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장소에서 同時에 출생한 김정일

『1994년에 하바로프스크에 갔더니 거기 金正日의 출생지가 있었어요. 어떻게 두 장소에서 동시에 태어날 수 있습니까?』

1942년 하바로프스크 근방에서 金日成 일가와 한 식구처럼 지낸 당시 중국공산당 빨치산 부부 陳雷 (前 흑룡강성 省長)-李敏(조선족 여성)씨가 在美언론인 피터현씨에게 털어놓은 이야기: "김일성은 극좌노선에 후계자 선정 잘못. 개혁해야겠다고 생각하였을 때 죽어."


북한사람들은 김정일이 백두산 密營에서 1942년 2월16일에 난 것이 아니고 1941년 2월16일 소련 하바로프스크 근방에서 났다는 사실을 알면 놀란다. 김정일 神話는 '백두산 출생'이란 데서 출발한다. 백두산 밀림 속에서 김일성 부대가 일본군과 死鬪를 벌이던 중 출생하였다는 것과 김일성이 소련으로 달아나 소련군 장교가 되어 있는 동안 출생하였다는 것은 天地 차이이다. 북한에서도 김정일이 후계자로 확정되기 전엔 1941년 출생이라고 알려졌었다. 김정일을 우상화하는 과정에서 생일과 출생지가 조작된 것이다.

在美 언론인 피터 현씨는 9년 전 중국에 가서, 1942년 하바로프스크 근방에서 金日成 일가와 한 식구처럼 지낸 당시 중국공산당 빨치산 부부 陳雷 (前 흑룡강성 省長 역임)-李敏(조선족 여성)씨를 만나 인터뷰하여 월간조선에 기고한 적이 있다. 기사 중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 소개한다.

<조선족 역사학자 金宇鍾 교수에 의하면 金日成은 중국 공산당 게릴라 부대였던 東北抗日聯軍의 한 支隊長(지대장)이었다는 것. 이 부대는 원래 일제가 滿洲國(만주국)을 만든 뒤 동북지방 일대에서 산발적으로 활약하던 중국인과 한인 빨치산들을 통합한 사령부를 말한다. 1936년에서 1938년 사이 이 부대는 3 路軍(로군)으로 재편성된다. 한인 빨치산들은 韓滿(한만)국경이 가까운 東滿(동만)지방을 작전지역으로 하는 제1로군에 편입되었다. 金日成은 이 1로군에서 두각을 보인 십여 명의 韓人 지휘관 중의 한 사람이었다. 金日成 부대의 규모는 50명에서 3백명까지 일정치 않았다. 가장 유명한 작전은 1937년 6월 韓滿 국경 마을 보천보에 주둔한 일본군 지대를 공격한 사건인데 당시 부대원 수는 약 2백명이었다. 金日成은 아주 불리한 상황에서 게릴라 전투를 계속하다가 1940년 말 소련으로 후퇴했다.

소련 보병 장교들에게 특수 훈련을 받은 金日成은 1942년 8월 소련극동 88여단에 배속된다. 이 여단은 만주에서 패퇴한 중국인과 韓人 빨치산들로 편성된 부대다. 소련군 편제로 4개 대대인데 1개 대대 병력은 약 1백50명. 이들의 훈련 내용은 주로 偵察(정찰)과 침투작전이지 전투 기술이 아니었다. 金日成은 대위계급으로 한 대대를 지휘했다. 소련은 1945년 8월 8일, 일본이 항복하기 7일 전에 태평양 전쟁에 참가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바로프스크 부근에 있던 88극동여단의 韓人들이 전투를 해볼 시간이 없었다. 북한이 주장하는 金日成 원수가 일본을 물리쳤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소련측 기록에 의하면 金日成은 소련 사령관들에게 잘 보였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엄격한 軍紀(군기)로 소문나 있었다. 소련 장교들은 그가 부하들의 酒色(주색)을 엄격히 다스린 것을 기억하고 있다. 스탈린의 지령에 따라 金日成 소좌를 비롯한 88여단 66명의 다른 韓人 장교들은 38선 이북 소련 주둔군 사령부에 배속되어 현지 주민 관련 업무를 맡게 된다. 1945년 9월19일 金日成과 그의 동지들, 최현, 최용건, 김일, 오진우, 박성철, 전문섭, 한익수, 서철, 이을설 등은 이 자격으로 북한에 돌아온다. 이 사람들은 金日成의 개인 독재 시절 모두 북한의 고위직을 차지했으며 지금까지 살아 있는 사람들은 金正日 밑에서 아직도 높은 자리에 앉아있다.

하얼빈에서 제2일과 제3일은 李敏 여사의 긴 이야기를 듣는 데 활용했다. 李여사는 아주 자상한 안주인이었다. 얘기가 길어지면서 내 찻잔이 식을새라 뜨거운 차를 계속 부어준다. 가끔 벌떡 일어서서 항일 투쟁가를 불러준다. 자신이 이야기하는 장면을 더 실감나게 전해주려는 것이다. 여사 자신이 1995년에 東北抗日聯軍 歌曲集(가곡집)을 출간한 바 있다. 남편은 詩와 서예로 잘 알려져 있지만 여사는 노래 잘 부르기로 유명하다. 인터뷰하는 동안 내 귀에는 쇼팽의 에튀드 피아노 연습곡이 간간이 들린다. 아마 이 집 손녀딸이 2층에서 피아노 연습중인 것 같다. 과연 미술과 음악이 흘러 넘치는 집안 분위기다.

―항일 투쟁 시절 소련에 몇 번 갔습니까? 金日成을 만난 것은 언제입니까.

『두 번 蘇聯領(소련령)으로 건너갔었습니다. 첫번은 1939년 음력 5월인데 일본군과 전투에서 불리하게 되어 소련령으로 철수했던 것이죠. 40여 일간 있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두 번째는 장수천, 다른 이름으로 李兆麟 동지가 나를 파견시켜 주어 무선 전보 기술을 배우러 갔습니다. 抗日聯軍은 통신 연락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나를 포함한 여성 戰士(전사) 3명을 소련에 파견하여 무선 전보 기술을 배우게 한 것입니다. 교육은 1941년 여름, 하바로프스크 70여 km 지점 野營에서 받았습니다. 내가 金日成을 처음 만난 것은 1942년 7월 야영에서였어요. 그때 金日成은 소련 극동군 특별 88여단 대위였습니다』

―그때 金日成에 대한 인상은 어땠습니까.

『당시 金日成은 무척 젊어 보였지요. 30세 미만으로 보였는데 몸이 여위었어요. 특히 허리가 아주 가늘어 보였습니다. 멋쟁이 타입이었고 소탈하고 친절했습니다. 부하나 병사들에게 낯을 붉히는 일 없이 언제나 스스럼없이 부드러운 웃음으로 대했어요. 훌륭한 將領(장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金日成의 처 김정숙은 언제 처음 만났습니까? 金正日은 정말 소련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까.

『김정숙과 처음 만난 것은 1942년 가을입니다. 그때 남북 야영이 합하여 우리는 한 장막 안에서 자게 되었지요. 金正日이 태어날 때는 내가 아직 김정숙을 만나기 전입니다. 金正日의 출생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李敏 여사는 이 질문만은 내게 자세히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金正日이 백두산 密營(밀영)에서 태어났다는 북한의 공식 선전 내용에 異意(이의)를 달고 싶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혹시 정말 모를지도 모른다. 1995년 내가 외국 기자들과 함께 북한측 안내로 백두산에 올랐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한 영국기자가 金正日의 탄생지를 설명하는 북한 안내원에게 질문했다.

『1994년에 하바로프스크에 갔더니 거기 金正日의 출생지가 있었어요. 어떻게 두 장소에서 동시에 태어날 수 있습니까?』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나도 1985년 하바로프스크 갔을 때 金正日의 출생지를 본 일이 있어요』

북한 안내원은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

『러시아 인들은 거짓말쟁이예요!』

하얼빈에서 만난 십여 명 인사들에게 물어봐도 金正日의 백두산 탄생을 아무도 믿는 사람이 없었다.

―김정숙에 대한 인상과 에피소드를 좀 얘기해 주세요.

『김정숙은 상당히 예뻤습니다. 얼굴은 미인형인데 오랫동안 들에서 살아서 그런지 피부는 희지 않았어요. 눈동자가 특히 까맣고 속눈썹이 길어서 더욱 예뻤어요. 인품은 인물보다 더 훌륭했지요. 우리는 1942년부터 1945년 귀국할 때까지 죽 함께 지냈습니다. 아이가 달린 김정숙은 겨울이면 집에 들어가 지냈고 여름이면 장막에 나와서 생활했습니다. 키는 작은 편인데도 端雅(단아)한 몸매가 정력적이었으며 마음은 한없이 넓었습니다. 눈치가 빠르고 多才多能(다재다능)하여, 요리, 바느질, 춤, 연극, 노래 못하는 것이 없었어요. 나도 노래는 자신이 있었는데 노래도 나보다 훨씬 잘했습니다. 전사들과도 사이좋게 지내면서 잘 돌보아 주었어요. 金日成과 김정숙 부부의 금슬도 아주 좋았지요. 金日成이 舞劇(무극)을 쓰고 김정숙이 무용을 지도하고 직접 출연하기도 했어요』


―金正日의 어릴 때 인상을 듣고 싶습니다.

『金正日은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고 영리했어요. 어머니를 닮아 눈이 까맣고 피부는 검은 편인데 포동포동하여 아주 귀여웠지요. 유치원에서 일찍 돌아오면 봐줄 사람이 없어서 김정숙은 우리가 군사훈련 받는 곳으로 金正日을 데려오곤 했어요. 金正日은 木銃(목총)을 들고 자기도 병사들처럼 훈련하는 흉내를 내는 거예요.

1945년 광복을 맞아 우리는 9월에 동북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김정숙은 좀 뒤처져서 11월에 돌아온 것으로 기억해요. 그때 둘째 자제 분도 이미 그곳에서 태어났지요. 둘째와 金正日은 두세 살 차이로 기억합니다. 나는 남편 陳雷와 함께 작별 인사차 金日成 부부를 찾아갔습니다. 그들은 문 밖으로 나와 우리를 배웅했어요. 그때 金正日이 우리를 따라 가겠다고 어머니에게 떼를 쓰던 일이 기억납니다.

金正日은 늘 목총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崔賢(최현)의 딸 곱단이 등과 군사 놀음을 할 때면 늘 대장을 맡았습니다. 곱단이는 金正日보다 한 살 위였어요. 내가 나무 총으로 일본 놈을 죽일 수 있는가 물으면 金正日은 죽일 수 있다고 대답합니다. 내가 진짜 총이어야 한다고 말하면 아버지 총을 내놓으라고 떼를 썼어요. 그때 김정숙은 이렇게 가르쳤지요. 아버지 총은 안 된다, 재간이 있으면 나무 총을 가지고 敵의 진짜 총을 빼앗아야 진짜 장군이다. 김정숙의 金正日에 대한 훈육은 무섭게 엄했습니다. 그러나 매를 때리는 것은 본 적이 없어요』

―金正日을 다시 만난 것은 언제입니까?

『1992년 金日成 탄생 80주년 기념행사 때였지요. 金正日은 사람을 보내 특별히 우리 부부에게 예물을 보내왔어요. 그리고 金日成 주석 장례식 때도 만났습니다. 우리가 조선에 갈 때마다 각별하게 대접해 주었지요. 1983년 9월에는 金日成의 전용 열차를 보내어 청진에서부터 우리를 평양으로 모셔갔으며 개성 등 여러 지방을 돌아볼 때에도 金日成이 쓰던 방을 우리에게 내주었습니다』

―지난 9월16일 김정숙 여사 서거 50주년을 맞아 북한에서는 인민 무력성 주최로 김정숙 혁명사적에 관한 연구토론회를 가졌는데 김정숙의 업적이 과연 그렇게 위대합니까.

『위대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혁명에 참가했다고 누구나 다 선전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러나 김정숙은 화려한 항일투쟁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나라의 수령인 金日成을 모시고 항일투쟁을 했으니 연구토론회 정도야 못하겠습니까』

―김정숙의 사망후 金日成이 김성애와 재혼을 할 때 동북에서 혁명 활동을 한 老(노) 혁명가들이 반대했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처음 듣는 얘깁니다. 金正日은 친어머니가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썩 달가워하지는 않았겠지요. 인간의 본성 아닙니까. 글쎄, 다른 간부들이 반대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金日成의 업적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金日成은 조선 인민의 수령이 되기에는 손색이 없습니다. 항일 투쟁 시기 抗日聯軍 중에서 그는 군사에서, 정치에서 다른 조선인 장령들보다 단연 뛰어났습니다. 당시에 金日成을 국가의 수령으로 추대한 것은 올바르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金日成이 소련의 사회주의 건설 모델을 그대로 도입한 것은 잘한 일이 아닙니다. 중국은 이미 그 점을 깨우치고 일대 개혁을 단행했지만 조선은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외길을 고집하여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나는 金日成의 사망을 매우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내가 보기에 金日成은 개혁의 필요성을 막 느꼈는데 미처 그것을 실천에 옮겨보지 못하고 그만 서거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金日成은 조국통일을 위해 네 가지 방침을 제시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입니다. 실천 가능한 매우 과학적인 아이디어인데 애석하게도 실천을 못하고 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통일 문제뿐만 아니라, 북한 경제 문제도 그가 살아 있었더라면 지금 형편보다 훨씬 나았을 수 있습니다. 나라의 개혁·개방을 추진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중국은 개혁·개방한 지 20년이 되어 그 성과와 변화를 세계가 알고 있는데 조선은 수십 년 뒤떨어졌습니다』

―金正日의 영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영도 능력에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버지와 차이가 있는 게 아닌가. 金正日은 외국에 나가서 視野(시야)를 넓히고 세상의 변화를 살펴보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소련의 영향을 너무 깊이 받아서 온 몸이 움직일 수 없이 굳어져 고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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