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대만 출신의 재미중국사학자 황인우(레이 황)의 '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하다'에서 발췌한 것이다 (배진영).
북방 2000여 리에 걸쳐 있던 漢나라의 국가방위선과 15인치 等雨線은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중국의 북방에 만들어진 만리장성이 국가방위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만리장성과 연평균 강우량이 15인치, 즉 380밀리미터인 等雨線이 거의 일치한다). 이 線의 서북쪽은 1년간의 강우량이 15인치가 못 되었기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없어서 유목민족만이 출입하는 곳이었는데, 유목민족이 가하는 위협도 중국의 통일을 강압하는 한 요소였다. 漢武帝는 위청과 곽거병을 통해 이 사막지대를 뚫고 들어간다는 뜻의 '渡漠'(도막)을 성사시켰다. 이는 중국군사상 빼놓을 수 없는 쾌거였다. 그러나 그의 소망대로 흉노를 소멸시키지는 못했다.
이 15인치 等雨線을 사이에 둔 양측의 싸움은 힌무제 이후로도 약 2000년 간이나 계속되었다. 淸왕조의 강희황제 때에 이르러서야 신식 화총으로 무장한 중국군이 갈단(喝爾丹)을 격파하여 유목민족의 기병이 우세하다는 통설을 뒤엎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역사가 사람의 힘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진시황과 한무제를 2200여 년이 흐른 지금 평가하면서, 당시의 기후와 지리적인 요소들을 소홀히 볼 수 없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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