建國 대통령과 建設 대통령을 추억하기 위하여

동상, 거리-공원-空港 이름, 화폐 도안 등 길은 많다.
"변두리의 초라한 기념관은 朴대통령에 대한 모독이다!"


"상암동을 포기하고, 광화문, 용산, 남산, 육영재단 소유 어린이회관 부지 중 한 곳에 세워야 한다"는 異見이 일어나고 있다. 恩人과 위인을 구박하는 국가와 국민?
趙甲濟

최근 週刊朝鮮 趙成寬 기자는 朴正熙 대통령 기념관 건립 현장을 답사, 이런 글을 올렸다.

<서울 상암동 하늘공원 열병합발전소 앞 택지개발지구. 인적이 드문 외진 이곳에 디지털미디어시티(DMC) 입구와 월드컵경기장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그 왼쪽에 높이 3m도 훨씬 더 되어 보이는 철제 가림막이 모서리 양옆으로 길게 세워져 있다. 한눈에 보아도 무슨 공사현장 같았지만 어디에도 이곳에 대한 안내판은 보이지 않았다. 철제 가림막은 군데군데 녹이 슬고 휘어져 있어 볼썽사납다. 가림막 틈 사이로 보이는 것은 야트막한 산자락의 빈터. 터파기 공사를 하다 중도에 그만둔 흔적이 어지럽게 내버려져 있다.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경작 금지’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었지만 빈터 이곳저곳에는 옥수수, 고추 등이 자라고 있었다. 마침 60대로 보이는 남자가 고추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었다.
“여기가 박정희 기념관 부지 맞나요?”
이 남자가 대답했다.
“예, 맞는데요.”
이곳을 처음 와본 사람은 그 장소에 놀랄 것이다. 위치도 후미진 데다 공간도 협소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이곳이 ‘박정희기념관’ 부지라는 사실을 알면 기겁을 할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한 공식명칭은 ‘박정희기념·도서관’>

1999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제안으로 시작된 朴正熙 대통령 기념관 건립사업은 10년간 수모를 당하였다. 박정희 기념관 건립 사업은 김대중씨가 大選공약으로 내건 뒤 1999년 정부 지원을 약속해 추진되었다. 총사업비 709억원 가운데 기부금 500억원을 제외한 200억원은 국가 예산으로 지원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사업추진이 부진하거나 기념회가 기부금을 조달하지 못하면 보조금 지원 결정을 전부 또는 일부 취소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붙었고, 이후 4년 동안 기념사업회측의 모금액이 100억원 수준에 그치자 노무현 정권의 행자부는 2005년 3월 보조금 지원결정을 취소했다. 이에 기념사업회는 정부를 상대로 '국고보조금취소처분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2007년 서울고법은 행정법원(1심) 판결에 이어 "기념관 건립 사업의 진행 경과가 정치적 상황 변화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여 기부금 모집이 목표액에 미달했다는 단순히 형식적인 기준으로 보조금 지원 결정을 판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원고(기념사업회) 승소 판결했다.
大選이 끝난 뒤인 지난 해 1월 행자부 관계자는 "박정희 기념관 사업은 정부가 아닌 민간사업인 만큼 취지에 맞게 민간의 자발적 모금을 통해 추진돼야 하며 따라서 정부의 지원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면서 "민간 기부금보다 정부의 지원금이 더 많게 되면 사업 취지에도 어긋난다"고 말하더니 대법원에 상고했다가 올해 패소판결을 받았다. 서울 상암동 월드 컵 경기장 부근 부지에서 기초공사를 하던 중 중단된 상태에서 이제는 공사 再開가 가능해졌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회장 金正濂 전 대통령 비서실장)는 대법원의 확정 판결에 의하여 정부지원금 200억원을 쓸 수 있게 되었으나 이번엔 장소에 대한 불만을 가진 이들의 異見이 많이 나온다.

예컨대 이런 주장들이다.
“변두리에 초라한 기념관을 짓는 것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위대한 지도자의 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서울 도심부에 기념비적 건물을 지어야 한다.”
“이렇게 굴욕적으로 지을 이유가 없다. 현 기념관 건립 계획을 포기하고, 국민과 국가가 좋은 장소를 제시하면서 지어달라고 할 때까지 기다리자.”
“적어도 광화문 일대, 용산 일대, 아니면 연고가 있는 어린이 대공원 지역에 지어야 한다.”

김대중씨는 선거용으로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약속했으나 방해하고 나선 것도 김대중 정권이었다. 김대중 정권은 2000년12월과 이듬해 12월에 도합 200억원의 국가예산을 기념사업회에 지불했으나 예산사용 승인을 해주지 않았다. '사업추진이 부진하거나 기념사업회가 기부금을 조달하지 못하면 보조금 지원 결정을 전부 또는 일부 취소할 수 있다'는 조건에 근거해서이다.
정부측은 기념사업회가 100억원을 모으면 100억원의 사용승인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기념사업회는 100억원을 모금했으나 노무현 정부는 100억원 사용승인의 약속을 지키지 않더니 아예 국고보조금을 취소하는 결정을 했다. 기념관(부지 2805명, 연건평 1591평) 건설을 위한 정지작업을 한 상태에서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아 2002년 6월 이후 6년째 공사가 중단된 상태이다.

김대중 정부는 백범 金九 기념관을 건립할 때 당초엔 150억원 예산 중 100억원을 국가예산으로 지원해주기로 했으나 모금이 제대로 되지 않자 총180억으로 불어난 예산중 160억원을 지원했다. 박정희 기념관에 대한 구박과 김구 기념관에 대한 優待가 대조적이다. 백범 기념관은 위치도 서울 한복판(효창공원)이고, 규모도 박정희 기념관보다 훨씬 크다. 부지는 두 배(5552평)이고, 연건평은 2292평으로 1.5배이다.

李明博 대통령은 지난 8월 前例를 무시하고 ‘김대중 國葬’을 결정, 反헌법적 6.15 선언의 책임자를 특별 대우하였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이 확산되고 장례식에도 국민들이 냉담하게 반응하자 李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들의 업적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면서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을 지원할 것처럼 말하였으나 그 뒤 실천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서울시는 대한민국의 상징공간인 광화문에 450억원을 들여 공원을 조성하면서 조선의 인물인 세종대왕 동상을 또 세우고,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치졸한 놀이터를 만들었다. 이 공간은 건국 대통령과 근대화 대통령의 동상이 세워져야 할 자리이다.
대통령 기념관이 설 자리는 그 대통령과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 상암동은 한강에 가깝다는 것 말고는 연관성도 상징성도 없다. 가장 중요한 교통편도 좋지 않다.
朴 대통령의 기념관이 서야 할 곳은 生家가 보존되고 있는 구미 이외엔 서울의 한복판이어야 하고 역사적 位相을 고려할 때 규모도 金九 기념관보다는 커야 할 것이다. 경복궁~남대문 軸線의 ‘대한민국 심장부’에 세우는 게 最善이고 次善으로선 이전하는 용산 미군기지 부지나 남산, 또는 광진구 능동에 있는 육영(育英)재단 소유의 어린이 회관 부지를 생각할 수 있다. 育英재단은 陸英修 여사가 설립한 공익재단이고 관할 부지는 수만 평에 달하여 서울 도심지에서 찾기 어려운 綠地 공간이기도 하다. 육영재단은 故박정희 대통령의 유산처럼 간주되어 그 자녀분들이 관리하여 왔다. 이곳에 ‘박정희 기념관’을 세우면 연고성도 있고 예산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며 특히 어린이 회관과 연계하여 운영하면 기념관의 진정한 목적인 後世교육도 효율적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그럴 듯하다.

박정희 기념사업회 인사들은 박 대통령 시절에 重用된 분들이라 “우리 生前에 기념관 건물을 꼭 지어서 報恩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불만이 있지만 상암동의 기존부지에 짓고자 한다.
사실은 오늘의 대한민국 자체가 朴 대통령의 기념관이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이승만이, 눈에 보이는 것은 박정희가 만들었다”는 표현을 쓴다. 따라서 서둘러 무리하게 박정희 기념관을 지을 이유는 없다. 기념관은 여러 번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단 한 번 제대로 된 역사적 건물을 지어야 한다.
워싱턴엔 미국의 4대 대통령이라고 할 만한 워싱턴, 링컨, 제퍼슨,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기념물이 있다. 이 기념물이 도시 공간과 도시 기능의 핵심이다. 이승만, 박정희 기념관은 대한민국의 거대한 國格에 어울리는 근사한 건물이어야 하고 도시기능과 접속되어 生動하는 건물이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조건은 기념관의 교육기능을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야 한다는 점이다.

일단 상암동은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조건이 성숙될 때까지 기다리는 사이 인터넷기념관을 제대로 만들어 朴正熙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자료를 제시하고, 이 偉人을 모르는 젊은 세대에겐 재미있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좋겠다. 우선 박정희 시절의 公文書를 디지털화하여 공개하는 것이 급하다.

보스턴에 세워진 케네디 도서관의 경우 모금으로 조성된 2000만 달러를 들여 지은 것인데 건물 자체가 예술적으로 높게 평가 받는다. 유족들이 당시엔 거의 無名이던 I.M. 페이를 설계자로 선택하였다. 바닷가에 지은 이 건물은 유리벽 홀로 유명한데, 모금에 10여 년이 걸렸고, 건축기간은 2년이었다. 1979년의 준공식엔 카터 당시 대통령이 참석하였다. 케네디 대통령 연구자들은 이 도서관을 애용한다. 40만 장의 사진, 2000km에 달하는 필름, 그리고 1만1000릴의 음성자료를 보존하고 있다.

국가와 국민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감을 느끼고 유족들과 기념사업회측에 좋은 장소와 예산을 내어놓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인터넷기념관을 잘 만들어 실질적인 기념사업을 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승만, 박정희는 김유신, 태종무열왕, 세종대왕, 이순신과 同級으로 평가될 세기적 위인이다. 국민들이 두 사람의 위대성을 自覺할 때까지 기다리기 싫다면 가장 쉬운 육영재단 부지에 짓는 방법이 있다. 변두리의 초라한 기념관은 이 거대한 인물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다.
그 국민들이 어떤 수준인가 하는 것은 그 국민들이 어떤 인물을 기리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반역자와 위선자를 역사의 건설자보다 더 기리는 나라는 병든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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建國 대통령과 建設 대통령


李承晩의 自由民主 건국은 朴正熙의 富國强兵의 건설에 의하여 내용을 갖게 되었고 朴正熙의 성공은 李承晩의 희생을 딛고 서 있다.
趙甲濟

1. 李承晩, 朴正熙는 토종 한국인이었다. 한국인의 정서, 꿈, 생리를 가슴에 품고 세계를 본 사람이었다. 가슴은 서민이고 머리는 엘리트였다.

2. 그러나 두 사람은 전통적인 의미의 한국인이 아니었다. 國産品이 아니란 이야기이다. 외국의 先進 문물을 경험하고 이를 주체적으로 받아들인 개방적 自主정신의 소유자였다. 가슴엔 한국이, 머리엔 세계가 들어 있었다. 무초 미국 대사의 李承晩 평: <그는 복잡한 세계정세를 가장 높은 수준에서 정확하게 간파한 사람이다>

3. 두 사람은 20세기를 대표하는 국가 지도자이다. 다수 구성원들에게 자유와 번영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들의 노선이 지금도 계승되고 있다는 점을 기준으로 20세기의 대표적 지도자를 뽑는다면 이렇게 될 것이다. 미국의 레이건, 영국의 대처, 일본의 요시다, 중국의 鄧小平, 프랑스의 드골, 독일의 아데나워, 터키의 케말 파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만델라, 인도의 네루, 한국의 李承晩과 朴正熙. 두 사람은 삼국통일의 세 元勳(김유신, 김춘추, 문무왕)과 함께 韓民族 사상 가장 ‘큰 인물’이다.

4. 눈에 보이는 것은 거의가 朴正熙,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거의가 李承晩의 작품이다.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에 입각한 건국, 대통령 중심제, 農地개혁에 의한 계급구조 타파, 교육개혁에 의한 人材 양성, 국군 건설, 평화선 선포, 韓美동맹에 의한 안보의 생명줄 확보 등은 고속도로나 工團 건설보다 설명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성은 이해하기도, 설명하기도 어려우므로 사람들은 李承晩의 평가에 인색하다.

5. 李承晩은 “자유를 존중하는 것을 나라를 세우는 근본으로 삼은” 분이고, 朴正熙는 그 자유를 지키고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기른 분이다.

6. 두 사람은 자주적 실용주의자였다. 두 사람은 미국식 민주주의를 우상숭배하지 않았다.

7. 李承晩은 언론인, 교사, 혁명가, 전략가였고, 朴正熙는 교사, 군인, 혁명가, 행정가였다.

8. 李承晩의 韓美동맹과 朴正熙의 韓日우호 관계는 한국의 생존과 번영의 울타리를 만들었다. 두 사람의 자존심과 실력과 인격이 강대국과 상대함에 있어서 한국의 國益을 증진시켰다. 李承晩은 미국을, 朴正熙는 일본을 잘 알고 잘 이용했다.

9. 李承晩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멀리 본 분이고, 朴正熙는 국가 시스템 건설과 운영의 鬼才였다.

10. 李承晩이 기독교인이 아니었다면, 朴正熙가 군인이 아니었다면 한국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11. 두 사람은 管仲-鄧小平-李光耀로 대표되는 동양적 실용주의 정치가였다.

12. 두 사람은 1급 교양인이었으나 漢字에 대한 反感이 한글專用 찬성으로 기울어 오늘처럼 韓國語가 반신불수가 되는 데 일정한 책임이 있다.

13. 한국은 두 위대한 대통령과 두 부지런한 대통령에 의하여 45년간(60년중) 지도되었던 행운의 나라였다. 李承晩의 自由民主 건국은 朴正熙의 富國强兵의 건설에 의하여 내용을 갖게 되었고 朴正熙의 성공은 李承晩의 희생을 딛고 서 있다.

14. 朴正熙 대통령은 李承晩 장례식에서 ‘조국 憲政사상 최후의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어린 羊”의 존재’라면서 ‘이 나라의 護國神이 되셔서 민족의 多難한 앞길을 열어주시는 힘이 되어주실 것’을 희망했다.


[ 2008-11-04, 1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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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建國대통령 동상을 광화문 광장에 세우자"는 운동을 제안함!


趙甲濟

李承晩 초대 대통령은 그 功績에서 민족사의 10대 인물, 20세기 세계 지도자중 10대 인물에 들어가야 할 영웅이다. 20세기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성공작으로 뽑히고 있는 대한민국의 성공 스토리, 그 주인공이 李承晩 朴正熙이다. 번영하고 자유롭고 강력한 대한민국이 바로 두 분의 성적표이다.

그럼에도 李承晩은 국내외로 過小평가받고 있다. 친북세력, 위선적 지식인뿐 아니라 그의 路線을 계승한 後代 정권에 의하여서도 그는 無視되었다. 그의 自主노선에 진저리를 쳤던 미국과 일본으로부터도 외면당하고 있다.

그가 남긴 것은 주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朴正熙가 남긴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많아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다.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체제, 韓美동맹, 농지개혁, 교육개혁, 國軍건설은 李承晩의 5대 업적인데, 너무 크고 보이지 않으므로 선전하기도, 설명하기도 어렵다.

그리하여 李承晩은 안목이 높은 사람, 생각이 깊은 사람, 역사를 아는 소수의 義人들에 의하여 높게 평가되고 있을 뿐이다. 이런 李承晩을 기리는 일은 대한민국을 기리는 일이고, 기적의 현대사를 만든 선배세대의 勞苦를 함께 기리는 일이며, 미래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세대에게 애국심과 자유통일 의지를 심는 일이다. 요컨대 대한민국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하여는 建國 대통령을 제대로 평가하고 그분을 구체적으로 모셔야 하는 것이다.

建國 대통령을 기리는 일에 앞장 서야 할 사람은 李明博 대통령이다. 경영자 출신이 선거를 통하여 대통령 자리에 앉게 된 것은 李承晩이 대한민국을 자유의 기초 위에 세운 덕분이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正統性을 이어가고 正體性을 지켜가는 사람이다. 그런 일이 아무리 인기가 없어도 그는 해야 한다. 헌법이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李明博 대통령이 임기중 해야 할 일이 있다. 李承晩 대통령의 동상과 기념관을 세우고, 화폐 도안에 建國 대통령의 얼굴을 넣는 일이다.

1. 광화문 광장에 建國 대통령 동상을 세워야 한다. 광화문 광장은 대한민국의 심장부에 있는 국가적 상징물이다. 이순신, 세종대왕 동상과 함께 建國 대통령 동상이 서 있어야 광장의 상징성이 살아난다. 지금처럼 조선조 인물만 기리면 生動하는 대한민국은 실종된다. 거창하게 전진하는 대한민국은 있는데, 그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기념물은 서울에 없다. 建國 대통령은 그 나라의 한복판에 서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建國의 정당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李承晩 동상을 남산이나 용산에 세워선 안 된다. 대한민국의 심장부에 서야 한다. 동상이 설 장소는 광화문 광장뿐이다. 공간은 충분하다.

2.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초상을 國葬으로 치른 나라, 建國을 반대하였던 위대한 독립투사 金九 기념관을 거대하게 세운 나라, 朴正熙 기념관도 만들기로 한 나라가 建國 대통령 기념관과 동상을 세우지 않는다면 그런 나라는 제 정신이 아닌 존재가 된다. 아버지 제사를 지내면서 할아버지 제사를 생략하는 것과 같다. 기독교인이 사도 바울만 숭배하고 예수를 외면한다면 천당에 가겠는가?

3. 李明博 대통령은 김대중 國葬 직후 연설에서 역대 대통령의 功과 過를 공정하게 평가하되 자신은 功을 중심으로 하여 기려가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李承晩 건국 대통령부터 제대로 모셔야 한다. 약속을 실천해야 한다.

4. 화폐도안, 동상, 기념관 등 국가상징물에서 민족사의 最高 성공작인 대한민국의 주인공들을 밀어내고 조선조 인물만 기리는 것은 復古的 분위기를 퍼뜨릴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쓰는 화폐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조선조 사람이다. 李舜臣, 세종대왕, 이율곡, 이퇴계, 신사임당인데 신사임당과 이율곡은 母子이다. 이런 조선조 편중은 대한민국 薄待(박대)의 다른 표현이다. 일본은 화폐에 明治維新 이후 인물만 넣는다. 공화국 체제의 화폐는 거의가 그 공화국을 만든 인물들을 담는다. 대한민국 화폐에 대한민국의 인물들을 넣지 않는다는 것은 스스로 “대한민국은 부끄러운 나라이다”는 고백을 하는 셈이다. 신사임당과 이율곡 중 한 사람을 빼고 李承晩을 넣어야 한다.

5. 우선 쉽고 효과적인 것부터 시작하자. 建國 대통령 동상을 광화문 광장에 세우자! 국민운동부터 시작하고 대통령과 서울시장을 설득하자! 대한민국의 심장부에 建國 대통령의 동상이 올라가는 날 대한민국은 더 이상 정통성 是非에 말리지 않고 편안해질 것이다. 부모들이 아이들 손을 잡고 李承晩 동상을 돌면서 “이 분이 있었기에 너희들이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단다”라고 설명하는 날부터 자유통일의 목표가 명료하게 드러날 것이다. “광화문 광장에 건국 대통령 동상을 세우자”는 운동을 提案한다! 李明博 대통령의 결단을 기대한다.



[ 2009-09-20, 1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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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에는 建國 대통령 동상을!


오늘의 서울은 대한민국의 서울이지, 조선조의 漢城이 아니다.
趙甲濟

세종로 네거리 한복판에 만든 광화문 광장은 역사성을 가져야 한다. 대한민국의 심장부이므로 대한민국 現代史(현대사)의 역사성을 가져야 한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서울이지, 조선조의 漢城(한성)이 아니다.

1. 李舜臣(이순신) 동상 뒤에 짓고 있는 세종대왕 동상 대신에 건국 대통령 李承晩(이승만) 동상을 세우는 게 맞다. 근대화 혁명가 朴正熙(박정희) 동상도 같이 세우면 좋은데 우선은 建國(건국) 대통령이다. 두 분이 오늘의 서울, 오늘의 광화문을 만든 분이다.
2. 대한민국의 기적적 발전은 세계의 칭송 대상이다. 그런데 나라 안에선 그 위대한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이 보이지 않는다. 李(이), 朴(박) 두 대통령이 주인공인데, 대한민국은 두 분에 대한 고마움을 모른다. 있던 동상도 부수고, 화폐에도 올리지 않는다.

주인공 없는 드라마는 재미가 없다. 후세들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외국인들은 한국에 와서 두 분의 자취를 찾고 싶은데 우리는 업적을 지우려 한다. 오바마 대통령도 한국의 홍보 대사처럼 우리의 성공을 선전해준다. 대한민국 성공의 비결은 자유민주 체제, 韓美(한미)동맹, 위대한 지도자, 근면 성실한 국민들이었다. 이 성공조건을 조합하고 동원하여 힘으로 만든 분이 李(이), 朴(박) 대통령이다. 세계에 내어놓아 모자람이 없는 大(대)인물이다.

2. 광화문 광장에 李舜臣(이순신)과 세종대왕 동상만 있으면 외국인들은 대한민국이 朝鮮朝의 연장인 것처럼 착각할 것이다. 더구나 덕수궁 안에 세종대왕 동상이 있다. 광화문 광장에 또 만들 필요는 없다. 5만원 권엔 신사임당, 1만원 권엔 세종대왕, 1000원 권엔 이퇴계. 한국의 화폐가 아니라 조선조의 화폐란 말인가? 이승만, 박정희가 신사임당, 세종대왕보다 못하단 말인가?

3. 어떤 나라의 국민 수준을 보려면 그 국민들이 어떤 인물들을 기리느냐를 알면 된다고 한다. 이승만, 박정희를 독재자, 김정일을 위원장이라고 부르는 인간들이 많다. 20세기의 위대한 지도자 10명 안에 들어가고도 남을 李, 朴 대통령을 죽이고 깽판꾼이나 반역자를 더 기리는 국민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광화문 광장에 두 분 동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 일은 국가가 해야 한다. 두 분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대한민국의 성공에 의하여 입증되었다. 객관적으로, 과학적으로, 국제적으로, 역사적으로. 대한민국 61년의 반을 통치한 두 偉人(위인)에게 동상자리 하나 내어줄 수 없는 나라라면 그 背恩忘德(배은망덕)의 죄 값을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다.


[ 2009-08-11, 10: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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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공항을 '박정희 공항'으로!


조갑제

워싱턴엔 레이건 공항, 뉴욕엔 케네디 공항, 파리엔 드골 공항이 있다. 서울에는 朴正熙 공항과 李承晩 광장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광주에 김대중 컨벤션 센터가 생겼다니. 김포공항 이름을 박정희 공항으로 바꾸는 안을 놓고 토론을 벌였으면 좋겠다. 살아 있는 사람의 이름을 딴 건물이 생겼으니 죽어서 국민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가 된 분의 이름을 딴 시설이 생겨도 좋지 않을까. 일류국가는 인물을 기리는 나라이다. 국민들의 수준은 어떤 인물을 기리는가에 의해서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승만 박정희는 20세기 세계사의 일류인물이 아니었던가. 일류인물을 죽이고 3류인물을 기리는 국민들은 후진국에서 살아야 마땅하다. 그런 국민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일류국가를 인수받아 3류로 만들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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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 도안에서 신사임당과 이율곡 母子중 한 사람은 빼야!

그 자리에 李承晩 건국 대통령을 넣어야 우리가 쓰는 돈이 조선조 것이 아니란 증표가 될 것이다.
趙甲濟

지구상의 200개가 넘는 공화국 중에서 화폐도안에 그 공화국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을 한 사람도 넣지 않는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한국의 화폐 도안엔 다섯 명의 얼굴이 들어가 있다. 世宗대왕, 신사임당, 이퇴계, 이율곡, 李舜臣이다. 모두 조선조 인물들이다.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의 이념 위에 세운 李承晩, 富國强兵의 길을 연 朴正熙, 한국 자본주의의 개척자 李秉喆과 鄭周永 같은 大인물들이 들어갈 틈이 없단 말인가?

외국인들은 화폐만 보고는 이 나라가 조선조의 연장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더구나 대한민국의 중심광장엔 조선조 사람의 동상 두 개만 서 있다). 혹은 국민들이 祖國을 수치스럽게 생각한다고 오해할지 모른다. 다섯 種의 화폐에서 母子(모자)가 다 들어 있는 것은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2000년 韓民族의 역사속에서 신사임당과 이율곡이 그처럼 압도적인 位相인가? 태종무열왕, 김유신, 문무왕, 왕건, 김방경, 이성계, 원효 같은 사람은 그 母子보다 못한 인물인가?

우선 이율곡과 신사임당 중 한 사람을 빼고 그 자리에 李承晩 건국 대통령의 얼굴을 넣는 게 맞다. 그 정도라도 성의를 보여야 "이 돈은 대한민국 화폐이지 조선조의 화폐가 아닙니다"라는 證標(증표)가 될 것이 아닌가?

조선조의 세계적 위상은 끝에서 헤아리는 게 빨랐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세계적 位相은 경제력과 군사력 및 과학 기술력에선 10위권, 삶의 질에선 약200개 국가중 26위권이다. 세계의 우등생이다. 그런 대한민국을 "태어나선 안될 정권이었다"고 저주하고 自虐하는 인간들이 밀실에 모여 "화폐 도안에서 대한민국 사람을 모조리 빼자"고 결의한 적이 없다면, 우선 母子 중 한 사람을 빼고 오늘의 번영과 자유를 가능하게 하였던 세기적 지도자인 李承晩 얼굴을 화폐 도안으로 넣어야 한다.

偉人과 恩人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번영과 자유는 일시적일 것이다.

참고로 터키 공화국의 7種 화폐는 앞면이 모두 建國의 아버지인 케말 파샤의 얼굴이고, 뒷 면엔 공화국 사람이 6명, 오스만 터키 시절 사람이 1명이다. 이스라엘은 7種의 화폐중 6種에 공화국 사람(골다 메이어, 레비 에슈콜 등)이 들어 있고 한 種에 중세 시절 유태인 학자의 얼굴이 있다. 대만 화폐에는 孫文과 蔣介石이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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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터키의 화폐인물

지금까지 터키의 화폐 속에는 터키 공화국 설립자이자 國父(국부)라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Kemal Atatürk)만이 화폐 속에 등장하였는데, 2009년 화폐를 개혁하면서 화폐 뒷면에 터키를 대표하는 시인, 음악가, 소설가, 건축가, 수학자가 모델이 되었다.

동전의 앞면에는 케말의 초상이 뒷면에는 이스탄불의 상징 보스포러스 대교, BC 2000경 앙카라를 중심으로 발달했던 히타이트 문명의 전통 문양, 터키의 국화인 야생 튤립이 각각 새겨져 있다. 화폐단위는 리라(lyra)이고, 화폐의 종류는 1, 5, 10, 20, 50, 100리라이다.

1) 모든 화폐의 앞면: 케말 아타튀르크

케말 아타튀르크(Kemal Atatürk, 1881.3.12~1938.11.10)는 터키의 개혁가이자 초대 대통령이다. 세브르조약에 대한 민족독립전쟁을 일으켜 그리스 군을 격퇴하였으며 정치개혁으로 술탄제도를 폐지하고 연합국과 로잔조약을 체결하였다. 공화제를 선포하고 대통령이 되었으며 정당정치를 확립하였다.

2) 5리라: 아이든 사이을르

아이든 사이을르(Aydin Sayili, 1913~1993)는 과학 史學者(사학자)이다. 그의 경력은 케말을 만나면서 얻게 되었다. 그는 정부의 학자금을 통해 하버드를 졸업했다.

3) 10리라: 자힛 아르프(Cahit Arf)

자힛 아르프(Cahit Arf, 1910.10.11~1997.12.26)는 터키의 수학자이다. 터키의 가장 중요한 수학자 중 하나라는 자힛 아르프는 자신의 이름을 딴 여러 학설로 세계에 알려져 있다. 그의 ‘아르프 상수’에서 얻어진 수식 일부가 지폐 도안에 사용되었다.

4) 20리라: 미마르 케말렛딘

미마르 케말렛딘(Mimar Kemaleddin, 1870-1927)은 터키의 건축가이다. 그는 건축 작품에 서명을 남겨 터키 건축 트렌드의 선구자가 되었다.

5) 50리라: 파트마 알리예

파트마 알리예(Fatma Aliye, 1862.10.9~1936.7.13)는 터키의 소설가이고 칼럼리스트, 수필가, 여성 운동가, 그리고 인권주의자였다. 그녀는 터키 문학과 이슬람세계 최초의 여성 작가이다.

6) 100리라: 부후리자데 무스타파 에펜디

부후리자데 무스타파 에펜디(buhurizade Mustafa Efendi, 1640~1711)는 클래식 터키 음악의 설립자이다.

7) 200리라: 유누스 엠레

유누스 엠레(Yunus Emre, ?~1320)은 아시아 오스만 투르크의 민중 吟遊詩人(음유시인)이다. 투르키스탄에서 출생했고, 신비주의 敎團(교단)에 들어가서 수행하였고, 후에 자기의 수도원을 세웠다. 신을 찬미한 신비주의적 시가 많다. 처음으로 소아시아의 투르크어로 詩作(시작)을 하였고, 그 시는 오늘날에도 터키인 사이에 널리 애송되고 있다.



2. 이스라엘의 화폐 인물

이스라엘은 구약성서의 쇄켈(Sheqel)이란 화폐단위를 그대로 도입하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단위를 사용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은 1, 5, 10, 20, 50, 100, 200쇄켈의 화폐단위가 있다.

1) 1쇄켈: 마이모니데스

마이모니데스(Moses Maimonides, 1135.3.30~1204.12.13)는 유대계의 철학자·신학자·의학자·천문학자이다. 와히드 왕조의 유대교의 박해 때문에 각지로 방랑하다가 의업에 종사하였다. 이슬람교단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유대신학을 조정하고자 한 ‘방황하는 자들을 위한 안내서’가 유명하다.

2) 5쇄켈: 레비 에슈콜

레비 에슈콜 (Levi Eshkol, 1895~1969)은 이스라엘의 총리(1963~1969)이다. 그는 시온주의 노동당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히스타드루트(노동 총연합)의 창립자가 되었다. 1948년 이스라엘이 정식으로 독립국이 되자 그는 재무장관직(1952~1963)을 포함한 정부의 여러 요직을 섭렵했다.

3) 10쇄켈: 골다 메이어

골다 메이어(Golda Meir, 1898.5.3~1978.12.8)는 이스라엘의 여성정치가로 유대 노동 총연합 여성노동위원 간사, 초대 소련 주재 공사, 노동부 장관, 외무장관 등을 거쳐 총리를 지냈다.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 영국 시정당국과의 협상과정에서 시온주의의 대의를 강력히 대변했다. 1946년 ‘유대인기구’ 정치국장인 모셰 샤레트와 함께 시온주의자들이 대거 체포, 구금되자 임시 정치국장으로서 동료들의 석방과 영국의 이민규정을 위반한 채 팔레스타인으로 건너온 유대인 난민들을 위해 일했다.

4) 20쇄켈: 모쉐 샤렛

모쉐 샤렛(Moshe Sharett,1894~1965)은 이스라엘의 정치가이자 총리였다. 그는 영국정부와 시오니즘 운동 사이에서 이스라엘의 건국을 이끌었다. 그는 외무장관을 하면서 아랍과 이스라엘 전쟁의 적대관계를 끝내고 1949년 정전 협정을 체결하였다.

5) 50쇄켈: 사무엘 요셉 아그논

사무엘 요셉 아그논(Samuel Yosef Agnon, 1888.7.17~1970.2.17)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헤브라이어 문학자로 독일에서 강의하였고 귀국하여 문필활동에 전념하였다. 대표작으로 ‘신부의 지참금’, ‘밤의 여행자’ 등이 있으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6) 100쇄켈: 이츠하크 벤 즈비

이츠하크 벤 즈비(Yitzhak Ben-Zvi, 1884.11.24~1963.4.23)는 역사학자였고, 시오니즘 운동(고대 유대인들이 고국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 유대민족주의 운동)의 리더였다. 이스라엘에서 총리로서 두 번째로 오랫동안 집권하였다.

7) 200 쇄켈: 잘만 샤자르

잘만 샤자르(Zalman Shazar, 1889.11.24~1974.10.5)는 이스라엘의 정치가이고, 작가 그리고 시인이었다. 그는 1963년부터 1973년까지 이스라엘의 3번째 총리로 봉사했다.


[ 2009-12-15, 2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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