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산 등반 4시간, 1만 9900보

"북한 주부들은 추운 겨울에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산에서 고생을 많이 한 탓에 산보다는 바다를 좋아합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탈북자가 바라본 남조선’시간 진행을 맡은 김춘애입니다.

1월의 한겨울 날씨라기보다는 그리 춥지 않은 이곳 서울의 날씨는 정말 따스합니다. 등산하기 좋은 날씨라 저는 아침 일찍 등산복 차림에 배낭을 메고 전철을 타고 친구들과 함께 등산을 위해 산새가 수려해 경기의 소금강산이라고도 불리는 소요산으로 갔습니다.

이 산은 해발 536m 되는 그리 높지는 않은 산입니다. 소요산에 도착해, 원효 폭포를 지나 자재암에 들러 두 손을 잡고 세 번 절을 하고 다시 하백운대를 향해 올랐습니다.

45도의 가파른 벼랑도 톱아 올랐고 칼날 같이 뾰족 뾰족한 톱날 같이 생긴 길도 걸었고 얼음에 묻혀 있는 미끄러운 길도 걸었습니다. 정상에 올라 하백운대와 중백운대를 지나상백운대에 올랐습니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 2시를 지났습니다.

우리는 아늑한 장소를 골라 자리를 잡아 빙 둘러앉아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점심밥은 제각각 준비해 와서 이것저것 진수성찬이었습니다. 땀을 흘린 뒤, 먹는 사발라면은 정말 별미였습니다.

양쪽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 속에서의 얼큰한 라면 국물 맛은 끝내줍니다. 소주도 한잔 했습니다. 점심식사 뒤, 다시 우리는 선녀탕을 향해 내려왔습니다. 저는 선녀탕이라고 하여 목욕탕인 줄로 알았는데, 목욕탕은 아니고 조그마한 호수였는데, 겨울이라 약간의 물만이 있었습니다.

중간에 한시름 쉬면서, 저에게 같이 간 사람들이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북한에도 남한처럼 산들이 많은데 어느 산에 올라가 보았는가? 금강산에는 가 보았는가? 모두들 궁금해 했습니다. 또 제가 군 생활을 한 줄 아는 친구들은 저희 산타기가 보통 실력이 아니라고 칭찬도 해줘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 칭찬이 싫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나이는 어쩔 수가 없는가 봅니다.

학교시절에 묘향산 야영을 가본 적이 있었다는 말에 부러워하기도 했고 북한에는 자유가 없기 때문에 묘향산이나 금강산 구경을 마음대로 자유스럽게 갈 수가 없다는 말에 많이들 놀라는 모습이었습니다. 통제가 많고 교통수단이 열악한 북한 주민들은 산보다 바다를 더욱 좋아한다는 말에 더욱 놀라워했습니다. 북한 남자들 같은 경우에는 고등중학교를 졸업하면 누구나 군 생활을 10년이나 산에서 해야 하고 주부들은 이 추운 겨울에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산에서 고생을 많이 한 탓에 우리 탈북자들 대부분은 바다 구경을 간다면 좋아해도 산에 등산을 가자면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산에서 많은 고생을 하면서 軍생활을 한 탓에 이곳 남한에 왔을 때 처음에는 주위 사람들이 높은 산으로 등산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이상하게도 생각했었습니다.
힘들게 산에 가지 않아도 즐거운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들이 많은데 왜 하필 저렇게 힘들게 높은 산을 찾아 버스타고 차까지 타고 가면서 생고생을 사서 하는가고 말입니다. 이런 고정 관념 때문에 은근히 산을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차츰, 주말마다 친목계 회원들과 함께 이렇게 등산을 나섭니다. 이곳 남한 사람들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하고 남한 생활현실에 대해 수다도 떨면서 아픈 마음의 상처도 위로가 되고 스트레스도 풉니다.

땀을 흘리며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서서 눈바람 속에서도 벌써 망울져 가는 철쭉 꽃망울과 진달래 꽃망울을 바라보기도 하고 남들이 걷지 않는 사람들의 발길이 한적한 곳도 골라가며 뽀드득 뽀드득 소복이 쌓여 있는 하얀 눈도 밟으며 걷기도 했고 솔나무 잎에 아직 피워 있는 눈꽃도 흔들어 주었고 어린 아이들마냥 장난기도 발동했었습니다.

가파르고 아찔한 많은 계곡들을 내려다보면서 산 밑에서 불어 올라오는 바람소리와 얼굴을 스치며 지나가는 시원한 바람을 느낄 때면 마치도 제가 하늘 높이 올라 둥둥 뜬 기분 이였습니다. 그리고 정상에 올랐을 때 오늘의 내 목적을 달성했구나, 하는 승리자의 뿌듯한 마음과 산 정상에 올라 마시는 한 잔의 커피 잔에서도 온갖 지난 안 좋았던 감정을 시원히 날려 보낼 수 있고 밝아오는 내일의 행운과 건강도 빌어 보면서 바로 이 맛이 있어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산을 타누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북한에서 산 생활이 지긋지긋해 잊었던 것들이 새삼 눈에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이날 소요산에서 우리는 4시간 동안 1만9900보를 걸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가까운 의정부 시내에 들러 유명한 부대찌개를 먹고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맏이는 이날 산에 갔다고 했더니, 전화를 해선 조심해서, 등산 주의점을 잘 살펴 다니라고 다짐을 받았지만, 친구들과 함께 한 등산길은 위험하다는 생각보다는 즐거웠던 기억뿐입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이제 내 보호자가 돼, 이렇게 한 마디씩 해주는 것이 뿌듯하네요. 의정부에서 집까지 지하철을 타고 2시간 걸립니다. 그래도 그 시간이 전혀 길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소요산이 저에게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 줬습니다.

오늘도 칼바람 부는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함이 없이 땔감을 위해 눈을 헤치며 산에서 나무를 하고 있을 북녘의 동포들을 그려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하루 빨리 북한의 우리 형제들도 행복하게 살게 될 그날을 기원합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이 시간 또 기다려 주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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