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는 사랑을 싣고’ 를 보는 이유

저 역시 북한에 두고 왔던 열두 살이었던 아들을 열아홉 살이 돼서야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탈북자가 바라본 남조선’시간, 진행에 김춘애입니다. 그럼 오늘은 전 시간에 이어서‘헤어진 가족 찾기 프로그램’ 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30분, 이곳 남한의 KBS 텔레비전에서는 헤어진 가족 찾기 프로그램인 ‘TV는 사랑을 싣고’를 방송합니다. 저는 일주일에 한 시간씩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을 빠짐없이 시청합니다.

60년대 가난 때문에 헤어졌던 가족을 찾아 서로 용서하고 용서를 받으며 쓰라린 지난날의 추억을 통해 더욱 뜨거운 사랑과 행복을 기약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제 자신의 지난 생활을 돌이켜봅니다.

지난 금요일 저녁에도 저는 텔레비전 앞에서 모녀가 상봉하는 장면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는데 아들이 텔레비전을 껐습니다. 그때서야 아들이 집에 들어온 것을 알았습니다.

워낙 말수가 적은 아들은 그런 제 모습을 볼 때마다 텔레비전을 끄곤 합니다. 지난주 방송에 나왔던 주인공은 70년대 가난한 살림 때문에 돈벌이를 하기 위해 사랑하는 세 자녀를 시부모님에게 맡기고 집을 떠났습니다. 그 후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가족을 찾지 못하고 사랑하는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자책감으로 많은 마음고생을 하며 살아오다가 ‘TV는 사랑을 싣고’ 라는 프로그램이 나오자 아이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KBS 방송 PD들의 고생 끝에 이루어지는 모녀의 감격적인 상봉을 보면서 자식과 헤어져 살면서 숯덩이가 됐을 그 어머니의 마음을 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고난의 행군시기인 1997년 8월부터 사랑하는 아이들과 헤어져 6년이란 세월을 눈물로 보냈고, 잃은 아이들 때문에 눈물이 마르고 말문이 막혀버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열두 살 어린 아들을 고향에 남겨둔 채 큰 딸을 찾아 중국으로 넘어가 작은 딸까지 인신매매 조직인 조선족들에게 빼앗겼을 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고생 끝에 2개월 만에 인신매매꾼들에게 빼앗겼던 딸 소식을 알았고 다시 중국 돈(인민페) 4000위안을 주고 딸을 찾아왔을 때, 우리 다시 죽어도 헤어지지 말자고 손을 잡고 굳은 약속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딸과 함께 북한에 북송됐을 때 저는 제가 살아야 세 아이들을 모두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딸을 단련대에 두고 도망을 쳐 다시 중국을 향해 두만강에 피눈물을 뿌리며 넘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 땅에서 열심히 돈을 벌어 북한에 두고 온 아들과 남편 찾는데 보냈고 한편으로는 흑룡강성 하얼빈에 있는 ‘송화강’ 잡지사에 중국 돈 300위안을 주고 2001년 2월 잡지에 ‘김춘애 어머님께서 큰 딸을 애타게 찾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고향은 용정이고 1997년 8월에 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나섰는데 소식이 없다"는 내용으로 생김새와 이름을 적어 광고를 내 6년 만에 큰딸을 찾았습니다.

북한에 두고 왔던 헤어질 당시 열두 살이었던 아들을 열아홉 살이 돼서야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큰 딸과 아들을 찾아 품에 안고 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마도 제가 흘린 눈물이 흐르는 두만강 물만큼이나 흘린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제 고향인 평양에는 1996년 고난의 행군시기 식량공급이 중단되면서 식량공급이 시작되면 우리 다시 만나자고 기약없는 약속을 남긴 채 사랑하는 아이들과 남편과 헤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모와 하루아침에 헤어져서, 학교 갈 나이지만 길거리에서 꽃제비 생활을 하며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기차역이나 장마당. 유원지와 공원에서 헤매고, 구린내 나는 하수도나 다리 밑에서 사는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밥 달라고 평양시내 이집 저집을 전전하는 아이들도 있고 구호소에서 배고파 밥 달라고 울다가 지쳐 쓰러져 죽어가는 아이들도 하루에 몇 명씩 됩니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자식들과 헤어져 헤매는 부모들도 많습니다. 어디에서 시체가 발견됐다고 하면 제 자식이 아닌가, 해 달려가는 부모들도 있고, 혹시나 죽지 않았으면 중국으로 갔을까, 하며 제발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문을 열어 놓고 지내는 부모들도 많고, 엄마,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들도 수 없이 많답니다.

언제 통일이 돼서 북한 사람들도 이곳 남한 국민들처럼 과거에 가난 때문에 헤어진 가족이 다시 만나는 감격스런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며칠 전 저는 저와 같은 탈북자 한 사람을 알게 됐습니다. 그 분도 북한에서 사랑하는 마누라와 사랑하는 딸과 헤어진 뒤 서로 죽은 줄로 알았는데 12년 만에 이곳 남한에서 만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여덟 살이었던 딸아이가 아빠를 못 알아 봐서 그분은 너무 가슴이 아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고 합니다. 세상에 이런 비극이 또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저는 중국에서 저녁에 나오는 KBS 방송을 빠짐없이 듣고 들었습니다. 2000년 7월에 북송되어 북한 함북도 무산군 보위부에 끌려갔을 때 보위부 종합지도원으로부터 취조실에 있는 의자를 가리키며 저의 남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그 애가 앉았던 의자라고 말했습니다.

보위부 감방에 있으면서 금방 제대되어 이 누나를 찾아 중국으로 왔던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 정치범 수용소로 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때로부터 오늘날까지 저는 자유북한방송국 게시판과 탈북자동지회 게시판의 사람 찾기란을 매일매일 빠짐없이 체크합니다.

혹시나 동생이 탈출해 이곳 남한으로 오지 않았나 이 누나를 애타게 찾고 있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오늘도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 중국에서 우리의 부모와 형제자매들이 헤어진 가족과 보금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저는 항상 ‘TV는 사랑을 싣고’ 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그들 모습이 눈앞에 보이듯 합니다.

네~ 그럼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이 시간을 기다려 주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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