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대통령을 깨우고 살린 천안함의 寃魂들
"年內라도 안 만날 이유 없다."
*지난 1월29일, 스위스 다보스를 방문 중이던 李明博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와 北核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북한의 김정일을 올해 안에라도 만나겠다고 밝혔다. 李 대통령은 이날 영국의 `BBC 방송'과 인터뷰를 갖고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준비가 항상 돼 있다"며 "한반도 평화와 北核(북핵) 해결에 도움이 될 상황이 되면 年內라도 안 만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李 대통령은 또 "유익한 대화를 해야 하고 북한 核 문제에 대해서 충분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미국의 소리' 방송).
*청와대 김성환 외교안보 수석은 지난 2월 유럽연합商議(EUCCK) 주최 오찬간담회에서 "1 국가로 가는 정치적 통일은 언제 될지 알 수 없다"며 "남북이 2 국가를 유지하면서도 언제든 상호왕래가 자유롭게 된다면 `사실상(de facto) 통일'이 되는 효과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월말 李明博 대통령은 한나라당 당직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 선거법 개혁, 행정구역 개편, 제한적인 改憲(개헌) 등 정치를 선진화하는 기본적 과제가 남아 있다'며 협조를 당부하였다.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지난 3월4일 중앙일보와 현대경제연구원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학살자 김정일에 대하여 ‘께서’, 서른 살도 안 되는 그의 아들 김정은에 대해선 ‘후계자로 내정되신 분’이라고 극존칭을 썼다. 그는 또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 헌법상 反국가단체로 규정되어 있는 북한정권을 국가로 호칭하였다.
*지난 3월19일 김덕룡 대통령 국민통합 특보는 "앞으로 있을 남북정상회담은 남북기본합의서와 (1,2차 정상회담 합의인) 6.15, 10.4 선언을 포용하면서도, 그것을 뛰어 넘어 남북이 미래를 향해 손잡고 나가는 모습을 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金 특보는 이날 오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제3차 남북 정상회담- 이렇게 준비하자´를 주제로 개최하는 전문가 초청 대토론회 기조 연설문(사전배포)에서 "차기 정상회담은 1차적으로는 남북경제공동체, 그리고 문화공동체를 어떻게 이뤄 나갈 것인가를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논의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15일 김일성 생일에, 천안함 실종자 屍身(시신)의 수습이 이뤄지고 있던 날, 세종연구소가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서울에서 열었다.
*지난 4월21일 李明博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나는 북한과 힘으로, 경제적으로 통합할 생각이 없다. 당장 통일보다도 북한이 경제를 자립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급한 일이고, 兩國間(양국간) 평화를 유지하고 오순도순 그렇게 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통일은) 따라올 것이다"고 말하였다.
북한정권을 국가로 호칭한 배경
천안함 폭침 사건 前後하여 있었던 일들을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니 어떤 흐름이 感知된다. 李明博-김정일의 회담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있고, 李 대통령도 이 회담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었으며, 상당히 걱정되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느낌이 든다.
외교, 안보, 통일문제에 대하여 李 대통령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안보 수석이 두 번, 대통령이 한 번 북한정권을 '국가'로 부르면서 '남북한이 국가 對 국가의 관계로 공존하는 게 통일로 가는 길이다'는 생각을 드러냈다는 점이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남북대결의 본질은 민족사적 정통성과 삶의 양식을 놓고 다투는 타협이 절대로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투쟁이란 사실을 망각하고, 대한민국만이 한반도의 유일한 合法-정통국가라는 사실을 무시한, 사실상의 통일포기=분단고착적 생각이 대통령의 뇌리에 찍혔다. 이런 反국가적-反헌법적인 생각을 깔고 추진하는 남북대화나 수뇌 회담은 반드시 김정일에게 이용당하여 國益을 팔어넘기는 결과를 부른다. 외교안보 수석과 대통령이 그런 문제발언을 서슴지 않은 것은 막후 접촉이 상당히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회담을 지배하는 어떤 생각(1민족2국가)이 은연중에 문제발언으로 표출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인 한민족공동체 통일안은 제2단계로서 남북연합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북한정권을 국가로 인정하는 국가연합이 아니다. 남북한이 최종통일, 즉 1민족1국가로 가기 위한 잠정적인 중간 협의 단계이다. 그런데 대통령과 안보수석은 '남북연합'을 '국가연합'으로 해석, 反국가단체인 북한정권을 대한민국과 같은 수준으로 格上시켜주고는 이 바탕에서 南北경제공동체를 건설한다는 反헌법적 신기루를 그리고 있었던 게 아닌가? 정부가, 대한민국만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국가이고, 민족사의 정통국가라는 '독점적 위치'를 포기하는 순간 남북대결에서 주도권을 놓친다. 타산이 빠른 李 대통령은 원칙과 신념의 대결인 남북관계를 편의적으로 끌고 가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특히 외교 안보 수석이 김정일과 그 아들에게 극존칭을 쓴 것은, 수뇌회담을 위한 막후 교섭이 진행되고 있으니 말조심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자연스런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類(유)의 막후 접촉엔 국가정보원이 핵심적으로 간여하게 된다. 대통령이 바라는 회담을 成事시키기 위한 막후 접촉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김정일과 북한을 자극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
유혹과 미련
그런 가운데 지난 3월26일 밤 북한 잠수함정이 쏜 어뢰로 추정되는 물체에 의하여 천안함이 爆沈(폭침)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李明博 대통령과 외교안보 수석이 가장 당황하였을 것이다. 믿기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믿고싶지 않았을 것이다.
'李-金 회담을 위하여 깊숙한 대화를 진행하고 있는데, 설마 북한이 그렇게 하였을까? 한국군의 실수, 예컨대 탄약고 폭발 같은 내부요인으로 침몰한 게 아닐까?'
객관적 정황은 누가 봐도 자동적으로 "이건 북한 소행이다"라고 단정하게 되어 있었지만 청와대 안보라인에 있는 이들은 주관적 느낌에다가 희망사항을 보태어 판단한 끝에 "북한에 특이동향 없다" "북한 개입 증거 없다"는 이상한 발표를 내어놓게 되었고, 그들은 한번 뱉은 말의 인질이 되어 그 뒤 20여일간 그 방향으로 말하고 바라다가(그 과정에서 군이 너무 나간다는 불평을 하다가) 드러나는 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자신들을 뒤늦게 발견하고는, 며칠 전부터 궤도 수정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정상적인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북한에 특이동향 없다'는 대통령과 청와대의 최초 반응의 배경에는 '김정일과의 회담'에 대한 유혹과 미련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아 이런 글을 쓰고 있다.
어제, 오늘 李 대통령은 북한정권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였다. 그렇다면 김정일과의 회담을 포기한 것인가? 등을 찌른 데 대하여 배신감을 느낀 때문인가?
'큰 그림'은 망가졌지만
김정일은 김일성과 함께 700만 명(거의가 同族)을 죽인 악당이다. 이 惡黨과 거래하여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려 한 자는 거의 예외 없이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 기독교 목사들 가운데는 김정일을 '사탄의 세력'으로 규정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의 눈엔 기독교인인 李 대통령이 제안한 '그랜드 바겐'이 '악마와의 거래'로 보일 것이다. 악마는 타도해야 할 대상이지 거래해야 할 상대는 아니다.
필자는 만약 李 대통령이 김정일을 만나기 위하여 북한 지역으로 들어간다든지, 反헌법적인 6·15 선언을 존중한다고 약속하면 탄핵운동을 벌이겠다고 公言한 적도 있다.
李 대통령은 김정일과의 회담을 성사시켜 G20 頂上회담과 연결시킴으로써 자신의 인기를 극대화하는 방법을 생각하였을지도 모른다. 頂上외교에 자신감을 갖게 된 李 대통령은 한 해에 소위 남북정상회담과 세계정상회의를 동시에 개최한 최초의 대통령으로서 역사에 남을 인물이 되고자 하였을지도 모른다. 그 여세를 몰아 改憲을 추진하고 후계자 선정에 영향력도 행사하는 한편, 헌법제3조 영토조항까지 고쳐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천안함 침몰 사태는 李 대통령이 그리던 '큰 그림'을 망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를 구하였을지도 모른다. 천안함 침몰 사태가 없었더라면 굴욕적인 李-金 회담이 북한지역에서 이뤄지고 李 대통령이 김대중, 노무현처럼 이용당하여 國益과 국가정체성에 심대한 손상이 일어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정일과 거래하여 성공을 기대하는 것은 북한과 장사하여 이익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천안함이 爆沈당함으로써 회담 가능성이 사라진 것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李 대통령과 대한민국을 구한 일이 되지 않을까? 46명의 천안함 戰死者-실종자들, 그리고 한주호 준위의 거룩한 희생이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려는 李 대통령을 붙들어 흔들고, 깨운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의 희생은 역사에 남을 것이다. 문제는 李 대통령이 이들의 희생을 어떻게 해석하고 응징하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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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承晩이 李明博에게: "공산당과 상대할 때는 항상 불예측성을 유지하라"
1953년 가을 닉슨이 서울에 도착했을 때 그는 李承晩 대통령에게 보내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親書를 갖고 있었다. 닉슨을 만난 駐韓 미국 대사 엘리스 브릭스는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비슷한 불안을 품고 있었다. 휴전에 반대해온 李承晩 대통령이 북한군을 독단으로 공격하여 미국을 전쟁에 끌어들일지 모른다는 불안이었다. 李 대통령은 자신이 그런 공격을 해놓으면 미국은 한국을 돕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誤判하고 있을지 모른다. 닉슨은 브릭스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대사관에서 만났다. 특별 협상팀을 이끌고 있던 아서 딘은 닉슨이 이승만에게 전달할 미국 대통령의 친서를 휴대한 것을 알고 말했다. 그는 李承晩 대통령을 매우 존경하고 있었다.
“李 대통령의 이빨을 뽑고 그로부터 무기를 빼앗아버리는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는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우리의 친구들이 거의가 상황이 좋을 때만 친구인 척하는 데 반해 李 대통령은 언제나 믿을 수 있는 진정한 친구입니다.”
다음날 닉슨은 경무대로 李承晩 대통령을 방문했다. 닉슨이 관찰한 李 대통령은 날씬한 몸매에 걸음이 활달하고 악수할 때의 힘도 세었다. 78세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곤색 양복에 곤색 넥타이를 맸다. 李 대통령은 닉슨 부통령이 “개인적으로 논의할 사안이 있다”고 하니 배석자를 물렸다.
닉슨은 “나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대표할 뿐 아니라 한국의 친구로서 활동한 오랜 기록을 가진 사람이다”고 말했다. 李承晩 대통령은 그런 말을 하는 닉슨을 凝視(응시)하였다. 닉슨은 아이젠하워의 친서를 호주머니에서 꺼내 건네주었다. 李 대통령은 그 편지 봉투를 조심스럽게 만졌다. 그는 천천히, 계산된 행동을 하듯이 봉투를 열고 편지를 꺼냈다. 그는 큰 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위엄 있고 정확한 발음이었다. 이 親書에서 아이젠하워는 한국이 또 다른 전쟁을 시작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한 뒤 李 대통령이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줄 것을 요청했다.
李 박사는 편지를 무릎 위에 놓고 한 참 내려다보았다. 그가 얼굴을 들었을 때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는 “아주 좋은 편지입니다”라고 했다.
李 대통령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친서 내용과는 다른 話題로 옮겨갔다. 일본문제, 아시아-태평양 정세의 미래를 이야기하더니 미국정부가 對韓원조를 해주는 방식을 비판했다. 닉슨은 話題를 다시 親書쪽으로 돌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요청을 들어주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말씀드린다”고 했다.
“나도 귀하에게 솔직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미국으로부터 받은 도움에 대해서, 그리고 아이젠하워 대통령과의 개인적 관계에 대해서 나는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런 관계로 해서 나는 미국의 정책과 맞지 않은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나는 노예상태의 북한동포들을 해방하기 위하여 평화적 방법으로, 그러나 필요하다면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통일을 성취하는 것이 한국인의 지도자로서 나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잠시 멈추더니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미국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노심초사하는 것을 잘 이해합니다. 그러나 한반도를 분단된 채로 남겨놓은 상태의 평화는 불가피하게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 전쟁은 한국과 미국을 동시에 파괴할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런 평화에 동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李 대통령은 닉슨을 향하여 몸을 숙이더니 말했다.
“내가 일방적인 행동을 취하기 전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미리 알려드릴 것임을 약속합니다.”
닉슨 부통령은 이 정도의 약속으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상호합의하지 않고선 어떤 (도발적) 행동도 한국이 단독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약속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두 사람은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헤어졌다. 미국 대사관에 돌아온 닉슨은 대화내용을 자세히 기록했다. 그는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닉슨은 자신의 침묵이나 무능으로 하여 李承晩 대통령이 오해를 하도록 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미국 정부가, 李 대통령이 한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일방적으로 군사적 조치를 취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이해시켜야만 한다.
李承晩 대통령은 닉슨을 만난 뒤 기자들에게 “닉슨 부통령을 통하여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설득하여 한반도의 이 문제를 끝장내게 할 수 있을 것이다”는 말을 했다. 이것도 닉슨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서울에서의 마지막 밤에 닉슨 부통령 부처는 한국 무용과 음악 공연에 초대되었다. 어린이 합창단이 출연했다. 공연도중 무대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으나 어린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지휘자는 貴賓(귀빈) 앞에서 이 무슨 창피냐는 듯이 퇴장해버렸다. 닉슨은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동양에서 손님 대접에 실패하는 것이 얼마나 큰 수치인지를 잘 아는 그는 이 난처한 처지를 수습하고 싶었다.
닉슨 부통령 부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한 사람씩 나중에는 관중들이 전부 다 일어나 함께 박수를 쳤다. 어린이 합창단도 웃기 시작했다. 지휘자도 무대로 돌아와 공연을 계속할 수 있었다.
다음날 닉슨은 李承晩 대통령을 다시 만났다. 李 대통령은 지난 밤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보고를 받은 듯 매우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대통령은 두 사람만 남게 되자 두 페이지짜리 종이를 꺼내서 펼쳤다. 그는 “보안을 유지하기 위하여 내가 직접 타이프를 쳤다”고 말했다. 李 대통령이 말했다.
“공산주의자들이, 미국은 이승만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貴國은 가장 중요한 협상력 하나를 잃는 것이 될 뿐 아니라 우리는 모든 희망을 잃는 것이 됩니다. 내가 모종의 행동을 취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늘 공산주의자들을 견제하고 있습니다. 우리 서로 솔직합시다. 공산주의자들은 미국이 평화를 갈망하므로 그 평화를 얻기 위하여는 어떤 양보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들의 생각이 맞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그러나 그 공산주의자들은 나는 미국과는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공산주의자들이 가진 그런 불안감을 없애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귀하가 도쿄에 도착했을 때인 내일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답신을 보내겠습니다. 나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그 편지를 읽어보고 파기해주셨으면 합니다.”
李承晩 대통령은 메모한 두 페이지짜리 종이를 닉슨에게 건네면서 “보고용으로 이를 이용해도 좋습니다”라고 했다. 그 메모엔 이승만 대통령이 필기한 한 구절이 첨가되어 있었다.
<너무 많은 신문들이 이승만이 단독으로 행동하지 않기로 했다고 보도한다. 그런 인상을 주는 것은 우리의 선전방침과는 부합되지 않는다>
경무대에서 두 사람은 악수를 하고 헤어졌는데, 李 대통령은 이때 이렇게 말했다고 닉슨 회고록은 기록하고 있다.
“내가 한국은 단독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전부 다 미국을 도와주는 일입니다. 나는 한국이 단독으로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우리는 미국과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가면 모든 것을 얻을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닉슨은 퇴임후에 쓴 회고록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한국인의 용기와 인내심, 그리고 李承晩의 힘과 지혜에 깊은 감동을 받고 떠났다. 나는 李 대통령이 공산주의자를 상대할 때는 ‘예측불가능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통찰력 있는 충고를 한 데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그 후 더 많이 여행하고 더 많이 배움에 따라서 그 노인의 현명함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말은 李明博 대통령에게도 참고가 될 만한 충고이다. 김정일과 상대할 때는 항상 그들이 "한국은 뭘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도록 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천안함 사태에 대하여 武力 보복은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공직자는 공산당과 상대함에 있어서 가장 유효한 수단을 무효로 만드는, 간첩보다도 더 나쁜 인간이란 이야기이다. 김정일을 상대로 '전쟁을 안한다'고 말하는 순간 게임에서 진다는 것을 李承晩은 시대를 초월한 원칙으로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닉슨은 冷戰을 서방세계의 승리로 이끈 3大 전략가중 한 사람이다. 냉전 승리의 틀을 만든 트루먼, 소련을 압박하여 총 한 방 쏘지 않고 내부로부터 무너지게 만든 레이건, 그리고 중국과 화해하여 세계 列强의 질서를 재편했던 닉슨이 그들이다.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 후 물러난 뒤 여러 권의 책을 썼다. 그는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함에 있어서 “우리는 무엇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강조했다. 이 깨달음은 李承晩 대통령으로부터 배운 ‘불가측성의 중요성’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닐까? 어쨌든 최고의 反共전략가인 닉슨이 李承晩 대통령을 극찬한 것은 요사이 조국에서 잊혀진 존재가 된 이 위대한 先覺者를 이해하는 데 하나의 자료가 될 것이다.
(趙甲濟 기자)
소위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욕심이 李대통령의 눈을 흐렸을지도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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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4-21, 2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