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병대대 참전…英연방軍과 가평 일대에서 猛활약

뉴질랜드군 참전비(경기 가평군 북면 묵동리 691-1)를 찾아 “英연방 연대와의 코맨도 작전 6일간 7만2000발의 포탄 발사


전투병을 파견한 나라의 참전비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은 것이 뉴질랜드군 참전비다. 경기 가평군 북면 묵동리 691-1번지, 오스트레일리아군 참전비와 같은 공원 내에 마주보고 있다. 1.5m 정도의 자연석 한 면에 참전을 기념하는 동판을 붙여놓았다.



碑文(비문)도 ‘유엔 헌장의 숭고한 원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한국에서 복무한 모든 뉴질랜드 용사들의 공헌을 기념한다.(1950~1958)’ 로 간결하다. 1988년 9월 가평군에서 건립했다. 가평군 내에는 英연방 참전비,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캐나다군 참전비가 있는데 관리상태가 모두 좋았다. 참전비가 있는 공원의 청소상태도 청결했고, 시들었지만 국화송이가 곳곳의 참전비마다 놓여있었다.

비석 앞쪽의 안내문엔 뉴질랜드군의 가평 전투 당시의 戰績(전적)이 상세히 실렸다.
일부를 인용한다.

‘1951년 4월22일부터 25일 사이에 가평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에서 뉴질랜드군 제16야전 포병연대의 일부로 구성된 포병대대는 英연방 27여단과 한국군 6사단을 엄호 사격해 주었다. 4월25일 앤잭 데이(注:ANZAC DAY=호주와 뉴질랜드의 “참전용사의 날”) 전 30시간에 걸쳐 뉴질랜드 포병대대는 이 진지에서 3000야드까지 다가오는 적에게 1만 발 이상의 일제사격을 퍼부었다. 이 영웅적 방어로 제16야전포병연대는 1952년 2월20일 대한민국 대통령의 감사장을 수여받았다.’

뉴질랜드는 한국전에 지상군과 해군을 파병하였다. 뉴질랜드 해군은 1950년 7월 3일에 프리킷함 2척을 한국 해역으로 출동시켜 7월 30일 한국 해역에 들어와 美극동 해군 사령부의 작전 통제하에서 해상 작전을 수행하게 되었다. 뉴질랜드 해군은 휴전이 조인될 때까지 8척의 함정을 교대로 투입하면서 작전을 펼쳤다.

제16포병연대가 새로이 편성된 뉴질랜드 포병대대는 1950년 12월31일 부산에 도착했고 英제27여단에 소속돼 전투를 수행했다. 전투경험이 부족했던 뉴질랜드 포병은 英연방국인 호주와 영국군으로부터 기술적 지원을 많이 받았다. 뉴질랜드 포병 대대는 1951년 중공군의 신정공세 이후 영국군의 미들섹스연대 보병대대, 캐나다 보병대대에 대한 화력지원을 담당했다. 이 부대는 다음해 1월21일 英연방 제27여단에 배속되어 여단 작전을 지원하였으며, 1951년 7월28일에는 英연방 제1사단 사단 포병의 일부가 되어 영연방 제28여단(제27여단과 동일 부대)을 직접 지원하였다. 뉴질랜드군의 주요 전투를 소개한다.

*再반격작전 지원(1951. 2. 21~4. 18)
뉴질랜드 제16포병 연대는 1951년 중공군의 신정 공세 후 실시된 유엔군의 재 반격 작전기간 중 영연방 제27여단의 알바니선 진격 작전(여주 북방 주암리-홍천 남방 양덕원리)과 캔사스선 진격 작전(양덕원리-사창리 백운산)을 지원하였다.

*가평 전투 지원(1951. 4. 23~25)
이 연대는 사창리에서 한국군 제6사단을 지원하던 중 중공군의 춘계 공세를 맞게 되자, 이 사단의 철수를 지원하면서 가평으로 이동하여 영연방 제27여단과 합류하였다. 이 연대는 그곳에서 사창리를 돌파하고 가평으로 진출하려던 중공군과 영연방 제27사단이 벌인 ‘가평 전투’를 지원하여 중공군의 춘계 공세를 저지하는데 기여하였다.

*코맨도 작전 지원(1951. 10. 3~8)
이 연대는 전곡 서쪽 15km 지점 세골에서 영연방 제1사단이 실시한 코맨도 작전시 영연방 제28여단의 고왕산·마량산 공략 작전을 지원하였다. 이 연대는 6일간의 이 전투에서 7만2000발의 포탄을 발사하여 한국전에 참전한 이래 단일 작전으로는 가장 많은 포탄을 사격하였다.

*고왕산 전투 지원(1951. 10. 23)
이 연대는 캐나다 제25여단이 고왕산에서 중공군의 기습을 받아 벌인 방어 전투를 지원하였다. 이 연대는 사단의 다른 포병과 함께 이 전투를 지원하였으며 이때 발사한 포탄의 수는 1만2000여 발이었으며, 반면 중공군도 이 고지에 4000여 발을 사격하였다.

*후크 고지 전투 지원(1953. 5. 2~28)
이 연대는 1953년 5월 2일 사미천 서안의 후크 고지에서 캐나다 여단이 중공군의 기습을 받아 벌인 방어 전투와 5월 28일 같은 지역에서 英연방 제29여단이 중공군의 공격을 받아 벌인 방어 전투를 지원하였다. 이 양 전투에서 캐나다군이나 영국군 공히 중공군에 고지를 점령당하였으나 포병 지원 사격의 도움으로 역습에 성공하여 고지를 회복하였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은 이 고지에 1만 발의 포탄을 사격하였으며, 永연방 사단은 2만4000발을 사격하였다. 이 중 4500발은 뉴질랜드 포병 대대가 사격한 것이었다.

휴전 후, 뉴질랜드 해군은 1954년 3월에, 지상군은 1955년 11월에 철수하였다. 참전기간 중 전사 23명, 부상 79명, 실종 1명의 피해를 입었다.





글: 金東鉉(조갑제닷컴 기자)
사진: 金永勳(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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