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고목나무처럼 쓰러져버릴 김정일체제를 무엇이 아쉽다고 언론플레이를 하면서 만나려고 안달인가?
I
기원전 48년 10월, 제1차 3두정치의 실력자 율리우스 시저가 폼페이우스의 잔당들을 추격하여 이집트로 왔을때, 시저는 클레오파트라를 만났다. 그녀는 이미 살해한 폼페이우스의 목도 시저에게 선사했다. 그녀는 남동생이자 남편인 프톨레마이우스 13세와 공동통치를 했는데, 권력을 독차지하기 위해라도 시저의 군사력이 필요했다.
그녀는 시저의 힘을 빌려서 프톨레마이우스 13세를 제거했다. 클레오파트라는 능수능란한 외교협상력을 발휘하여 이집트의 멸망을 피하여 이집트를 로마의 동맹국으로 만들었다. 그 뒤 시저는 그녀를 로마로 데려왔고 클레오파트라와 결혼을 해서 시저리온이란 이름을 붙인 아들을 낳았다. 로마시민들에게 시저는 인기가 높았었지만 로마의 원로원은 클레오파트라를 혐오했다.
기원전 44년, 독재관 시저가 카시우스가 주도한 공화주의자들의 음모에 의해 암살되자 시저의 부장인 안토니우스와 시저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 대부호 레피두스간에 제2차 3두정치가 시작되었다. 안토니우스의 강점은 시저가 고올지방에서 양성하여 두었던 충성심이 강하고 실전경험이 풍부한 막강한 군단들을 장악한 군권이었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 판단력이나 智謀가 부족했고 분출되는 욕망에 대한 절제력이 없었다. 옥타비아우스의 강점은 탁월한 정치적 판단력, 막강한 재력과 암살당한 시저의 법적 후계자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의 약점은 나이가 어리고 그에게 충성하는 군대가 부족했다. 약관의 옥타비아누스가 군권을 장악한 안토니우스를 꺽기는 역부족이었다. 옥타비아누스와 그의 모친은 협상을 벌리고 또 세력을 확장하는 시간을 벌기 위해 자신의 누이 옥타비아를 안토니우스에게 소개하여 둘의 정략결혼을 성사시켰다. 그런데 클레오파트라를 잊지 못한 안토니우스는 이집트로 망명한 클레오파트라를 만나러 갔다.
클레오파트라는 기원전 42년에는 안토니우스와 협상하였고, 2년뒤엔 그와 이집트에서 동방식 결혼식을 거행하였다. 원래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가 천거소개한 그의 누이 옥타비아와 결혼한 상태였다.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가 삼두정치에서 필요한 군량미와 경제력을 지원했으며 그 대가로 페니키아, 유다 등의 영토를 얻어서 영역을 확대하였다.
로마의 원로원에서는 안토니우스의 처신에 실망한다. 이 기회를 노려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에서 안토니우스 세력을 제거하였고, 안토니우스를 反로마인으로 규정하였다. 기원전 31년 9월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함대는 옥타비아누스에게 패한다. 격렬한 전투에서 선두에 선 안토니우스는 후미에 선 클레오파트라의 이집트함대가 보이지 않자 실망했다. 그런데, 패전소식을 접한 클레오파트라는 다시 옥타비아누스를 만나려고 추파를 던진다.
이미 용도폐기된 안토니우스를 버리고 옥타비아누스로 배를 갈아 타려는 심산이었다. 그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에게는 클레오파트라는 로마 지도자들을 현혹시켜 나라를 일대 혼란에 빠트린 妖女요 惡女로 비쳤다. 그녀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로마의 안정을 위해 제거대상이었다. 의지할 곳이 없어진 그녀는 자신이 키우던 독사에게 물려 자살하고 말았다. 안토니우스도 자결했는데,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에 의하면, 안토니우스는 용장이지만 클레오파트라에 푹 빠져 판단력을 상실한 인물로 묘사된다. 현명한 판단력과 절제력을 지닌 정치가였던 옥타비아누스는 후일 초대 로마 황제로 추대되어 로마제국의 5현제 시대를 열게 된다.
두 명의 로마 장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클레오파트라는 다시 한번 세 번째 남자 옥타비아누스와 협상ㆍ求愛하려고 시도하다가 거절당하고 자살했다. 만약 옥타비아누스가 그녀를 만났다면 살려두었을지도 모른다. 클레오파트라는 권력의 유지를 위해 집정관 시저와 안토니우스를 적극적으로 유혹했다. 클레오파트라와 시저, 안토니우스와의 만남의 비극적 교훈은 나쁜 만남은 자신의 신세는 물론 나라도 망칠 수 있다는 점을 후세에 남겼다.
II
도대체 클레오파트라와 김정일은 무슨 관계가 있나? 惡氣가 서린 만남은 惡運을 만든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김일성-김정일이 만난 남한의 정치인과 기업인들, 종교인들 대부분 무슨 惡運과 惡鬼가 쓰였는지 모두가 末年이 좋지 않았다.
이후락, 장세동, 박철언 등은 세인들의 심한 비난속에 정치적으로 몰락했고, 대기업총수인 김우중, 정주영, 정몽헌 등은 생전에 무리하게 대북투자를 강행하여 파산한 결과 해외에 도피하거나 자살소동이 벌어졌다, 박근혜는 악성소문에 시달리면서 경선에서 패배의 쓴 잔을 마셨고, 전직 좌익대통령인 김대중, 노무현 등은 작년 중병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김정일의 두 남한 파트너 김대중과 노무현 둘 다 생존시에는 한국사회의 좌경화 책임과 남북정상회담의 부작용과 후유증으로 보수우파로부터 심각하게 비판을 받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런 문제점을 이명박 대통령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무엇이 아쉬운지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을 만나려고 안달을 하고 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런 조급증을 보인지 몇 달이 흘렀다. 올해는 통일대통령의 칭호를 들으려고 작심한 듯한 발언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벌써 작년 10월 17-18일간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이 임태희 노동부장관과 북한의 통일전선부 김양건 부장간에 비밀접촉이 있었다고 전한다. 올해 1월 4일 신년사에서 남북관계에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어야한다고 말했고, 1월 29일에는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일을 올해에는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다시 2월 2일 국무회의에서는 “정상회담의 대가는 있을 수 없다”고 언급했다.
왜 이명박은 자청해서 남북정상회담의 언질을 했을까? 물론 언론에서 연일 세종시의 문제를 거론하면서 친박과 친이의 대립, 충청도민의 감정격화를 보도하는 점에서 마땅한 국면전환용의 돌파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여기에 6.2지방선거가 닥쳐오는데, 세종시가 분명히 악재인 것은 분명하다. 이점에서 자신의 업적을 더 크게 부각시킬 필요성이 있다. 또 북핵과 평화협정체결 등 미국과 북한간의 협상에 진척되어서 한국이 참여하지 못하게 되어 외톨이가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이런 오버액션을 취하게 했을 수도 있다. 내년부터는 MB정부의 하반기로 접어들기에 정상회담의 추진이 부담이 된다.
그렇다면 올해 11월 G20회의가 서울에서 열리는 약 두세달전에 정상회담을 해서 세계만방에 MB의 지도력을 홍보ㆍ과시하는 방안이 모색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청와대의 정국전환의 작전은 이렇다. “언론이 잘만 협조해 준다면, 11월까지 남북정상회담과 G20 서울개최를 화도로 하는 언론의 초점을 그런 방향으로 돌린다면, 세종시문제는 외곽으로 비껴나고 MB의 인기도가 올라가면서 6.2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쾌승은 물론 4대강 사업도 순탄하게 진행될 것이다.”
III
그런데 이명박이 김정일을 만나려면 상호 조건이 충족되어야한다. “장소는 남한이 양보한다고 하지만, 북한이 북핵, 납북자나 국군포로나 그 遺骸의 송환 등에 적극적으로 성의를 표시해 준다면 남한의 풍부한 대북지원과 햇볕정책의 再開를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일본 총리 고이즈미가 평양가서 납북자를 데려오면서 돌려보내주지 않아서 오랫동안 메스컴에서 회자되었던 일본에서 한번 사용했던 방식이다.
김정일로서는 화폐개혁의 부작용으로 인한 경제파탄과 후계구도의 불확실성으로 속이 타들어간다. 건강도 악화일로다. 남한의 막대한 지원을 받게 되면 김정일의 정치적 수명이 연장될 수도 있다. 답답하고 아쉬운 지원을 받아야하는 쪽은 남한이 아니라 북한이다. 김정일은 의지할 곳을 찾아야한다. 김정일에게는 이명박이 세 번째 파트너가 되는 셈이 된다. 그런데 현 상황은 이상하다. 몰락해 가는 김정일이 이명박에게 러브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이유에서인지 작년 가을부터 이명박은 김정일을 만나지 못해 안달이다.
그렇다면 만남의 대가가 무엇인가?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청와대만 들어가면 북한의 독재자인 김일성-김정일을 만나지 못해 안달하는 ‘남북정상회담’ 징후군이란 몹쓸병에 걸리고 만다. 남한에서는 정상회담을 자꾸만 부추기는 세력들이 상존한다. 타이나닉호처럼 몰락해가는 김정일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처럼 인식하여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친북좌익세력들이 있다. 좌익참모가 정국타개를 위해 간곡히 진언하고, 좌익언론이 그 필요성을 부추기고, 좌익정치인들이 집요하게 선동하는 권력구조속에 함몰되다보면 그렇게 판단력이 몽롱해지는 것일까?
로마제국을 연 초대 황제가 된 옥타비우누스가 희대의 妖女 클레오파트라와의 면담을 거절하여 화근을 미연에 제거했다. 이것은 MB가 김정일을 만나려고 안달하는 정국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할 지도자의 단호한 결단력이다. 絶世의 美女라도 性病에 걸렸다면 단호히 면담의 기회를 차단하여 性行爲로 인한 감염 가능성을 절단하는 절제력을 보이는 것이 君子의 도리이다. 가만히 외면하면 썩은 고목나무처럼 쓰러져버릴 김정일체제를 무엇이 아쉽다고 언론플레이를 하면서 만나려고 안달인가? 정국타개의 해답을 찾지 못하면 책략적 차원의 잔머리를 굴릴 것이 아니라 과거 역사로 되돌아가야한다. 일을 많이 하려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가급적 치명적 실책을 줄여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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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원광대 사학과 교수,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 국제현대사연구소장
I
기원전 48년 10월, 제1차 3두정치의 실력자 율리우스 시저가 폼페이우스의 잔당들을 추격하여 이집트로 왔을때, 시저는 클레오파트라를 만났다. 그녀는 이미 살해한 폼페이우스의 목도 시저에게 선사했다. 그녀는 남동생이자 남편인 프톨레마이우스 13세와 공동통치를 했는데, 권력을 독차지하기 위해라도 시저의 군사력이 필요했다.
그녀는 시저의 힘을 빌려서 프톨레마이우스 13세를 제거했다. 클레오파트라는 능수능란한 외교협상력을 발휘하여 이집트의 멸망을 피하여 이집트를 로마의 동맹국으로 만들었다. 그 뒤 시저는 그녀를 로마로 데려왔고 클레오파트라와 결혼을 해서 시저리온이란 이름을 붙인 아들을 낳았다. 로마시민들에게 시저는 인기가 높았었지만 로마의 원로원은 클레오파트라를 혐오했다.
기원전 44년, 독재관 시저가 카시우스가 주도한 공화주의자들의 음모에 의해 암살되자 시저의 부장인 안토니우스와 시저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 대부호 레피두스간에 제2차 3두정치가 시작되었다. 안토니우스의 강점은 시저가 고올지방에서 양성하여 두었던 충성심이 강하고 실전경험이 풍부한 막강한 군단들을 장악한 군권이었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 판단력이나 智謀가 부족했고 분출되는 욕망에 대한 절제력이 없었다. 옥타비아우스의 강점은 탁월한 정치적 판단력, 막강한 재력과 암살당한 시저의 법적 후계자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의 약점은 나이가 어리고 그에게 충성하는 군대가 부족했다. 약관의 옥타비아누스가 군권을 장악한 안토니우스를 꺽기는 역부족이었다. 옥타비아누스와 그의 모친은 협상을 벌리고 또 세력을 확장하는 시간을 벌기 위해 자신의 누이 옥타비아를 안토니우스에게 소개하여 둘의 정략결혼을 성사시켰다. 그런데 클레오파트라를 잊지 못한 안토니우스는 이집트로 망명한 클레오파트라를 만나러 갔다.
클레오파트라는 기원전 42년에는 안토니우스와 협상하였고, 2년뒤엔 그와 이집트에서 동방식 결혼식을 거행하였다. 원래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가 천거소개한 그의 누이 옥타비아와 결혼한 상태였다.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가 삼두정치에서 필요한 군량미와 경제력을 지원했으며 그 대가로 페니키아, 유다 등의 영토를 얻어서 영역을 확대하였다.
로마의 원로원에서는 안토니우스의 처신에 실망한다. 이 기회를 노려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에서 안토니우스 세력을 제거하였고, 안토니우스를 反로마인으로 규정하였다. 기원전 31년 9월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함대는 옥타비아누스에게 패한다. 격렬한 전투에서 선두에 선 안토니우스는 후미에 선 클레오파트라의 이집트함대가 보이지 않자 실망했다. 그런데, 패전소식을 접한 클레오파트라는 다시 옥타비아누스를 만나려고 추파를 던진다.
이미 용도폐기된 안토니우스를 버리고 옥타비아누스로 배를 갈아 타려는 심산이었다. 그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에게는 클레오파트라는 로마 지도자들을 현혹시켜 나라를 일대 혼란에 빠트린 妖女요 惡女로 비쳤다. 그녀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로마의 안정을 위해 제거대상이었다. 의지할 곳이 없어진 그녀는 자신이 키우던 독사에게 물려 자살하고 말았다. 안토니우스도 자결했는데,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에 의하면, 안토니우스는 용장이지만 클레오파트라에 푹 빠져 판단력을 상실한 인물로 묘사된다. 현명한 판단력과 절제력을 지닌 정치가였던 옥타비아누스는 후일 초대 로마 황제로 추대되어 로마제국의 5현제 시대를 열게 된다.
두 명의 로마 장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클레오파트라는 다시 한번 세 번째 남자 옥타비아누스와 협상ㆍ求愛하려고 시도하다가 거절당하고 자살했다. 만약 옥타비아누스가 그녀를 만났다면 살려두었을지도 모른다. 클레오파트라는 권력의 유지를 위해 집정관 시저와 안토니우스를 적극적으로 유혹했다. 클레오파트라와 시저, 안토니우스와의 만남의 비극적 교훈은 나쁜 만남은 자신의 신세는 물론 나라도 망칠 수 있다는 점을 후세에 남겼다.
II
도대체 클레오파트라와 김정일은 무슨 관계가 있나? 惡氣가 서린 만남은 惡運을 만든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김일성-김정일이 만난 남한의 정치인과 기업인들, 종교인들 대부분 무슨 惡運과 惡鬼가 쓰였는지 모두가 末年이 좋지 않았다.
이후락, 장세동, 박철언 등은 세인들의 심한 비난속에 정치적으로 몰락했고, 대기업총수인 김우중, 정주영, 정몽헌 등은 생전에 무리하게 대북투자를 강행하여 파산한 결과 해외에 도피하거나 자살소동이 벌어졌다, 박근혜는 악성소문에 시달리면서 경선에서 패배의 쓴 잔을 마셨고, 전직 좌익대통령인 김대중, 노무현 등은 작년 중병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김정일의 두 남한 파트너 김대중과 노무현 둘 다 생존시에는 한국사회의 좌경화 책임과 남북정상회담의 부작용과 후유증으로 보수우파로부터 심각하게 비판을 받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런 문제점을 이명박 대통령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무엇이 아쉬운지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을 만나려고 안달을 하고 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런 조급증을 보인지 몇 달이 흘렀다. 올해는 통일대통령의 칭호를 들으려고 작심한 듯한 발언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벌써 작년 10월 17-18일간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이 임태희 노동부장관과 북한의 통일전선부 김양건 부장간에 비밀접촉이 있었다고 전한다. 올해 1월 4일 신년사에서 남북관계에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어야한다고 말했고, 1월 29일에는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일을 올해에는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다시 2월 2일 국무회의에서는 “정상회담의 대가는 있을 수 없다”고 언급했다.
왜 이명박은 자청해서 남북정상회담의 언질을 했을까? 물론 언론에서 연일 세종시의 문제를 거론하면서 친박과 친이의 대립, 충청도민의 감정격화를 보도하는 점에서 마땅한 국면전환용의 돌파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여기에 6.2지방선거가 닥쳐오는데, 세종시가 분명히 악재인 것은 분명하다. 이점에서 자신의 업적을 더 크게 부각시킬 필요성이 있다. 또 북핵과 평화협정체결 등 미국과 북한간의 협상에 진척되어서 한국이 참여하지 못하게 되어 외톨이가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이런 오버액션을 취하게 했을 수도 있다. 내년부터는 MB정부의 하반기로 접어들기에 정상회담의 추진이 부담이 된다.
그렇다면 올해 11월 G20회의가 서울에서 열리는 약 두세달전에 정상회담을 해서 세계만방에 MB의 지도력을 홍보ㆍ과시하는 방안이 모색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청와대의 정국전환의 작전은 이렇다. “언론이 잘만 협조해 준다면, 11월까지 남북정상회담과 G20 서울개최를 화도로 하는 언론의 초점을 그런 방향으로 돌린다면, 세종시문제는 외곽으로 비껴나고 MB의 인기도가 올라가면서 6.2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쾌승은 물론 4대강 사업도 순탄하게 진행될 것이다.”
III
그런데 이명박이 김정일을 만나려면 상호 조건이 충족되어야한다. “장소는 남한이 양보한다고 하지만, 북한이 북핵, 납북자나 국군포로나 그 遺骸의 송환 등에 적극적으로 성의를 표시해 준다면 남한의 풍부한 대북지원과 햇볕정책의 再開를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일본 총리 고이즈미가 평양가서 납북자를 데려오면서 돌려보내주지 않아서 오랫동안 메스컴에서 회자되었던 일본에서 한번 사용했던 방식이다.
김정일로서는 화폐개혁의 부작용으로 인한 경제파탄과 후계구도의 불확실성으로 속이 타들어간다. 건강도 악화일로다. 남한의 막대한 지원을 받게 되면 김정일의 정치적 수명이 연장될 수도 있다. 답답하고 아쉬운 지원을 받아야하는 쪽은 남한이 아니라 북한이다. 김정일은 의지할 곳을 찾아야한다. 김정일에게는 이명박이 세 번째 파트너가 되는 셈이 된다. 그런데 현 상황은 이상하다. 몰락해 가는 김정일이 이명박에게 러브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이유에서인지 작년 가을부터 이명박은 김정일을 만나지 못해 안달이다.
그렇다면 만남의 대가가 무엇인가?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청와대만 들어가면 북한의 독재자인 김일성-김정일을 만나지 못해 안달하는 ‘남북정상회담’ 징후군이란 몹쓸병에 걸리고 만다. 남한에서는 정상회담을 자꾸만 부추기는 세력들이 상존한다. 타이나닉호처럼 몰락해가는 김정일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처럼 인식하여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친북좌익세력들이 있다. 좌익참모가 정국타개를 위해 간곡히 진언하고, 좌익언론이 그 필요성을 부추기고, 좌익정치인들이 집요하게 선동하는 권력구조속에 함몰되다보면 그렇게 판단력이 몽롱해지는 것일까?
로마제국을 연 초대 황제가 된 옥타비우누스가 희대의 妖女 클레오파트라와의 면담을 거절하여 화근을 미연에 제거했다. 이것은 MB가 김정일을 만나려고 안달하는 정국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할 지도자의 단호한 결단력이다. 絶世의 美女라도 性病에 걸렸다면 단호히 면담의 기회를 차단하여 性行爲로 인한 감염 가능성을 절단하는 절제력을 보이는 것이 君子의 도리이다. 가만히 외면하면 썩은 고목나무처럼 쓰러져버릴 김정일체제를 무엇이 아쉽다고 언론플레이를 하면서 만나려고 안달인가? 정국타개의 해답을 찾지 못하면 책략적 차원의 잔머리를 굴릴 것이 아니라 과거 역사로 되돌아가야한다. 일을 많이 하려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가급적 치명적 실책을 줄여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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