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5일 로버트 박이 두만강을 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설마 설마 했던 일이 결국 일어났구나 싶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2009년 1월 북한을 위한 기도모임에서였다. 무릎 꿇는 그의 모습에서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가득차 있는 청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들어가기 한두 달 전부터 북한으로 가는 것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당연히 나는 거절했다. 그의 진심을 몰라서가 아니라 나도 처자식까지 버리고 떠나 온 땅인데 어찌 젊은 청년의 인생을 망칠 수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또 한편으론 미친놈이 아닐까 생각했는지도…
이제 와서 보니 그의 진심을 너무 얕잡아 보았나 생각이 든다. 먹을 것 찾아 자유 찾아 떠나오는, 유일하게 김정일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 땅에 그가 점퍼도 벗고 성경책 한 권 들고 들어갔다니…
한편으론 정말 미친 친구로구나…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고린도후서 5:13)
탈북자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다.
자유의 땅, 민주주의 땅 대한민국에 왔으니 이제 좀 편하게 살자 이제 좀 행복하게 살아보자 했는데… 그래도 나름 북한 인권을 위해 목소리 낸다고 생각했는데…
로버트 박이 두만강을 넘는 길에는 어린 아이들의 환호 소리도 없었고 종려나무가지의 흔듦도 없었고 나귀 새끼도 없었다. 입고 있던 점퍼 마저 벗고 얼어붙은 두만강을 조용히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 붙들고 걸어갔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 1:5)
반세기 넘도록 「하나님은 없다」고 선포한 그 땅에,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부재의 결과로 굶주림과 고통의 땅이 돼버린 그 땅에, 하나님의 한 줄기 빛이 비취어졌다. 하나님께서 암흑의 땅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잊지 아니하시고 버리지 아니하셨다는 생각에 감사하다. 비록 그는 붙잡혔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매일 수 없다.
복음 때문에 돌에 맞고 옥에 갇히기를 수없이 당한 바울
계집아이의 춤과 그 목이 맞바꿔졌던 세례 요한
목이 잘리기 직전 박춘권에게 성경책을 내어 민 토마스 선교사
……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4)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요한복음 12:25)
로버트 박은 하나의 밀알이 되었다.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사랑하지 않고 굶주리고 고통받는 자들의 친구가 되었다. 그의 행동이 그의 믿음과 그의 신앙을 증명했다. 그의 결말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당장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그가 북한에 들어갔다는 자체가 기적이다. 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김태진(탈북자) 북한민주화운동본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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