秦나라 왕족인 瀛(영)氏 일족은 본래 황하 하류 지역을 무대로 활동하던 東夷의 한 갈래였다. 동이 계열이던 殷나라 시절 대대로 兵權을 장악한 은왕실의 친위세력이었던 그들은 은나라가 멸망하자 西戎 (서융)땅으로 달아나 오랑캐들과 雜居하게 되었다. 周 孝王 때 영씨 일족은 養馬(양마) 능력을 인정받아 다시 영씨성을 되찾고 秦이라는 작은 땅을 하사받았다.
「도전」에는 「개혁」으로 「응전」하다
일족의 생존 자체를 위협받던 고난의 시대는 일단 마감했지만, 이후 秦의 역사는 한 마디로 「挑戰(도전)과 應戰(응전)의 역사」였다.
우선 秦은 주나라의 서쪽을 지키는 藩屛(번병)으로 서융과 피나는 투쟁을 벌이며 성장해야 했다. 秦은 이러한 도전을 성공적으로 극복해 냄으로써 주왕실에 대해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입증해 보일 수 있었다. 특히 秦 襄公(양공·재위 BC 778∼766)은 犬戎(견융)의 침략을 막고, 鎬京(호경)에서 洛陽(낙양)으로 東遷(동천)하는 주나라 왕실을 호위한 공로를 인정받아, 岐豊(기풍) 以西지역을 하사받고 정식으로 제후로 봉해졌다.
비록 제후국으로 출발은 했지만, 秦은 周初 이래 수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中原의 제후국들로부터는 여전히 서쪽 오랑캐로 멸시받는 형편이었다. 사회제도는 부족연합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각종 文物도 중원 諸國들에 비하면 형편없이 낙후되어 있었다. 이 후진성을 극복하는 것이 신흥 제후국 秦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도전」에 대해 秦은 「개혁」이라는 카드로 「응전」했다. 이를 위해 秦의 역대 군주들은 유능한 외부 인재들을 기용하는 데 힘썼다. 穆公(목공·BC 660∼621) 시절의 百里奚(백리해)와 騫叔(건숙), 孝公(효공·BC 361∼338) 시절의 상앙, 惠公(혜공)· BC 400∼387) 시절의 張儀(장의), 莊襄王(장양왕·BC 250∼247) 시절의 呂不韋(여불위), 秦始皇(진시황·BC 247∼210) 시절의 李斯(이사) 등이 그 대표적인 例이다.
사실 외부 인재를 영입해 국정을 개혁하고, 부국강병을 추진하는 尙賢(상현) 정책은 春秋戰國 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秦의 경우에는 몇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이 있다.
우선 군주의 개혁 의지가 남달랐으며, 한 번 기용한 인재는 좀처럼 버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군주와 개혁 추진세력간에는 굳은 동지적 신뢰관계가 형성되었고,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있어도 일관되게 개혁이 추진될 수 있었다. 이는 吳나라의 伍子胥(오자서)나 조선 중종 때 趙光祖(조광조)가 한때 임금의 신뢰를 받아 정권을 잡고 개혁을 추진했으나, 결국 임금의 내침을 받고, 개혁도 좌절한 것과 비교된다.
또 하나 눈여겨 볼 것은 개혁주체세력이 숙청되거나 사망한 뒤에도 개혁의 성과는 그대로 유지되었다는 점이다. 효공이 서거한 후 상앙은 토착 기득권세력의 반격을 받아 처형되었지만, 그가 만들어 놓은 法家的·중앙집권적 통치시스템은 존속되었다. 또 장의의 死後에도 遠交近攻을 이념으로 하는 그의 連橫策(연횡책)은 秦의 기본적 외교정책으로 남았다. 개혁을 주도했던 權臣의 죽음과 함께 개혁의 성과들마저 물거품처럼 사라졌던 同시대의 다른 나라들이나, 장관이 바뀔 때마다 제도가 바뀌는 오늘날의 우리나라와는 무척이나 대조적이다.
춘추전국 시대의 列國 가운데 가장 낙후되어 있던 秦은 이렇듯 안팎의 「도전」이 있을 때마다, 과감하고 지속적인 「자기 개혁」을 통해 적절한 「응전」을 했고, 그 과정에서 축적된 저력을 바탕으로 결국 중국사상 최초의 통일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다. 반면에 秦이 천하를 통일한 후 불과 15년만에 멸망하고 만 것은 그간의 성취에 자만한 나머지 통일된 거대제국의 등장이라는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했기 때문이었다.
새해를 맞으며
다시 한 해가 밝아온다. 2004년은 우리에게 많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는 한 해가 될 것이다. 급변하는 국제정세,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국내 정치, 안팎으로 난제들이 산적한 경제 등 갖가지 어려움 속에서 국회의원 총선거를 치러야 하는 이 나라나, 이태백-삼팔선-사오정-오륙도의 시대를 살아야 하는 국민들이나 어렵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2004년은 이 나라나 국민들 모두 끊임없는 자기 개혁을 통해 닥쳐오는 「도전」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는 한 해가 되기를, 그리고 이미 2003년 한 해 동안 도전을 잘 극복했던 이들은 거기에 자만하지 말고 그 성취를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여 더 큰 성취를 향해 전진하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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