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春雪의 경치를 구경할 겸 春川을 다녀오는 길에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에 있는 영국연방 參戰 기념비에 들렀다. 1967년에 세워진 기념비엔 말라버린 꽃송이가 몇 개 놓여 있었다.
기념비 뒤로 돌아갔더니 英연방 4개국-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군인들의 戰死傷者 수가 기록되어 있다.

호주 311명 戰死, 1230명 부상
캐나다 516명 戰死, 1255명 부상
뉴질랜드 40명 戰死, 79명 부상
영국 930명 戰死, 2674명 부상
英연방 파견군은 약1800명이 戰死하고 5000명 이상이 부상한 것이다. 이는 김일성의 南侵으로 시작된 韓國戰에서 5만4000명 戰死, 10만 명 이상의 부상을 기록한 미국에 다음 가는 희생이다.
이 기념비엔 1950년 6월28일에 영국정부가 파병을 결정하였고, 호주는 이튿날, 30일에는 캐나다가 참전을 결정하는 등 영연방 국가(인도는 의료지원단을 보냄)가 미국과 거의 같은 시기에 즉각 파병을 결정하였다고 적어 놓았다. 영국은 미국이 西유럽을 방어하기 위하여 마셜플랜을 추진하고, NATO를 만드는 것을 보고는 미국의 제1동맹국으로서 미국의 冷戰 전략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기로 하였다.
당시 영국 정부는 노동당의 애틀리 수상이 이끌고 있었다. 미국의 트루먼 행정부가 파병을 결심하는 것을 보고 주저 없이 동참을 결정한 것이다. 영국 해군은 즉시 극동에 배치되어 있던 해군을 한반도로 파견하였다. 輕항공모함을 포함한 순양함, 구축함 등 막강한 함대였다.
그때 일본에 전개되어 있던 호주 공군 부대도 무스탕기를 이끌고 신속하게 참전, 美 공군과 함께 初戰부터 싸웠다. 미군 이외엔 호주 空軍이 맨첨 참전한 것이다. 당시 한국사람들은 李承晩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호주사람이므로 호주가 이렇게 돕는다고 생각하였다. 유엔군 전투기를 '호주기', 프란체스카 여사를 '호주댁'이라 불렀다. 물론 이는 오스트리아 출신인 프란체스카 여사를 오스트레일러(호주) 출신으로 誤解한 것이다.
英연방 국가 군대는 제27 英연방 여단을 구성, 낙동강 방어전에 투입되었다. 1950년 11월엔 제29여단이 추가로 파병되었다. 1951년 6월, 두 여단은 최근에 도착한 제25 캐나다 여단과 합쳐 제1 영국연방 사단으로 확대 통합되었다. 당시 병력은 1만4000명이었다. 英國은 전쟁중 延6만 명, 캐나다는 약2만6000명을 보내는 등 英연방 군대 약10만 명(延인원)이 한국에서 싸웠다.
英연방 군은 北進에도 참여하였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유엔군이 후퇴할 때는 후방에서 友軍의 철수를 엄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영국의 제41 해병 특공대는 청진호 전투에서 미군과 함께 싸웠다.
유엔군이 1.4 후퇴 때 빼앗긴 서울을 재탈환하자 중공군은 1951년 4월22일 제5차 공세를 펴 서울을 志向하였다. 이 공세를 정면으로 받은 것은 英연방 제29 여단이었다. 이 여단은 임진강변에서 많은 피해를 당하면서 방어선을 지켜냈다. 특히 글로스터 대대(Gloucestershire Regiment 소속)는 포위된 상황에서 戰滅할 때까지 싸웠다. 700명이 넘던 대대 병력중 생존자는 67명, 戰死者는 59명, 526명은 포로가 되었다. 포로들 가운데 180명은 부상자였다. 포로생활중 34명이 죽었다. 미 8군 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은 "英연방군이 사흘간 중공군의 전진을 저지, 서울과 8군을 지켜냈다"고 평가하였다.
積城전투(또는 설마리 전투)라 불리는 이 싸움은 영국군이 겪었던 가장 치열한 전투이자 고립방어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1957년에 파주군 적성면 마시리에 戰積碑가 섰다. 글로스터 대대가 속한 제28 글로스터 연대는 1694년 영국의 포스머스에서 창설되었다. 그 후 캐나다에서 벌어진 英佛전쟁,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하였다. 1815년 6월18일 벨기에의 워털루 전투에서 연합군의 웰링턴이 나폴레옹 군대를 무찌르는 데도 기여하였다. 20세기 들어선 보어전쟁, 1차 대전(갈리폴리 등)에서 활약했다. 2차 대전 때는 프랑스를 돕기 위하여 참전하였다가 덩켈크에서 철수한 뒤 노르만디 상륙전에 참여하였다. 한국전은 이 대대의 44번째 참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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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데일리 기사
영국인이 쓴 '임진강 전투' 그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
임진강 전투 주제로 쓴'마지막 한발' 출간기념 기자간담회
중공군 인해전술과 처절하게 싸운 용사들 "한국 성공에 보람"
1951년 중공군의 서울 재점령 의지를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 임진강 전투 영웅들인 영국군 글로스터 대대의 전투 상황을 기록한 책 ‘마지막 한발’ 한글판 출판기념회(엔드루 새먼 저, 시대정신 출간)가 19일 서울 정동 주한 영국대사관에서 열렸다.
‘적성전투’라고도 불리는 임진강 전투는 1951년 4월 문산-화천선에 집중투입된 중공군 36개 사단과 북괴군 1 개 군단 등 30만 대군 중 중공군 주력인 제 63군 3개 사단 4만2000명과 영국군이 주축인 영 연방군 제29보병여단간의 피비린내나는 사흘간의 전투를 일컫는 말이다.
전투 중 영국군 글로스터 대대원 750명은 퇴로가 차단된 채 중공군과 정면으로 맞서 격렬한 공방전을 벌였다. 적군에 비해 5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병력으로 버틴 나흘은 세계 전쟁사에도 유례가 없는 영웅적 투혼이었다. 글로스터 대대원 중 살아남은 사람은 50명에 불과했다.
미국 워싱턴 타임스, 영국 더 타임즈, 미국 포브스 등의 한국특파원을 지낸 프리랜서 기자 앤드루 새먼은 생존한 글로스터 대대원 50여명을 일일이 인터뷰해 지난해 4월 이를 ‘To the Last Round’라는 책으로 냈다. 지난해 12월 30일 출간된 ‘마지막 한발’은 그 한국어판이다. 글로스터 대대원들이 중공군에 맞서 마지막 한발의 총알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사용하며 용감하게 싸웠다는 뜻으로 책 제목을 삼았다.
이 책에는 1950년 11월 시변리 전투부터 1951년 4월 임진강 전투까지, 영국군이 치러내야했던 전투의 치열함과 비참함, 압록강변 포로수용소에서의 고난이 상세하게 묘사돼 있다.
전쟁이 끝나 모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여러 이유로 또다른 싸움을 해야 하는 참전용사들의 얘기도 담겨있다. 포로로 붙잡힌 경력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군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는 장교나 자신의 참호에서 끔찍하게 죽어가던 중공군 병사의 악몽에 시달리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게 되는 병사의 얘기가 그 예다.
이 중 일부는 한국을 방문해 눈부시게 발전한 한국의 모습과 참전용사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하는 한국 국민에게 감동을 받아 병이 낫거나 인생의 황혼기에 새로운 삶의 보람을 찾기도 한다.
새먼은 참전용사 개개인의 얘기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가 만난 영국군 생존자 대부분은 소총과 수류탄을 들고 참호 사이를 누볐던 대대급 이하 장교, 부사관, 병사들이다. 애국심, 희생정신, 전우애와 같은 이야기들은 기본이다.
'마지막 한발'의 저자 앤드류 새먼과 한국전쟁의 영웅 백선엽 예비역 대장 ⓒ 뉴데일리
책에는 전투 당시 참전용사들이 직접 찍은 사진과 기억을 떠올려 그린 그림, 격전지 전투 상황도, 참전용사 및 부대의 근황 등도 실려있다.
저자는 이날 “현재 한국의 성공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 혹독했던 시절의 나락 또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임진강에서 전투를 벌였던 사람들 얘기를 통해, 나는 ‘잊혀진 전쟁’에 조그마한 생명의 불씨를 불어 넣었기를 바란다. 내가 이 일에 성공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백선엽 전 육군참모총장, 마틴 유든 주한 영국대사, 주한 영국대사관 무관 마트 오핸런 준장 등이 참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