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隔室(격실)에서 쾅하는 소리와 함께 공중에 붕 떴다."

천안함 생존 승조원들 증언.
천안함 생존 승조원들이 7일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열린 합동조사결과 발표에 참석해 침몰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다음은 조선닷컴에 실린, 기자들과 최원일 함장을 비롯한 천안함 승조원들의 일문일답.

-사고발생 보름이 지났다. 함장은 생존자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는가.
(최 함장) “제게 복귀신고 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침몰시각에 논란을 빚고 있다. 몇 시쯤에 사건이 발생했는지 당시 상황은.
(대위 박연수) “제가 마지막에 눈으로 艦橋 당직士官 모니터를 확인했을 때 21시24분이었다. 정확성은 판단할 수 없지만 제가 눈으로 본 시간은 그렇다.”

-사고 직전에 어떤 상황이었나?
(대위 박연수) “함교 당직사관인 저는 사고 직전까지 정상 근무했다. 문제가 있었으면 정상 보고됐을 것이다. 따로 보고가 없었고 상황이라고 할 만한 내용이 없었다. 상황이란 용어 자체도 잘못된 것 같다. 특별한 상황 없었다. ”

-소나(수중음파탐지기)에 이상 징후 포착된 것이 있나.
(음파탐지병) “특별한 신호가 없었고 당직자는 정상 근무 중이었다.”

-천암함이 사고해역에서 16번 정도 임무를 수행했다는데 어떤 임무인가.
(최원일 함장) “약 20개월을 근무해 그 구역은 누구보다 자신 있다. 16회 정도 경계근무를 했다. 주요 임무는 한 마디로 도발대비 태세 유지였다.”

-사고 순간에 폭발음 있었나? 이후 어떤 상황이 벌어졌나?
(상사 오승탁) “사고 순간 갑판 아래 2층에 있었다. 격실에서 쾅하는 소리와 함께 공중에 붕 떴다. 정전이 되면서 컴퓨터가 제 얼굴을 쳤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보니 암흑세계였다. 우측 출입문 손잡이는 항상 잡고 다니기 때문에 위치를 잘 알고 있다. 잡고 나가려고 했는데 잡히지 않았다. 출입문이 바닥에 있었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90도 완전히 기운 것이다. 귀가 아플 정도로 소리가 아주 컸다. 문 주위에 컴퓨터 책상 등이 무너져 문이 안 열렸다.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손에 잡히는대로 기물을 치워서 문 열고 15분만에 나왔다.”

-당시 쿵 소리의 느낌이 뭐였는지 판단되냐?
(조타 담당) “외부에 의한 충격이란 생각이다. 자세한 건 모르겠다.”

-화약냄새나 여타 폭발징후라고 느꼈던 것이 있나?
(탄약 담당 책임자) “화염이 있다 하면 배에 불이 나고 화염냄새가 진동한다. 화염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

-후타실에 5명이 있었다는데, 왜?
(운동기구 체육담당) “그 시간대면 항상 가 있다. 운동 좋아해서 사고 1시간 반 전에 운동했다. 항상 운동하며 봐왔던 동료들이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침몰 직전 휴대폰 통화한 장병은 누구인가? 급하게 전화를 끊을 상황이 있었나?
(전탐실 허순행 상사) “ 21시14분에서 18분까지 통화했다. 집사람, 딸과 통화했다. 개인적인 내용이다. 집사람이 현재 임신중이다.”

(이채권 대위) “제가 행정업무로 기관장실에 있었다. 특별한 상황 있었으면 고속추진 위한 기관작업을 위해 기관 조종실에 있었어야 했다. 일정 시간 이전까지도 상황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갑판에 있던 사람은 물기둥을 봤나?
“당시 艦橋 우현 見視를 맡고 있었다. 함교 밖에 있는 右舷은 외부를 관찰하는 역할이다. 물기둥 같은 특별한 점은 없었다. 쾅 소리와 심한 진동이 있었다.”

-천안함 내부적으로 보수 측면에서 문제가 제기됐나?
“물이 샌다는 얘기는 함정 내부의 온도차 때문이다. 파이프에 맺힌 응결수를 물이 새는 것으로 오해했다. 함정 내에서 외부에서 물이 스며들거나 하는 상황은 없다. 원하면 서면으로도 작성해줄 수 있다.”

-마지막 안전점검 일자와 결과는?
“일자는 기억은 못한다. 부임한 지 50일 정도여서 이전 상황에 대해 熟知 못했다. 제 방에 있을 인수인계 자료를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출항 결정 2~3일 전부터 장비작동 등을 확인하기 때문에 선체 자체노후 등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고 후 구조선이 올 때까지 1시간 동안 어떻게 뭐하고 있었나?
(함장) “최초 함교에서 좌현으로 통로를 나왔다. 구조 올 때까지 추워하거나 심리적으로 불안정해 하는 장병들을 안정시키고 환자들이 먼저 구조될 수 있도록 인원관리를 했다. 갑판에 올라오니 艦尾 쪽이 안보였고 환자 및 대원들이 갑판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김덕원 소령. 부함장) “함장실 문이 잠겨 있어서 풀기 위해 노력했다. 함장이 올라와서 인원파악을 지시했다. 침착하게 여러 대원들이 그 자리에 구조세력 오는 것을 기다렸다. 작전병과 제가 고속정이 계류 가능한 곳을 파악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자체보관 하던 구명정 두 개를 내렸다. 이후 해경 립을 이용해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함장) “휴대폰으로 함대사와 지속적 교신을 유지했다. 고속정, 립 등에 지원요청했다. 구조된 인원, 생존인원을 보고했다. 생존된 인원 중에 부상 심하지 않은 인원은 함내부에 들어가 생존인원을 다시 확인하고 구조했다.”

-장병들 핸드폰을 회수한 사실이 있나“
(함장) ”있다. 구조자들이 해경 고속정 등 여러 군데에 퍼져 있어서 누가 있다 없다 확인하면 처음부터 혼란갈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다.“
(작전부 침실. 김정운 상사) ”정전됐을때 艦尾로 가서 발전기를 기동해서 함정의 電源을 복구하려고 했다. 艦尾로 가려고 바라봤을때 벌써 절단되고 없었다. 바다에 달빛이 반짝여 艦尾가 없는 것을 알고는 그 이후 함교로 올라가서 함장 지시에 따랐다. 고속정이 도착했을 때 敵일지 모르니까 모두 머리를 숙이고 있으라고 했다."


한편 국방부는 사고 시각을 9시22분으로 확정하였다. KNTDS(전술지휘체계) 화면상 천안함 소실 위치와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기상청의 지진파 확인, 천안함과 2함대사간 국제상선공통망 교신, 해병 6여단 경계근무자들의 관측, 생존자와 실종자들의 휴대전화 통화 기록 등을 종합할 때 사고시각은 오후 9시22분으로 판단된다는 것이. KNTDS에 기록된 자료에는 천안함으로부터 발신되는 子艦 신호가 밤 9시21분57초에 중단됐다.

백령도의 지진파 관측소는 밤 9시21분58초에 진도 1.5 규모의 지진파를 감지했으며 백령도 기상대 관측소는 오후 9시22분께 1.5 규모의 지진파를 탐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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