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前총리의 뇌물수수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2008년 총선 패배에 이어 정치적 생명이 치명적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는 韓 前총리가 자신의 정치적 강점을 「청렴」과 「도덕성」에 둬 왔다는 데 기인한다. 지난 정권 그의 공식적 발언 몇 마디를 인용하면 이렇다.
<깨끗함과 도덕성 바탕으로 한 1급수 정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같은 사람과 대선을 같이 하는 것 자체가 국제사회에 부끄러운 일이다...이 후보는 자녀를 귀족학교에 보내기 위해 위장전입을 서슴지 않았고 선거법 위반, 위증을 사주하는 하는 사람이다...나는 깨끗함과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 「1급수 정치」를 펼치겠다. (2007년 8월24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발언)』
『지금 국민은 한나라당 후보들의 검증 공방을 보면서 실망과 짜증을 느끼고 있다. 과연 그런 후보들이 대통령을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갖고 있다...대통령이 되려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2007년 7월10일 열린우리당 대전시당 기자간담회 자신의 대권도전과 관련 발언)』
『두 번의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내면서 사고를 치거나 비리를 저지르거나 국민을 불편하게 한 적이 없다...「한명숙」은 도덕성이 있는 사람으로, 대선에서 경쟁력이 있으며, 여성대통령이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편안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2007년 6월29일 전남 여수 기자간담회)』
<화합과 소통, 그러나 수구냉전세력(?)은 배제>
韓 前총리는 온유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풍긴다. 2006년 총리 취임 초부터 그는 『화합과 소통의 총리』를 자임했다. 그러나 화합과 소통의 대상에 한나라당고 같은 소위 수구냉전 세력은 철저히 배제해 왔다.
예컨대 韓 前총리는 2007년 5월28일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참여하면서 갈등과 분열을 하나로 모으고 이념과, 세대, 계층 간의 소통을 위해 노력해 왔다』면서 『다음 지도자는 이처럼 統合(통합)과 疏通(소통)의 리더십을 가져야 하며 그 것이 바로 다음 정권의 시대정신』이라고 피력했다.
그러나 그는 『현재 평화 민주개혁세력이 분열돼 위기를 맞고 있지만 이번 대선에서 결코 수구냉전 세력에게 정권을 내 줄 수는 없다...앞으로 수구냉전 세력인 한나라당에 단호히 맞서 싸워 나가겠다』며 좌파가 소위 수구냉전세력이라 비난하는 보수우파세력에 대해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다.
韓 前총리는 2007년 5월17일 5.18묘역을 참배한 자리에서도 『소통과 화합의 리더십이 국민적 에너지를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다』고 말한 뒤 『진정한 5.18정신은 민주개혁세력 대통합...정권을 냉전세력에게 맡길 수 없다』는 등 같은 주장을 되풀이해왔다.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평화와 인권을 되찾은 10년?!>
韓 前총리는 「親盧세력」을 대변하는 인물로서 노무현 정권 5년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드러내왔다. 예컨대 2007년 7월11일 인천 로얄호텔 당원 간담회에서 대권도전 의사를 밝힌 뒤 『그동안 이뤄놓은 민주주의의 성과가 멈출 경우 10년 전으로 퇴보하게 된다...차기정부에서 양극화를 해결해야 하는데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정경유착·부정부패·투기가 되살아나게 된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6월19일 대경대 사회교육원 특강에서는 『혹자는 「지난 10년은 잃어버린 10년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지난 50년간 잃어버렸던 민주주의와 자유, 평화와 인권을 되찾은 10년이었다...전체적으로 민주개혁정부는 국가발전 단계를 한 단계 높이는 성과를 거두었다』며 경기침체와 對北굴종, 北核개발로 이어진 좌파정권 10년을 민주주의·자유·평화·인권을 되찾은 10년으로 규정하고 그 이전과 향후 정권이 교체될 때에는 민주주의·자유·평화·인권이 박탈된 암흑시기인 양 주장했다.
공권력과 폭력 앞에 "똑같이 한발씩 물러나자?!"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의 시위·집회는 날로 과격해졌다. 전북 부안군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설치 반대 시위, 경기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시위, 경북 포항건설노조의 포스코 본관 점거 농성, 한미FTA반대 전국 시위 등 죽창과 쇠파이프가 난무하는 不法폭동이 끊이지 않았다. 시위의 과격화 정도를 보여 주는 경찰 부상자는 2005년 1,187명, 2006년 1,399명, 2007년 1,413명으로 늘어났고 정권교체 이후에도 수습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내몰렸다. ( 2008년 1,440명 2009년 1,574명)
정부는 매번 「엄중 대응」을 천명했지만 여론의 눈치를 보며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韓 前총리는 총리 재임 기간인 2006년 5월 평택범대위가 반미폭동을 일으켜 비무장 군인까지 집단으로 폭행하자 같은 달 12일 이런 對국민 호소문도 발표했다.
『이제 모든 당사자들이 한걸음씩 물러나서 냉정을 되찾자...정부는 주민의 아픔과 함께 하면서 진정한 대화와 타협으로 이 난제를 풀어가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경찰과 군인,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과 주민, 이 모두가 우리의 아들, 딸들이고 우리의 형제들이 아니냐? 우발적 충돌로 인해 폭력의 악순환에 휘말린다면, 만의 하나라도 인명이 손상되는 불상사가 일어난다면, 그 여파와 후유증이 얼마나 크겠냐. 그러한 사태는 우리 모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평택범대위 반미폭동은 이른바 친북좌파가 2005년부터 상습적·조직적으로 전개돼 온 것으로서, 2006년 5월 들어서는 비무장 군인을 죽창으로 두들겨 패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당시 韓총리는 「공권력」과 「불법·폭력」을 동렬(同列)에 놓고 『똑같이 한발씩 물러나자』는 주장을 폈다.
그는 『매 맞는 시위대와 매 맞는 경찰이 다 같이 없어야 한다』고 했지만 合法(합법)시위대를 때리는 경찰은 없어진 지 오래이다. 따라서 韓총리의 이 기막힌 담화는 불법폭력시위도 경찰이 때려선 안 되고 얻어맞아야 한다는 지시나 마찬가지였다.
韓 前총리는 「평화적 집회시위문화 정착을 위한 민관공동위원회」를 구성했지만 같은 달 19일 회의에서 불법·폭력시위에 가담한 시민사회단체에 정부 보조금을 주지 말자는 합의에도 실패했다.
韓 前총리와 함께 공동대표를 맡은 함세웅 신부는 『시민사회단체 회원이 우발적으로 참여한 경우와 의도를 갖고 참여한 경우를 구분하기 힘들다』며 보조금 폐지에 반대했고, 결국 이 주장이 수용된 것이다. 노무현 정권 5년간 극좌파 단체들은 국민에게 고통을 주고 군경에게 폭력을 휘두르면서도 혈세에서 보조금을 지원받는 권력, 치외법권(治外法權)의 권력이 돼버렸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