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草原의 대폭발(1)/3-6세기의 古代




우리 나라와 일본의 고고학, 역사학, 인류학, 古미술학, 종교학, 언어학 분야에서 匈奴와 신라 김씨왕족을 직결시키는 논문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 핵심은 4세기경에 경주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적석목곽분의 주인공들인 金氏王族이 북방유목기마민족인 흉노계통이란 것이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거론되는 증거나 근거들은 다양하고도 많다. 그것들을 열거한다.

1. 積石木槨墳: 목곽을 만들고 그 안에 屍身을 넣은 목관을 두고 목곽위에 자갈돌을 쌓고 흙으로 덮는 적석목곽분은 알타이 산맥의 서쪽 초원에서 활동했던 스키타이와 동쪽 초원의 주인공들이었던 흉노계통의 墓制이다. 묘제는 보수적이기 때문에 잘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이 묘제를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쓴 신라 내물왕 이후 지증왕 때까지의 왕족은 흉노계로 봄이 타당하다.

2. 스키타이-흉노-오르도스-고조선(평양 근방)-경주의 적석 목곽분 루트: 적석 목곽분의 분포 루트를 살펴보면, 스키타이-시베리아 초원-오르도스(황하가 북쪽으로 굽어진 지역. 지금은 내몽골 소속)-평양근방-경주지방으로 연결된다. 이 루트를 타고 북방유목기마문화를 지닌 민족이 청동기-철기시대 초기에 한반도로 들어왔다.

3. 적석목곽분의 부장품: 출토유물을 살펴보면 흉노계 유목기마민족들의 문화적(종교 예술) 영향을 많이 받은 것들이 나온다. 이것들은 백제, 고구려에는 없는 것들이고 중국에서 수입한 것도 아니다. 금관, 角杯, 로만 글래스, 寶劒, 동복 등이 그렇고, 環頭大刀도 북방식이다.

4. 문무왕 碑文: 문무왕은 비문에다가 자신의 조상이, 漢 시대에 중국에 항복했던 흉노 왕족이라고 써놓았다.

5. 馬具와 무기류: 적석목곽분에서 많이 발굴되는 안장, 등자, 재갈 등 마구들은 북방계통이고 장검과 갑옷도 북방기마민족식이다.

6. 金氏의 조상인 金閼智의 탄생신화는 전형적인 북방계이다.

7. 金氏王族들이 사용한 麻立干이란 호칭은 칭기즈칸의 '칸'처럼 여러 부족 연맹의 우두머리를 칭하는 북방식이다.

8. 金의 상징성: 신라인의 브랜드라고 볼 수 있는 金은 스키타이-알타이-흉노와 직결된다. 성씨로서의 金은 중국에서 흉노족 등 북방기마민족에게 최초로 붙여준 姓이다. 기마민족들은 금제품을 특히 좋아했다. 신라고분에서 출토되는 많은 금제품은 그 양식이 전형적인 북방기마민족계통이다. 김알지의 알지는 알타이에서 유래한 한자어인데, 알타이는 金이란 뜻이다.

9. 신라인들의 샤머니즘이 북방계와 통한다.

10. '花郞世記'에서 적나라하게 나와 있는 6-7세기 신라 지배층의 풍습은 흉노와 매우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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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김씨왕족이 흉노계라고 해서 이들이 유목을 했다는 뜻은 아니다. 한반도는 초원이 거의 없어 유목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북방유목기마민족이 한반도에 들어올 때는 유목민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기마민족의 戰士 집단으로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곧 토착 농경 민족을 지배하면서 서로 섞이게 되었고 기마민족과 농경민족의 성격 체질 풍습들도 서로 혼합되면서 새로운 모습을 띠게 되었을 것이다.

이 흉노계 김씨 집단이 어떻게 경주지방에 나타났느냐 하는 데는 여러 학설이 있다. 숭실대학교 사학과 崔秉鉉 교수는 3-4세기경의 북방민족 남하 흐름을 타고 일단의 기마민족이 경주지역에 침입하여 정복국가를 세웠을 것이란 추정을 한다.

경기도 박물관장 李鍾宣씨는 흉노족이 알타이-오르도스를 거쳐 기원 전에 평양 근방에 들어와 古朝鮮의 구성원으로 약200년간 살다가 다시 경주로 이동하여 신라김씨가 되었다는 것이다. 李관장은 기마민족의 경주 출현을 민족이동의 흐름으로 보고 있고 崔교수는 기마군단의 침입으로 본다.

어떤 경로로 기마민족이 4세기에 경주에 갑자기 나타났는가 하는 문제는 아직 추리나 역사적 상상력의 영역이다. 그보다는 동아시아를 포함하는 유라시아 전체의 역사 흐름속에서 전개된 북방 유목민족과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크게 머리에 그려놓고 세부적으로 들여다 볼 때 큰 줄기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3-6세기 사이 북방 기마민족의 西進, 南進, 東進은 서유럽과 중국과 한반도와 일본 사회를 뒤집어놓는다. 흉노족(서양에서 부른 훈)의 西進은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촉발시켜 로마문명을 무너뜨리고 게르만족 지배하 여러 유럽 국가들을 탄생시킨다. 기마민족의 南進은 중국 漢族 국가의 붕괴와 대혼란, 한반도와 일본으로의 東進은 삼국시대와 일본의 성립을 가져온다. 오늘날 우리가 세계 지도에서 볼 수 있는 국가 지도의 기본 틀을 만들어낸 대초원의 대폭발, 거기에서 비롯된 인류사의 대격변, 그 흐름속에서 북방 기마민족 일파의 한반도 진입, 그 중에서도 흉노계통의 신라 진입을 이해하는 것이 쉬울 것이다.

3세기말부터 6세기까지 동아시아와 유럽은 대동란의 시대였다. 그 대격변의 충격은 만주-몽골-중앙아시아-흑해 연안-러시아 대평원-헝가리 평원으로 뻗어나가는 유라시아 대초원으로부터 나왔다. 지도를 놓고 보면 이 유라시아 大草原은 길다란 타원형의 벨트처럼 되어 있다. 이 대초원을 지중해에 비교하면 배는 말이 된다. 서구 문명의 본류인 그리스-로마-서유럽 국가들이 지중해라는 일종의 호수를 통해서 문물과 영향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해간 것처럼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이란과 인도, 러시아 등 동유럽 국가들은 이 유라시아 대초원이란 일종의 지중해를 통해서 기마민족의 침략을 받고 그들과 문물을 교류하면서 발전해왔다.

3-4세기 이 대초원의 세계에서 큰 변동이 생긴다. 몽골고원에는 小氷河期가 찾아와 목초를 구하기가 힘들어지자 유목민들은 농경민족 정복에 나서든지 풀과 물을 따라 이동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때 동서양의 도시 농경 문화권의 2대 축이던 로마와 중국이 분열하고 있었다. 유목기마민족은 대초원 연변의 농경국가들이 분열하거나 약체로 보이면 반드시 침략을 개시한다.

3세기말 중국의 통일왕조 晉이 왕족들의 내부분열로 헛점을 보였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흉노계 세력이 들고 일어나는 것을 신호로 하여 북방의 다섯 유목기마민족이 일제히 남침하여 晉을 멸망시키고 북중국에 16개 나라를 잇따라 세운다. 소위 5胡16國 시대이다. 이를 이은 남북조 시대까지 포함하면 隋가 중국을 통일하는 서기 581년까지 약 300년간 동아시아에서는 유래없는 격동과 이동이 벌어진다.

이 시기는 혼란속에서 창조적 파괴가 일어난 시대이기도 했다. 즉, 기마민족의 이동과 고대국가의 건설인 것이다.

한반도에선 이 3-6세기 시절에 북방기마민족이 주체가 되어 馬韓, 辰韓, 弁韓, 沃沮, 濊貊 등 부족국가들을 흡수통합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섰다. 고구려와 백제는 북만주의 扶餘系 기마군단이 세운 나라이고, 신라는 흉노계 기마민족이 크게 일으켰다. 이 3국은 7세기말에 통일신라로 통합되어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태가 된다.

북방기마민족의 일파는 한반도의 남부 지방을 도약대로 삼아 일본에 상륙한다. 말과 활로 무장한 기마민족은 농경민족인 야요이 문화가 만들어낸 수십개 부족국가를 점령해가면서 나라 지방으로 진격하여 5세기경에는 大和정권을 수립한다. 이들은 떠나온 한반도의 3국과 和戰 양면의 관계를 설정하여 오늘날 韓日관계의 한 定型을 만들었다.

북방 기마민족의 南進, 東進으로 인해 만들어진 隋(그를 이은 唐), 고구려, 백제, 신라, 일본의 고대국가는 지금의 한국, 북한, 중국, 일본의 모태이다. 오늘날 동북아의 모습은 3-6세기에 형성된 틀 위에 서 있다. 민족국가의 탄생을 부른 것이 북방기마민족의 대이동이었던 것이다.

특히 북중국의 漢族들은 이 300년간 몽골계 유목민족들과 혼혈되어 양자강 이남의 純한족들과는 유전자가 많이 다른 민족으로 바뀌었다. 漢族의 몽골화, 또는 漢族의 북방화, 몽골족의 漢化이다.

한반도와 일본도 이 시기에 여러 민족이 용광로에 들어가 새로운 모습으로 빚어졌다. 반도와 열도에 先住하고 있던 종족들 가운데는 농경하는 남방계가 많았다. 북방계가 이들을 정복하면서 서로 혼혈하여 오늘날의 한국인, 일본인으로 된 것이다.

동아시아 대이동의 시대는 隋가 중국대륙을 통일하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581-676년 사이에 끝이 난다.

그 뒤의 동북아 사람들은 굳어진 민족과 국가가 만들어낸 국경안에 머물면서 생활한다. 그런 定住 생활에 너무 오래 익숙하다가 보니 고대의 대이동 시대를 이해하는 데 장애가 생기고 있다. 민족이 형성되기 이전인 고대, 국경이 없던 고대를 최근 100년 사이에 만들어진 민족주의의 시각으로 들여다보니 있지도 않았던 민족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예컨대 신라통일이 외세인 唐을 불러들여 동족 국가인 백제, 고구려를 친 민족반역 행위라는 식의 관념과 환상이다. 일본인들은 너무나도 뻔한 북방기마민족의 한반도 통과, 일본 상륙과 정복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한국인들은 그 사실을 민족적 우월감의 근거로 삼으려 한다.

북한정권은 신라통일을 부정하고 고구려 정통론을 앞세운다. 이는 자신들이 민족반역자라는 정체를 감추기 위하여 허구의 민족 정통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중국은 한민족 에너지의 중국으로의 팽창을 사전에 견제하기 위하여 고구려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현대의 굳어진 의식이 고대의 생동하는 역사를 인질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동과 격동과 생동의 동아시아 고대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은 역사에 인질로 되어 있는 이 지역 사람들의 의식을 해방시켜주는, 그리하여 새로운 차원의 공존공영을 가능하게 하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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