렇게 하면 반지가 심장에 가장 가깝게 놓이게 될 겁니다.'
저는 타임지의 기사를 읽으면서 군인들을 소중하게 대하려는 미국언론의 성숙하고 따뜻한 마음을 읽었습니다. 한국에서 어느 언론사가 국군 장병들을 [올해의 인물]로 뽑으면 군사문화를 욕하는 항의가 빗발칠 것입니다. 세계적인 强軍을 가진 한국이지만 우리의 의식속에서는 군인들을 내려다보려는 생각이 강합니다. 여기에다가 金正日 편을 드는 친북좌익세력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군대를 동네북처럼 두드립니다. 제가 전에 써두었던 군사문화에 대한 글을 이 기회에 덧붙여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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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문화를 위한 변호
저는 우리가 1945년 이후 되찾은 4개의 민족적 유산을 尙武정신, 해양정신, 기업가정신, 그리고 자주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네 가지는 또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업가 정신이 해양정신으로 무장하여 무역을 통해 돈을 벌고 이것은 상무정신을 유지하는 기반이 되며 自主정신은 부국강병일 때만 가능하다는 식이지요.
저는 군사문화란 말보다는 상무정신이란 말을 더 편하게 느끼면서 쓰고 있습니다. 상무정신이란 무엇인가 하고 물으면 저는 '군에 복무한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정신'이라고 쉽게 풀이합니다. 제가 공군사병으로 지원입대하여 3년4개월간 요격관제 특기를 가지고 근무했으며 군 생활을 하면서도 자연과 친했다고 하니까 저를 비판하는 글들이 여기에 많이 실렸습니다. 재미 있는 것은 군사문화를 비판하던 사람들중에서 '왜 당신은 그렇게 편한 군대생활을 했나' '나는 이렇게 고생했는데'라면서 자신의 군대생활과 고생한 것을 은근히 자랑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저보다도 군사문화에 더 젖어 있는 셈이지요.
군복무를 기피한 사람은 공직에 취임할 수 없는 분위기가 정착되어 가고 있는 점, 이것이 바로 상무정신과 군사문화입니다. 조선조 시절엔 군 복무는 하층민들의 의무였고 양반은 면제되거나 기피해도 아무도 말리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로마 전성기 땐 로마시민만이 군복무의 특권을 누렸습니다. 군복을 입는다는 것이 의무도 고통도 아닌 특권이요 명예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군복무 기피를 비판하고 있다는 것은 징집제를 긍정적으로 본다는 뜻입니다. 세계적으로도 드문 경우인 징집제, 즉 전국민 의무 복무제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主敵인 북한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북한은 우리의 동반자이며 북으로부터의 위협은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라면 군대 기피는 수치가 아니라 부당한 국가명령에 저항하는 용기로 칭송될 것입니다.
군사문화는 惡이 될 수 없습니다. 문화란 말 때문입니다. 문화란 것은 오랜 전통 속에서 생겨난 가치관, 관습, 제도, 교양, 분위기 등을 총칭하는데 일단 긍정적입니다. 깡패문화, 사기꾼문화, 파쇼문화 등등의 말은 쓰지 않잖아요? 그러니 문화란 말이 붙으면 일단 긍정적이란 뜻이 됩니다. 따라서 군사문화를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 말을쓰면서 부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군사문화를 잘 정리한 名著로서 사뮤엘 P 헌팅턴 교수(하버드 대학, 문명충돌론으로 유명)가 쓴 [군인과 국가-The Soldier and the State)]에는 군인들의 일반적인 심리와 인간관 및 윤리를 정리해놓은 대목이 있습니다.
헌팅턴에 따르면 군인들은 사람을 성악설적인 면에서 본다고 합니다. 인간이 가진 善惡의 양면성 가운데서는 惡한 면, 강약 가운데선 약한 점을 주로 본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주의적이다. 이런 인간들로 이루어진 국가는 국가이익을 추구하게 되어 있고 폭력을 동원하기도 한다. 따라서 국가가 존재하는 한 전쟁은 없어지지 않으며 군인들은 항상 필요하다. 인간의 약점을 보완하는 방법이 바로 조직과 훈련과 지도력이다-이런 식으로 생각이 발전해간다는 것입니다.
근대 군사문화는 영웅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개인은 약하다고 봅니다. 약한 개인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 군대란 조직이요, 지도력이며 훈련을 통한 협동심이란 것입니다.독일통일을 군사적으로 뒷받침한 몰트케 장군이 발전시켜 세계 군사제도의 요소가 된 참모제도가 바로 이런 인간관에 기초한 것입니다. 나폴레옹 같은 1인의 천재에 의해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은 위험하다고 본 몰트케는 엘리트 장교단이 전문적으로 작전, 정보, 군수, 인사 등을 연구하여 집단적으로(또 전문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것이 훨씬 정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휘관은 이들 참모들이 올린 판단서를 기초로 하여 최종 단안을 내리게 됩니다. 군 지휘관은 이런 참모 운용을 통해서 민주적인 조직운영을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습니다. 요사이 이런 말들이 나옵니다.
'군인 출신 대통령들의 조직운용이 민간인 정치인보다도 훨씬 민주적이더라'
근대 군사조직은 지휘관의 전횡이 잘 먹혀들지 않게 되어 있는데 전근대적인 정당조직은 1인 지배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의 말이라고 판단됩니다.
군인들은 경험을 중시합니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훈련을 중시합니다. 또 戰史를 통해서 간접적인 전쟁 체험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군인들에게 戰史 공부는 단순히 역사공부가 아니라 훈련의 한 수단입니다.
헌팅턴은 上記 저서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요지를 소개합니다.
<군인들은 전쟁을 선호하지 않는다. 군인들은 국가 정책을 정할 때 신중한 태도를 견지한다. 군인들은 전쟁 대비를 역설하고 군사력의 강화를 역설하긴 해도 전쟁을 촉구하지는 않는다. 나치 독일에서도, 러시아에서도, 민주주의 미국에서도 똑 같았다. 군인들은 전쟁에 대비하기를 원해도 싸우고싶어하지는 않는다. 군인들은 자신들을 호전적인 민간 정치인들의 희생자라고 여기는 경향도 있다. 민간 철학자들, 출판인들, 학자들이 전쟁을 낭만적으로 그리고 전쟁을 미화한다. 민간정치인들의 성향은 군사비 지출을 삭감하여 인기를 모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모험적인 외교정책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 토론방에서 군사문화를 거론하는 분들은 군사문화를 호전성, 전쟁광이란 뜻으로 쓰는 경향이 있는데 헌팅턴의 위의 분석을 참고로 해보십시오. 맥아더는 퇴역한 뒤 웨스트 포인트(미국 육군사관학교)에서 한 유명한 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군인들처럼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은 없다. 왜냐 하면 일단 전쟁이 나면 그들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도 1975년 국방부 연두순시 때 講評을 통해서 비슷한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북한 공산당의 도발에 대해)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아온 것은 전쟁만은 피해야겠다는 일념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언젠가는 통일을 해야겠는데 한번 더 붙어서 피를 흘리고 나면 감정이 격화되어 또 통일이 몇십년간 늦어진다, 그러니 통일이 좀 늦어지더라도 평화적으로 해야 한다고 우리가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아온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아내가 공산당의 손에 죽는 일을 당했어도 북한정권에 대한 보복을 하지 않았습니다. 전두환 대통령도 자기의 목숨을 노린 아웅산 테러로 17명의 참모들이 떼죽음을 당했지만 보복을 하지 않았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두 군인 출신 대통령이 참아낸 것은 평화의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었고 이 시간대의 체제경쟁에서 북한은 대한민국에게 케이오 되기 직전으로 몰린 것입니다.
우리 역사상 호전적인 민간 정치인들 때문에 국민들이 戰禍로 내몰린 경우가 병자호란입니다. 우리는 군사적 대비도 하지 않은 채 淸의 황제를 황제라고 불러주지 못하겠다고 강경하게 나왔습니다. 그런 주장을 계속하면 淸의 군대가 쳐들어올 것임은 명백한데도 선비들은 말로써만 전쟁을 하려고 했습니다. 답답한 최명길이 '그렇다면 전쟁준비라고 해두자'고 했더니 이들 강경파들이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이 가뭄에 백성들에게 전쟁준비를 시키다니 천부당만부당합니다'
앞에서 헌팅턴이 지적한 그대로입니다. 민간인 정치인들은 군사비 지출을 줄여서 인기를 끌려 하고, 동시에 모험적인 외교정책을 펴 전쟁을 불러들임으로써 군인들을 죽게 한다. 그래서 군인들은 '우리는 항상 호전적인 민간정치인들의 희생물이다'고 불평한다는 것입니다.
히틀러의 호전적인 태도를 걱정하여 견제하려 했던 것도 독일 장교단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풍신수길을 과소평가하고 전쟁준비를 하지 않은 탓에 고생한 것은 이순신 같은 군인이었고 먼저 도망한 것은 그들이었습니다. 6.25 때도 그랬습니다. 큰 소리만 치던 민간인 국방장관과 민간인 대통령은 국군보다 먼저 서울을 빠져나갔습니다. 군인들이 정치에 손댄 것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군대의 존재이유, 즉 군사문화까지도 부정하려는 태도, 이것 再考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타임 올해의 인물-[미국 군인] 취재 秘話
- 조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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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12-25, 1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