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姸兒를 보면서 李舜臣이 떠올랐다

그녀가 쏟아내는 이미지에 치중, 순간적인 기쁨에 도취된다면 한국 피겨의 미래는 어두워질 것이다.
이번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김연아(金姸兒) 선수의 금메달 획득 순간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썩어빠진 조선(朝鮮) 조정을 뒤로한 채 홀로 일본군(軍)에 맞서 싸운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떠올랐다.

일본은 한국처럼 극소수의 체육인을 양성하는 ‘엘리트 체육 시스템’이 아니다. 일본의 체육은 ‘국민 체육 시스템’으로 스포츠 자체를 사랑해 스포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메달 하나 따면 군대(軍隊)까지 면제되는 한국의 시스템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피겨 스케이팅 분야에서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두터운 선수층을 보유하고 있다. 아사다 마오(浅田真央), 안도 미키(安藤美姫, 일본에서는 ‘한국계’로 알려져 있음), 스즈키 아키코(鈴木明子) 선수 외에도 훌륭한 기량을 보유한 피겨 선수들이 일본 국내에 줄지어 있다.

반면 한국은 세계 랭킹 1위인 김연아 이외에 곽민정 선수 정도다. 김연아의 뒤를 이을 차세대 주자가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김연아 선수가 첫 단추를 잘 끼웠을 뿐이다.

피겨 종목의 얕은 선수층 문제는 남자 부문에 이르면 거의 절망으로 치닫는다.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다카하시 다이스케(高橋大輔) 그리고 오다 노부나리(織田信成)를 비롯한 3명의 세계 랭킹 상위권의 선수가 출전했다. 반면 한국은 단 한 명의 남자 선수도 출전하지 않았다.

한국은 사실상 피겨는 불모지다. 등록 선수는 348명(2009년 기준). 그나마 김연아 열풍 덕분에 70~80명 수준에서 늘어난 것이다. 두 명이 짝을 이루는 페어팀은 하나도 없다. 세계 대회 입상 기록도 없다. 그래서 김연아의 성적이 고스란히 한국 피겨의 역사다.

이것을 전쟁 상황으로 비유하자면 주력군이 단 한군데서만 무너져도 뒤를 받쳐줄 예비 병력이 없기 때문에 전선이 그대로 붕괴되어 국가가 패망하고 마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국이 ‘제2, 제3의 김연아’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김연아 이후의 상황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김연아란 최고의 스타가 쏟아내는 이미지에 치중, 순간적인 기쁨에 도취된다면 한국 피겨의 미래는 어두워질 것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김연아 선수’에게 다음 번 올림픽 금메달까지 기대하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다. 그녀를 재탕(再湯), 삼탕(再湯)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연아는 한국적 시스템의 도움이 아닌, 선수 스스로의 뼈를 깎는 노력으로 모든 것을 일궈낸 케이스다. 만약 김연아 다음 세대의 선수들에게 이런 기대를 한다면 한국 피겨의 미래는 암흑기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이성(理性)을 되찾고 진중(鎭重)한 태도를 갖자.

김필재 기자 spoone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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