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실미도」 폭발적 인기의 비밀
趙南俊 월간조선 부국장
영화 「실미도」가 요즘 큰 인기다.
강우석 감독 작품인 「실미도」는 개봉 7일 만에 200만명의 관객을 동원, 한국 영화사상 최단기간 200만 관객 동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개봉 첫 주만에 전국에서 159만명의 관객을 동원, 한국 영화사상 개봉 첫 주 최대 관객 신기록을 세운 지 이틀 만의 일이다. 일부 예매사이트에서 예매율이 계속 상승중이며, 개봉 2주차인 금주에 신정 휴일을 맞아 그 열기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구랍 26일 이 영화를 봤다. 인간의 생명이 좌우되는 일은 역시 장엄하다. 두시간의 상영시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관객 누구도 숨소리 하나 내지 않는 것 같았다. 긴박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82억을 들인 강우석 감독의 영화 「실미도」는 實話(실화)에 바탕을 둔 김일성 암살의 사명을 띠고 창설된 비밀 북파 특수부대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스릴을 느끼게 해준다. 실미도로 이동 중 예비부대원들이 선상에서 치고 받고 싸우는 것을 지켜보던 조중사(허준호粉)가 『셋 세는 동안, 전원 바닷물로 뛰어든다, 실시』라고 명령하며 기관총을 쏘고 수류탄을 터뜨려 배를 폭파시키는 초기 장면부터 관객들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여러 명이 죽어나갈 만큼 혹독한 훈련, 구타, 부대원끼리의 갈등과 화해를 통해 전우애로 뭉쳐지는 과정을 겪으며, 서서히 정예부대원으로 탈바꿈하는 장면 등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보병부대에서 유격훈련 등을 겪어본 필자에겐 훈련장면이 실감났다.
특히 부대원들에게 인간적인 연민을 갖고 있던 부대장의 권총자살하는 장면과, 승객들을 다 내보내고 부대원 전원이 버스 속에서 수류탄으로 자폭하는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이상하게 포장해 관객들을 헷갈리게 하지 않는, 분명한 반공영화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이 영화의 배경이 1971년 8월, 실미도를 탈출한 특수부대원들이 『朴正熙 대통령과 담판하겠다』며 서울 노량진 대방동까지 진출했다가 자폭한 實話라는 점도 인기의 한 요소를 차지하는 것 같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군 부대 소속 게릴라 31명이 朴正熙 대통령의 암살 임무를 띠고 남파되어 청와대 코앞에서 전투를 벌이다가 대부분 사살되고 金新朝(김신조) 소위가 생포됐다.
실미도 북파 특공대는 이 사건으로 분노한 朴正熙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金炯旭(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김일성을 암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특수부대다.
이 부대는 혹독한 훈련을 통해 북한의 주석궁에 침투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막강한 戰力(전력)을 갖춘 최정예였다고 한다. 당시 훈련 교관들의 증언에 의하면 훈련병들의 단검 던지기는 10m 전방에서 사람의 심장과 목을 정확하게 맞출 수 있어야 하고, 움직이는 타깃을 자유자재로 명중시킬 만큼 뛰어난 사격술도 익혀야 했다는 것. 유격훈련 대련 때는 치명적인 급소만을 노린 공격법을 배웠다고 한다.
부대원의 숫자도 1968년 1월 청와대 앞마당까지 침투했던 124군부대 일당의 朴正熙 대통령 암살 기도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만큼 124군 특공대 그대로 31명으로 출발했다. 군복은 인민군복을 입었고, 어깨에는 「중앙 유격사령부」라는 견장을 붙였다고 한다.
31명의 훈련병 중 한 명은 훈련 도중에 심장마비로 죽었고, 탈출을 하다가 또 두 명, 상급자에게 항명을 하다가 한 명이 처형당했다. 그리고 민가에 내려가 강간과 인질 사건을 벌이다가 자결한 훈련병이 셋이었다고 한다.
청와대行을 반대, 처음부터 난동에 참여하지 않은 대원들이 몇 명 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당시 이 사건 수사에 관여했던 공군 관계자들은 책임있는 답변을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많은 의혹과 베일에 쌓여 아직 그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실미도 사건은 결국 용기있는 관계자의 답변만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영화 「실미도」 폭발적 인기의 비밀
- 趙南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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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1-01, 13: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