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우익 巨頭의 생각

李容九를 이용하였던 스기야마의 손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스기야마의 아들도 변명

1984년 여름 일본 후쿠오카에서 만난, 스기야마 시게마루(杉山茂丸)의 손자 스기야마 다츠마루씨(杉山龍丸)는 한일合倂의 모든 책임을 일본이란 국가에 돌렸다. 할아버지는 韓日합병에 절대로 반대했다는 거다. 그러나 일본에서 나온 연구서조차도 스기야마 시게마루를 합병의 주모자로 지목하고 있다. 서남학원대학 니시오 요다로(西尾陽太郞)교수가 쓴 「이용구 소전(小傳)」은 한일합병 당시의 추진 세력 성분을 재미있게 분석했다. 합방파로는 이용구와 송병준, 일본 측에선 우치다와 타케다가 있었다. 합병파로는 이토 통감과 소네 부통감, 그리고 중앙정부의 야마가타(군별 총수)와 가츠라(수상)가 있었다.

이 두 파를 연결, 조정하는 파이프의 역할자가 政界의 흑막 스기야마 시게마루였다는 것이다. 스기야마는 대륙낭인들의 총본산 후쿠오카 출신. 그는 일찍이 孫文과 交遊하고 미국 재벌 모건으로부터 군수산업용 차관을 끌어대고, 첩자를 보내 레닌과 손잡고 러시아의 배후에서 陽動작전을 꾀하기도 했던 국제적 浪人이었다. 우치다의 한 수 위에서 놀았던 사람이었다. 이토 피살 뒤 한일합병의 추진 세력은 이용구·송병준→우치다→스기야마→가츠라의 이용선(利用線)으로 1원화 된다. 스기야마는 우치다를 통해 一進會를 조종, 현지 정세를 조작했고 조선 현지의 움직임을 가쯔라 수상에게 중계, 고위층의 의사결정을 유도하는 조정자였다.

합방론이 합병으로 귀착된 것은 이용구→우찌다→스기야마→가츠라의 이용선을 거꾸로 돌려 일본 정부의 이용선으로 역이용했기 때문이라고 니시오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니시오 교수는 스기야마도 가츠라에 의해 이용당하고, 속임을 당했다고 평했다. 스기야마는 1923년 政界를 은퇴하면서 정부에 제출한 「건백(建白)」에서 무단적인 한국 통치 방식을 비판했다. 『저는 1800만 조선인이 도탄에 빠져 부르짖는 소리에 늘 압박되고 있으며 이들의 구제를 위해 잔생(殘生)을 유지하고 있습니다』고 고백한 그는 그 3년 전 옛 一進會 대표들이 그에게 보낸 「자결 권고장」을 공개했다.

이 서한은 스기야마의 약속 위반, 즉 ①한국과 일본은 대등한 主權을 가진 상태로 합방하며 ②양국인은 정치상, 사회상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점을 규탄한 뒤 그 책임을 지고 스기야마가 할복 자결할 것을 권고한 내용이었다. 스기야마도 말년에 한일합병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음은 확실한 것 같다. 스기야마의 「건백」은 일본 정부에 의해 묵살되었다.

*「악(惡)의 분업(分業)」에 능한 일본

여기서 우리는 우익이 부르짖는 아시아주의, 대동아합방론의 허구성과 한계성을 동시에 발견한다. 일본 우익은 서양 제국주의에 대항, 아시아민족(주로 한, 일, 중국)끼리 연방을 결성하자고 주장했지만, 동시에 天皇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다. 부정은커녕 일본天皇 중심의 합방을 주장하고 있다. 이 모순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아시아주의」는 이론상으로도 성립되지 않는다. 천황 산하에서의 합방, 즉 천황을 절대자로 받아들이는 합방이란 곧 병합을 의미하지 않을 수 없다.

대륙낭인이나 우익의 주장이 실천 단계에 가서는 꼭 왜곡되고야 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익의 이 허구성을 역이용한 것이 바로 일본 정부였다. 대륙낭인들을 앞장 세워 이상론으로 李容九를 유혹하고, 실천 단계에선 나라를 빼앗아버린 것이 일본이었다. 일본이 무서운 것은 그러한 2중적 연극을 각자의 배역들이 너무나 진지하게 수행한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가장 솔직하게(?) 조선 통치를 사죄, 반성하는 것은 우익이다.

그 사죄는 교묘한 변명이다. 『우리도 속았다』고 함으로써 즉 합병의 모든 책임을 정부에 돌린다. 그리하여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변신하려는 것이 우익의 실체다. 이것은 결과론적으로 「惡의 分業」이기도 하다. 우익은 계속 과거의 잘못을 정부로 떠넘기고, 정부는 계속 유감의 뜻을 표시하고, 그래도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일본국을 이루는 여러 파워 그룹이 서로 진지하게 반대하고 열심히 싸우는 것 같으면서도 결과적으로는 같은 국가적 목표로 갖가지 행동의 결과들이 수렴되고 마는 행동양식, 이런 사람들로부터 받아내는 사과라는 것이 얼마나 값이 있을까?

스기야마 시게마루의 손자는 코스모폴리탄이었다. 일본 육사53기 출신으로 2차 대전의 戰傷者이기도 한 65세의 다츠마루씨는 할아버지가 남긴 100억 엔짜리 토지5만 평을 몽땅 팔아 인도의 사막 녹화에 다 써버린 奇人이다. 관리, 정부, 경찰, 제도 등을 가장 싫어한다는 그는 스스로를 무정부주의자라고 했다. 인도에서도 그곳 정부의 도움 없이 농민들을 지도, 사막녹화를 성공시켰다. 그의 할아버지는 간디 및 네루와 친면이 있었다. 인도를 도와주라는 것이 후손들에게 남긴 유언이었다고 한다. 사막녹화 분야에서는 세계적 권위자로 꼽히고 있는 다츠마루씨는 할아버지의 傳記를 펴내 일반인의 오해를 풀어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李容九는 피해자?

일본의 우익 사상에는 다츠마루씨와 같은 코스모폴리탄적인 측면이 있긴 있다. 현양사나 흑룡회를 어떤 학자는 국권주의 단체라 하고, 다른 학자는 超국가주의 단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정반대 되는 표현법의 공존이다. 이것은 일본 우익의 2중성을 보이는 것이다. 우익의 초국가주의는 대동아합방론이나 아시아주의로 나타나고 國權주의는 천황주의나 軍國주의로 표현된다.

니시오 교수는 「이용구 소전」에서 우치다 등 초 국가주의 단체의 사람들은 국가를 뛰어넘지 않았는 데 반해 이용구는 超국가주의를 취했던 점이 그의 비극이라고 분석했다. 超국가주의라는 이상은 國權주의라는 현실에 이용당하기 마련이다. 超국가주의는 다츠마루씨처럼 개인으로선 가능하지만 단체나 민족, 국가 단위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환상이다.

이 불가능을 가능한 것으로 믿었던 것이 순진한 李容九였다. 도야마, 우치다 등 대륙낭인들은 일본에 망명 중이던 孫文을 도와준 적이 있다. 그 대가로 孫文은 중국에서 혁명이 성공하면 만주와 몽고에 대한 권리를 일본에게 넘겨주겠다고 언약했다. 신해혁명이 나자 손문은 그를 지원했던 낭인들을 외면해버렸다. 이 경우 이용당한 것은 일본낭인이었다. 이용구를 속인 낭인들을 다시 속인 孫文은 「중국의 이용구」가 되지 않았다.

「민족전선」이란 일본의 우익 신문은 李容九 추모 기사에서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유신을 달성한 일본과 협력, 아시아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하다가 자기 나라에서 매국노 취급을 받게 된 것이 이용구다」고 주장하면서 「그런 취급은 감정론을 이용한 정치적 선전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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