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토론방에서 퍼온 것이다.
이 름 파아란
그만 깨뜨리고 그만 내려가라 !
'카라마죠프家의 형제들' 에 나오는 몇 가지 단편적 명장면 중 탁월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대심문관 篇 입니다. 거기서 대심문관이 수백년이 흐른 후 이 세상에 초라한 모습으로 다시 온 예수에게 묻습니다. '무죄한 어린 아기를 거대한 塔 아래에 파묻어야 인류가 구원을 받는다고 할 때, 그 범죄를 행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옳지 않은 것인가 ? '
대심문관의 질문은 극단적인 예입니다. 그 질문 속에는 개인주의와 사회주의의 비극이 함께 내포되어 있습니다. 수십년 전, 누군가의 자녀가 상급학교에 수월히 들어가게 하기 위해 처음 평준화가 시작되었다는 소문은 희극적이긴 하지만, 그 이면에는 Socialism;社會主義와 Privatism;個人主義의 양 극단에 선 개념들이 서로 떼어내기 힘들게 얽혀있었다는 점에서 이 시대가 갖고 있는 애매모호성을 봅니다.
재능과 지식을 공평하게 나누어갖자는 式의 발상과 같은 평준화 사업은 엄정하게 되짚어 읽어보면, 그 이후 벌어지던 한국사회의 민주화운동이 나아가던 길, 한국인들이 지향하던 사회상을 미리 읽을 수 있게 해준 예고편;豫告編과 같았습니다.
민주화 운동을 일각에서 또는 非권력파에서 떠들던 때에, 우리는 그 민주화운동에 대해 정확하게 캐물어보는 일을 소홀히 하였습니다. 민주화 운동, 또는 민주주의 에 대해 이제는 짚어봅시다. 아니, 민주파정권 삼(3)대, 내지 친북정권 이(2)대로 접어든지 겨우 일년인데, 마치 몇대에 걸쳐 그들을 겪은 양, 국민들간에 너나없는 진저리와 초조감이 팽배한 지금, 우리는 더 늦기 전에 민주파 정권들이 그동안 했던 일과 사업의 성격들에 대해 정확히 분석하고 결론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권력은 한 개입니까 ? 다수개입니까 ? 권력은 분산될 수 있습니까, 없는 것입니까 ? 엄밀하게 따지면, 권력은 한 개 라고 할 수 있으니, 또는 한 개로 돌아가려는 성격이 아주 强한 동물적 존재와도 같으니, 인류의 역사 오천년 동안, 권력이 갈라져서 지내던 시절은 거의 드물었습니다. 그러나, 현대로 점점 들어오면서, 권력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 이권분립, 삼권분립으로 나누고 드디어 국민의 정부 개념이 등장하고,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는 민주주의 를 너나 없이 독재정권이건 진짜 민주정권이건 모두 애용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아메바처럼 끊임없이 한 몸을 이루고 싶어하는 권력을 강제로 잘라내어 골고루 나누어갖자는 개념이, 냉정한 민주주의 의 실체일 것입니다.
그럼, 이 사회에서 끊임없이 외쳐대던 민주주의 운동, 민주화사업은 실제로는 어떤 방향을 지향하고 있었습니까 ? 민주화정권을 삼(3) 代 씩이나 거쳐왔다고 해야 옳을 오늘 현재 한국사회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우리는 민주화에 대해 정직하고 확고하게 말하여야 하겠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양인이 운동하던 시절, 그들에게는 카리스마 라는 것이 붙어 다녔습니다. 그들이 발언하면, 대중이 물밀듯 밀려와 박수와 환호를 보내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런 현상은 그들에게 권위를 부여하였을 것입니다. 그럼 그렇게 자발적으로 밀려들던 민중, 대중의 힘은 그들에게 무엇이었을까 ? 보이지않는 권력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보이는 권력을 가진 정치권 대 보이지않는 권력을 가진 비정치권의 싸움이 양김의 투쟁과 민주화투쟁의 역사 속에 있었습니다.
권위 는 힘, 권력과도 맞물려 있다고 할 텐데, 권력의 정의定義 를 찾아보면, 남을 강제로 굴복시키는 힘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권위도 남을 복종시키는 힘이긴 하지만, 권위는 자발적 복종을 일으키며, 권력은 강제적 복종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권력자 보다는 권위를 지닌 자를 선호하고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을 찾습니다.
민주화사업은 그런 강제적 복종의 힘이라 할 권력을 파괴해서 사천만 국민들이 고루 나누어 갖자는 취지였어야 했습니다. 또는 적어도 권력을 쪼개어서 법전대로 국회, 법원, 정부가 (나아가 언론도) 갈라 갖고 동등하게 견제하며 서로 보필해야 했습니다.
민주화운동단체와 민주화정권의 민주화사업이 진실로 대한민국에서 쪼개고 파괴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 권력이었습니까, 권위였습니까 ?
이 문제에 대해, 저는 월간조선 12월호에서 탁월한 경제칼럼 한 개를 발견하였고,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美 미주리大 尹龍駿 교수가 쓴 '김대중,노무현정부의 권위파괴로 경기침체 10년 이상 계속될 것' 이란 칼럼입니다.
한송이의 국화꽃에는 권위가 있습니다. 국화의 향기에 이끌려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다가들게 만드니 그것은 국화꽃 한송이가 가진 보이지 않는 권위이며, 그 권위는 하루 아침에 자란 것이 아니니 서정주시인의 말씀처럼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봄부터 구름속에서 울었나 보다'가 되는 것입니다.
윤교수는 권위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完全한 사회가 없듯이 인간사회에는 절대적 권위란 없다. 권위란 <상대적인 절대>이며, 합리성과 정당성을 갖는다. 개인이 쌓은 업적으로부터 오는 권위가 있고 (ex.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 도덕적 행동에서 오는 권위가 있고 (ex. 노블리스 오블리제) 사회계약(헌법같은)이 부여하는 권위(ex. 교통경찰의 수신호)가 있다.
쌓은 업적에서 오는 권위는 동질의 길을 걷는 선.후배 및 직장의 상.하사 간의 보이지 않는 질서를 부여합니다. 도덕적 행동에서 오는 권위는 도덕과 선행을 솔선하는 지도층을 따르고자 하는 자발적 도덕과 선행의 제자群을 이끌어 냅니다. 사회계약이 부여하는 권위는 사회생활의 충돌을 없앨 직.간접의 질서를 잡아줍니다.
사회계약이 부여한 권위는 단기간에 이루어지겠지만 - 허나, 사회계약 조차도 성사되기 위해서는 사회의 관습과 약속이 거듭 쌓이는 긴 시간을 요구합니다 - , 쌓은 업적이나 도덕적 권위들에는 그런 권위를 형성시키기 위해 필수적으로 시간이란 要素(요소)가 들어가야 합니다. 시간을 功(공)들이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권위, 타인의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낼 권위를 만들 수 없습니다. 조물주께서는 인간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을 주셨으니, 그런 점에서 우리들은 누구나 시간을 공들여 나중에 한송이 국화꽃으로 피어날 가능성과 권위를 지닌 사람들입니다.
윤교수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권위와 질서가 파괴되면 어디로 가느냐 ? 아프리카다 ! 아르헨티나다 !
러시아혁명(1917)은 수백년 내려온 러시아의 권위와 질서를 완전히 파괴해버렸습니다. 아나스타샤를 비롯한 (그녀가 살아있었다면 얼마나 멋있는 이야기가 되었을까 생각합니다.) 황제의 일가가 모두 살해되었으며, 귀족들과 지식인들이 말살되었으며, 수백년 내려온 러시아인의 정신적 토양이었던 종교가 말살되었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은 강제수용소로 끌려갔으며, 종교는 지하로 들어갔습니다. 권력의 해체입니까 ? 권위의 해체입니까 ? 권력의 해체라기보다 수백년간 러시아사회를 받치던 권위와 질서의 파괴였으며 인류사에 보기 힘든 대비극, 대죽음의 서사시가 러시아혁명 후 소련에서 70년간 벌어졌습니다. 권위와 질서가 파괴되고 空洞化(공동화)된 자리에 광포한 권력이 자리잡은 것입니다.
윤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 망가지지 않았으면 그냥 사용하라 > 자원재활용이 아니라 권위의 재활용입니다. 망가뜨리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새로운 권위와 질서를 다시 쌓는 일은 훨씬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고, 권위와 질서가 그렇게 붕괴된 사회에는 권력만이 남게 됩니다. 질서없는 권력과 권위없는(자발성없는) 권력이 판치는 사회에서 비극이 횡행할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
대한민국은 태어난지 오십년 뿐이 안되는 신생국가이긴 하여도, 그 기간동안 세계에서 주목할 만한 경제의 발전을 이루었으니, 그 기간동안 쌓여진 각 분야의 (특히 경제의) 권위와 질서는 한송이 국화꽃에 비할 바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앞서도 민주화란 결국 권력을 해체하여 국민에게 돌려 주는 것이다 하였는데, 민주화정권 삼대가 행한 일은 무엇이었던가 ? 그들은 권력을 해체한 것이 아니라 권위를 해체하였던 것입니다. 권력은 오히려 있는 대로 뭉쳐서 그들의 손아귀에 틀어넣고, (권력의 집중화 - 사권분립의 개념인 언론까지 틀어쥐기 시작했습니다.) 수십년 걸려 쌓았던 권위, 업적의 권위, 경력의 권위, 도덕의 권위는 순식간에 해체되고 있습니다. 권위가 해체되면서 동시에 권위의 주변에 보이지 않게 형성되어 내려오던 질서까지 같이 해체, 아니 붕괴되고 있습니다.
붕괴되는 건물은 기초에 가까운 하층부터 균열이 가고 무너지기 시작하는데, 근래들어 사회의 밑바닥을 받치던 경제적 저층국민들로부터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는 자살의 흐름에서 한국이란 건물의 붕괴가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앞으로 올 그 비극의 전개를 감지하는 것입니다.
카라마죠프가의 대심문관이 자신의 명령으로 '인류를 위해 너의 아기를 바쳐라.'라고 한다면, 이는 권력의 집중된 현상입니다. 그러한 짓거리가 민주화현상과 함께 시작되고 있으니, 윤교수가 경제학자로서 지적하는 첫번째 법적 파괴가 1987년 10월, 소위 (민주화 눈치를 보던) 문민정부에 의해 발표된 개정헌법 제 119조 2 항 입니다.
'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권력의 민주화란 말은 있지만, 경제의 민주화란 말까지 여기서 등장했는데, 이는 '권력을 나누어 갖자' 는 권력민주화의 뜻처럼 경제, 즉, '돈을 나누어 갖자' 하는 의미를 가진 <경제의 민주화>란 조립어의 등장이니, 이 개념이 이후 한국의 경제를 아니, 한국인들의 의식에 지배적 개념을 띠고 들어왔습니다. 그리하여, 심지어 로또볻권을 탄 이에게 거리낌없이 '그 돈을 나누어달라'는 사람들마저 등장하는 지경입니다.
'돈을 나누어 갖자.' 비슷하지 않습니까 ? 김일성이 외쳤던 말 '지주의 땅을 빼앗아 농민에게로', 노통이 이전에 발설했던 '재벌 해체론', 또한 노조의 경영참여 요구, 심지어 레닌과 맑스의 '세계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 까지, 이 모두가 이면에는 '너의 돈이 나는 甚히 탐난다. 빼앗기 전에 내놔라.'가 깔려 있는 것 아닙니까 ?
그럼, 제가 내려야 할 결론은 무엇입니까 ? 알고 보니, 민주화사업은 권력을 갈라갖는 (내 운명은 내가 책임질 힘을 갖는) '자유주의 민주화'가 아니었고, 오히려 권력을 집중화하는 (나의 운명은 강해진 정부가 책임진다) '사회주의식 민주화'였던 것입니다.
이 시대의 불행을 이제사 깨달으니, '자유주의 민주화운동'일 거라고 수십년간 이 나라 백성들로부터 심정적 동정을 끌어모았던 저 자들의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이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자유를 제재하고 권위를 파괴하며 무질서한 사회를 만들어 결국 무책임하며 나약한 국민, 삼류 국가로 만들어가는 운동 아닙니까 ? 대한민국 불행의 씨앗이 바로 이 '사회주의로 가는 민주화운동'이란 정체속에 숨어있었던 것입니다.
어제 '레이거노믹스를 배우자'는 글을 번역하여 올린 이유를 예서 설명드립니다. 집중된 권력은 강한 정부를 만들고 강한 정부는 무거운 세금이 필요하며, 그렇게 집중된 권력은 개인의 자유를 (경제와 정책의 자유까지도) 필연적으로 제재하게 됩니다. 레이건은 이 강한 정부와 무거운 세금과 개인의 의욕박탈간의 문제를 여실히 알았습니다. 그는 줄곧 약한 정부, 약한 세금을 주장하였으며, 그의 임기동안 케인스식 경제정책으로 하락하던 미국의 경제는 다시 되살아났습니다. 개인에 대한 제재를 가능한 제거하여 자유로운 경제를 만들고, 경제의 기능을 시장과 개인에게 맡기었으며, 세금은 획기적으로 삭감하였던 것입니다.
'시장의 경제가 국가를 지배한다, 아니 국가의 미래를 지배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시장의 경제에서는 먼저 장사를 시작하여 성공하는 巨商(거상)이 있고, 신참자로 들어와서 거상의 족적을 따라 배우며, 자신도 미래에 거상과 같은 권위스런 존재가 될 것이다라고 바라는 희망이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도 그러합니다. 자유 속에서 권위는 쌓이며, 강제된 질서가 아니라 우리는 자발적인 질서의 사회에서 살기 원합니다. 강제된 질서로 짜인 사회의 표본이 북한이지만, 그 내부는 정적과 죽음과 극심한 부패가 판을 치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지구상에서, 권력이 초극대로 집중된 땅이 북한입니다. 권위와 질서는 파괴되고 자유는 초극소로 짜부러든 곳입니다. 어느 누구도, 黨의 명령이 없이는, 한 장의 국화잎새로조차 필 수 없는 땅입니다. 우리들은 코에 고삐가 걸린 소나 노새가 아니라 자유로운 인간들입니다. 우리들은 우리의 인생에서 하다못해 한송이의 국화꽃으로라도 피어나고 권위를 갖길 원합니다. 나의 권위가 존중되어지듯이 타인의 권위도 존중하기를 원합니다. 이 모든 일은 우리에게 '자유'가 확보될 적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권위와 질서를 돌리어달라. & 권력도 돌리어달라. 이것이 우리가 망가져가는 대한민국을 보면서 해야 할 말이며 저 자들에게 요구해야 할 일입니다. 돌리어낼 수 없다면, 그만 깨뜨리고 그만 내려가라 ! 이것이 제가 하고픈 말입니다. 자칫하면 아프리카의 운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윤교수님의 경고입니다. 선지자들의 예언을 무시하지 맙시다.
* 尹龍駿 교수의 칼럼을 읽으시려면:
http://monthly.chosun.com/board/view_content.asp?tnu=200312100019&catecode=G&cPage=1
http://cafe.daum.net/paaranhome
망가지지 않았으면 그냥 사용하라
- 파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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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12-29, 11: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