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暴雪이 내렸을 때, 늘 택시로 출근하던 나는 마을 버스로 阿峴(아현)지하철역까지 나와 2호선을 타고 시청역에서 내려 걸어서 사무실까지 갔다. 한 시간이 걸렸다. 지하철은 의외로 붐비지 않았다. 그때가 오전 9시20분쯤이니 출근 人波가 지나간 뒤였다. 오늘도 같은 경로로 무사히 출근하였다.
오늘 저녁 식사 모임에 나온 네 명은 어제, 오늘 모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였는데, 큰 불편을 겪지 않았다고 하였다. "기록적인 暴雪에도 서울시가 대단한 행정력을 발휘하였다"고 칭찬하였다.
그런데 오늘 한 신문 기사의 첫 문장은 "서울지하철은 속수무책이었다"였다. '속수무책'은 束手無策으로서 "손을 묶인 듯이 꼼짝을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즉, 서울 지하철이 전면 마비되었다는 뜻이다. 황당한 과장이다. 지하철 운영이 世紀的 폭설로 다소 지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를 속수무책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기자로선 절대로 해선 안 되는 선동이고 과장이다. 이런 표현을 쓰는 이는 기자 자격이 없다. 散文정신은 과학정신이고 사실주의이다.
100년만의 폭설이 내렸는데도 서울 지하철이 평상시처럼 운행되지 않았다고 이를 트집잡아 '束手無策'이라고 비방하는 기자는 인간에게 100%의 완벽성을 요구한다. 그는 99점을 받은 이에게 "잘했다"고 하지 않고 "왜 100점을 받지 못하였는가"라고 매질을 할 사람이다. 한국의 언론은 기상청이 눈 온다는 시간을 맞혔는데 積雪量(적설량)을 왜 25cm가 아니라 10cm로 예보하였느냐고 문초를 한다. 자연현상을 이 정도로 예측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인데 하나님처럼 全知全能(전지전능)하지 못하였다고 신경질을 낸다. 트집잡기, 억지부리기의 전문가들인 일부 기자들은 남에게는 인간이 할 수 없는 기준을 요구하면서도 자신들의 행동에 대하여는 너그럽기 짝이 없다. 자신에겐 관용하고, 남에겐 잔인한 이들이 기사를 쓰고 있으니 한국 사회가 실제 이상으로 어둡게 보인다.
이들의 헛소리를 무시하고 묵묵히 역사를 건설해간 선배세대가 새삼 위대하게 보이고 자랑스럽다.
서울지하철이 '束手無策'이었다는 선동적 기사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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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1-05, 2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