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후계자說 누가 만들었나?

일부 브로커들, 허위 정보 量産.
지난 1월 8일 김정일의 후계자로 알려진 김정은의 생일로 1월 8일이 공휴일로 지정됐고 그 생일 잔치로 북한내부에서 강연회와 무슨 회의가 열렸다고 소식통들은 전했지만 정작 북한내부에서는 김정은의 생일이 지정된 바 없고 후계자 문제에 대해서 지금 시점에서 전혀 거론되는 것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왜 북한내부에서는 조용한 후계자 문제가 밖에서만 떠들썩 할까. 지나친 관심이 많은 억측을 만들어내면서 어느것이 진실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후계자 문제에 대한 오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아래 기사는 김정은의 생일로 알려진 1월 8일에 북한의 주요 간부들이 금요노동을 했다는 중앙통신발 기사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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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중앙기관 정무원들 새해 첫 금요로동

(평양 1월 8일발 조선중앙통신)성, 중앙기관 정무원들이 8일 평양시 삼석구역에 있는 대동강과수종합농장에서 새해의 첫 금요로동을 진행하였다.

1, 800여t의 거름도 장만한 그들은 새해전투의 첫 시작부터 련일 생산적앙양을 일으킨 일본새로 거름실어내기와 구뎅이파기에서 기세를 올렸다.

성, 중앙기관 정무원들은 농장의 풍요한 래일을 그려보며 일자리를 푹푹 내였으며 인민보안성 녀성취주악단은 힘있는 경제선동으로 온 농장벌에 기적과 혁신의 기상이 나래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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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김정은을 후계자로 만들었나

밖에선 “김정은 생일 대대적 잔치” 보도… 北에선 “금시초문”

최근 국내외 언론과 민간 대북 소식지들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알려진 3남 김정은의 생일이 1월 8일이며, 그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북한 당국이 이날을 국가 명절로 지정하고 이틀간 휴무했다는 ‘뉴스’를 일제히 내보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북한 정권에 밝은 한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의 생년월일이 지금까지 알려진1983년 1월 18일이 아니라 1984년 1월 8일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뉴스 역시 오보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김정은 생일 휴무설 등에 대해 “금시초문이며 사실과 다르다”는 관측통들의 반박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등과 관련해 이미 오보 소동을 낳은 김정은이 또 다시 오보를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중국 단둥(丹東)을 방문한 한 북한 경제인은 “지난 1월 8일 북한에선 김정은과 관련된 아무런 행사도 열리지 않았으며 휴일로 지정된 바도 없었다”며 “왜 그런 말이 외부에서 먼저 전해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 내부의 다른 소식통 역시 “김정은의 생일을 기념하는 그 어떤 공식 행사도 열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 고위탈북자는 “북한에서는 김정은이 누군지에 대해 알려진 것도 거의 없다”며 “심지어 그의 얼굴조차 공개된 적이 없는데, 갑자기 생일을 기념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고위탈북자는 “지난해 3월 제기된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임명됐다’는 주장은 북한이 밝힌 사실이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외부 언론이 보도해 기정사실화된 것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관측통들은 “현재 대다수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의 생일이 1월 8일인지 아닌지조차 알지 못한다”며 생일 관련 낭설의 진원지가 북한 외부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한 관측통은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실을 둘러싸고 관련 소문이 갑자기 나돌게 된 까닭은 일부 주민들이 라디오를 통해 외부의 소식을 듣고, 거꾸로 북한 내부에 이와 관련된 소문을 퍼뜨렸기 때문일 것”이라 추정했다. “외부에서 흘러들어간 소문이 북한 내부에서 정보인 것처럼 가공돼 거꾸로 외부로 유출되면서 소동이 빚어졌다”는 시각이다.

생일잔치는 후계자 구도의 주요 단서

실제 한 탈북자 단체는 지난해 12월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 동지의 탄생을 뜻깊게 기념할 데 대하여’라는 당중앙위 비서국 지시문이 하달됐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다. 또 다른 대북 소식지 역시 ‘김정은의 생일을 기념하는 중앙보고대회를 열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실 북한에서 생일을 어떻게 기념하느냐는 후계자 구도를 점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김정일 생일 역시 단계적으로 격상돼 왔기 때문이다. 김정일 생일은 1975년 처음 임시휴무일로 지정됐다. 김정일은 그 한 해 전인 1974년 2월 13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 정치위원으로 피선되며 김일성 공식 후계자로 내정됐다. 김정일의 생일은 이어 1976년에 공식 휴무일로 지정됐고, 김일성 사망 이듬해인 1995년부터는 ‘민족 최대의 명절’로 격상됐다.

이 과정에서 김정일의 진짜 출생 연도를 둘러싸고도 논란이 많았다. 한 고위탈북자는 “김정일의 출생 연도는 당초 1941년 2월로 알려져 있었는데 1982년 한 해 전에 치른 40회 생일 행사를 또 다시 성대하게 치르려 하자 많은 사람들이 당혹스러워했다”며 “하지만 이것이 김일성의 출생 연도(1912년)와 30년이란 사이를 두고 일종의 ‘주기’를 맞추기 위한 행위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김정일의 출생 연도를 1942년으로 바꾼 이유가 ‘김정일의 백두산 출생설’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해석도 한다. 북한의 공식 혁명사에는 김일성이 중국에서 러시아로 건너간 것이 1940년 10월이라 기재돼 있기 때문에 그 이듬해인 1941년 2월에 김정일이 백두산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은 거짓이 된다. 따라서 김정일 우상숭배 작업인 백두산 출생설을 만들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김정일의 출생 연도를 바꿨다는 것이다.

어쨌든 김정일은 자신의 생일을 국가적으로 기념하는 위치에 오르기까지 많은 활동을 했고 나름대로의 노력도 기울였다. 활발한 대외(對外) 활동을 통해 당 간부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키는 ‘후계 과정’을 철저하게 밟은 것이다. 지금의 김정은처럼 시종일관 베일에 싸인 존재가 아니었다. 김정일은 1960년대 중반부터 문화예술 부문을 지도하면서 이름을 알리고 입지를 굳혔다.

이후 이복동생인 차남 김평일과의 치열한 후계자 선점 싸움을 치르는 과정에서는 혁명 원로들을 설득해 김일성에게 ‘장자승계원칙’을 건의케 하는 주도면밀함도 보였다. 당시 김정일은 노동당 선전선동부를 움직여 전국의 노동자, 농민, 군인들 명의로 된 ‘김정일을 후계자로 내세우라’는 편지가 노동당 중앙위에 쇄도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현재의 관측과 정보로는 자신의 아버지와 비슷한 움직임이 전혀 없다. 그가 진짜 후계자가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부 브로커들 허위정보 양산

당초 김정일 3대 세습 논란은 2008년 7월로 예정돼 있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해를 넘기면서 불거졌다. 김정일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 게 계기였다. 연기됐던 최고인민회의 선거가 2009년 3월 8일 치러지긴 했지만 김정일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공론화되면서 북한의 후계자 문제는 북한 안팎에서 시급한 과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때 한국의 한 언론이 ‘김정일의 3남인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했다’는 내용을 보도하면서 김정은이 후계자로 부상했다. 이후 북한 당국이 한번도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 인정하지 않았지만 외부에서 김정은을 후계자로 인정하는 희한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후계자 문제에 대한 북한의 공식 입장은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는 쪽에 가깝다. 북한의 명목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위원장은 2008년 9월 일본 교도통신과의 공식 인터뷰에서 “후계자 문제는 현시점에서 전혀 거론되는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북한 대남 관련 부서 출신의 한 탈북자는 “북한이 공식적으로 김정은을 후계자로 인정했다면 김영남이 멋대로 그것을 부정할 순 없었을 것”이라며 “김정일의 의중에 김정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후계구도가 공식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1990년대 후반 300만명이 아사(餓死)한 것으로 알려진 극심한 식량난을 겪은 북한 주민들은 지난 10년간 확대되어온 시장경제를 직접 체험하면서 김정일이 아닌 시장이 자신들을 먹여살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특히 북한 주민들은 최근의 화폐개혁으로 사실상 재산을 빼앗기면서 김정일에 대한 마지막 미련도 끊어버렸다는 것이 북한 내부 소식통의 전언이다.

소식통들은 “이런 상황 속에서 후계자를 내세운다는 것은 오히려 김정일 권력을 순식간에 붕괴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소식통들은 “최근의 김정일 관련 뉴스들은 국경지역 일부 북한 주민들과 정보 브로커들이 외부의 입맛에 맞게 가공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한다. 북한과 관련된 가장 뜨거운 뉴스인 ‘후계자 김정은’은 여전히 베일에 싸인 의문의 대상이며, 또 다시 오보의 진원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 강철환 조선일보 북중문제연구소 기자 nk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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