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주역들을 좀더 예우해주어야"

무공수훈자회 姜大現 서울 노원지회장 “6·25에 참전, 화랑무공훈장을 세 개 받아도 연금이 月 15만원인데, 상이군경은 7등급도 39만원”
1월15일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에 위치한 무공수훈자 노원지회의 10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姜大現(강대현) 지회장과 李圭太(이규태) 사무국장을 만났다.

무공수훈자란 각종 전투(6·25전쟁, 월남전 등)에 참가해 국가안보에 기여, 그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로부터 무공훈장을 받은 사람들을 말한다. 무공수훈자회는 무공수훈자들의 모임으로써 국가보훈처의 公法(공법)단체이다. 무공수훈자회의 회원은 2009년 기준 2만5000여 명이고 연령대는 65세 이상이 81%를 차지하고 있다. 6·25참전용사들이 무공수훈자회의 70%에 달한다.

무공수훈자 노원지회 姜大現 지회장은 1929년 제주 출생으로 올해 81세이다. 그는 1947년 4월 사병으로 군 생활을 시작해 1974년 말 대령으로 예편했다. 27년의 軍생활 동안 그는 여순반란사건, 6·25전쟁, 월남전에 참전했다. 예편 후에는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 前身)에 입사해 4년간 봉직했다. 그는 軍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1970년 월남전에 참전해 베트콩을 생포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충무무공훈장 1회, 화랑무공훈장 3회를 수여받았다.

무공수훈자 노원지회의 李圭太 사무국장은 경북 영천 출생으로 올해 78세이다. 6·25 발발 당시 그는 대구농림학교(現 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 졸업반이었다. 6.25가 발발하자 고향 친구 8명과 함께 학도병으로 참전했다. 그는 1950년 7월6일 학도병 2기로 입대해 7월16일 의성지구 전투에 처음 참전했다. 그 후 안동‧영천전투를 치르고 1950년 9월15일 부상을 입었다. 그와 함께 학도병에 자원해 참전한 8명의 고향 친구 중 6명이 전사, 1명이 중상, 1명이 포로가 됐다. 그도 충무무공훈장 1회, 화랑무공훈장 3회를 수여받았다. 현재 상이용사 7급이다.

姜지회장과 李사무국장은 서로 알게 된 것은 최근이지만 서울 수복 후인 1950년 11월 성동공고에서 2사단 재편성식이 있을 때 함께 있었다고 한다. 당시 姜지회장은 헌병 소위였고, 李사무국장은 이등중사(現 병장)이였다.

姜지회장은 우리 사회가 무공수훈자에 대한 인식과 예우를 새롭게 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6·25 발발 60주년을 맞은 요즘 무공수훈자들의 업적을 알리기 위해 더 힘쓰고 있다.

현재 무공수훈자로 지정된 사람은 매월 15만원의 武功 榮譽金(무공 영예금)이라는 이름으로 연금을 받는다. 이들은 전투에서 功(공)을 세워 태극, 을지, 충무, 화랑, 인헌 무공 훈장 중 하나 이상을 수여받은 자들이다. 하지만 傷痍軍警(상이군경)은 최하 7급의 경우 매월 39만원을 받는다. 무공수훈자들이 부상을 당하지 않았지만 전투를 승리로 이끈 주역이므로 지금보다 나은 대우를 해주어야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李사무국장의 항변.

“보훈처에서 훈장을 받은 사람에 대한 인식과 평가 정도가 너무나 잘못돼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훈장을 받은 사람들이 그 전쟁터를 지켜주지 않았다면 戰死者(전사자)나 負傷者(부상자)가 어떻게 後方(후방)으로 나옵니까? 희생자들을 누가 지켰는데요. 그 사람(무공수훈자)들이 있었기에 부상자도 대피시키고 전투도 승리하고 나라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무공수훈자들의 국가를 위한 헌신을 그렇게 가볍게 봐서는 안 됩니다. 무공수훈자들이 희생을 줄였습니다. 이들을 더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中共軍(중공군)이 누군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상이군경 4·5급 대우를 받는데, 전쟁터에서 갖은 곤욕을 다 치르고 전투를 승리로 이끈 무공수훈자에 대한 예우는 너무 소홀합니다.”

무공수훈자이면서 부상을 당한 경우엔 둘 중 한 가지 연금만 받을 수 있다. 姜지회장의 말이다.

“우리 사무국장이 탱크를 3대를 파괴해 충무무공을 타고 화랑무공 훈장도 세 개나 받았습니다. 6·25전쟁에서 전투 중 부상까지 당해 다리에 철을 박았는데 상이군인 7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사무국장은 무공 영예금 대신 돈이 조금 더 나오는 상이군경(7급) 보상금을 신청했습니다. 중복지급은 안됩니다.”

李사무국장은 매월 15만 원을 지급하는 무공 영예금 대신 39만1000원의 상이용사(7급)연금을 선택했다.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무공훈장을 네 개나 받은 老兵(노병)이 더 많은 연금을 받기 위해 傷痍(상이)용사의 혜택을 받는 것이다. 李사무국장은 훈장의 등급에 대한 평가도 미흡하다고 말했다.

“武功勳章(무공훈장)의 종류가 다섯 종류가 있습니다. 태극, 을지, 충무, 화랑, 인헌. 그런데 태극무공훈장을 3개 받은 사람과 인헌무공훈장을 1개 받은 사람 둘 다 무공 영예금(보상금)은 한 달에 15만원입니다. 이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공헌의 폭, 질적인 면을 획일화시킨 것입니다.”

姜지회장은 무공수훈자들이 상이군경의 보상금액 중 가장 낮은 7급 보상수준(39만 원)의 예우라도 받기를 희망했다. 李사무국장은 6·25참전용사들의 수명이 다 돼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