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왕이 피를 토하듯이 쓴(문장가 强首의 대필인 듯) 答薛仁貴書에는 그동안 신라가 당과의 연합을 위하여 참았던 굴욕을 털어놓고 쌓인 울분을 품위있게 드러내는 내용들이 많다. 신라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모욕을 참아내게 한 것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데 唐의 힘을 빌린 다음에 보자는 스스로의 기약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참다운 승리는 굴욕을 참아낸 뒤에 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글이다. 문무왕은 唐이 개입하여, 망한 백제와 흥한 신라가 억지 會盟하도록 한 상황을 실감 있게 설명한다.
서기 663년 왜는 국력을 총동원하여 3만의 해군을 함선에 실어 보낸다. 이 대함대는 백제부흥운동을 돕기 위해 파견된 것인데 역사적인 백촌강의 해전이 벌어진다. 문무왕의 편지는 이 상황을 묘사해주는 귀중한 기록이다.
<총관 孫仁師가 군사를 거느리고 府城을 구원하러 올 때 신라의 병마 또한 함께 치기로 하여 周留城 아래 당도하였소. 이때 왜국의 해군이 백제를 원조하여 왜선 1000척이 白沙에 정박하고 백제의 精騎兵은 언덕 위에서 배를 지켰소. 신라의 날랜 기병이 漢의 선봉이 되어 먼저 언덕의 진을 부수니 주류성은 용기를 잃고 드디어 항복하였소. 남방이 이미 평정되었으므로 군사를 돌이켜 北을 치자 任存城 하나만이 고집을 부리고 항복하지 않기에 양군이 협력하여서 하나의 城을 쳤으나 굳게 지키어 항거하니 깨뜨리지 못하였소.
신라가 돌아가려는데 杜大夫가 말하기를, '勅旨에 평정된 후에는 함께 맹세하라고 하였으니 임존성만이 비록 항복하지는 않았다 해도 함께 회맹해야 한다'고 하였으나, 신라는 '임존성이 항복하지 않았으니 평정되었다고 할 수 없으며 또 백제는 간사하고 반복이 무상하니 지금 서로 회맹한다 해도 뒤에 후회할 것이다'고 하여 맹세를 정지할 것을 주청하였소. 인덕 원년에 (당 고종이) 다시 엄한 칙지를 내려 맹세치 않을 것을 책망하므로 곧 熊領으로 사람을 보내어 단을 쌓아 서로 회맹하고 회맹한 곳을 양국의 경계선으로 삼았소. 회맹은 비록 원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감히 칙지를 어길 수 없었소>
당은 망해버린 백제를 唐의 직할로 하여 신라와 형제의 맹세를 하게 한 것이다. 신라로서는 敗者와 勝者를 같이 취급하는 唐의 정책에 이를 갈았지만 후일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문무왕은 편지에서 신라군이 668년에 평양성을 함락시켜 고구려를 멸할 때도 선봉에 섰던 사실을 설인귀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蕃漢의 모든 군사가 蛇水에 총집합하니 南建(연개소문의 아들)은 군사를 내어 한번 싸움으로써 승부를 결정하려고 하였소. 신라의 병마가 홀로 선봉이 되어 먼저 대부대를 부수니, 평양 성중은 사기가 꺾이고 기운이 빠졌소. 후에 영공(英國公 李勣)은 다시 신라의 날랜 기병 500명을 취하여 먼저 성문으로 들어가 드디어 평양을 부수고 큰 공을 이루게 된 것이오>
문무왕은 신라의 공이 큼에도 당이 신라 장병들에게 상을 주지 않고 박대한 것을 조목조목 비판한 뒤 신라가 빼앗아 갖고 있던 비열성을 당이 빼앗아 고구려(멸망한 뒤 당이 다스리고 있던)의 관할로 넘겨준 것이라든지, 백제의 옛땅을 모두 웅진도독의 백제사람들에게 돌려주라고 압력을 넣은 것, 그리고 이제 와서 군사를 보내어 신라를 치려고 하는 사실들을 들어 이럴 수가 있느냐고 공박한다.
<이제 억울함을 열거하여 배반함이 없었다는 것을 기록하는 것이오. 양국이 평정되지 않을 때까지는 신라가 심부름꾼으로 쓰이더니 이제 敵이 사라지니 요리사의 제물이 되게 되었소. 백제는 상을 받고 신라는 죽음을 당하게 생겼소. 태양이 비록 빛을 주지 않을망정 해바라기의 본심은 오히려 태양을 생각하는 것이오. 청컨대 총관은 자세히 헤아려서 글월을 갖추어 황제계 말씀드리시오>
671년 백제땅에 소부리주를 설치하여 완전히 신라 영토로 삼은 문무왕은 겨울엔 당의 조운선 70여척을 공격하여 100여명의 장병들을 사로잡았다. 672년 당군은 4만의 병력으로 평양성에 와서 주둔하면서 신라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신라는 한강을 방어선으로 하여 당군과 일진일퇴의 격적을 벌였다. 한편 문무왕은 포로가 된 당의 장수들을 귀환시켜주면서 사신을 보내어 당의 고종에게 사죄하였다. 겸하여 은, 구리, 바늘, 우황, 금, 포목을 바치기도 했다. 和戰 양면을 구사한 것이다. 신라는, 당의 체면이 결정적으로 손상되지 않도록 애쓰면서 한반도의 전투에서는 이겨야 하는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문무왕의 對唐 和戰 양면 작전
- 조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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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1-23, 0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