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면서도 엄숙하게 밴쿠버의 밤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지는 애국가, 그 선율과 함께 감동과 감격이 한데 섞여 흐르는 김연아의 눈물, 그리고 거룩함의 극치를 이루며 캐나다의 하늘을 찌르는 태극기의 위대함,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여의도의 4류 정치인들을 한 묶음으로 묶어준대도 바꿀 수 없는 김연아의 눈물 속에 담긴 깊은 의미와, 그 가냘픈 어깨에서 나부끼는 태극기의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표현할 어떤 어휘도 내 국어 실력으로는 찾을 수가 없다. 한 마디로 감격 그것이고, 고맙다는 말밖에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 두 뺨을 적시는 뜨거운 눈물만이 그 참 뜻을 알 수 있으리라. 아낌없는 기도를 드린다. 감사의 기도를.
애국가 연주와 함께 아직도 소녀의 티를 벗지 못한 두 뺨을 적시는 눈물을 보면서 뭉클했던 감동, 그리고 가냘픈 어깨에 두른 태극기의 무게가 주는 참뜻을 새기면서 생각난 것은, 이 감격스럽고 거룩한 순간에 서울의 내로라하는 정치위인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어찌 밴쿠버의 영광뿐이겠는가. 기업인들이 세계일류를 향해 정글의 생존법보다도 살벌한 국제경쟁의 빙판(氷板)을 누비며 국가 브랜드를 높여가는 고통의 순간에, 여의도의 싸움꾼(정치인)들이 하는 행태는 과연 어떤 것인가.
쓰레기통은 '역사 쓰레기통'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 쓰레기통'도 있다. '역사 쓰레기통'은 과거형이지만, '정치 쓰레기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래서 그 폐해(弊害)는 더욱 크다. 여의도의 '정치 쓰레기통'이 커지는 만큼 대한민국의 어려움도 커진다.
대한민국의 아들딸들이 미래를 위한 또 하나의 새로운 역사창조를 위해 밴쿠버의 빙판을 달리며 영광의 메달들을 건져 올릴 때, 여의도의 정치쓰레기통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가. 멀리 뉴욕에서 그 추태를 바라보는 심정은 한 마디로 '참담(慘憺)', 그것이다.
저들이 과연 미래의 희망인 이 아들딸들을 위해 기도해 본 적이 있을까? 박수를 보낸 적이 있을까? 김연아의 눈물에서 핵폭탄처럼 터져 나오는 감동과 감격의 뭉클함을 느끼기라도 했을까? 캐나다의 하늘을 찌르던 태극기의 위대함, 영광과 축복의 전파를 타고 온 지구촌을 감동시키던 애국가 연주의 거룩함에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을까? 가슴만 답답해질 뿐이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아들딸들이 밴쿠버의 빙판에서 하나하나 금메달을 건져 올릴 때 우리는 행복했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았으며, 여의도의 '정치쓰레기통'에서 풍기는 역한 오물 냄새에서 조국의 고통을 보았다. 그러면서 가슴에 와 닿는 것은, 미래의 번영과 행복을 지고 글로벌 경쟁의 얼음판을 뛰는 기업인들과 미래의 희망을 약속하는 밴쿠버의 영웅들에 대한 고마움이다. 지금 서울정국의 최대 이슈인 세종시법', 정말 나라 전체가 올인할 정도로 가치 있는 것일까? 2005년 3월 세종시법 국회통과에 정치인으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껴 의원직을 사퇴한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의 양심고백에 그 해법이 담겨 있는 것 같다.
박 위원장은 2010년 2월5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세종시법 싸움은 이명박 대통령의 백년대계와 박근혜의 정치신념의 싸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잘못된 국가 정책을 야당까지(당시 한나라당은 야당이었고, 한나라당 대표는 박근혜 의원이었다) 합세해 통과시켰다는 것은 나 자신을 설득시키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역사에 대해 어떻게 변명할 겁니까. 대통령이 표를 얻기 위해 한 것을 합의해 줬다면 훗날 후손들이 ‘국회가 국가 이익을 지키는 것을 생각했느냐’고 물을 때 대답할 수 없습니다” 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서 그는 국가 정책 전문가로써 이렇게 한 마디를 더 했다.
“지방 균형발전을 수도이전으로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선거용으로 시작된 정책을 여기까지 가지고 온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여기서 이 문제를 못 풀면 대한민국은 파산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세종시법'은 형식적 정당성은 있으나 내용상의 실체적 정당성은 없다고 하면서, 반대자도 많았고, 토론 없이 급하게 당론 결정으로 몰고 갔다며 당론 결정 후에도 많은 의원들이 튀어나가 스트라이크도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세종시법은 시작부터가 對국민 사기극이었다.
당시 지도부의 한 사람으로 박근혜 당시 대표에게 사의를 표명한 뒤 의원총회에서 “세종시법은 잘못된 것이며 반드시 고쳐야 하고 한나라당이 잘못된 결정을 번복하는 것이 지금은 힘들고 죽는 일이라도 결국 나라를 살리는 것”이라는 소신을 밝히고 국회를 나왔다. 박근혜 당시 당 대표도 “지난 얘기지만 좋은 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는 그의 전언은 지금 국민 모두가 심각하게 따져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 저의를 말이다.
사실 세종시법은 노무현 자신이 말한 것처럼, 대선 때 재미 보기 위해 만든 포퓰리즘 정책이었을 뿐, 국가발전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박 위원장이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그 정책을 계속 추진한 것은 사회의 주류세력을 교체하기 위한 노무현의 한풀이 정책이었을 뿐이다.
참고로 세종시법 표결당시의 투표결과를 살펴보면 아마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 당시 한나라당 의원 총수는 120명, 그 중에서 찬성 8, 반대 12, 기권 2, 불참 98, 결국 120명 가운데 8명만이 찬성했다는 이야기다. 원칙과 신뢰를 정치신념으로 한다는 박근혜의 원칙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또한 노무현의 대국민 사기극에 손을 들어준 박근혜의 속셈은 무엇일까? 그 속에 해법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민주주의의 원칙은 다수결이 아닌가. 박근혜의 원칙은 민주주의 원칙 위에 존재하는 상위 원칙이란 말인가. 그리고 박근혜가 정말 '원칙과 신뢰'를 입에 올릴 자격이 있는가를 따져 보아야 한다.
몸담고 있던 한나라당이 여왕으로 떠받쳐주지 않는다고 뛰쳐나가 딴 살림을 차린 뒤 여왕행세를 하려다 여의치 않자 다시 친정을 찾아 온 정치행위가 결코 정치인의 원칙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유일하게 김정일의 전용기를 타고 김정일을 알현(?)한 뒤 입을 다무는 아리송한 태도는 결코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가 없다.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말을 해야 한다. 차기 대권을 꿈꾸는 박근혜가 아닌가.
여기에 덧붙여 금배지를 움켜쥐고 그녀의 치마폭 속에 들어앉은 선량들(?)의 추태는 더욱 가관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 치마폭 속에 계속 안주했을 때, 금배지가 손상되는 정치 환경이 주어진다 해도 지금처럼 충성을 다하겠는가? 역사에 죄짓는 행동은 여기서 멈춰야 한다.
이제는 “정치가 국익을 위한 타협을 만들지 못하면 파산을 의미한다”는 박세일 이사장의 말을 귀담아 들을 때다. “국익을 우선하다 보면 타협이 나온다”고 하는 박 이사장의 충고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현재와 미래가 싸우면 현실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밴쿠버의 빙판에서 인종의 벽이 무너지듯, 타협의 빙판에서 소모적 갈등의 벽이 무너져 내리기를 기대해 본다. 국익을 대신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4류 정치의 오명을 벗어야 한다. 여의도에서 '정치 쓰레기통'이 치워지는 날, 대한민국의 미래는 번영과 평화와 풍요가 넘쳐흐를 것이다.
김연아의 눈물과 여의도의 싸움꾼들
- 최응표(뉴욕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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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3-03, 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