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인 2010년 4월15일 경기 북부지역의 미군의 종합화력훈련장인 로드리게즈 훈련장에서 한미연합 화력시범이 있었다.  근래에 보기 드물기  미군의 공지전력(空地戰力)인 아파치공격헬기와 M1A1탱크, 그리고 한국군의 공지전력(空地戰力)인  코브라공격헬기와 K1탱크가 함께 훈련한 입체적 화력시범이었다.
 
필자는 이 훈련장 방문이 몇차례 있었는데 어제의 훈련장의 분위기는 그동안 있었던 여느훈련때와는 완전히 분위기가 달랐다.  알고보니 어제의 훈련엔  주한미군 사령관인 사프대장도 참관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화력시범 개시를 알리는 미군 아나운서 멘트에  귀에 익을 이름이 흘러나왔다.
 
 

사진 : 백선엽장군. 90의 연세에 조금의 부축만으로도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실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바로 백선엽 장군이라는 말이었다.  나는 순간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훈련보다는 어떻게 하면 백선엽 장군을 가까이서 한번 볼 수 있을까 하는생각이 맴돌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훈련이 끝날즈음해서  관람대 밑에서 기다려 보기로 하였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미군장교의 부축을 받으며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오시는 백선엽 장군님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크나큰 영광이었다.
 

부축은 미군 대위가 맡았는데  그 정성이 지극하기 이를데 없었다.
 

 90의 연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인  한국전쟁의 영웅 백선엽장군님이시다.
 
난 두번다시 얻기 힘든 기회라고 생각하고  백선엽장군님께 큰소리로 인사를 드렸다.  "장군님. 건강하십시요"라고 하면서 힘차게 거수경례를 올렸다. 그러자 백선엽장군님은 저를 보시며 정정한 목소리로 답까지 해주셨다.
 
 백선엽 장군님과의 인연
 
2006년도였다. 그 당시 기회가 있어서  필자는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실을 방문할 수 있었다. 그곳 주한미군사령관실 입구엔  한국전쟁 당시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난 후 맥아더 사령관과 악수하는 젊은 백선엽 장군의 그림이 걸려있었다. 아마 지금도 그 사진은 주한미군사령관실에 걸려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밑엔 사진설명과 함께 이런 제목이 붙어 있었다.
 
"WE GO TOGETHER" 같이 갑시다. 바로 백선엽 장군이 당시에 맥아더 사령관에게 한 말이다. 이말은 그대로 한미동맹의 상징적 단어가 되었고 지금도 주한미군의 모토는 WE GO TOGTHER! 이다. 그 사진은 필자에게 너무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또한 주한미군의 역사관과 가치관이 우리보다 한발 앞서 있음을 느끼는 계기도 되었다. 
 
그리고 또하나의 인연이 있다.
 
필자 부친의 고향은 포항이다.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장터 중 하나가 바로 포항-안강-대구로 이어지는 라인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부친은  중학교 1학년 소년이었다. 어려서 부터 필자는 부친이 격었던 한국전 쟁이야기를 시시때때로 실감나게 들으면서 자랐다. 그 이야기 중엔 당시 포항지역을 담당하던  호랑이 장군 김석원 장군이야기도 있었고 또 백선엽장군이야기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요즘  중앙일보엔   백선엽 장군의 한국전쟁 이야기가 연재되고 있다. 우리집은 중앙일보를 구독하고 있는데  백선엽장군의 수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구독료가 아깝지 않다고 느낄 정도이다. 필자의 부친은  아침에 신문을 펼치면서 제일 먼저 읽는 것이 바로 백선엽 장군 이야기다. 더욱이 전쟁사 부분에 관심이 많은 필자입장에선 백선엽 장군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은 꿈에서나 그리던 것이었는데 현실이 되었으니 얼마나 흥분되었을지는 상상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필자의 부친은 지금도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하신다.
 
"그때  포항에서 김석원 장군이 하던 말이 아직도 생생해.  큰소리로 말이야 걱정말아 우리 국군이 인민군을 곧 몰아내고 북진할거다.  내가 여기 있는한  인민군은 꼼짝못해.  그리고 말이야  얼마나 성격이 불같은지  조금이라도 머뭇거리거나 하면 바로 달려가서  불호령이 내리는 거야. 내 기억엔  당시 김석원장군은 항상 지휘할때 권총을 높이 들고 외치는데  하여간 대단했어"
 
당시 중학 1학년 소년의 눈으로 본 김석원 장군의 단편이었다.  
 
어렸을땐 그 이야기가 뭔지도 모르고 하나의 전쟁영화처럼 재밌게 듣곤 하다가 나이들고 내가 직접 한국전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게 되자  필자 부친의 한국전쟁경험은 너무도 소중한 자료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오히려 내가 당시상활을 캐묻는 형식으로 변했다.
 
한번은 그래서 이렇게 질문을 드렸다.
"아니 아버지는 그때 중학 1학년생이었는데 어떻게  김석원장군을 가까이서 보게 되었죠"
 
그러자 이렇게 답하셨다.
 
"그게 그러니까  내 선배들은 김석원 장군의 일장연설에 학도병으로 지원을 했는데 난 어리니까 나갈수 없었지.  그런데 그때  힘을 좀 쓸수만 있으면  국군을 도왔는데 난 그때  산에 국군의 포탄을 이어서 날랐어.  몇 번을 이어날랐는지 몰라.  친구들하고 같이 했지.  그렇게 포탄을 이어나르는데  김석원 장군이 다가와서  고생한다고  어깨를 두드려 주는데  아직도 생생해."
 
한국전쟁당시  포항-안강-대구로 이어지는 라인에서  포항쪽의 김석원장군과  안강 다부동쪽의 백선엽장군이 아니었다면 사실 낙동강 전선은 무너졌을 것으로 필자는 생각한다. 소년시절 김석원장 군과의 부친의 인연과  오늘 내가 백선엽장군님을 직접 볼 수 있었다는 인연은 대단한 실로 대단한 인연 아니겠는가?
 
 
 화력시범 장면들
 
어제의 훈련음  한국전쟁 60주년의 해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 매우 중요한 훈련이었다.  평소같으면 국내 전 방송사 카메라들이 다 몰렸을텐데  어제의 경우는 천안함 함미인양이라는 더 큰 뉴스로 몰리는 바람에 방송사는 한군데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아침 뉴스에도  어제의 한미연합화력시범훈련은 나오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천안함에 묻힌 것이다. 매우 아쉽다.  그래서 필자는 이 훈련내용을 이렇게 소개하는 이유도 있다.
 

사진 : 한국전쟁 60주면 스티커를 붙이고 촬영하는 주한미군 방송팀.
 

 사진 : 한국군 코브라헬기
 

 사진 : 주한미군 아파치 공격헬기의 로켓발사
 

 사진 : 주한미공군의 F16전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