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면적 3분의 2가 지도에 추가>
새만금 방조제는 전북 부안군 변산면 대흥리에서 군산시 비응도항에서 이르는 바다를 막은 것으로 세계 最長(최장)이다. 새만금 방조제가 밀어낸 바다만큼, 4만100㏊(서울 면적의 3분의 2)가 우리나라 지도에 추가됐다. 그중 2만8300㏊는 간척토지로, 1만1800㏊는 담수호로 조성된다. 향후 용도는 명품복합도시(23.8%), 농업용지(30.3%), 산업·과학연구·신재생에너지용지(21.9%), 도시(5.1%), 생태환경용지(15%) 등이다.
방조제로 바다를 막는 골격 작업은 마쳤으니 이젠 방조제 내부개발을 해야 한다. 내부개발 사업 중 첫 번째 공사인 산업단지는 2009년 1월 착공했다. 산업단지는 새만금 전체부지의 5%인 1870㏊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두 배가 넘는다.
새만금을 관광 허브로 만들기 위한 사업도 시작됐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신시도~야미도 구간에 들어설 아일랜드 리조트이다. 농어촌공사가 다기능 부지로 매립을 이미 마친 200㏊(60만평)가 본격적 개발을 기다린다. 이곳에는 휴양 리조트·놀이공원·수상레포츠 시설 등을 유치해 해양·생태 리조트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환경단체 주도로 공사 중단과 재개 반복>
새만금사업은 환경단체와 종교계 반대로 공사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왔다. 새만금호 수질오염 논쟁은 96년 7월 시화호 오염사건으로 시작됐다. 98년 4월27일 감사원은 새만금사업에 대해 특별감사를 단행했고 民官(민관)합동조사단은 타당성 조사에 들어갔다. 근본적 문제는 없었고, 98년 12월30일 제1호 방조제 공사가 시작됐다.
국내 좌파성향 단체들이 「새만금 간척사업 백지화 운동」에 가세하면서, 논란은 커갔다. 99년 1월11일 유종근 지사까지 「새만금사업 전면재검토」 선언에 나섰다. 99년 1월22일 총리실 수질개선기획단은 다시 民官(민관)공동조사단을 구성을 결정하고 같은 해 5월 조사단이 발족했다. 이후 조사단의 결과 발표 延期(연기)와 하고 정부의 애매한 태도가 겹치면서, 2001년 5월25일 새만금사업 계속이 최종 결정되는 2년여 간 새만금사업은 또 다시 중단됐다.
<전교조까지 가세, 새만금 토론수업>
새만금사업이 표류하는 기간 동안 환경단체 등은 안티(anti)역량을 총동원했다. 몇 개의 사례를 들면 이랬다.
▲2000년 7월1일부터 이틀 동안 환경운동연합(以下 환경연합) 회원 2000여 명은 새만금 갯벌에서 全國회원대회를 열었다. 환경운동연합 전국회원대회가 열린 것은 93년 단체 창립 이후 처음이었다.
▲2000년 10월16일부터 33일간 환경연합·녹색연합 등 운동가들은 서울 조계사에서 새만금 갯벌 살리기 33일 밤샘농성을 벌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교사들까지 나서 새만금 갯벌 살리기를 주제로 토론수업과 홍보, e메일 보내기 운동에 동참했다
▲2001년 5월25일 정부가 새만금사업 재개 방침을 발표하자, 환경연합 등이 이끄는 「새만금갯벌 생명평화연대」는 정권퇴진운동도 불사하겠다며 투쟁에 나섰다. 이는 같은 해 8월 」공유수면 매립면허ㆍ사업시행인가 처분취소 소송」으로 이어진다.
▲2001년 7월11일 환경연합·녹색연합및 민노당·민노총·전국연합 등 289개 단체는 시국선언문을 냈다. 이들은 『퇴행적이고 파괴적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현 시국을 심각하게 걱정한다』며 『새만금 간척사업 강행, 개발위주의 댐 건설 추진, 국토 난개발 부추기는 판교 신도시 건설계획 등을 전면백지화하고 환경친화적인 종합적 국토정책을 시급히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우리 현대사에서 미흡하나마 민주적 정통성을 갖춘 최초의 정부로서 김대중 정권이 출범했을 때, 우리 국민들은 역사상 다른 정권들과는 다른 커다란 기대를 보냈다』고 말한 뒤 그럼에도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보수우익 기득권 세력의 무기로서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고 했다.
▲수도권 집회도 잇따랐다. 예컨대 2001년 12월2일 서울 종로에서는 「반전평화 미국반대 전국민중대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새만금 간척사업 강행반대, 환경파괴 생명파괴 댐건설 반대』와 함께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철수, 미군기지 반환, 미국의 아프칸 침략전쟁반대, 한국군 파병 및 戰費(전비)지원 반대』 등을 주장했다.
<美軍철수와 함께 『새만금 강행반대』 주장>
「三步一拜(삼보일배. 세 걸음 걷고 한번 절하는 불교의식)」라는 이벤트도 나왔다. 2003년 3월28일 「전문 시위꾼」으로 불리는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승려(불교환경연대)를 비롯해 이희운 목사(기독생명연대), 김경일 교무(새만금생명을 살리는 원불교 사람들)가 64일에 걸친 三步一拜에 나섰다.
三步一拜 출발 직전 녹색연합이 민중의 소리(2003년 2월13일)에 기고한 글 가운데 일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새만금 갯벌에서 십 년 넘게 파괴와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은 도룡뇽을 살려야 한다며 천성상 터널을 막았던 女僧 지율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여기 새만금 갯벌에서도 십 년이 넘게 소리 없는 파괴와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곳은 인간의 그릇된 허상과 탐욕이 빚고 있는 거대한 전쟁터입니다...끊임없이 벌어지는 크고 작은 폭력과 파괴의 범죄자는 바로, 그칠 줄 모르는 우리의 이기심과 탐욕입니다. 내 것이 아니면 바로 외면하는 무관심과 냉정함입니다. 자본과 물질의 노예가 되어버린 우리의 생활입니다...어려운 때,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 기독교와 원불교 성직자들은 이곳 새만금 갯벌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의 길을 나섭니다...길 위에 쓰러지고 더 이상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온다 해도, 새만금 갯벌을 살리고 온 세상의 생명ㆍ평화를 구하는 우리의 여정은 계속 될 것입니다.』
三步一拜는 새만금사업 반대 여론을 자극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2003년 5월3일 천안역 광장에서는 「새만금갯벌 생명평화의 날」 행사가 열렸다. ▲5월6일 환경연합·녹색연합 등 단체들은 서울 시내 1호선·4호선 모든 지하철역을 돌면서 「새만금중단 죽음의 새만금 방조제를 생명의 갯벌로」라는 제목의 포스터 3천장과 「새만금은 도박판이 아닙니다」, 「모든 생명에 대한 참회 삼보일배」 등의 문구가 새겨진 팜플렛을 돌렸다. ▲5월10일 당시 한명숙 환경부 장관은 경기도 평택시에서 三步一拜를 진행 중이던 이들을 찾아갔다. ▲5월22일 서울 청운동 파출소 앞 사거리에서 환경연합 등「새만금갯벌생명평화연대」 주최로 새만금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黙言(묵언) 집회가 열렸다.
수경 승려는 서울 입성 3일을 앞 둔 5월21일 과천 정부청사 인근 관문체육공원 앞에서 三步一拜 중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수경은 이튿날 휠체어를 타고 三步一拜를 재개했고 5월23일 서울에 들어왔다.
5월25일 여의도 시민공원에선 三步一拜의 마지막 이벤트로 「범종교인 기도회 및 시민촉구대회」가 열렸다. 三步一拜 주도자들 뒤로 백여 명이 따랐고, 국회의원 김원웅(개혁국민정당), 이부영(한나라당) 등도 손에 목장갑을 끼고 동참했다. 행렬에는 대여섯 살 쯤 되어 보이는 어린이들도 있었다. 本행사에서 원불교 천지보은회 상임대표 이선정 교무는 『(4명은) 온 몸으로 경전을 쓰며 이곳까지 온 것』이라고 표현하며,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이 고통에 진리인들 어찌 감동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날 참가한 국회의원들은 새만금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對정부 정책제안서」에 서명한 의원들 대표로 나왔다.
이 제안서는 환경연합 등 「새만금갯벌생명평화연대」와 환경연합의 오세훈 변호사가 공동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편집자 주 : 한나라당 소속인 오세훈 서울시장은 환경연합 출범 초기부터 참여한 인물이다. 매주 월요일 무료법률상담을 해주고, 환경연합 광고모델도 했었다. 그는 환경연합 등이 주도했던 선거법 제87조의 「시민단체 낙선운동 금지조항」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헌법소원을 냈었다. 吳시장은 2000년 국회진출 당시에도『환경전문 국회의원으로 활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는 당선 직후 환경연합 활동가를 보좌관으로 채용하기 위해 연합 측에 추천을 의뢰했었다. 吳시장은 2006년 서울시장에 당선되자, 환경연합을 만들고 이끌어 온 최열 前대표를 인수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吳시장의 정치권 입문을 권유한 것이 최열 前대표였다).
<오세훈 변호사, 새만금 중단 보고서 작성>
김원웅 의원은 『새만금 공사 후 거대한 새만금호가 생겨나면 그것의 오염을 막기 위해 전라북도에는 공장도 세울 수 없고 축사도 지을 수 없다. 댐 건설 후에 갯벌이 일부 생기기는 하지만 제가 직접 가보았을 때 그곳 주민들이 그것을 죽은 갯벌이라 해서 죽벌이라고 부르더라』고 말했다.
이부영 의원은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되면 새로 생기는 땅 중 150만 평이 군산에 주둔한 美 공군에 공여되기로 되어 있다』며 새만금 건설 중단 이유를 들었다.
三步一拜 이후에도 반대투쟁은 이어졌다. 예컨대 2003년 6월12일 새만금 간척사업 4공구 방조제에서 방조제를 파내려는 환경연합 등 회원들과 이를 막는 주민들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다. 환경연합 등「새만금갯벌생명평화연대」회원 70여명은 이날 아침 7시부터 물막이 공사가 끝난 4공구 현장을 점거한 뒤 철조망을 치고 삽 20개와 곡괭이 5개 등으로 방조제 일부를 파냈다. 이에 대해 새만금사업을 찬성하는 군산시 야미도 주민 등 140여명은 오후 3시께 작업현장을 둘러싼 경찰 저지선을 뚫고 들어가 환경단체 회원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서울행정법원, 「새만금사업」 잠정중단 결정>
2003년 6월10일 새만금 제4호 방조제 1.8km구간 끝막이가 완료됐다. 그러나 같은 해 7월15일 서울행정법원이 「새만금사업 잠정중단」 決定(결정)과 2004년 1월29일 서울고등법원의 「새만금사업 공사재개」 決定이 이어지면서 혼란이 재개됐다. 본안 소송 역시 서울행정법원이 2005년 2월6일 「새만금사업 계획을 변경 또는 취소하라」는 1심 判決(판결)을 내렸고, 서울고등법원은 같은 해 12월21일 원심을 뒤집고 「새만금사업을 계속하라」는 判決을 내렸다. 법정논란은 2006년 3월16일 대법원이 새만금사업 속행 判決(판결)을 내리면서 일단락됐다.
농림부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날 『새만금사업의 합법성과 당위성을 인정한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존중한다.』고 밝혔고, 전라북도 역시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강현욱 전북지사는 판결 소식을 접하자마자 『이번 판결은 대한민국 미래와 지역 발전을 바라는 전북 도민의 간절한 염원이 반영된 당연한 결과』고 밝혔다.
반면 환경연합은 『대법원마저 군사독재 시절에 정략적으로 추진된 예산낭비, 국토파괴 사업을 합리적으로 제어하지 못한 것은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탓』이라고 비난했다. 새만금사업은 2007년 11월22일 「새만금사업 촉진을 위한 특별법」과 「동서남해안권발전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본격화되기에 이르렀다.
<총선환경연대, 『反환경(?) 정치인 심판』>
새만금사업 반대투쟁은 대한민국 左派문화권력의 역량을 보여준 사건이다. 2004년 2월에는 환경연합·녹색연합 등이 「2004 총선환경연대」라는 단체를 만들어 공천 부적격자 명단을 발표했다. 기준은 새만금사업 찬성자 등 『反환경 정치인 심판』이었다. 당시 발표된 공천부적격자와 기준은 이랬다.
▲강봉균 (열린우리당, 전북 군산, 16대 초선) : 새만금사업과 관련해서 주무부서인 환경부의 「수질개선 불가능」이라는 의견을 무시함. 새만금 갯벌의 70%가 죽었다는 등의 허위사실을 유포. 공영방송에서 『환경단체는 국가정책에 관여하지 말라』는 등의 국민의 참정권을 제한하는 발언을 함
▲김영진 (새천년민주당, 전 농림부 장관, 13,14,15,16대 4선) : 왜곡된 식량안보론을 내세워 농지목적 상실한 새만금 간척사업 강행. 현직 장관으로 민주주의 기본정신인 삼권분립을 전면 부정하고, 장관직을 사퇴한 민주정치의 부적격자 『젊은 법관 2명이 2년 전 환경단체가 제기한 문제들을 내세워 공사를 다시 중단하도록 결정을 내린 것은 납득할 수 없다』 (2003.7.22) 『사법부가 대형 국책사업에 대해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월권행위다』(2003.8.10)
▲김태식 (새천년민주당, 전북 완주/임실, 11,13,14,15,16대 5선) : 새만금사업에서 『최근 내려진 법원의 결정은 국론분열을 야기 시킬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기에 서명운동으로 맞서지 않을 수 없다』는 발언을 함으로서 현직 국회의원으로 민주주의 기본 정신인 삼권분립을 전면 부정한 민주정치의 부적격자.
▲맹형규 (한나라당, 서울 송파 갑, 15,16대 2선) : 핵 발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 강력 추진. 96년부터 2001년까지 매년 원자력발전보고서
▲ 박병윤 (새천년민주당, 경기 시흥, 16대 초선) : 시화호의 생태적 복원을 위한 사회적 노력을 거부하고, 실익이 없는 개발사업 재추진
▲이상희 (전 한나라당 의원, 비례대표, 11,12,15,16대 4선) : 사회적 합의가 된 국가의 생명윤리정책을 무시하고, 생명윤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 제정을 가로 막음. 냉동배아 연구의 원칙적 허용 등을 주장함으로서 생명윤리법 제정목적과 내용을 왜곡함.
<새만금갯벌 간척을 막지 못한 업보가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싶어...>
새만금사업 반대 주도세력은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4대강 사업 반대 등으로 투쟁을 이어간다. 문규현 신부가 대운하 반대를 위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순례단」을 만든 직후인 2008년 2월13일 「민중의 소리」에 기고한 글은 이렇다.
『2008년 2월 12일, 막바지 추위가 유난했습니다. 이런 날 종교인들이 다시 순례길에 올랐습니다. 경기도 김포 애기봉에서 시작했습니다...대운하 개발은 하늘을 거스르는 일. 망국운하입니다. 대운하 추진 발상을 멈춰야 합니다. 거짓되고 허황된 논리들로 가득한 대운하 망상은 절대 거둬져야 합니다...새만금갯벌 간척을 막지 못한 업보가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싶어 자꾸만 목이 울컥거렸습니다... 2008년 2월 13일 「생명의 강을 모시는 순례단」 이틀 째 이른 아침』
<새만금 사태 1편 끝. 2편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