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에 入國한 30대 초반의 북한여성과 이야기를 나눴다.
-1990년대에 어떻게 살아남았습니까?
"저는 청진에서 기업소의 경리를 보았습니다. 山에서 나무를 잘라내고 거기에 무우, 감자를 심는 일을 하면서 식량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山林벌채엔 體力이 많이 소모됩니다. 교수들도 먹고 살기 위하여 이런 일에 자원을 하였습니다. 먹는 것은 적고 체력은 너무 많이 써서 죽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굶어죽은 사람의 屍身을 본 적이 있습니까?
"많이 보았죠."
-공개처형을 본 적이 있습니까?
"세 번 보았습니다."
-살인범이었습니까?
"절도, 강도였습니다. 모두가 식량을 훔치거나 빼앗으려다가 붙들려 죽었습니다."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시범 케이스로 죽은 겁니다. 김정일이 날을 정하여 이번에 붙들린 절도범은 총살한다고 명령하면 보통 때는 죽지 않던 사람도 죽어야 합니다. 이웃집 밭에서 감자를 한 양재기 캔 사람도 총살되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이렇게 굶주리는 것은 김정일 때문'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까?
"그런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문제의식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철저한 세뇌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언제 김정일의 책임임을 알았습니까?
"여기 와서 부터입니다. 그런데 같이 온 탈북자들 가운데는 여기서도 김정일을 공개적으로 욕하는 것을 주저하거나 겁 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김정일 덕분에 우리가 먹고 살았지 않은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북한에서 데모가 일어날 가능성은?
"옛날 같으면 생각도 못하는데, 화폐개혁으로 돈을 빼앗겼으니 모르지요."
-한국에 와서 가장 감동한 것은?
"제 집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죠."
-가장 큰 스트레스는 무엇입니까?
"말이 달라져서 서로 오해를 할 때가 있어요.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고요. 마음을 상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에 온 걸 후회합니까?
"그런 사람들은 없어요. 우리가 이렇게 먹고 사는 게 다 누구 덕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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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證言: "이웃집 밭에서 감자 캤다고 공개총살"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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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3-09, 10: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