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가미 나미오 교수가 4-5세기 일본의 고분에서 출토하는 馬具, 무기 등 유물이 前期의 농경적인 출토물과 전혀 다른 유목기마민족적, 전투적, 王制的인 점을 들어 기마민족의 일본 점령을 주장한 것과 비슷한 논리로 4세기 흉노계 기마민족이 경주 지역에 나타나 토착정권을 누르고 신라 지배층으로 자리잡았는데 이들이 바로 신라 김씨 왕족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新羅高墳硏究]를 쓴 崔秉鉉 숭실대 교수는 경주의 적석목곽분이 스키타이, 흉노 등 북방유목민족이 지켜왔던 墓制였음을 강조한다. 그가 그린 적석목곽분 분포도를 보면 흑해의 北岸에서부터 중앙아시아, 알타이 산맥, 몽골까지 뻗어 있다. 부여 고구려의 무대였던 북만주보다 훨씬 동쪽이다.
4-6세기 신라 적석목곽고분에서만 출토되고 백제, 고구려 고분에서는 나오지 않는 유물들이 많다. 금관 등 수많은 금제품, 角杯, 로만 글라스(로마 지역에서 만들어진 유리 잔 등), 페르샤 계통 銀器, 서양식 보검, 板狀嵌玉 팔찌 같은 것들은 로마나 페르샤, 중앙 아시아에서 유래되거나 수입된 물건들이다.
적석 목곽분도 물론 백제와 고구려에는 없는 묘제이다. 이런 사실은 신라로 들어온 기마민족 집단이 부여-고구려-백제와는 다른 계통이었음을 보여준다. 부여계통은 만주의 흥안령산맥 동쪽에 살았고 전형적인 유목민족이라기보다는 농업과 수렵을 겸한 퉁구스 계열의 종족이었다.
이에 반해 신라의 출토유물과 묘제 및 기록에 나타나는 풍습과 인명과 직명과 전설을 종합해보면 신라 토착세력을 정복한 기마집단은 보다 서쪽에서 유래한 것 같다. 즉, 신라 기마민족은 몽골고원에서 서쪽인 알타이 산맥 부근을 주무대로 삼았던 흉노-투르크 계통의 순수한 유목기마민족에 더 가깝다는 이야기이다.
학자들은 신라 적석목곽분의 출현과 그 출토유물의 성격이 前시대와 순리대로 연결, 발전된 형식이 아니라 4세기 전반기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 같은 돌출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일단의 북방 기마민족들이 혁명적으로 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4세기 들어 경주지역의 묘제가 토광묘에서 적석목곽분으로 갑자기 바뀌고 있고, 적석목곽분에선 토광묘에서 구경할 수 없었던 금, 금동, 은으로 만든 귀금속 공예품들과 다양하고 화려한 마구들이 풍부하게 나온다. 토광묘에서 발견되는 갑옷은 철판으로 만든 短甲이었으나 목곽분에선 철판조각을 이어붙여 만든 札甲이다.
이는 마치 같은 4세기 일본 고분에서 비슷한 현상이 발견되는 것과 비교된다. 즉 적석목곽분이란 묘제를 쓰고 금은 공예품을 좋아하며
기마전술을 구사하던 일단의 戰士들이 비슷한 시기에 일본과 경주, 그리고 서울 지역에 갑자기 출현한다.
최병현 교수는 위의 책에서 이렇게 썼다.
<적석 목곽분은 기마문화를 배결으로 한 북방아시아 목곽분문화의 직접 도래에 의해 돌발적으로 출현한 것이었고, 그것은 3세기말-4세기초부터 일어난 동아시아 기마민족 대이동의 와중에서 한 여파가 밀려온 결과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辰韓지역에서 신라왕국의 등장은 북방아시아계 적석목곽분의 출현이라는 배경을 갖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그와 같은 사정은 마한지역의 백제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판단된다. 마한지역도 고조선 계통의 토광묘 문화가 연장되고 있었다고 판단된다. 그러다가 경주에 적석목곽분이 등장하는 것과 같은 시기에 서울 강남에 方形基檀式 積石塚이 출현하게 되었는데, 그것도 역시 동아시아 기마민족의 대이동 와중에서 경주에 도달한 세력과는 계통과 출발지가 다른 것이었지만, 역시 기마문화를 배경으로 한 새로운 백제왕국이 등장하여 마한 제세력들을 통합하여 갔던 것이고 이렇게 하여 북쪽의 고구려와 함께 삼국이 정립되게 되었던 것이다>
신라 적석목곽분 시대는 삼국사기에 따르면 내물 마립간 이후 법흥왕까지의 신라김씨 왕조에 해당한다. 麻立干이란 말은 북방기마민족들이 쓰는 칸, 干에 뿌리를 둔 직명인데 여러 부족들의 우두머리란 뜻이다. 이 적석목곽분은 약200년 계속되다가 6세기 초 일시에 사라지고 橫穴式石室憤으로 교체된다. 崔秉鉉 교수는 이는 법흥왕의 개혁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법흥왕은 律令을 반포하고 불교를 받아들였다. 그 연장선상에서 호화의 극치를 달리던 적석목곽분의 묘제와 장례식도 간소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지배층의 의식 개혁이 일어난 것이다. 이때부터 신라 지배층은 고향인 북방초원과의 관계보다는 중국의 문물을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신라 지배층이 된 기마집단은 출현과 개혁이 칼처럼 분명하다. 이는 변화에 적응하는 이 집단의 과감한 성격을 반영하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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