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자신을 위해 납치문제 해결해야"

마스모토 테루아키(일본인 납북자가족모임 사무국장)씨가 김정일에게 보낸 편지.
본 방송을 통해 김정일에게 공개서한을 보낸 마스모토 테루아키 씨는 1978년 8월 북한에 납치된 마쓰모토 루미코(女·납치 당시 25세)씨의 남동생이다. 현재 ‘일본인 납북자가족모임’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마스모토 씨가 김정일에게 보낸 공개서한, 그리고 기자와 나눈 대담을 아래에 소개한다.


<김정일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마스모토 테루아키(일본인 납북자가족모임 사무국장)

김정일 총서기에게 전합니다. 최근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북한정권의 인권 상황에 대해 크게 염려하고 있는 나라들이 늘고 있습니다. 당신이 있는 그곳에 정확한 정보가 올라가고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는 당신이 행하고 있는 북한 내에서의 인권침해, 인권탄압에 대해 염려하고 있으며, 비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유엔에서는 최근 3년 동안, 북한 내부의 인권문제에 관한 비난결의가 채택되어, 총회에서도 결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당신의 귀에도 미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당신이 만약 당신의 체제를 유지하고 싶다면, 당신의 나라를 해방하고 당신이 행하여 온 모든 비인도적인 행위들을 즉각 그만두어야만 합니다. 새해(2010년)에 모든 납치피해자들을 각자의 나라에 돌려보내고, 용서를 구한다면, 우리들도, 그리고 다른 피해국도, 당신의 나라에 대해 관용의 정신을 보이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이상 지금과 같은 납치피해자들의 상황을 지속한다면, 우리 일본인들은 더욱더 격노하여, 결코 당신의 체제를, 그리고 당신을 지원하고 있는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새해에는 모든 납치 피해자들을 돌려보내고, 또한 인권상황이 개선될 수 있도록, 당신 자신을 위해서 실행해야만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스모토 테루아키 씨와의 인터뷰>

기자: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새해가 되었으니 마스모토 루미코 선생의 나이가 쉰여섯 살이 되겠군요. 누님의 생사조차 모르고 또 한 해를 맞는 심정, 어떻습니까?

마스모토: 31년간 고향의 설을 마음에 얹고 살았겠죠. 저의 누님이…일본에서도 설날엔 떡을 먹거나 떡국을 먹습니다. 요즘은 일본도 많이 변하여서, 설 명절 때도 보통 날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만, 누님과 함께 했던 설날은 우리 가정에 있어서 참으로 의미 있는 설이었습니다.

누님이 일본의 설날을 기억하고 계실지, 자신의 현재 상황을 고민하면서 고향하늘을 그려보고 있을는지…저로서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가능하다면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가능하다면이라기보다 ‘반드시’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들과 함께, 옛날처럼 설을 보냈으면 합니다.

기자: 루미코 선생이 남자 친구와 함께 가고시마의 노을을 보러 갔다가 북한공작원에게 납치되었다고 되어있습니다.

마스모토: 「후키아게」해안이 저녁노을로 유명하다고 하지만, 평소에는 가본 적이 없습니다. 어느날, 누나가 갑자기 사라지고 나서, 누나의 행방을 찾고자 10일 동안「후키아게」를 다녀왔습니다.

기자:북한당국이 마스모토 루미코 선생과 함께 납치한 이치가와 슈이치 선생이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고 정식 발표한 바 있습니다. 가족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마스모토:우리들은 1997년부터 계속해서 구출운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2002년 북한이 사망이라는 보고를 하기까지 북한이 항상 일본에 대해서, 그리고 피해자 가족들에 대해서 거짓말을 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근거와 증거도 없이, 2002년 북한 측이 사망이라는 보고를 해 와도, 우리들이 그것을 그대로 믿는 것과 같은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북한의 사정으로 사망한 것으로 했을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고, 저 자신도 누나가 죽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만약, 누나가 죽었다면 가족으로서, 가족의 죽음에 대해 어떠한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이 전혀 없기 때문에, 저는 누나가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피해자 가족들 모두 생존을 확신하고 있고, 빨리 구출할 수 있도록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기자:북한에 납치되어 갔다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오신 분들의 이야기 중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노동신문에서 일본 반동들이 있지도 않는 납치문제를 가지고 공화국을 비방중상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기는 오히려 힘을 받았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우리를 결코 잊지 않고 있구나. 이런 것들을 볼 때 정부의 노력이 참 중요하고 가족들 스스로의 노력, 본인들의 믿음, 이런 것들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 정부가 그 기간에 했던 것, 납치피해자들을 위해 했던 일들을 사무국장으로서 평가하시면요?

마스모토:어려운 질문이네요. 가족회를 결성하고 12년, 김정일이 납치를 인정하고 나서 7년이 지났습니다만, 결국 북한이 생존했다고 발표한 5명과 그 가족밖에 되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정부가 어디까지 노력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이 의문스럽습니다.

다만, 2002년 이전과 비교했을 때 2002년 이후의 정부의 대처가 강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피해자들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는 현재의 상황은, 아직 정부가 진지하게 북한으로부터 피해자를 되찾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을 믿으라고 저희 아버지도 말씀하셨습니다만, ‘북한보다는 일본이 강한 나라다, 그렇기 때문에 해결 못할 이유가 없다.’ 라는 아버지의 생각에 기초해서 말씀드리자면, 7년이 지나도 상황이 변하지 않는 것은, 아직 온 힘을 쏟아 붓고 있지 않는 정부의 현재 상황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자:일본국민들의 납치문제에 대한 노력은 훌륭하다고 보았습니다. 한국말로 지극정성이라는 말이 있는데,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의 NGO 단체들과 국민들의 활동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마스모토: 일본 국민은 긴 세월동안 북한과의 관계 속에서 여러가지 금기라든지 조심스러움 같은 것들이 있었습니다만, 납치사건이 일반에게 알려지게 되고 나서 북한이라는 나라의 비정상적인 모습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납치라는 피해를 감수해온 자국에 대한 불신감도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피해를 당한 일본인과 피해자 가족들에 대해서 대단히 동정적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지금까지 없었던 일본인 납치 피해자에 대한 마음은, 다른 여러가지 범죄 피해자, 사고 피해자들에 대한 마음보다도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일이 납치를 인정하고 7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많은 국민들이 피해자들의 귀국을 바라고 협력하여 주는 오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문제와 관련한 NGO활동에 대해서도, 많은 분들이 납치문제를 통해서 북한의 인권문제를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일본국민은 어느 정도 아시아 안에서도 인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러한 사실과 관련해서 납치문제와 납치피해자들의 존재가 이 양방의 문제를 부각시켜온 것은, 일본국민의 양식이 전면에 나타난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자: 감사합니다. 끝으로 누님께 보내는 방송 메시지를 준비해 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부탁드릴까요?

<사랑하는 누님께 보내는 편지>

루미코 누님. 그날, 루미코 누님를 배웅하고 나서 31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날로부터 루미코 누님의 목소리를 듣는 일도, 얼굴도 볼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어, 쓸쓸한 마음이 더해가고 있습니다.

제가 쓸쓸하다는 것은 단순히 감상에 불과하지만, 루미코 누님은 슈이치씨와 함께 납치되어 쓸쓸함뿐만 아니라 혹독한 매일 매일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직 구해내지 못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이 가득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괘씸하기까지 생각됩니다. 북한으로부터 루미코 누님의 소식을 들었을 때는, 우리들의 운동이 루미코 누님의 신상에 해를 가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슬픔과 함께,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아버지도 암을 앓고 계셔서, 또한 여명이 길지 않은 것도 있어서 슬픈 마음으로 가득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북한의 보고를 들었을 때 병상임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이다”라고 소리치며, 곁에 있던 어머니에게 “믿지 말아라. 북한은 거짓말만 하고 있다”라며 타일렀습니다. 어머니는 울며 쓰러지셨지만 아버지의 말을 믿으며, 지금도 루미코 누님의 귀국을 기다리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저희 가족의 근황을 말해두자면, 어머니는 건강하시지만,「간호필요2」등급의 상태입니다.「간호필요2」라는 것은, 스스로 보행은 할 수 있지만, 자유로운 보행은 곤란한 정도를 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휠체어를 타는 일은 없지만,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다니는 상황입니다. 긴 시간의 보행은 어려우므로, 주로 집안에서 걸어 다니십니다. 일전에 어머님을 돌보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애완동물을 구입했습니다만, 정정하시고 위험한 상황은 아닙니다. 다만, 날이 갈수록 몸이 쇠약해 지는 것을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신이가 어머님과 함께 살면서, 매일 싸우기는 하지만 사이좋게 지내고 있습니다. 신이 혼자서는 식사뿐만 아니라 그 밖에 세심한 곳까지 신경 쓰지 못하는 것 같아 걱정이 되지만, 어머님이 혼자서 생활하시는 것이 아니라 신이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든든합니다.

루미코 누님이 귀국한다면 어머니의 간호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레이는 벌써 결혼하여 딸이 하나 있습니다. 남편은 구마모토 출신의 사람으로, '히라노 쇼지'라는 매우 자상한 사람입니다.

조카는 '나미'라는 이름으로, 벌써 스물한 살이 되었습니다. 작년 성인식 때에는 루미코 누님이 입었던 기모노를 입고 사진을 찍었는데, 루미코 누님을 만나 뵙고 싶다고 했습니다. 나미를 보며, 루미코 누님과 많이 닮아서, 한 핏줄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느지막하게나마 2년 반 전에 결혼하여, 현재 아내와 둘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처가, 저의 건강에 신경 써 주고 있기 때문에, 루미코 누님의 귀국을 위한 운동을 계속해서 할 수 있답니다. 처의 이름은 “도시코”로, 사랑스러운 부인입니다. 도시코도 루미코 누님의 상황에 대해서 뉴스를 보거나, 북한 문제에 대한 보도를 접하거나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빨리 누님이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루미코 누님에게는 두 명의 아이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조카들의 귀국이 늦어지면 일본에 돌아온 후의 대응이 걱정입니다. 하지만, 현재 일본정부도 적극적인 지원을 법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에, 생활과 아이들의 장래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아주십시오. 나와 신이, 그리고 레이도 힘을 합하여 도울 테니 걱정하지 말아주세요.

귀국만 한다면 모든 일본국민들이 누님을 환영하고 응원해 줄 것입니다. 지금까지 피해자 가족들을 응원해 준 국민들이 반드시 도와주리라고 생각합니다.

누님이 귀국하면 내가 청춘시절을 보낸 홋카이도(북해도)에 모시고 가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위독한 상황 속에서, 루미코 누님의 환상을 보면서, 사경을 헤매면서도,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일본을 믿으라!” 누님과 저와 우리 가족 모두에게 하신 말씀으로 받들고 있습니다.

부정한 북한정권에는 지지 않는, 불의를 이기는 일본의 힘이 반드시 루미코 누님를 구해줄 것이라고 믿으며 기다리고 있으라는 아버지의 당부가 있는 한, 누님은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조금만 더 마음을 확실히 다잡고, 건강히, 고향으로 돌아올 날을 기다려 주기를 바랍니다. 나도 힘 낼 테니, 루미코 누님도 힘내세요.

동생, 마스모토 테루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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