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도발과 한미연합훈련의 변천과정


1969년 3월17일 남한강 여주일대에서 벌어진 FOCUS RETINA 공수훈련을 참관 중인 박대통령과 찰스 H.본스틸 주한미군사령관



한미연합훈련의 시작 FOCUS RETINA

한미연합훈련이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팀스피리트훈련이고 그 다음이 작년까지 한 RSOI 독수리 훈련이다. 그 훈련이 올해부터는 KEY RESOLVE 훈련이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나 최초 대규모의 한미연합 기동훈련인 FOCUS RETINA훈련에 대해선 군사전문가들도 잘 알지 못한다.


1. 1.21 청와대 기습과 FOCUS RETINA 훈련 (1969~1970)

1.1969년 3월17일 여주인근에서 최초의 한미연합 훈련인 FOCUS RETINA훈련이 시작되었다. 1969년의 3월은 한반도에선 한국전쟁 다음으로 가장 긴장된 시기가 계속되고 있었다. 1968년 1월21일 김신조의 124부대의 청와대 기습사건과 같은 해 울진 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은 당시 우리의 안보환경을 단적으로 알려주는 사건이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한국 지원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1968년에 당선된 닉슨의 아시아 정책은 강력한 반공정책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는 태도를 취했다. 이런 태도는 훗날 닉슨독트린으로 미국의 아시아 정책은 일대 변환을 맞게 되었다.



이를 감지한 박정희 대통령은 닉슨 행정부의 태도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되었으며 박대통령은 미국에 대해서 방위공약 실천을 행동으로 보여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그 결과 1969년3월에 한미연합훈련이 시작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FOCUS RETINA 훈련이었다.

이 훈련의 핵심은 한미 양국이 공동으로 방위체제를 점검하고 신속한 기동력과 막강한 전력을 북한에 보여줌으로써 북한의 오판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었다. 이 시기는 월남전이 한창이던 시기였으며 군사력은 북한이 남한보다 월등히 앞선 시기였다. 1968년 11월, 이 연합훈련을 실시할 계획이었으나 푸에블로호 사건이 발생해 그 협상진행으로 인해 1969년 3월에 이 훈련이 실시되었다. 당시 북한의 대남 군사목표는 속도전이라는 이름하에 전면남침을 통해서 미국이 참전할 틈을 주지 않고 순식간에 서울을 점령한다는 계획이었다. 짧게는 보름, 길게는 한 달 사이에 전쟁을 끝내겠다는 북한의 군사목표에 대해서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


생존훈련 과정 시범을 보이는 한국군 공수특전사와 미 82공정사단

그 과제의 결과물이 1969년 3월에 실시된 FOCUS RETINA훈련이었다. 북한이 기습남침하더라도 미본토에서 증원군이 긴급히 파병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이 훈련의 목표였다. 이런 계획이 가능한 것은 병력수송에 대형수송기인 C-141이 투입될 수 있기에 가능했다. 구체적으로는 미본토와 한국 간의 1만3600㎞를 불과 30여 시간에 비행해 무장병력 2500여명을 작전지역에 투입하는 사상 최장최대의 공수훈련이 FOCUS RETINA 훈련의 핵심이었다. 이런 작전의 기본골격은 지금까지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실제로 당시 미최정예 부대인 82공정사단이 이 훈련에 투입되었고, 한국은 공수특전단장 鄭炳宙(정병주)준장을 지휘관으로 한 600명의 공수특전단이 여주 남한강 일대에서 일제히 낙하했다.




박정희 대통령과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자 유엔군사령관 찰스 H.본스틸 대장이 단상에서 함께 훈련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 훈련에 동원된 병력은 7000여 명에 달했으며, 2700대의 차량과 2900t의 장비가 투입됐다. 그러나 이 훈련이 실시되고 얼마 되지 않아 닉슨독트린이 발표됐고, 아시아 국가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박대통령은 69년 8월 미국을 방문하여 닉슨과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그 분위기는 냉랭했다.



2. 미7사단 철수와 FREEDOM BOLT 훈련

이렇게 시작한 한미연합훈련인 포커스 레티나훈련은 1971년 이름이 바뀌었다. FREEDOM BOLT로 명명된 한미연합훈련은 당시 월남전에 투입한다는 명분으로 주한미군 7사단을 철수시키는 정책에 대한 한국정부의 불만을 달래기위한 목적도 있었고, 미7사단 철수에 따른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대한 사전경고의 의미도 있었다. 그래서 이름자체도 한미양쪽을 강하게 연결하는 BOLT개념이 들어간 FREEDOM BOLT이다.


창원 현대정공에서 M48탱크 개수작업을 시찰하고 있는 박대통령과 정주영 회장

그러나 이 훈련의 이면에는 미7사단의 철수가 있었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박대통령은 미국을 강하게 압박하여 7사단이 사용하던 잉여장비, 특히 M48 탱크 등은 한국에 그대로 남겨두고 떠나게 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박대통령은 자주국방이라는 의지를 굳히고 본격적인 무기개발에 착수하게 되었다.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은 북한에 대한 경고메시지 이외에도 신속기동능력이 있는 미군이란 점을 내세워서 주한미군 감축의 구실로도 이용되었다.

이런 사례는 독일에서도 있었는데, 1963년 10월 서독에서 1만8000명의 병력이 참가한 빅 리프트 공수 훈련 직후 서독에서 미군 1개 사단이 감축되었다.


3. 카터행정부의 미군철수 공약과 8.18 도끼만행 그리고 팀스피리트 훈련

닉슨독트린으로 인해 주한미군은 약 7000여 명 감축됐다. 박대통령은 자주국방을 목표로 무기개발과 한국군의 현대화를 가속화했다. 1970년대, 남한이 북한보다 군사적으로 열세인 상황이었지만, 당시 한국군의 지휘관은 상당부분 월남전의 실전 경험이 있었고, 국가안보가 최우선의 국가목표였다. 때마침 1975년 월남의 패망은 전 국민에게 안보가 생명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이르렀다.



1984년 팀스피리트훈련 당시 미군의 M60탱크

그러다가 1976년 미국에서 카터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또다시 일대 전환기를 맞았다. 그는 주한미군 철수를 대선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주한미군 철수정책은 왕따 취급받았고 실제적으로도 약 1200여 명 철수에 그쳤다.

이런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정책 때문에 또다시 한미연합훈련의 이름이 바뀌었는데 그것이 바로 팀스피리트 훈련이다. 미군이 철수하더라도 한국에 대한 미국의 지원의지는 변함이 없다는 뜻이다. 그 후 레이건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팀스피리트 훈련은 한미양군 약 20만명이 동원되는 아시아 최대의 군사 기동훈련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당시 한미 양군의 전술적 차원에서의 차이가 가장 적었던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당시만 해도 한국군에겐 월남전 실전경험 지휘관과 더불어 대간첩작전으로 생긴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었기 때문에 장비나 기술적으로는 미군에 비해 열세지만 군지휘 기동전술등 세부분야에선 서로의 노하우를 주고받는 명실상부한 동맹군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했다.

또한 80년대는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으로 인해 미국의 한국중시정책은 그 어느때 보다 높았다. 당시 레이건-대처-나카소네-전두환의 자유진영 라인은 2차세계대전 당시 루즈벨트-처칠-드골로 연결된 자유진영 라인 다음으로 그 연결성이 굳건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1978년, 팀스피리트 훈련장을 방문한 박대통령

1988년 T/S 당시 미군은 험비를 본격적으로 전술 운영하기 시작했다.


1988년, 팀스피리트훈련에 참가한 미공군의 전략폭격기 B-52


여주일대에서 기동훈련중인 한국군


팀스피리트 훈련기간 동안 북한 역시 전국 비상령이 발동돼 군단급 기동훈련이 벌어졌다. 이것은 북한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고 결국 1994년 김일성이 죽기직전 김영상대통령의 방문을 수락하기에 이른다. 한국에서의 팀스피리트 훈련과 서독에서의 나토 기동훈련과 미국의 스타워즈계획은 결과적으로 舊소련이 몰락하게 된 연결고리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팀스피리트 훈련과정에서 한국군은 미군의 신개념 전술과 신형무기를 접하게 된 계기가 됐다. 미군도 월남전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 현재와 같은 미군의 모습을 갖추게 된 계기가 팀스피리트 훈련이었다. 1980년대 팀스피리트 훈련때 까지만 하더라도 한미양군의 상호보완적 훈련이 가능하였으나 1993년 팀스피리트 훈련이 중단되고 1992년 걸프전과 2003년 이라크전을 치루면서 완전히 차원이 다른 미군이 된 현재 한미 양군의 합동훈련은 그 차이가 크게 벌어지고 말았다.

C4I체제가 확립돼 실전에서 사용하고 있는 미군과 준비단계의 한국군이 합동훈련을 한다는 것은 다분히 과시의 목적이 더 크다.

4. 김영삼 정권의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과 RSOI훈련 개시

Reception, Staging, Onward Movement, and Integration

한미합동군사훈련인 전시증원연습(RSOI)은 한반도 유사시 전개될 미군증원 전력의 이동과 한국군의 지원 절차 등을 익히는 연례 훈련.

그러나 이 훈련은 1993년 김영삼 정권에서 중단되고 말았다.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 배경엔 북한의 핵위기가 있었다. 칼루치가 대북특사로서 북한과 핵동결 협상을 할 때 북한의 요구 중 하나가 팀스피리트 중단이었다. 한미양국은 이를 받아 들였다. 그러나 북한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2006년 2차 핵위기를 초래했다.

결과적으로는 한미 양국의 팀스피리트 훈련만 없어지게 된 셈이었다. 이전에는 북한과 한국 내 반미단체의 주장은 팀스피리트 중단이었는데, 이것을 달성한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주한미군철수 주장을 표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5. 친북좌익 노무현 정권과 미국의 불화 - 럼스펠드 독트린과 주한미군 감축

2기 부시 행정부와 노무현정권의 불협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때마침 럼스펠드 독트린으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대두되는 과정에서 노무현 행정부 내 반미자주파의 득세는 아주 손쉽게 미군이 한국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2006년 이후 1만2500명의 주한미군 철수는 7사단 철수 이후 가장 큰 규모다.




노무현 정권 시절, 주한미군 12,500명 감축에 따른 주한미군 기갑부대의 철수 장면. 부산 미군전용부두



6. 한미연합사해체, 그리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KEY RESOLVE

노무현 정권이 미국과 한미연합사 해체를 합의하였다. 한미연합사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안다면 그렇게 쉽게 해체를 결정할 사항이 아닌데도 해체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한미연합사 해체를 추진하고, 전시작전통제권권 전환 협상이 이루어진 후 한미연합훈련의 이름이 바뀐 것이 KEY RESOLVE 훈련이다. 이름 그대로 [결심의 열쇄]라는 의미에서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 간략하게 한미연합훈련의 변천과정을 알아보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한미연합훈련은 미국의 대외전략과 북한의 도발과 묘하게 얽혀있다. 그런데 문제는 한미연합훈련은 사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응징차원에서 실시된 것이 아니란 것이다. 미국이 한국에서 병력을 축소하거나 또는 미국의 정치군사적 변동이 있을 때 한국을 안심시키기 위한 일종의 방편이었다.

물론 한미연합훈련을 통해서 우리 군이 미군의 발전된 기술을 익힐 수 있었다. 특히 1980년대 팀스피리트 훈련은 우리가 단독으로 할 수 없는 군단급 부대 이상의 실제 기동훈련을 할 수 있었다. 이는 실로 엄청난 훈련효과였다. 게다가 북한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하였으니 1石2鳥의 성과를 거두었다.

이번 천안함 피격에 대한 대응차원에서 팀스피리트를 다시 고려한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미국이 이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미국의 대외전략에서 이미 한반도는 3선급으로 물러나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의 현실에서 과거 1980년대처럼 대규모 병력이 실제 기동하면서 훈련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다. 이를 미국도 안다. 이미 미국은 과거 한국에서 하던 대규모 연합훈련을 태국에서 매년 실시하고 있다. 태국에서 매년 미국을 비롯하여 한국, 싱가폴, 일본, 호주 등이 참가하여 대규모 연합상륙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연합훈련을 방해하는 요소가 많은 한국에서 미국이 또다시 과거처럼 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정부에서 의도하는 것처럼 과거 팀스피리트 훈련 부활을 통한 대북압박은 단순한 희망사항일 뿐이다. 그렇다면 북한에 대한 응징방법은 무엇인가? 북한은 이미 유엔제재에 대해선 가장 강도 높은 수준으로 받고 있기 때문에 유엔을 통한 응징은 전혀 효과가 없다. 또한 경제봉쇄도 중국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 결국 실질적 군사적 응징이 아니고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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