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한 한나라당: 이회창은 잘 졌다

*이 글은 토론방에서 퍼온 것입니다.

삼덕

한심한 한나라당.


1.
데이비드 허친스의 '네안데르탈인의 그림자(신동희 역, 바다출판사 )'라는 책에,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인구가 늘어나자 먹고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동쪽과 서쪽에 망루를 설치하였는데, 동쪽 망루에 서 있던 사람은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서쪽 망루에 서 있던 사람은 “저장 창고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동쪽에 갔다 온 사람은 서쪽 사람이, 서쪽에 갔다 온 사람은 동쪽 사람이 어이없는 착각을 한다고 몰아붙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자기주장만 펼치며 싸우다가 편이 극단적으로 갈렸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으며 각자의 동굴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사실, 동쪽이나 서쪽이나 틀린 게 아니었습니다. 동쪽에는 야생동물이 많이 사는 땅이 있었기에 무기가 필요했으며, 서쪽에는 과실나무가 풍요로운 땅이 있었기에 저장창고가 필요했습니다. 그 부락에는, 동쪽과 서쪽을 통합하는 리더십이 없는 게 심각한 문제였던 것입니다. 지혜로운 리더십이 있었다면, 무기와 저장창고를 적절하게 만들고 통합시켜 온 주민들이 고기와 과일을 골고루 섭취하며 풍성한 식사를 할 수 있었겠지요.

2.
노 대통령은, “상대가 떡밥을 왕창 뿌리는데… 떡밥 안 뿌리고 버틸 수 있냐”고 했으며, 장.차관급 청와대 만찬에서 “우린 티코이고 저쪽은 리무진인데, 누가 기름을 더 썼겠냐”고 했습니다. 주도적으로 책임을 지며 자기혁신을 도모하지 않고 남의 탓을 노래하는 것은, 자신의 정서지수가 미성년자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고백하는 것과 같다는 것도, 정녕 알지 못한다는 말이었습니까? 대통령은 그렇다 쳐도, 옆에 있는 참모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회창 씨가, 미성년자 방식으로 책임 전가를 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상대가, 사기날조된 테이프와 흑색선전으로 비열하게 공격하는데, 떡밥이라도 왕창 안 뿌리고 버틸 수 있었겠냐!”

지금 이 나라에서, 다양한 입장과 견해를 포괄하고 수용하고 통합해야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최고 지도자는, 노무현 대통령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여의도에서 있었던, 대선승리 1주년 기념행사에서, 졸렬하고 저급한 편 가르기 연설을 했습니다. 도대체,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아이덴티티가 있기는 있는 것인지, 노 대통령은 그곳에서 희망을 외쳤지만, 착잡한 절망감만 스칠 뿐이었습니다.

여당이랄 수 있는 열우당은, 노 대통령이 중심을 똑바로 잡고 국정을 수행해나가도록 협력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열우당은 다른 정당에 비해 도덕적으로 우위에라도 있다는 듯이, 가장 강력한 목소리로 정치개혁을 외치고 있는데, 열우당 소속 의원들이 다른 정당 의원들에 비해 유별나게 도덕적이거나 개혁적인, 무슨 근거가 있습니까?

선거구 협상 초반, 노 대통령은 350석을, 유인태 수석은 340석을, 열우당 창당 주역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신기남 의원은 299석을 긍정적으로 거론했습니다. 오히려 그때는, 한나라당 지도부가 의석을 늘리면 안 된다는 의견을 표현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열우당의 ‘정치개악 저지 및 정치개혁 실천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명칭 한 번 거창합니다)는 31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의원 16인 증원에 따른 비용 증가분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국회의원 지역구 의석이 16석 늘어날 경우 재직 4년 동안 500억원에 달하는 세금이 투입돼야 한다는 것이지요. 노 대통령이나 유인태 수석이나 신기남 의원이 의석수를 대폭 늘리려 할 때는 마치 그것이 정치개혁의 일환이라도 된다는 듯이 동조하고 침묵하더니, 다른 정당이 합심하여 의석 몇 개 늘리려 할 때는 정치개악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위선적인 이중성은 무엇을 뜻합니까? 열우당이 외치는 정치개혁의 핵심은 열우당의 당리당략이라는 것입니다. 당리당략을, 정치개혁이라는 허울로 교묘하고 교활하게 포장하고 있을 뿐이지요.

대통령과 정부와 열우당소속 의원들이 지난 10개월 동안, 과거 어느 때보다 대한민국을 제대로 한 번 발전시켜보자, 국론을 통합시켜보자, 최대 다수 국민이 고기와 과일을 골고루 풍성하게 먹을 수 있게 하는데 최선을 다하자, 는 모습을 나타냈습니까? 서서히 총선 정국으로 접어들고 있는데, 대통령과 정부가 국정수행을 지혜롭게 했으면 열우당에 투표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 것이며, 편협하고 경박한 아마추어리즘으로 좌충우돌했다고 느낀다면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야당에 힘을 실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 것입니다.

3.
야당이라면, 자민련은 세력이 너무 미약하기에 일단 민주당과 한나라당을 떠올려볼 수 있는데, 벌써부터 총선 이후에 열우당이 과반의석을 획득하지 못하면 민주당과 합당하겠다는 낌새를 자꾸 풍기고 있으니, 한나라당을 주시해보게 됩니다.

과연 한나라당이, 정부와 여당을 합리적으로 견제하며 국리민복 증진에 책임 있는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요? 중앙일보가 실시한 신년 특집 여론조사(2003.12.26~29일 실시)에 의하면,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가 무려 60%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62%이며, 긍정적 평가는 임기 말 수준인 30%내외에 불과한데, 왜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율은 높아지지 않는 것입니까?

저는, 한나라당이, 1차 이라크 파병을 지지하고 주5일제 정부법안을 찬성해줌으로써 노무현 정부가 먹어야 할 욕을 대신 먹었을 때, 노무현 정부가 경제살리기에 최선을 다하면 ‘각하!’라고 부르며 협력하겠다고 했을 때, 한나라당이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으며 그런 자세를 계속 취하면 한나라당을 적극 지지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2차 이라크 파병 때에는, 노 대통령이 먼저 결단을 내리기 전에, 한나라당이 당론을 결정하지도 발표하지도 않겠다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보수적인 거대 야당의 책임을 내팽개치는 행위였습니다. 노무현 지지자들로부터, 노무현 정부가 먹어야 할 욕을 대신 먹는 게 겁이 났던 것입니까? 국익을 위한 결단을 내리는데, 반대자의 욕을 먹는 게 싫다면, 수권정당 될 자격이 없는 것 아닙니까? 파병을 하는 게 국익이라는 겁니까, 하지 않는 게 국익이라는 겁니까? 만일, 파병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데, 노 대통령이 비판에 심각한 알레르기를 느끼는 기질 때문에 우유부단하여 파병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면, 한나라당이 파병을 강력하게 주장함으로써 노 대통령으로 하여금 파병을 결정할 수 있는 빌미가 되어 주는 게 마땅하지 않았을까요?

노무현 씨는, 충청권으로 수도이전을 한다는 공약으로 선거에서 재미를 봤다고 했습니다. 저는, 노 대통령 스타일을 보면서 노 대통령의 공약을 신뢰하면 아니 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어제 한 말을 오늘 변명하고 부정하는 것이 어디 한 두 번이었습니까? 수도이전 공약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도, 그가 성찰을 하면 얼마나 신중하게 성찰을 한 다음에 내린 결정이겠습니까? 매년 경제성장률 7%를 이루겠다는 공약처럼 허풍이 많이 담겨 있다고 봅니다. 한나라당은, 진정으로 수도이전이 국리민복에 도움이 된다고 확신합니까, 아니면, 노 대통령처럼 선거에서 재미를 봐야겠다는 경박한 욕심에 휩쓸리고 있는 것입니까? 지난 대선에서, 수도이전을 반대했던 논리들은 모두 폐기처분한 것입니까? 과연, 지금 수도이전특별법을 통과시키고, 수도이전을 적극 추진하는 것이 진정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까? 저는, 한나라당이 어영부영 수도이전을 찬성하는 방향으로 변질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금 한나라당이 지리멸렬한 늪에서 허우적거리기를 선택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만일, 충청권 수도이전이 진정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지난 대선에서 수도이전을 반대한 이회창 씨가 패배한 것이 차라리 잘 됐다는 것을, 한나라당이 지금 온몸으로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지금 어느 정당이든, 개혁을 부르짖지 않는 정당은 없습니다. 그런데, 국회는, 불법 정치자금 수수 및 개인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한나라당과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에 소속된 국회의원 7명의 체포 동의안을 부결시킴으로써, 부도덕하고 반개혁적인 성향들을 드러냈습니다. 한나라당의 의석수가 가장 많으니 한나라당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개혁적인 결단을 내려야 할 때 반개혁적인 선택을 한 한나라당은 의원물갈이니 뭐니, 대표가 사퇴하라느니 뭐니, 하수방류니 오렌지족이니, 하는 것으로 난장판입니다.

노무현 정부는 국가발전을 이루겠다는 사명의식이 지극히 빈곤해 보이는 ‘우왕좌왕’으로 희망을 붕괴시키고 있는데, 한나라당조차, 온 국민에게 고기와 과일을 풍성히 공급해나가야 할 국가의 중심을 보수(補修)하는 대안세력다운 패기를 시원하고 명확하게 나타내지 못하고, 가관 중의 가관인 것입니다.

과연, 의원물갈이를 하기만 하면,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질까요? 한나라당이 50%를 확 바꾸면 이미지가 획기적으로 달라진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저는 의문입니다. 국회에서 비리혐의를 받는 의원을 적극 비호하고 나서, 그 정당 안에서 비리혐의가 있는 의원을 물갈이하겠다는 것이 무슨 생산적인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한나라당까지, 얼치기 개혁선동에 휩쓸리는 것입니까? 정녕, 열우당처럼 선동만 번지르르한 개혁이 아니라, 보수적인 개혁의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것입니까? 5공, 6공 인사이기만 하면 모두 죽일 놈입니까? 5공.6공과 무관하면, 의정활동을 제대로 한다는 보장이 더 있기라도 합니까? 특정세력을 지목하거나 몇%물갈이라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의정활동을 더 성실하게 할 것이냐’,의 기준을 담은 시스템에 의해 합리적이고 점진적인 개선을 선택해나갈 수는 없겠습니까?

물갈이를 얼마나 하느냐, 비례대표에 여성의원을 몇 명을 배려하느냐, 하는 것보다, 국회에서 국가발전에 대한 책임의식을 얼마나 나타냈느냐, 하는 것이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도에 가장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게, 제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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