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6일의 천안함 격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사실이 거의 명백하게 드러났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일각에서는 북한이 그럴 수 있는 나라라는 사실을 애써 믿으려 하지 않았고, 그렇게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정권을 장악하기도 했었다. 북한을 주적이라고 쓰면, 북한이 화를 낼 것이 두려워서 매년 간행해야 할 국방백서를 간행하지 못한 해도 있었고, 노무현 정권 당시 한 국방장관은 주적이라는 표현을 삭제한 국방백서를 출간한 후 무슨 대단한 일이나 성취한 것처럼 행동했다.
전략적,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이 세상 어느 나라든지 주적을 상정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물론 우리가 주적이라고 쓰는 용어는 본래의 용어를 정확하게 번역 한 것은 아니다.
'주적(主敵)'이라는 개념의 원어는 Specified Enemy, 즉 ‘지정된 적’이라는 용어다. 정확한 단어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뉴앙스가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주적이라는 단어를 그냥 사용해 왔다. (이하 사용된 주적이라는 용어는 지정된 적이라는 의미다)
전쟁은 두 나라가 벌이는 일이다. 그러니까 적을 지정하지 않은 채, 혹은 위협의 근원을 정확히 밝히지 않은 채 전쟁을 억지한다는 개념은 성립될 수 없다. 혹시 이 세상 모든 나라와 다 싸워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나라라면 구태여 어느 한 나라를 주적이라고 지정하지 않아도 될지 모르겠다.
주적이 없는 나라는 우선 군사전략을 짤 수 가 없다. 이 세상 모든 나라를 다 상대로 싸울 준비를 갖출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니 말이다. 또한 주적이 없는 나라는 어떤 무기를 장비해야 할지를 알 수 없다. 대륙 쪽에 있는 적을 상대하려면 육군이 더 필요할 것이고, 바다 쪽의 나라를 상대 하려면 해군이 더 필요할 것이다. 미국처럼 막강한 국가조차도 주적을 분명히 한다. 아무리 힘이 강해도 모든 적을 상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부시 대통령이 선언 했던 "악의 축 3개국" 이 바로 미국이 상정한 주적이다.
우리가 전쟁발발을 억지해야 할 나라가 주적이며, 주적을 명확하게 밝히는 일은, 사실은 자국 군사력의 목적과 능력과 전략에 제한(limit)을 둠으로써 주적에 포함 되지 않은 다른 나라들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기 위함이다.
주적으로 명시 되지 않은 나라들은 이웃 국가가 건설하는 군사력, 군사전략, 군사훈련 등에 놀랄 필요도 없고 일일이 대응할 필요도 없다. 주적을 명기하는 이유는 주적이 아닌 다른 나라들에게 우리 군사력에 대해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우리 군사력의 능력과 목적에 한계를 설정하는 제스추어 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노무현 정부시절 주적 개념을 삭제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국군은 그동안 누구와 싸우기 위해 존재했던 것인가? 주적이 없는 대한민국 국군은 누구를 상대로 군사훈련을 해야 했을까? 주적이 없는 대한민국 육해공군은 누구와 싸우는데 가장 적합한 무기체계를 장비해야 했을까? 우리나라가 북한을 주적 명단에서 삭제한 후, 우리의 이웃인 중국이나 일본은 우리가 장비하고 있는 F-15 K 신형 전투기, 막강한 이지스(AEGIS) 구축함을 어떻게 인식 했을까? 군사력은 정신력이 가장 중요하다는데 주적도 없는 군대가 어떻게 정신력을 고양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제 다시 정상을 회복하자. 그동안 우리는 대한민국 전역을 주체사상이 지배하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국가 목표를 가진, 대한민국 군함을 격침 시킬 의도와 능력을 가진, 북한을 주적이 아니라고 우겼었다. 이같은 비정상은 이제 종식 되어야 한다.
미국 텍사스 대학의 필립 보빗(Philip Bobbit) 교수는 「아킬레스의 방패: 전쟁, 평화 그리고 역사의 경로」 (The Shield of Achilles: War, Peace, and the Course of History) 라는 명저 (2002년 Knopf 출판사 간행) 에서 “the idea of deterring wars without a specified adversary or threat is nonsense" 즉 "적국 혹은 위협을 명기하지 않은 채 전쟁을 막겠다는 발상은 넌센스” 라고 단언하고 있다. 이 같은 전략적 진리가 그동안 무시 되어졌고, 그 결과 오늘과 같은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천안함 격침의 원인이 거의 밝혀진 이즈음 우리 정부 내 에서 주적 개념 부활에 관한 논의가 진행 중이라 한다. 늦었지만 당연하고 올바른 일이다.
李春根(이화여자 대학교 겸임교수/미래연구원 연구처장)
주적(主敵)이 없다는 것은 전략적 넌센스(Nonsense)
- 李春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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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5-10, 16: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