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되는 박근혜의 ‘원칙론’과 친박연대

개인독재는 그 집단도 불행하게 만들고 그 자신도 불행하게 만든다!
박근혜 의원의 정치적 행보가 또 다시 관심거리가 되었다. 벌써 오래 전부터 상식을 뒤엎는 발언과 행위로 국민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좋은 측면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기 보다는 의문을 증폭시키는 측면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것은 정작 투쟁해야 할 대상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협조해야 할 대상에 대해서는 고비마다 딴지를 걸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박근혜 의원을 개인적으로 숭배하는 집단이 생겨나 한국의 정치상황을 더욱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박근혜 의원은 원칙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렇다면 이 원칙론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그 ‘원칙론’이 점검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원칙이라고 하여 모든 것이 원칙은 아니다. 그 중에는 기본이 되는 원칙이 있고 그 하위 원칙이 있다. 상위 원칙과 하위 원칙이 충돌할 때는 물론 상위원칙을 지켜야 한다. 원칙에도 수준의 차이가 있고 목적과 수단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민주사회의 기본원칙은 그 하위 원칙보다 중요하며 따라서 하위 원칙을 이유로 상위 원칙을 어기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런데 박근혜 의원이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원칙이 이 기본논리에 맞지 않는 것을 보게 된다.

재작년 광우병 촛불 시위 때 박근혜 의원은 미국을 방문하여 다음과 같이 발언하였다. 그녀는 "우리 한국정부가 충분한 설명 없이 갑자기 소고기를 수입하니 불신한 것"이라면서 "그것을 반미감정으로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르나 소고기 문제는 절대로 반미감정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또한 그녀는 "먹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생긴 것"이라며 "충분한 설명과 절차가 생략돼서 일어난 것이니 반미감정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해, 촛불집회의 1차적 책임이 이명박 정부에게 있음을 거듭 분명히 했다. 그녀는 "소고기 문제는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는 경우에도 그렇게 충분한 설명이나 절차 없이 했으면 국민들이 그렇게 불안했을 것"이라며 "‘미국’의 문제가 전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광우병 촛불 시위는 MBC PD 수첩이 의도적으로 거짓 정보를 퍼뜨리고 친북이적단체가 주도하여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그것이 미국산 쇠고기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그런 광기(狂氣)적인 폭력시위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은 다른 수입식품의 위험성이 광우병 우려보다 더 큰 데로 그런 시위는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젊은 산모들이 유모차를 앞세우고 시위대 앞에 섰지만 정작 이들은 실제로 아기들이 사망케 한 중국산 분유 수입에는 침묵하였다. 그렇다면 박근혜 의원은 이 사실을 몰랐을까? 몰랐다면 나중에 사과하였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하였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이 발언에 적용된 원칙은 무엇인가? 거짓 정보를 의도적으로 퍼뜨리고 그 정보를 이유로 국민을 속이고 반정부 폭력시위를 하는 것을 옹호하는 것은 어떤 원칙을 지키기 위함인가? 이것은 전혀 민주사회의 기본원칙과 맞지 않는다. 우선 MBC는 공정한 보도를 하지 않았다. 당연히 언론의 기본인 공정성을 의도적으로 파괴한 것으로서 MBC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처벌이 되었어야 마땅하고 또 그렇게 주장하였어야 한다. 그리고 설사 이명박 정부의 설명이 부족하였다고 하더라도 설명을 요구하거나 만약에 그것이 법에 저촉된 것이라면 법률위반을 이유로 법원에 제소하는 것이 민주사회의 기본원칙이다. 그러나 박근혜 의원은 촛불폭력시위를 정당한 수단인 것처럼 옹호하였다. 박근혜 의원은 민주사회의 기본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을 옹호함으로써 자신도 원칙을 지키기 않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다음은 용산참사로 알려진 용산사건에 대한 박근혜 의원의 발언이다. 그녀는 이와 관련하여 “왜 그렇게 빨리 진압에 들어갔는지 이해할 수 없다. 왜 그렇게 기다리지 못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위 직업적 철거민 단체, 현지 철거민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직업적 투쟁 단체가 주동이 되어 건물을 불법적으로 점거하고 신나를 사용하고 볼트와 너트를 쏘는 새총으로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그런 상황은 즉각적으로 제압되고 시위자는 체포하는 것이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임무인 경찰의 당연한 업무다. 그런데 왜 더 기다리지 않았느냐고 힐난성 발언을 하는 것은 무슨 원칙에 근거하여 그런 발언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민주사회에서 모든 분쟁은 법에 근거하여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소송제도가 마련되어 있고 재판소가 있다. 자신들의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는 용인될 수 없다. 법치의 핵심은 질서를 지키며 합법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민원을 해결하는 것이다. 우리가 장려하여야 하는 것은 이런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것이지 민원이 생길 때마다 건물을 점거하고 폭력으로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나아가 자신들의 생명뿐만 아니라 경찰의 생명까지 위험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경찰이 진압을 하지 말고 더 기다리라는 말은 무슨 원칙을 지키고자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민주사회의 근간인 법치라는 원칙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불법폭력행위자에게만 동정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인기영합주의인지 아니면 폭력을 부추기는 것인지 질서유지를 위해 희생한 경찰을 조롱하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이번 세종시 문제와 관련하여서도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방의 균형발전이란 명분을 내세워 중앙의 행정부서를 충청도로 옮기겠다는 것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우선 균형발전이란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도 의문이고 설사 가능하다고 하여도 인위적으로 강제로 행정부서를 옮기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특히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행정부서를 왜 충청도에만 집중해서 옮겨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왜 부서 하나는 경상도로 옮기고 다른 부서 하나는 제주도로 옮기고 또 다른 부서는 왜 전라도로 옮기지 않는가? 왜 행정부서는 꼭 세종시에만 옮겨야 하는가? 법으로 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법이란 것이 결국은 당시 다수당인 열린우리당이 주도하고 한나라당이 동조한 것인데 그것이 열린우리당의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서울은 전통적으로 우리의 수도(首都)로서 인식되어 왔다. 행정수도이전이 위헌이 된 것이 바로 이 관습법에 근거한 것이다. 그렇다면 행정수도 이전은 위헌이고 대부분의 행정부서를 옮기는 것은 위헌이 아닌가? 위헌 여부를 떠나 굳이 행정부서를 실질적 수도를 떠나 지방에 이전하는 것이 무슨 목적에 이바지할 것으로 예상되는가? 오히려 비효율만 증가할 뿐이다. 수도권 인구 분산도 하나의 이유로 제시되지만 겨우 50만명 규모의 도시를 만들었다고 수도권 인구가 효과적으로 분산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만약에 정말로 인구분산이 목적이라면 다른 수단을 쓰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그린벨트 정책이 더 효과적이었다. 그린벨트는 허물면서 인구분산을 이유로 행정부서를 옮기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그리고 지방의 균형발전이 목적이라면 굳이 행정부서가 옮겨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균형발전을 가능케 할 기업이나 학교가 옮겨도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무엇이 원칙인가?

그런데 박근혜 의원이 원안을 고집하는 것이 사실상 민주당의 반정부 투쟁과 공조하는 측면이 있어 이것만으로도 박근혜 의원의 행보가 과연 정당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 경선시에도 박근혜 의원은 노무현의 ‘한방전략’에 의지하여 끝까지, 사실 많은 사람들이 넘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 선을 넘어서면서까지 이명박 후보를 공격하였다. 우리가 우려하였던 것은 그 선을 넘어서면 경선이 끝난 후 두 사람의 협력이 불가능할 것이란 것이었다. 그런데 박근혜 의원이 그 선을 넘어섰기 때문에 한나라당의 단결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물론 사소한 불만의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단결과 분열을 놓고 볼 때 어떤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인가? 같은 당 내에서도 의견 대립이 있을 수 있고 분열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민주당과 공조하는 꼴이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어느 것이 원칙인가 묻고 싶다.

박근혜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대북특사를 자청하여 우리를 어리둥절케 하였다. 야당의 대표로서 친북정권인 노무현의 특사를 자청하는 것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경우에는 어떤 원칙이 적용되었는가? 김정일을 만나기 위해서는 야당 대표로서의 직분은 버려도 좋다는 말인가.

더 우려스러운 일은 박근혜 의원이 민주사회의 적인 ‘수령’처럼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사회는 각 개인의 자유와 독립적 판단이 존중되는 사회다. 한 사람의 명령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움직인다면 그것은 곧 독재다. 그런데 박근혜 의원은 소위 친박연대를 이끌고 있다. 친박연대 사람들은 개인적 의견이 있어도 발표하지 못한다. 그런데 한 개인에게 충성하는 사회는 끔찍한 퇴행적 사회다. 북한의 김정일 체제가 그렇고 중국의 모택동 체제가 그러하였다. 친박연대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라 박근혜라는 한 개인을 섬기는 일단의 사람들이 친박연대라는 정치적 결사체를 형성하였다. 한국 사회 내의 독재지대라고 할만하다. 수령절대주의가 북한 사회를 역사상 최악의 폐쇄사회 그리고 독재사회를 만들었듯이 한 개인에게 충성하는 무리들이 정치적 결사체를 만드는 것은 비민주적이다. 이것은 무슨 원칙인가. 민주주의 원칙에 반하는 결사체는 반민주적이며 반사회적이다.

박근혜 대표는 이회창 총재에 대해 제왕적 총재라고 비난하면서 탈당하였었다. 그 전에 박근혜 총재는 정동영을 만나 정치혁명에 함께 노력하기로 약속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박근혜 의원이 제왕이 된 것 같다. 그녀의 말 한 마디에 한 집단의 국회의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대통령도 한나라당도 쩔쩔맨다. 한 계파의 보스로서 이 정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과히 제왕적이라고 할 만하다. 민주사회라면 같은 계파 소속 의원들이 보수에게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의 의견이 묵살되는 이 집단은 무슨 원칙에 근거한 것인가? 민주원칙인가 아니면 독재원칙인가? 그런데 개인독재는 그 집단도 불행하게 만들고 그 자신도 불행하게 만든다. 민주적 리더쉽이 보다 더 근원적인 원칙이다. 자신의 권력을 즐기기보다는 그 후과를 염려해야 할 것이다. 기본 원칙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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