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사업 반대 운동 중 한 축은 국군부대·미군기지 移轉(이전)반대 또는 閉鎖(폐쇄)투쟁이다. 이는 다른 국책사업 반대보다 훨씬 더 노골적인 친북·반미 성향을 띄고 있다.
<오종렬, 대부분의 범대위 대표로 주도 >
예컨대 김대중·노무현 정권 기간 친북·반미 난동을 주도해 온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以下 전국연합)과 통일연대·민중연대 등 3개 연합체는 2005년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汎국민대책위(평택범대위)를 비롯해 사회적 이슈가 생길 때마다 소위 ‘범대위’ 라는 기구를 구성해왔다.
전국연합·통일연대·민중연대 등 3개 단체가 주도한 ‘범대위’는 평택범대위 외에도 2001년 매향리美軍국제폭격장폐쇄汎국민대책위, 2002년 미군장갑차故신효순·심미선살인사건汎국민대책위(여중생범대위), 2004년 탄핵무효부패정치청산을위한汎국민행동, 2005년 貧困을확대하는APEC반대·부시반대국민행동(反부시행동), 농업의근본적회생과故전용철농민살해규탄汎국대책위(전용철범대위), 2006년 韓美FTA저지汎국민운동(FTA범국본) 등을 들 수 있다.
집회 주관단체는 ‘FTA저지범국본’·‘평택범대위’·‘전용철범대위’·‘反부시국민행동’·‘여중생범대위’ 등 다양했고 수백 또는 수천 개의 소위 시민사회단체가 가세했지만, 주도자는 언제나 전국연합·통일연대·민중연대 지도부였다.
예컨대 吳宗烈(오종렬) 전국연합 상임의장(현 진보연대 상임고문)은 △2002년 여중생범대위(11월30일 조직. 대표 : 오종렬, 한상렬, 홍근수, 단병호, 천영세, 문정현), △2004년 탄핵무효범국민행동(3월12일 조직. 대표 : 오종렬, 이수호, 문규현, 박원순, 최열), △2005년 10월 反부시국민행동(상임대표 : 오종렬, 정광훈), △2005년 11월 전용철범대위(공동대표 : 오종렬, 한상렬, 정광훈, 문경식, 권영길), △2005년 평택범대위(공동대표 : 오종렬, 한상렬, 정광훈, 홍근수, 문정현, 문경식, 이정미), △2005년 韓美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공동대표 : 오종렬, 정광훈, 문경식)등 대부분의 범대위 대표로 참가했다.
<통일연대·민중연대, “맥아더? 분단과 학살의 원흉, 戰爭미치광이”>
전국연합은 1991년 창립 이래 “국보법철폐·미군철수·평화협정체결·연방제통일”을 공개적으로 주장해왔다. 전국연합은 2001년 9월22~23일 충북 괴산군 보람원수련원에서 가진 소위 ‘민족민주전선일꾼전진대회’에서 연방제통일을 결의하는데 이에 대해 소위 “북한의 社會主義(사회주의) 혁명역량에 加勢(가세)·結集(결집)하는 형태로 이뤄질 것”이라고 해설했다.
통일연대·민중연대 역시 “국보법철폐·주한미군철수·韓美동맹파기·615선언실천” 을 주장하며 전국연합과 同一노선을 걸어온 조직이다. 左派회의체인 전국연합이 頭腦(두뇌)라면 통일연대와 민중연대는 兩翼(양익)에 기능했다.
북한의 對南조직인 반제민전(舊한민전)은 “主體思想(주체사상)이 시대의 향도사상으로 民族民主運動(민족민주운동)의 지도이념으로 자리 잡았다”며 “전국연합·민중연대·통일연대·민주노동당은 향후 실질적 民族民主戰線(민족민주전선) 건설 사업을 담당하는 주체(주체 90년(2001년). 한민전의 ‘한국민족민주운동의 새로운 전진을 위하여’ 中”라고 밝히고 있다.
통일연대·민중연대는 2005년 9월11일 인천맥아더동상 파괴 집회를 주최했는데, 당시 “맥아더는 학살의 원흉, 戰爭(전쟁)미치광이”라며 일련의 미군철수 성명을 발표했었다. 전국연합·통일연대·민중연대는 2007년 9월 한국진보연대로 통합하면서 소위 발전적으로 해소됐다.
<평택범대위, 각목·죽창·파이프·돌을 동원한 不法폭력시위>
전국연합·통일연대·민중연대 등이 주도한 평택범대위와 같은 각종 범대위는 대부분 武裝暴動(무장폭동) 형태로 전개됐다. 평택범대위는 2006년 5월4일·4월7일·3월15일, 2005년 7월10일에 각목·죽창·파이프·돌을 동원한 불법폭력시위를 벌였다.
평택범대위가 평택 미군기지 이전을 반대하는 명분은 소위 ‘한반도 평화’와 ‘지역주민 생존권’등이었다. 평택범대위는 2004년 2월22일 결성선언문을 통해 “평택 미군기지 이전은 미국이 핵문제 등으로 인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과 중국에 대한 포위를 쉽게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며 “우리는 이처럼 평택주민들의 삶을 뒤흔들고 한반도의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하며 군사적 對美종속을 영구화하게 될 주한미군 재배치를 그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평택범대위는 ‘미국의 對北선제공격’이나 ‘한반도 평화 위협’ 등 황당무계한 억지를 부렸지만 실제 목표는 주한미군 철수였다.
예컨대 평택범대위 주요 참가단체인 전국연합(상임의장 평택범대위 공동대표 오종렬)은 2006년 3월11일 한양대에서 열린 대의원대회를 통해 2006년 양대 투쟁과제로 ‘평택 미군기지 이전 저지투쟁’과 ‘韓美 FTA 체결 저지투쟁’을 제시했다. 전국연합은 이날 대회에서 ‘평택 미군기지 이전 저지투쟁’등을 통해 “미국의 植民地(식민지) 지배강화책동을 저지파탄”시키고 “주한미군을 몰아내기 위해 총력을 다 할 것”등 소위 평택투쟁 목적이 미군철수에 있음을 강조했다.
평택범대위 참가단체 한총련은 2006년 3월4일 14기 한총련 總노선 최종안을 통해 “우리의 당면한 총 목표는 연방통일조국 건설”이라면서, 이를 위해 “反美투쟁의 기본방향을 주한미군 철수투쟁으로 맞추고 가야하며” 특히 “올 상반기 평택 미군기지 확장 투쟁을 反美투쟁의 기본흐름으로 밀고 나가자”고 결의했다.
북한의 對南지령매체인 반제민전 역시 2006년 들어서만 4월7일, 3월21·14·10일, 2월25·23·21·11·10·8·7·6일, 1월29·26·22일 등 논평·논설을 통해 “평택미군기지 확장반대투쟁을 전면적 미군기지철수투쟁으로 확산 고조시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현역 군인 폭행, 뇌진탕 환자 등 발생>
평택범대위 反美폭동은 특히 격렬했다. 2006년 4월28일에는 육군대령이 시위대에 폭행을 당했다.
5월5일 평택에서는 쇠파이프·죽창·각목 등으로 무장한 평택범대위 폭도들이 군인들을 폭행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국방부는 5월4일 미군기지 移轉(이전) 예정지에 철조망을 설치했으나 이튿날 철조망 20여 곳이 시위대에 뚫렸다. 폭도들은 군부대 주둔지역에 난입했고 이를 막던 군인들은 속수무책으로 폭행당했다. 눈 부위에 심한 상처를 입은 병사와 팔이 부러진 병사, 뇌진탕 부상환자 등 11명은 긴급 투입된 UH-1H 헬기에 실려 군 병원으로 후송됐다.
폭도들은 철조망 내 장병들이 숙영하던 텐트와 임시초소를 발로 짓밟고 찢었고, 이로 인해 군 막사 50여 곳이 망가졌다. 모래 포대로 쌓아 100여m 간격으로 설치된 군 초소도 상당수 훼손됐다. 시위대는 철조망에 짚단을 쌓아놓고 불을 지르기도 했다.
사전에 철저하게 非폭력 교육을 받은 비무장 군인들은 발길질과 죽봉, 쇠파이프에 처참하게 나가 떨어졌다. 보호 장구도 없이 서 있던 군인이 달려온 시위대의 이단 옆차기에 힘없이 무너지는 모습이 공개됨으로써 군의 위상과 체면도 말이 아니게 됐다.
현지 부대 장병들에 대한 군수 보급 지원도 여의치 않았다. 부대원들은 5월4일 평택·팽성 미군기지 이전부지에 배치된 뒤 이틀 동안 전투식량과 빵만으로 끼니를 때웠고 물도 부족해 7일에야 부분적으로 샤워를 할 수 있게 됐다. 전기 공급도 제대로 안 돼 밤이면 자체 발전기를 가동했다.
시위대에 의해 철조망이 뚫린 뒤 현장을 둘러본 군 관계자는 “군인이 진압하러 간 것도 아닌데 주둔지에 민간인들이 들어와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일을 저지른 세력과 방치한 측에 대해 분노가 일었다”며 “양심선언하고 옷을 벗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환경연합 前身 공문연, 매향리 기지 폐쇄 투쟁 주도>
평택범대위 이외에도 全國(전국) 미군기지 주변에선 기지閉鎖(폐쇄) 또는 기지移轉(이전) 투쟁이 집요하게 계속돼왔다. 명분은 주로 주한미군의 소위 환경파괴, 환경오염 문제였고 이를 주도한 단체도 환경운동연합(환경연합) 같은 단체들이었다.
대표적 사례가 ‘매향리’였다. 1988년 6월14일 주민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고, 같은 해 12월12일 주민들은 사격장 내 대형 표적 등을 점거하는 반대시위를 전개했다. 사격장을 이전하든가, 집단 이주를 시켜주든가, 안전 대책을 마련하고 피해 보상을 해주라는 요구였다.
환경운동권이 펴 낸 ‘환경운동25년사, 자연의 친구들’을 보면, 환경연합의 전신인 공해문제연구소 최열 이사장은 활동가 권헌열과 황상규를 현지에 파견해 운동을 이끌려 했다고 나온다. 당시 주민대책위 전만규는 “우리는 左傾(좌경)이나 反美(반미)가 아니다. 생존권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러니 돌아가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서울의 환경운동권은 삼고초려 끝에 지역민들과 결합한다.
반대운동은 격렬해졌다. 시위대는 1989년 3월 팀스피리트 훈련기간 중 3주간에 걸쳐 포격장을 점거 농성했다, 5월29일 미군 부대에 들어가 차량과 집기를 부수고 기지를 완전 점거했다. 최열 이사장은 같은 해 6월22일 김근태 등 전국 22개 단체 소속 60여 명을 데리고 매향리 답사를 추진했다.
<反美운동의 메카로 변모한 매향리>
매향리는 이후 反美운동의 메카로 변모한다. 결정적 계기는 2000년 5월8일 훈련 중이던 A-10기가 엔진 고장을 일으켜 농섬 해상에 500파운드짜리 포탄 6발을 떨어뜨리는 사고였다. 이날 사고로 주민 여섯 명이 부상하고 가옥 700여 채가 파손됐다.
다른 국책사업 반대투쟁과 마찬가지로, 환경운동권이 포문을 연 매향리 투쟁은 좌파운동권이 총동원됐다. 2000년 6월에는 국내 좌파단체가 총집결한 ‘매향리美軍국제폭격장 폐쇄 범국민대책위(이하 매향리범대위, 상임대표 문정현, 홍근수, 권영길, 단병호, 오종렬, 이종린, 전만규, 청 화, 최용운)’가 만들어졌고, 이후 대규모 집회가 이어졌다.
2000년 6월6일 집회에는 매향리 주민들과 서울에서 내려온 운동권 3,000여명이 참가했다. 집회가 끝난 뒤 시위대는 대책위 사무실에서 사격장 정문까지 1㎞ 구간에서 사격장 철책을 둘러싼 인간 띠 잇기 행사를 가졌다. 이들은 사격장 정문 현판에 페인트를 뿌렸고, 절단기를 이용해 사격장 주변 철책 곳곳을 파괴했다. 6월17일에는 사격장 출입문을 부수고 영내로 진입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2001년에는 주민들의 집단소송이 승리했다. 이석태 변호사(환경운동연합 상임집행위원)가 주도한 집단소송은 2001년 4월11일 “국가는 원고 14명에게 1억3200만원을 배상하라”는 원고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다. 매향리 주민들은 52년 마을 농지와 인근 해상을 美공군 사격장으로 제공한 뒤 전투기의 기총 및 포탄투하 훈련으로 주민의 인명 피해와 가옥훼손, 소음피해 등을 입었다며 1998년 2월 소송을 냈었다. 판결이 나오자, 환경연합은 성명에서 “이번 판결은 지난 51년 이후 반세기 동안 계속된 미군의 폭격연습으로 인한 소음 피해를 우리 법원이 최초로 공식 확인하고 배상한 것”이라며 『“향리 주민들만의 승리가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환호했다.
1심 판결 후인 2001년 8월, 나머지 주민 1899명도 81억5000만원의 손해배상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국방부는 2005년 8월12일 사격장 전체를 완전 폐쇄했다. 2006년 9월 매향리대책위는 소위 평화마을을 조성키 위한 ‘매향리 평화마을 건립 범국민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전국연합 등의 ‘우리 땅 미군기지 되찾기 운동’>
매향리件 이외에도 소위 ‘우리 땅 미군기지 되찾기 운동’을 참고할 만하다.
1995년 3월6일 오전 부산에서 전국연합 산하 부산연합, 환경연합, 민주당 부산지부 등 소위 30여개 정당·시민·사회단체 등과 함께 ‘우리 땅 되찾기 시민대책위원회(공동대표 송기인·배다지·노무현 등 8명)’가 결성됐다. 당시 대책위는 부산항 8부두 미군 전용부두와 동구 범일동 55보급창, 부산진구 연지동 7관구사령부(일명 하야리야부대) 등 부산지역 3개 美軍시설 26만 여 평의 즉각 반환을 촉구했다.
2002년 5월에는 ‘우리 땅 미군기지 되찾기 운동연합’이라는 단체가 의정부로 나섰다. 이 단체 참여인사 300명은 5월2일 소위「평화시민선언」을 발표, “미군기지 신설 백지화와 조건 없는 기지반환”을 요구했다. 이들은 같은 날 의정부역에서 집회를 열고 “분단과 대결의 구도 속에서 군사 도시, 미군기지, 기지촌으로 상징되는 도시문화를 강요받아온 의정부를 ‘평화의 도시’로 선언한다”고 주장했다.
<환경연합 등, 군부대 建設·移轉반대 투쟁>
소위 환경오염을 이유로 한 압박은 미군기지에 대해서만 가해진 것이 아니었다. 환경연합 등이 주도한 군부대 建設(건설) 및 移轉(이전)반대 투쟁은 같은 이유로 집요하게 계속됐다. 주요 활동을 정리하면 이러하다.
▲이천·여주 환경연합 및 이천 지역 시민단체 들은 2001년 7월 ‘여주군 공군사격장 이전대책위원회’를 만들어, 같은 달 4일 여주 군민회관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능서면 백석리 35만여 평에 들어선 공군 사격장 때문에 40여 년 동안 각종 소음과 인명피해를 당해왔다”며 기지 폐쇄를 주장했다.
▲성남 환경연합 등 16개 단체로 구성된 ‘성남사회단체연대회의’는 2003년 육군도하부대와 국군정보사령부를 성남시 청계산으로 옮기는 문제에 대해서 반대투쟁에 나섰다. 이유는 ‘환경파괴와 교통체증’이었다. 예컨대 성남 환경연합 등은 같은 해 6월 성명을 통해 “군부대 이전으로 대규모 벌목이 이뤄지면 수도권의 허파 청계산의 생태계가 파괴되고 인근 지역이 황폐한 공해도시가 될 것”이라며 국방부의 계획중단을 요구했다.
▲국방부가 강원도 인제군의 종합훈련장 건설계획을 확정발표하자, 2004년 1월5일 환경연합은 “인제군 종합훈련장 터는 설악·오대산과 가까울 뿐 아니라 극상림과 다양한 생물종이 보존되고 있는 곳”이라며 “건설계획 백지화와 함께 그 지역을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하라”고 주장했다.
▲제주 환경연합은 2005년 3월26일 성명서를 통해 해군본부의 화순항 해군기지 재추진 계획 철회를 요구했다. 이 단체는 “제주도민의 분명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군본부는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은밀한 물밑작업을 해오고 있다”며 “해군기지 결사반대를 통해 제주 도민의 생존권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軍부대 골프장까지 문제 삼았다. 대전 환경연합은 2002년 4월30일 성명에서 “육군본부가 계룡대 골프장 운영으로 막대한 경영수익을 얻어 이 돈으로 새로운 골프장을 건립하는 것은 군장교의 복지를 빌미로 국토파괴의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처사”라며 군 당국의 골프장 건립계획 중단을 촉구했다.
똑 같은 者들이 주도해 온 反美운동
- 金成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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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5-27, 15: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