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12월 1500평 규모의 이 부지에 18m 높이로 세운 참전비는 탑 꼭대기에 은빛 비행기 세 대가 하늘을 향해 치솟는 형태로 조각됐고 탑의 양 날개는 전투기의 날개를 연상시켰다. 참전비 중앙엔 남아공의 보호동물이라는 羚羊(영양)이 실물 크기 정도로 조각돼 있었다.

탑 앞면의 은색 철판에 한국전에서 싸우다 죽은 37명의 이름과 계급, 戰死(전사)일자가 새겨져 있었다. ‘2.2.1951 lt W.E..St.E.Wilson(윌슨)’식으로 사망자의 관등성명과 사망일자가 적혀있다. 사망자 37명 대부분은 위의 윌슨 중위처럼 장교들이었다. 탑 뒷면엔 “자유와 국가간의 친선은 남아공화국의 높은 이상이요 자랑스런 유산이다. 이들이 치른 큰 희생은 영원한 격려이어라”는 내용의 비문이 적혀있다.


참전비로 오르는 계단의 타일이 깨진 채 떨어져 있었다. 立式(입식) 안내판은 5도쯤 기울어있었고 참전비 주위엔 먹다남은 음료수병 등이 있었다. 참전비 곳곳의 페인트칠도 벗겨져 있었고 주위 공원은 잡풀이 우거져 있었다.


참전비 앞으로 난 계단을 30개쯤 내려가자 경부고속도로가 나타났다. 내비게이션에 ‘고속도로상’이란 표시가 나온 이유를 알게 됐다. 평택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경부고속도로 진입 후 100미터쯤 되는 곳의 갓길에 차를 세우고 올라올 수도 있으나 고속도로 전방에 표지판이 없으므로 일반인이 찾기는 어렵다. 참전비 아래 고속도로와 붙은 언덕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참전비’란 가로 3m, 세로 70cm 정도의 양철 간판이 있으나 고속도로 운전자들이 볼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이 갓길에는 전방 200m 앞까지 무단주차를 금지한다는 푯말도 붙어있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6·25전쟁에 ‘참전 16國’ 중 유일하게 공군만 파견하였다. 1950년 7월1일 유엔의 지원결의에 대한 지지를 발표했고 전투비행대대를 파견했다. 1950년 11월 5일 비행 요원 255명을 일본에 도착시켰으며, 다음날 美공군으로부터 전투기(무스탕) 16대를 인수하였다. 이 공군부대는 1950년 11월 16일 부산 수영 비행장으로 이동하여 11월 19일부터 美공군과 합동으로 청천강 이북 지역에 대한 출격에 참가해 敵의 병력 집결지와 야전 보급소를 공격했다. 그 후, 이 대대는 지상군 전선의 유동에 따라 평양·수원·진해·여의도·횡성 등의 기지로 이동하면서 지상군에 대한 근접 항공 지원을 제공하고 적 후방 지역 차단 작전과 적 산업 시설 파괴 작전에 참가하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공군 대대는 6·25전쟁에 참전한 이후 총 1만2405회의 출격을 실시하였다. 탱크 44대, 야포 221개, 각종차량 891대 등을 完破(완파),半破(반파)했다. 3년간의 참전기간중 전사 34명, 포로 8명의 피해를 입었다.


글: 金東鉉(조갑제닷컴 기자)
사진:金永勳(프리랜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