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감정의 뿌리

한국과 일본인들이 서로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감정의 뿌리는 역사적이고 인종적인 것이다.

오늘날 일본의 모태가 되는 고대국가를 만든 지배층은 몽골고원의 초원지대를 누비던 기마민족이었다. 이들은 4-5세기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상륙하여 농경민족들을 점령해갔다.

이 기마민족들은 일본으로 건너가는 과정에서 한때 한국의 남부(가야지방)에 머물렀고 일본에 가서 고대국가를 세운 다음에도 그들의 고향인 한반도 남부에 대해서 미련을 갖고 군대를 보내 한반도 정세에 개입하곤 했다.

이때 倭는 신라-고구려와는 적대관계, 가야 백제와는 우호관계를 유지하였다. 倭와 친연성이 깊은 가야가 신라에 흡수된 이후엔 백제계통의 도래인들이 天皇家를 형성하면서 倭는 反신라, 親백제 정책을 유지하였다. 古신라의 전반기 역사는 왜와의 투쟁사이기도 하다.

660년 신라가 羅唐동맹을 바탕으로 하여 백제를 무너뜨리자 倭는 그 3년 뒤 국력을 총동원하여 만든 함선 400척에 병력 3만 명을 실어 백제부흥운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금강하구로 보낸다. 羅唐 연합군은 白村江(군산 근방)의 해전에서 일본의 대함대를 전멸시켰다.

이 해전은 倭의 한반도 개입을 최종적으로 종식시켰다. 왜는 한반도에 대한 미련과 야심을 단념하고 그 뒤로는 일본을 고대국가로 가꾸는 일에 전념한다. 그러나 일본의 지배층은 그들의 우호국가인 가야와 백제를 잇따라 멸망시킴으로서 그들이 돌아갈, 의지할 고향을 없애버린 신라를 증오하게 되었다.

일본의 신라에 대한 증오심이 이론인의 무의식에 오래 작용하여 한국과 일본인 사이의 감정으로 남은 것이다.

일본의 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로가 쓴 '韓國 기행'을 읽으면 일본인들이 가진 백제문화에 대한 호감과 신라 예술에 대한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시바 료타로는 이 책에서 신라의 통일전략을 높게 평가한다.

그는, 백제의 멸망의 한 원인으로서 백제 지배층이 남북조 시대에 양자강 남쪽의 東晉과 밀착하면서 중국화되었고, 특히 중국의 사치풍조를 많이 받아들인 점을 지적하였다. 시바료타로의 요지는 이러했다.

<백제 지배층은 隋와 唐이 중국을 통일한 의미를 잘 파악하지 못했다. 그들은 唐이 곧 분열할테니 걱정할 것이 없다면서 六朝風의 화려한 문체와 歌舞音曲을 즐기고 현세보다도 佛國土를 동경하였다. 신라는 다분 야성적이라 文모다도 武를 숭상하면서 武人의 감각으로써 大唐제국의 무서운 힘을 느꼈다. 신라는 적극적으로 唐의 힘을 이용하여 동맹을 맺음으로써 백제를 멸망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고구려도 백제처럼 국제정세를 오판하였다. 돌궐과 동맹하여 隋唐과 대항하려고 한 것이 실수였다. 이런 사태를 보고 신라는 唐과 동맹했던 것인데, 이는 신라사람들이 오랫동안 고구려로부터 압박을 받아오면서 터득한 국제감각 덕분이었다>

신라가 통일한 것은 결국 동맹외교의 덕분이었다. 백제는 왜와, 고구려는 돌궐과, 신라는 당과 동맹했다. 신라만이 세계 최강국과 손을 잡았고 고구려, 백제는 2류 국가이든지 원병을 보낼 수 없는 국가와 손을 잡은 것이다. 동맹국을 잘못 선택하면 나라가 망한다.

김대중 노무현 두 정부의 일부 세력은 망해가는 북한정권을 마치 동맹국처럼 대우하고 기세가 하늘을 찌르듯 하는 미국을 적대하려고 한다. 신라에서 배울 점은 아직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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