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향록 서울 초동교회 원로목사가 4월11일 오전 9시, 향년 90세로 별세했다.
故 조향록 목사는 함경남도 북청 출신으로 1943년 조선신학교를 졸업, 1954년부터 초동교회 목사를 맡아왔다. 한국 신학대 학장, 생명의 전화 이사장,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장,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등을 역임했다.
빈소는 강남세브란스병원, 발인 예배는 4월13일 오전 9시 초동교회[(02)2019-4001]에서 열렸다.
아래는 조향록 목사가 월간조선에 기고했던 글이다.
[時論] 金日成·金正日 정권의 본질에 대하여
북한정권은 시한부요, 북한주민은 영원한 同族이다
金日成의 끝없는 政敵 숙청
盧武鉉 정부와 국내 左派경향의 정치인·지식인들은 북한에 관한 한 고의인지 진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큰 환각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정권과 북한주민을 구별하지 않고 일체화하는 논조와 북한정권의 파멸이 곧 한국의 파멸로 이어진다는 기괴한 논조가 그것이다. 북한주민은 신라통일 이래 천수백 년간 우리와 같이 한 민족이요, 영욕을 함께한 동포요, 骨肉之親(골육지친)이다.
1945년 美·蘇 두 군대가 한반도에 진주한 후, 그 진주軍의 후원을 입어 처음으로 남·북의 두 정권으로 나누어졌다. 우리는 그 나누어짐을 외세에 의한 분단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외세도 駐韓 일본군을 완전 축출한 후 소련군은 北에서, 미군은 南에서 각각 철수해 갔다. 바로 그 틈새에 북한 金日成 공산정권이 군대를 앞세워 무방비 상태의 한국을 침략해 왔다. 외세와의 전쟁이 아니요, 동족살육이다. 金日成 공산정권의 전쟁목적은 적화통일이었다.
그 전쟁의 결과는 공산민족통일도 공산적화통일도 실현하지 못하고 北의 패전으로 끝났다. 게다가 金日成 공산정권의 배후세력으로 북한을 돕던 소련과 중공도 슬그머니 한발 뒤로 물러서 버렸다. 따라서 金日成의 공산정권은 정치적 기반마저 몰락의 벼랑 끝에 몰리게 됐다.
그 사태의 급격한 진전을 알아차린 金日成은 당시 소위 「갑산파」라 불린 자기의 소수 게릴라 군사집단 출신을 주도하여 패전 후 폐허에서 허덕이는 북한內 토착공산주의 정치지도세력을 일시에 숙청해 버리고 북한정권 주도권을 실질적으로 독점하게 되었다. 그 까닭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때까지는 점령군의 지원으로 金日成이 북한정권의 수령이 되었으나, 북한의 공산주의 토착정치세력을 주도할 독자적 정치기반은 가지지 못했다. 북한內 토착공산주의 정치세력은 북한內에서 知的 엘리트 집단이었다.
동시에 남한에서 월북한 朴憲永(박헌영) 일파까지 합세된 북한공산정권을 수십 명의 게릴라 출신들로서 통제조정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휴전협정 후 북한內의 정치질서가 제대로 기능을 되찾게 되면 제일 먼저 논의될 것은 패전책임 문제였다. 그 불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金日成 수령에게 집중될 것이 명백하다. 그것을 예감했던지 金日成은 동족상잔에서 패전한 뒤 제1차로 북한內 토착공산주의 정치세력의 두목들을 일시에 제거했다.
뒤이어 소련과 중국에서 일시 귀국하여 조국 건설을 돕고 있던 중국·소련 교포 출신 공산주의 지도자들을 추방 및 살해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월북한 朴憲永과 남한 공산당 거물 37명을 일시에 추방·처형 등으로 완전히 제거해 버렸다.
朴憲永 사형 죄목은 「미군 스파이」였다. 金日成 정권은 공산주의 이념을 실현하려는 정권이 아니다. 金日成이 그에게 아부하는 추종적 지식인들로써 金日成 북한정권의 권력기반이 될 새로운 이념체계를 정립한 것이 소위 「金日成 민족주체사상」이다. 그 작업에 참여했던 분들 중 한 분이 현재 서울에 망명해 있는 黃長燁씨로 알려져 있다.
그 「주체사상」은 공산주의 정치권력이 그 역사적 진행과정에서 이미 진전되어 온 몇 개의 단계에 이어진 한 토막이다. 소련공산당과 슬라브 민족주의와의 제휴, 그리고 毛澤東에 의한 중국의 공산당 수정주의 노선 등에 연결된다.
공산주의는 이때부터 정치권력 창출과 그 권력유지의 위장된 도구로 변질되었다. 그리하여 공산주의 이론이 극도로 기피했던 보수적 민족주의와 일체화해 제국주의적 독재통치권력의 수단으로 변했다.
절대왕권체계 확립한 金日成·金正日
이 시기에 공산주의 혁명의 포악성이 反휴머니즘으로 기울고 있는 진상을 우려한 소련 및 동구권內의 젊은 지식인들은 공산주의와 휴머니즘의 연결을 다시 시도해 보려고 많은 논문과 저술을 쏟아 냈다.
그러나 스탈린이 소련공산당의 통치권을 확립하면서 그러한 논의조차도 反혁명으로 몰아 그 명맥을 끊어 버렸다. 바로 이러한 공산권內 권력주의적 이념변천의 흐름을 이어 북한의 金日成 주체사상은 공산주의와 민족주의를 이념적으로 일체화하고, 그 민족의 주체성 확립의 기반을 인민대중으로 규정했다.
인민대중이 민족주체인 경우, 그 주체를 대표하는 인민 단일구조적 정치 집약체인 黨·정권의 수령이 그 주체의 핵심이라는 논리로 결론을 지었다. 루이 14세의 『짐이 곧 국가다』 라는 말을 연상케 한다. 그 논리와 기조에 의하여 金日成과 그의 정권은 이념적으로도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 정권이 아니라 중세 절대왕권체계로 변해 버렸다.
그 후 金日成 정권은 金日成 왕조정권 체계를 성립하고, 金正日이 代를 이어 지속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자·민주주의자·자유사상가·종교신봉자는 물론 남·북한內 공산주의자·사회주의자들까지, 즉 정치이념적 知性계층을 완전히 소탕하고 소멸시켰다. 그리고 북한동포 2500만의 인간성과 良識(양식)에 의한 비판기능마저 소멸시키고 북한을 惡의 수용소로 만들었다. 부시 대통령이 北을 「惡의 축」이라고 한 것은 그 실체에 대한 표현으로서 그보다 더 적절한 말이 없기 때문이다. 無産노동자·농민의 이름으로 정권을 잡은 자가 궁전에서 제왕같이 살면서 노동자 농민을 노예로 만들고, 군대로 국가를 통치하는 정권이 이 세상에 그밖에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
現 시점에서 북한정권은 공산주의 및 金日成 주체사상 등 이념적 관점으로서 그 정권 실체를 논의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이제 우리는 한반도, 그리고 對북한 관계에 있어서 북한정권과 북한주민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아는 그대로 밝혀 놓고 그 대응태세를 논의해야 한다.
북한정권과 북한주민의 실체
1. 북한주민과 북한정권은 일체가 아니다.
ㄱ. 우리가 듣는 말은 金正日과 그를 대변하는 정권의 말일 뿐 북한 주민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스스로 하는 말은 듣지 못했다.
ㄴ. 우리는 북한정권자가 보여 주는 곳만 보았고, 우리 스스로 북한의 모습을 다 보지 못했다. 다 본 자도 없다.
ㄷ. 북한주민은 엄연히 우리와 같이 동포요, 형제자매들이다.
2. 북한정권은 동존상잔은 물론이요 북한內의 지식인, 종교인, 공산주의 사상가들까지도 몰살시켰다. 북한정권은 한반도 북쪽에서 50년간 총검으로 독재권력을 유지해 오는 폭력집단이다.
3. 북한정권이 망하는 것은 북한주민이 망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주민이 해방되고 자유를 얻는 일이다.
4. 북한정권이 망하는 것이 한국과 한반도가 같이 망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50년간 나누어졌던 남북동포가 한 민족으로 하나가 되고, 분단된 국토가 하나가 되는 길이다. 한반도에서 전쟁공포가 사라지고 다 함께 평화와 자유를 누리는 일이다.
5. 북한정권의 멸망으로 북한주민이 대한민국에 흡수되는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은 헌법에 의하여 국민의 투표로서 임기 5년간의 새 정부를 탄생시킨다. 그와 똑같이 북한동포도 주권국민으로서 자유롭게 새 통일국가를 세우는 데 주권행사를 하는 주인이 된다.
6. 가짜 통일론자·좌경정치인·지식인 등이, 북한정권이 북한주민과 일체인 양 표현하는 논조와, 북한정권의 파멸이 한반도 및 대한민국의 파멸까지도 이어진다는 등 논조는, 한국內에 잠입한 북한정권의 첩자들, 그리고 金正日 정권의 몰락에 동반 자살을 자청하는 자들의 논조일 뿐이다. 그러한 논조는 논조자체로서도 불합리하고 실제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7. 북한을 돕는다 하여 북한정권에 막대한 현금과 물자를 주는 것은 북한동포를 돕는 일이 아니다.
북한정권을 돕는 물질적 지원은 북한주민(내 동포)을 그 자리에서 멸철시키기 위한 북한정권자들의 권력수단을 원조하는 일이 된다. 그 지원은 대한민국 국민의 혈세로 모아진 자금이기 때문에 국민의 동의 없이 어느 통치자도 자기의 정치적 결단만으로써 줄 수 없다. 동시에 국민의 동의를 얻어 원조하는 경우에도 그 지원 수혜자들에 대한 현장검증이 절대 필요하다(6·25 전쟁 때 유엔기구로부터 우리가 받은 지원도 모두 현장검증이 조건이 됐다).
8. 대한민국이 북한의 군사침략을 억제할 수 있는 완전무결한 보장이 되어지는 전제下에선 한국內에서 어떠한 주의나 사상도 연구와 토론에 있어서 제약이 없기를 기대한다.맹목적 反공산주의가 왜곡된 공산주의와 기형적 공산주의자들을 만들어 냈다.
9. 북한정권을 동정하고 동경하는 정치가·사상가들은 공산주의와 주체사상에 관해 잘, 그리고 더 깊이, 공부하시기를 권고한다. 그것이 과연 한민족의 내일을 밝게 창조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될 수 있는가 아닌가. 공산주의를 잘 알고 또 실행하던 자들은 왜 그것을 버렸는가. 또 공산주의 정권들은 왜 모두 패망했는가. 金日成 주체사상은 무엇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그 주체사상으로 만들어진 북한정권의 실체는 어떠한가. 인민의 정권인가, 농민노동자의 정권인가. 진상을 더듬어 보기를 권고한다.
현명한 정치지도자 절실히 요구
평등의 가치는 인간이 영원히 추구해야 할 가치다. 인간이면 누구나 다함께 누려야만 할 당연한 권리이다. 그것은 공산주의로서는 얻을 수도 없고, 누릴 수도 없는 공허한 환상이다. 20세기를 시끄럽게 하고 사라진 공산주의·공산당·공산정권의 몰락은 미국의 힘 때문만이 아니다. 그 공산주의의 체내에 있는 자기모순 때문에 언젠가는 소멸하게 되어 있었다.
최근 북한 核문제 해결과 더불어 북한정권의 운명에 끼칠 정치·군사적 영향 등을 고려하면서 한국정부의 對북한 정책은 신중해야 한다. 북한정권은 시한부 권력체제요, 북한주민은 영원한 우리의 동포요, 혈육지친이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주변국가들은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도 외면할 수 없는 상호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대통령은 물론 정부 당국자가 對北 및 對우방국들에게 미칠 언동은 절대 자제해야 한다. 때는 한민족 7000만의 역사적 운명이 좌우될 시점인데, 실로 현명하고 무게 있는 정치지도자가 절실히 요구된다.●
[趙香祿 목사의 새해 기도]
『나무 뿌리에 걸쳐 매달려 있는 조국─하나님이 우리 손을 놓지 않으신다면…』
자유민주 국민·국가 50년의 역사를 空으로 돌리고…
새해에 축복을 빌어야 할 글인데도 나는 그렇지 못하다. 값비싼 새해 선물을 한아름 안고 문 앞에 왔던 천사가 대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 뒤돌아서는 느낌이다. 값진 보물을 받기엔 우리의 손이 너무도 더러워졌다. 축복의 천사를 맞이하기엔 집안사정이 엉망이다.
나라 없이 살던 암울한 시절에 나는 나라만 되찾으면 하늘에 오를 듯싶었는데 그렇지 못했다. 두 쪽으로 나뉘어 서로 싸우고, 또 싸워서 죽이고, 거리마다 불바다를 만들었다.
日帝침략 동안 왜적이 우리를 죽인 수보다도 「독립투사」 金日成과 「인민의 동무」 공산당에 살해된 남북동족의 수가 더 많았다. 원수의 가슴에 총 한 방도 제대로 겨누지 못했던 자들이 제 나라, 제 땅에서 수많은 동족의 목숨을 백정이 개 잡듯 죽였다.
이 원통함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을까. 이렇게 제 동족의 총알에 죽어 가던 우리에게 한때나마 먹을 것, 입을 것을 도와주고 수십만 젊은 장병을 보내 목숨 바쳐 우리(자유한국)를 도와 싸워 주던 그들에게조차도 언제 봤던가 싶게 등을 돌리고 있다.
이제 어느 누가 우리에게 우정의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겠는가?
戰火(전화)에 재가 된 이 땅 위에서 「잘 살아보세」, 「새마을 노래」, 그때 그것은 우리의 염원이요 함성이었는데도 그 피눈물을 먹고 자란 자식들에게선 그것조차 비웃음거리가 되고 죽어 간 혼령들마저 타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되찾은 내 나라를 바르고 굳건히 세워 후손들에게 물려주려고 목 아프게 외치고, 손발이 닳도록 일했던 선배·志士(지사)·賢人(현인)들의 報國獻身(보국헌신)은 담벼락에 붙었던 선거벽보처럼 누구의 머리에도 남지 않게 말끔히 지워지고 있다. 동작동 골짜기를 꽉 메우고도 모자라 대전국립묘지에까지 채워져 가는 순국장병들은 누구의 총탄에 맞아 죽은 자들인가? 순국장병, 순국열사들의 죽음은 개죽음이 되고 있다.
韓民族史 이래 처음 세운 자유민주국민국가 50년의 역사를 空으로 돌리고, 그 가치체계와, 이념적 기반과 권력구조와 문화풍토까지도 조직적으로 파괴하여 가고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 그것은 누구에 의하여 무엇을 하려 함일까? 아벨 카뮤의 말─ 「인간은 언제나 반역하는 존재」, 그렇게 인간은 역설적이다.
「과거 청산」은 신년사가 될 수 없다
그뿐인가?
흰밥에 고기반찬을 먹여 준다던 그들은 오늘도 宮殿(궁전)에 살면서도, 수백만 북쪽동포들은 굶어서 죽어 가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쪽은 그들에게 돈을 주어 원자폭탄을 만들게 하고,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그들의 후원자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내 나라 내 국적이 어디인가?
그것이 북한동포를 위한 우리의 同胞愛(동포애)인가? 아니면 주변국가들에 둘러싸여 외압을 받고 있는 북한정권과의 共助정책인가?
옛날 옛적 우리 민족은 조상님이 야생 곰과 교배하여 낳은 자식들이라 했다. 그때 그 교배의 대상이 곰이 아니라 제 어미, 제 새끼 가릴 것 없이 마구 물어뜯는 미친개였던 모양이다.
2005년 오늘 우리나라를 이끄는 젊은 세대는 새해를 맞는 벽두에 국민에게 다가오는 밝은 내일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과거사 청산」, 그것은 흘러간 옛 노래다. 그것이 2005년의 신년사가 될 수 없다.
내 인생 80을 훨씬 넘도록 살아오는 동안 한 일이 다음 세대를 위함이었고,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려 인고의 세월을 참고, 일해 왔다. 그런데 2004년을 다 넘기고 새해의 문턱을 넘으려 하니 다음 내 발을 내려 놓을 2005년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우울하다.
시계바늘이야 하루에도 두 번씩은 가고 또 제자리에 돌아오지만 인생에서는 가는 오늘이 그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새해를 맞을 적마다 지난해를 참회하고 새해에는 갑절을 더하여 지난해의 손실을 보충한다고 마음먹고 내 스스로에게 그리고 이웃을 향해서도 격려와 축복을 빌어 왔는데, 이제는 내일을 기약할 내 시간은 남아 있지 않다. 내게만 시간이 다한 것일까? 아니다. 시간은 인생 모두에게 언제나 종말을 알리는 弔鐘(조종)이다. 인간의 실존은 더 붙잡을 연줄도 없고 남은 시간의 여백도 없다. 이렇게 인간은 언제나 마지막 벼랑 끝 언저리에 서 있다.
이스라엘 민족국가 탄생의 산파역을 했던 사무엘이 나라를 창건할 때 가졌던 기대와 꿈은 南·北 왕국의 분열을 거쳐 기원전 772년 北 왕국의 멸망, 기원전 587년 南 왕국의 멸망으로 소멸되고 마지막을 지켜보았던 예레미아의 눈물로써 그 꿈도 그 현실도 끝장을 보았다.
깊고 깊은 함정 속에 굴러 떨어지다가 나무 뿌리에 걸쳐 매달려 있는 자에게도 살 길이 있을까?
「하나님이 우리 손을 놓지 않으신다면」그것뿐이다. 내가 오늘 내 나라, 내 동포에게 빌어 줄 새해의 기원은 이 말뿐이다. ●
[時論] 『나는 목사다. 내 일생 누구의 약점과 허물을 보고 들어도 다른 누구에게 옮겨 말한 일이 없는데…』
4500만 선객을 태운 대한민국은 지금 제 정신을 잃은 술 취한 선장이 노를 잡고 있는 느낌이다. 이럴 때엔 애국자도 애국할 수 없고 유능한 정객도 뜻을 펼 수 없게 된다. 실로 통탄할 뿐이다
盧대통령의 망상
지난 연말 盧대통령은 美 국방장관 럼즈펠드의 訪韓을 즈음하여 향후 10년 내에 우리도 자주국방을 이루겠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말은 美 국방장관의 내한과 예방을 받는 자리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입 밖에 내놓아서는 안 될 말이다. 그 나라의 군대가 북한 침략을 막아 주어서 살아난 한국, 그리고 50년 세월을 수도 50km 밖에 중무장한 북한 공산군 70%의 主力을 앞에 대치하고서 태평세월인 양 살고 있는 서울의 방위를 함께 담당하고 있는 동맹국 군사책임자에게 대한민국 대통령이 그렇게 말했다면 그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겠는가? 럼즈펠드가 『한국이 자주국방을 했다고 해도 그때도 동맹국은 필요할 것』이라고 대답한 그의 말뜻을 우리 대통령은 바로 알아들었는지 알 수 없다.
한 나라가 크든 작든 自國의 안전을 위해 자주국방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나 혼자 힘만으로 자주국방을 한다는 말이 아니다. 21세기에 접어든 지금 국가 방위의 군사적 체제는 작게는 인접 국가들과의 집단안보 체제로, 크게는 글로벌 안보체제로 그 개념이 전환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주변에 3大 강국들과 국경을 인접하고 있다. 이 경우, 자주국방을 어떻게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는 깊은 연구와 검토가 있어야 한다.
자주국방은 그 내용에 있어서 상대적이고 유동적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북한군의 침략을 견제, 억제해야 할 당면 문제를 안고 있다. 거기에 대비한 우리의 국가방위책은 국군의 군사력과 「주한미군+미국」의 힘이 합쳐져서 그 견제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앞으로 10년 내에 자주국방 태세를 갖추겠다는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10년 안에 미군을 내보내고 우리 군대가 그에 상응한 군사력을 갖추겠다는 말로 짐작된다. 가능하면 북한 군사력에 대항하여 독자적으로 억제력 이상의 군사적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군사 강국을 만들겠다는 뜻으로 짐작되는데, 그 어느 것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망상이다.
그것이 우리 국민에게 지워질 군사비 부담도 현실적으로 막대하거니와 감당한다 하더라도 그 막대한 예산, 그 막강한 군사력은 누구를 겨냥하고 하는 것인가의 문제다. 북한 金正日이 북한 주민 수백만 명을 기아선상에 몰아넣고 음·양으로 모은 돈으로 원자폭탄을 만들고, 인민군의 총부리를 남쪽에 있는 자기 동족의 가슴에 겨누고 있는데 우리 정부도 그와 똑같이 미친 짓을 하겠다는 발상이 된다.
북한이 적국이 아닌 경우라도, 또 통일이 이루어진 후에라도 우리나라의 자주국방은 제약될 현실적 요인이 너무도 많다. 우리가 자주국방을 한다 하여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의 국방력, 러시아의 국방력, 일본의 국방력을 대상으로 할 것인가 등의 현실적 문제를 두고 깊이 생각할 과제다. 그것은 적어도 南北통일을 이루고 난 다음 우리나라의 안전보장이 주변 국가들의 가시적 상황변화 여하에 따라 결정될 가변적 사안이다. 지금 당장은 우리나라가 주변 국가들과 함께 북한 핵무기 제거를 위해 全力을 다해 씨름할 때다.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될 말
바로 이 한복판에 앉아 있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10년 내로 자주국방을 하겠다니 그 말 내용이 무엇인지 국민은 반드시 알아야겠다.
지금은 北核 저지를 위해 우리와 함께 한반도 주변 국가들이 공동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그 나라들은 언제나 우리의 우방 혹은 동맹국가들만이 아니었다. 과거 1세기간 주변 국가들은 우리 민족 국가가 당해 왔던 일제침략, 민족분단 그리고 6·25 공산군 남침 등에 직·간접으로 관여했던 국가들이었다.
『오늘의 敵이 내일의 우방일 수 있다』는 말은 너무도 평면적인 표현이다. 오늘 당장에도 우방과 敵은 혼재하고 있다. 현실적으로도 이러한 냉엄한 상황 한복판에 앉아 있는 대한민국의 국가안보와 우리 민족의 생존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는 국론 또는 국책으로 결정되지 않은 이와 같은 말은 입 밖에 내어서는 안 된다.
현재 우리의 자주국방은 우리만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以遠制近(이원제근)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 국방정책자들의 두뇌가 짜낸 지혜가 아니라 무고한 우리 민족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고 얻은 역사체험의 산물이다. 6·25 공산 남침은 당시 남한 내에서 미군 철수가 불러 온 자해적 재앙이기도 했다.
당시 대통령 李承晩까지도 미군 철수로 인한 국가안보의 공백지대화를 너무 쉽게 방심했다. 근 50년 동안 왜적에게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기고 철치부심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워 오던 애국지사들로서는 어떠한 외국의 간섭, 그리고 외국 군대의 주둔을 용인할 심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안보는 마음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현재 미군의 한국 주둔은 북한의 전쟁도발을 억제하는 힘으로 우리의 우방으로서 유용할 뿐 아니라 남북한이 민주적 통일을 이루고 난 이후 상당기간 주변 강대국들의 상호견제를 위해서도 필요한 우리의 자주국방책이라는 점을 명백히 인식해야 한다.
21세기에 접어든 우리나라가 지금 민주화, 세계화는 물론 경제적으로 東北亞의 물류 중심기지化 등 찬란한 미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라도 현재보다 더 좋은 代案을 마련하기까지는 미군 주둔이 우리의 국익을 위해 절대 필요하다. 우리의 다음 세대가 金正日의 핵무기 군사강국화와 같은 망상을 꿈에라도 갖고 있으면 안 된다.
국책사업 중단으로 인한 손실은 탄핵감
盧대통령은 취임 1년도 채 되기 전에 까닭 없이 국가 이익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 새만금 간척사업, 경부고속철도사업 등의 연기로 인한 손해가 수천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 사업들은 국책사업으로 수년간 공사가 진행되어 오던 일이다. 국책사업이란 어느 해당 지역 주민의 이해 관계가 한 시점, 한 시대의 특정인들의 견해 차이 등으로 사역을 중단할 성격이 아니다. 일의 시작은 매양 신중해야 하지만 일단 시작한 일은 잠시라도 중단하면 곧 손해를 입는다.
최근 일년 가까이 공사를 중단하고 있던 서울 북부간선도로 사패산 터널공사도 그대로 재개한다고 하니 세상에 이런 정부가 어디에 또 있는가. 그 공사 중단으로 인한 국가적 손실은 누가 보상하는가. 그 일들은 盧대통령의 선거공약이라고 들었다. 선거공약이었다면 盧대통령은 반드시 공사 중단을 시켜야만 할 국가 이익을 위해 더 나은 代案을 내어 놓아야 하고 그 代案을 실천할 수 없었던 이유도 밝혀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盧대통령의 선거공약은 代案 없는 의도적인 거짓말이 되고 공사 중단은 그 거짓말을 메우기 위한 얇은 술책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된다.
그 사업 중단으로 입은 국가적 손실은 대통령이 탄핵을 받고도 남을 큰 죄악이다. 4500만 선객을 태운 대한민국은 지금 제 정신을 잃은 술 취한 선장이 노를 잡고 있는 느낌이다. 이럴 때엔 애국자도 애국할 수 없고 유능한 정객도 뜻을 펼 수 없게 된다. 실로 통탄할 뿐이다.
나는 목사다. 내 일생 누구의 약점과 허물을 보고 들어도 다른 누구에게 옮겨 말한 일이 없다. 목사가 지녀야 할 제1 덕목이 그것이라 믿고 노력해 왔다. 그런데 나는 지금 우리의 현직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글을 쓴다. 대통령의 그 언동 하나하나가 4500만 국민, 그리고 7000만 우리 민족 개개인의 일상생활에 직결된다는 점 때문이다. 아니 지난 1세기간 우리 민족의 운명에 직결되었던 뼈아프게 원통한 체험을 참을 수 없어 이 글을 쓴다.●
盧武鉉 대통령에게 주는 趙香祿 목사의 편지
『물러나시오. 인간 盧武鉉의 순수함, 정직함만이라도 기억하게 해주시오』
盧대통령의 참담한 심정을 안다
盧武鉉 대통령이 재신임을 받고 물러나겠다고 했다. 어안이 벙벙한 일이다. 盧대통령은 취임선서에서 국법준수를 국민 앞에 서약했다. 국법에 없는 재신임을 묻겠다는 말은 대통령으로선 할 수 없는 말이고, 또 해서는 안 될 마지막 말이다.
재신임을 묻는다 해도 관계 법률규정 제정 등 처리는 국회의 임무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혼자서 불쑥 할 수 있는 말도 아니다. 그런데 왜 盧대통령은 그런 말을 내어 놓았나?
벌써부터 여론이 분분하다.
많은 국민들은 盧대통령이 입밖에 내놓아서는 안 될 말을 내놓았다고 생각한다. 내놓아서 안 될 말을 내놓은 배경은 무엇일까? 객관적 정황으로 보면 대통령 취임 후 반년을 조금 넘긴 이 기간 그의 측근 여럿이 비리로 구속되고, 코드가 맞는다는 장관이 국회에 의해서 부적격으로 물러났다.
또 그의 영원한 집사라는 이가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니 대통령으로선 실로 참담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盧武鉉 정부는 초기부터 새 정부의 절대절명의 사명으로서 적폐한 부정부패를 완전 차단 척결하고 맑고 깨끗한 정부를 만드는 일로 자처했다.
그에 따라 때묻지 아니한 새 인재로 정부를 구성한다고 했다. 그 정부 출발 반년 만에 누구도 아닌 대통령 측근 참모들이 그 주장에 먹칠을 하고 개혁정신을 뒤집어 엎어 버렸으니 대통령이 얼굴을 들 수 없을 것이다.
서민들은 누구에게 빌린 돈 몇푼을 갚지 못해 재판을 받고 벌을 받는다. 어린 소년소녀가 얼마의 돈을 훔쳐도 가차없이 벌이 내린다. 대통령은 그 벌을 내리는 최고 집행자다. 재임 중 그의 주변 사람들이 저지르는 죄에 엄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대통령이다.
盧대통령은 당장 물러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盧대통령으로서야 이루 말할 수 없는 자책감을 느꼈으리라 짐작된다. 그렇게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그가 입밖에 내어놓은 재신임 문제는 대통령 외에 누구도 해결할 길이 없다.
盧대통령이 재신임을 묻겠다고까지 말하게 된 불행은 짧은 대통령 재임 기간 중 대통령 자신과 주변의 참모들이 스스로 만든 것이다.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다. 盧대통령은 때로 佛家(불가)의 禪問答(선문답) 같은 불가사의한 언행으로 국민들을 혼돈 속에 빠뜨렸다.
불과 얼마 전에는 검찰에서 수사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원숙하게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수사 중인 사건을 언급해 검찰을 압박한 일은 잘못이다. 원숙하게 수사하라는 말은 실로 엉뚱한 말이다.
국민은 허수아비 구실을 할까?
대통령직은 자기 말을 생각나는 대로 하는 자리가 아니다. 청와대와 정부, 정당의 전문가들이 정보를 수집하고, 평가 검토한 결과를 대통령의 입을 통해 표현할 뿐이다. 그것도 큰 일에 대해서만 그렇다.
盧대통령이 검찰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장관을 옆으로 제쳐놓고 젊은 검사들과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분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바로 알고 그 자리에 앉아 있나』 하고 생각했다. 텔레비전을 지켜보는 나는 답답했다.
盧대통령 정부는 취임 6개월이 지나도록 국민들이 「잘했다, 못했다」고 비판할만한 정책 방향, 정부 시책을 아직 내어놓지 못했다. 무얼 기준으로 재신임을 하라는 얘기인가? 그러므로 盧대통령이 내놓은 그의 재신임 문제는 이제 누가 책임질 수도 없고, 그 자신 외에는 거둬들일 사람이 없다.
무슨 방법으로 객관성있게 재신임을 물을 것인가? 盧대통령이 억지로 편법을 통해 국민투표를 밀어붙인다면 그것은 李承晩(이승만) 정권이 정권연장을 위해 취했던 3·15 부정선거, 朴正熙(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유신헌법 제정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행위가 될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아무 의미도 없는 재신임에 허수아비 구실을 하리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제 길은 하나뿐이다. 나는 盧대통령이 취임 얼마 후 『대통령직 못해먹겠다』고 한 신문기사를 기억한다.
비록 농담이라고 해도 의미깊은 말 한마디다. 그 말은 그의 심중을 그대로 드러낸 말이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쓴 회고록이나 처칠의 회고록을 보면 頂上의 어려움을 잘 알 수 있다. 대통령직은 자기라는 인간은 장롱 속에 집어 넣어두고, 대통령의 일만을 수행해야 하는 자리다.
트루먼은 회고록에서 평생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무수한 사람들에게 훈장을 달아주고, 보기도 싫은 반대파를 끌어안고 친구인 양 너스레를 떨어야 하는 일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인류 최초로 원자폭탄을 투하해 수십만 명의 사람을 죽여야 했던 이도 트루먼이다.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대통령이란 자리의 직무다. 예수는 『네가 천하를 얻고도 네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라고 했다.
盧대통령이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자신을 되찾아 지키는 길은 하나뿐이다.
당신의 순수함을 기억하도록 해주시오
「매우 매우 미안합니다. 나같은 사람은 대통령직이 맞지를 않습니다. 잘못 알고 들어왔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물러갑니다」
사직서 한 장 써놓고 물러가는 길뿐이다.
盧대통령이 설사 국민투표를 강행할 편법을 찾더라도, 그 과정에서 벌어질 국민적 갈등과 낭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상처받을 국민적 자긍심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5년 임기를 감당하지도 못할 대통령을 뽑은 유권자들의 얼굴은 무색해지고 그를 대통령으로 내세운 정당은 얼굴을 들지 못할 것이다.
우물쭈물 재신임 문제를 덮어 버리든, 어렵사리 국민투표를 해서 재신임을 받든 盧武鉉 대통령의 국정수행 능력은 회복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盧대통령 물러 나시오. 당신의 대통령직 수행능력보다 인간 盧武鉉의 순수함, 정직함, 진실함, 그리고 당신의 자유정신과 인간적 낭만을 국민들이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도록 해 주시오.●
趙香祿 초동교회 원로목사 別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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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4-13, 11: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