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時엔 잘 사는 것이 재앙이 될 수 있다!

金庾信+朴正熙 정신으로 무장, 수비형 국가에서 攻勢型 국가로 전환하자!
國格 업그레이드: 수비형 국가에서 공세형 국가로!
중도실용 노선은 國格을 높이는 방도가 될 수 없다.



공세적 國格을 요구하는 헌법


요사이 한국은 가끔 동네북이 되곤 하지만 헌법은 아주 공세적인 國格(국격)을 요구한다.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고 선언하고, 제3조는 그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북한지역도 민주공화국이어야 한다는 國家(국가)의지를 확실히 하였다. 북한지역까지 민주공화국으로 만들려면 통일을 해야 하는데, 헌법 제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명령했다. 헌법 1, 3, 4조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正體性(정체성)을 담은 헌법의 뇌수요 심장이다. 여기에 손을 대는 것은 國體(국체)변경을 가져오므로 개정 不可(불가)조항이라는 게 定說(정설)이다. 이 헌법에 따라서 한국인은 '북한노동당 정권을 평화적으로 해체하여 북한지역까지 민주공화국으로 만드는 자유통일 사업을 위하여 헌신할 의무'를 지게 되었다. 매우 공세적 국가의지와 목표인 것이다.
한국인으로 태어나면 시장경제 속에서 경쟁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하여 투쟁하여야 할 의무를 진다. “한 손에 망치 들고, 한 손에 총을 잡고,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운다”는 구호는 한국인의 삶의 조건을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다. 공세적 국가의지는 공세적 국민생활을 요구한다.
국회입법서기관인 柳世桓(유세환)씨는 盧武鉉(노무현) 정부 시절, 그를 국가반역자로 규정한 책(‘대한민국憲法제3조’)을 펴냈다가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연간 20조원이 넘는 월급을 받는 100만 공무원 중 좌파정권의 反헌법적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기존의 對北(대북)정책의 反헌법-反윤리성을 이렇게 지적하였다.
<김정일을 자극하지 않고 김정일이 원하는 달러와 물자를 주면서 남북교류를 확대해 나가면 결국 김정일에게는 毒(독)이 되어 김정일을 몰아낼 수 있다는 것은 결국 김정일로 하여금 自滅(자멸)에 이르게 하는 선택을 하게 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기능주의적 對北정책은 김정일을 속일 수 있다는 일종의 사기적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하지만 이런 기능주의적 對北정책의 결과, 지금 대한민국은 김정일에 대해 사기를 치려다 오히려 사기를 크게 당하고 있는 상황을 맞고 있다”고 주장한다.
<김정일을 속이려다 보니 국민들에게조차 김정일을 대한민국의 동반자라고 속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되니 대한민국 사람들의 도덕적, 정치적 판단기준은 혼란에 빠지게 되면서 김정일을 추종하는 반역자들이 대한민국 내에서 民主(민주)인사행세를 하게 되었고, 결국 그들이 대한민국의 정권을 장악하게 되자 대한민국은 속수무책으로 김정일에게 넘어가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正義불감증’ 국가로 전락


대한민국이 북한정권과 從北(종북)세력에 挾攻(협공)을 당하는 신세로 전락하여 국가의 체통과 法治(법치)가 모욕을 당하게 된 근본 원인은 700만 학살자 金日成(김일성)-金正日(김정일)에 대한 도덕적, 정치적 판단을 흐리멍덩하게 만든 기능주의적 對北(대북)정책이란 그의 지적은 옳다. 巨惡(거악)에 대한 斷罪(단죄)를 포기하고 小惡(소악)만을 다스리려 하는 것은 正義(정의)의 원칙에 어긋난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宣戰(선전)포고나 보복암살, 또는 보복폭격이라도 했어야 할 受侮(수모)를 북한으로부터 여러 번 당하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한번도 하지 못한 것이 한국이고 이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한국의 지도층이다.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의 목숨을 노린 1𑦹 청와대 습격사건, 朴(박) 대통령을 노렸다가 그의 부인을 죽인 文世光(문세광) 사건, 17명의 장차관급 인사를 죽인 아웅산 테러, 115명을 죽인 KAL기 폭파사건, 두 차례의 서해 도발, 금강산 관광객 사살사건, 최근의 임진강 無斷(무단)방류 참사 등등. 이런 일들을 당하고도 화를 내지 않는(못하는) 국가는 ‘正義(정의)불감증 국가’라고 부를 만하다. 敵(적)에 대한 보복력이 없는 국가는 권위를 잃고 不法세력에 대한 응징력마저 약해진다. 敵(적)과 惡(악)을 응징할 수 없는 국가는 경제와 문화가 아무리 발전해도 체제를 지킬 수 없고 一流(일류)국가가 될 수 없다.
한국과 비슷한 생존조건을 가진 이스라엘은 보복과 응징을 생존의 원칙으로 삼는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팔레스타인 테러조직 ‘검은 9월단’이 선수촌에 잠입, 이스라엘 선수 및 코치 11명을 죽였다. 여성 총리 골다 메이어가 이끄는 이스라엘 정부는 암살단을 만들어 그 후 20년간 세계를 누비면서 테러 관련자들을 모조리 죽였다. 이스라엘 같았으면 김일성, 김정일과 對南(대남)테러 주모자들을 가만 두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 교회는 아직도 그런 김정일을 몰아내자는 기도보다는 회개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더 열심히 한다.
한국이 김정일에 대한 도덕적, 정치적 판단을 회피한 代價(대가)는 善惡(선악)분별력과 彼我(피아)식별기능의 마비, 법치輕視(경시)풍조의 확산, 그리고 國格(국격)의 추락으로 나타났다. 지구상에서 가장 공세적인 북한정권과 死活(사활)을 건 투쟁을 벌이는 나라가 어느 새 평화와 번영에 취하여 수비에 급급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이제 그 북한정권이 核무기까지 갖고 남한내에 거대한 혁명기지까지 구축하였고, 11만5000명의 공무원 노조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從北的(종북적)인 민노총 산하에 들어가기로 한 마당에 수비만으로 체제를 지킬 수 있는가에 대한 懷疑(회의)가 확산되고 이에 대한 反작용으로 한국을 공세적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代案論(대안론)이 나오고 있다.


한국군도 先制-기습공격을 할 수 있어야


1987년 11월29일 KAL기 폭파 사건은 88 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하여 김정일이 지시한 것이다. 그 직후 全斗煥(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한 특수부대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응징계획’을 허가하였다. 이 특수부대는 계획을 수립하고 훈련에 들어갔다. 계획의 개념은 북한정권이 또 다시 테러를 하면 우리 특공대가 헬리콥터를 타고 휴전선을 넘어 敵陣(적진)으로 들어가 핵심 사단장, 군단장의 숙소를 습격, 그들을 체포하여 온다는 것이었다. 적진으로 들어갈 때는 기습의 효과 덕분에 我軍(아군)의 손실은 거의 없지만 사단장들을 체포, 헬기에 태워서 데리고 나올 때는 반격을 받아 손실률 50%를 각오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고 한다. 이 부대는 實戰(실전)에 옮길 수 있을 정도의 맹훈련을 하였다. 全斗煥(전두환) 정부는 이런 훈련사실을 북한군이 알도록 했는데, 이는 그들이 테러할 생각을 아예 단념시키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2007년 9월 북한의 도움을 받아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용 원자로를 짓고 있던 시리아를 공습하여 시설을 파괴하였다. 시리아와 북한은 얻어맞고도 침묵하였다. 알려지면 核확산의 음모가 드러나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을 것임을 걱정한 것이다. 이러한 응징-선제공격 개념을 우리 군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提起(제기)되고 있다.
權泰榮(권태영) 박사는 육군사관 학교 제18기 출신으로서 KAIST 산업공학 박사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군 안팎에서 존경 받는 戰略(전략)연구가이다.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국방부 군사혁신기획단장 등 現業(현업)에 평생 종사하였고, ‘21세기/통일대비 국방발전방향’ 등 많은 著書(저서)가 있다. 그가 노훈 박사(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와 함께 쓴 ‘21세기 군사혁신과 미래전’(法文社)은 우리나라가 급변하는 주변정세에 맞추어 ‘先制(선제)공격’을 포함한 공세적, 예방적, 억제적 방위전략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權 박사는 이 책을 포함한 자신의 책과 논문에서 북한군에게 기습을 절대로 허용하여선 안 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였다.
1. 북한군은 핵무기, 화학생물 무기, 그리고 長射砲(장사포) 등 장거리 기습 및 타격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2. 수도권에 인구의 반, 國富(국부)의 70% 이상이 집중되어 있는데다가 휴전선과 인접한 포천, 의정부, 고양 지역이 급격하게 개발되었다. 따라서 기습을 당하였을 때 물러날 공간이 없다. 물러났다가 반격작전으로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수도권의 황폐로 實益(실익)이 없다.
3. 따라서 과거와 같이 敵(적)에게 영토를 양보한 다음 반격해서 失地(실지)를 회복하는 방위개념으로부터 벗어나 敵地(적지)내 작전으로 단기간 내 결정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전쟁을 사전에 예방, 억제하는 방위개념의 채택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억제 및 예방차원의 방위(Preventive Defense)를 하려면 과거의 ‘守勢(수세)-소극’ 방위에서 ‘공세-적극방위’로 전환하고, ‘선제 기습적 공격/타격(Preemptive Attack/Strike)’도 필요시 허용한다는 ‘위엄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4. 방위의 목표와 수준을 ‘적극, 예방, 억제 방위’로 格上시키려면 군사력을 첨단 情報技術軍(정보기술군)으로 탈바꿈시켜야 하며, 많은 예산이 소요된다.


허약한 정권이 기습을 허용하면 自滅


先制(선제)공격 개념은 이스라엘이 實戰에서 활용한 바 있다. 1967년 6월의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 공군기는 아침 출근시간에 맞추어 이집트 공군 비행장을 기습, 수백 대의 전투기를 활주로와 격납고에서 파괴하여 전쟁의 향방을 전투 30분 만에 결정지었다. 당시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이스라엘 공격을 천명하였으므로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은 自衛的(자위적) 차원의 결단이란 인상을 국제사회에 심어주었다.
1973년 10월의 제4차 중동전쟁 때는 이스라엘이 오히려 이집트의 기습을 받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기습을 허용하였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중대한 誤判(오판)을 하였다. 이집트 군이 開戰(개전) 전에 여러 차례 벌인 훈련은 전쟁 企圖(기도)를 은폐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여기에 속아 넘어갔다. 이집트 군대가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 것을 알고도 “또 훈련이군”이라고 안심하였다. 전쟁 몇 달 전에 이스라엘은 이집트군의 훈련을 전쟁준비라고 판단, 예비군에 비상을 걸어 약4000만 달러의 예산을 날린 적이 있었다.
이스라엘이 최종적으로 “이건 전쟁이다”는 판단을 내린 것은 開戰 여덟 시간 전이었다. 골다 메이어 수상, 모세 다얀 국방장관, 그리고 참모총장이 모여 先制(선제)공격 與否(여부)를 놓고 토론하였다. 결론은 “얻어맞자”는 것이었다. 만약 이스라엘이 선제공격을 하면 침략자로 규정되어 미국으로부터 軍援(군원)을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 대신 예비군 10만 명을 우선 소집하기로 하였다. 미국 닉슨 행정부에 긴급 연락을 취하여 소련과 아랍 국가들에 압력을 넣어 이집트가 기습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하였으나 효과가 없었다. 닉슨의 안보 보좌관 키신저도 메이어 수상에게 “先制공격을 하지 말라”고 부탁하였다. 만약 이스라엘이 선제공격을 하였더라면 미국은 여론의 악화로 이스라엘을 도울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집트와 시리아로부터 기습을 당한 이스라엘 군대는 처음 1주일간 苦戰(고전)하였다. 한때 다얀 국방장관은 수상에게 핵폭탄을 사용할 준비를 하자고 건의하였다. 수십 개의 히로시마급 원자폭탄을 점검하였다.
곧, 이스라엘 군대는 미국이 急送(급송)해준 수만 톤의 신무기의 도움도 받고 해서 반격작전에 성공하였다. 보름간 계속된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은 약3000명의 전사자를 냈다. 부상자까지 합하면 1만 명이 戰死傷(전사상)한 것이다. 그때 인구가 500만 명도 되지 않던 이스라엘로선 큰 손실이었다.
막강한 이스라엘도 기습을 당하면 이렇게 어려운 전투를 해야 하는 것이다. 權泰榮 박사는 “한국과 이스라엘은 안보 환경이 비슷하다. 특히 縱深(종심)이 얕아 기습을 받은 뒤 회복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先制(선제)공격 개념을 배제하여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한국군은 기습당하는 것을 前提(전제)로 한 소극적인 防禦(방어)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북한이 핵무장을 하고 한국 내에 막강한 從北(종북)세력을 구축해놓은 현시점에서 기습을 허용하는 것은 自滅(자멸)의 길이란 것이 權(권) 박사의 주장이다. 초장에 기습이 성공하여 서울이 대혼란에 빠지거나 북한군에 포위되면 從北(종북)세력은 폭동을 일으키고 연약한 정부라면 멸망의 길이 될 ‘현위치 休戰(휴전)’까지도 감수할지 모른다.
수세적 방어개념을 가진 군대는 士氣(사기)에도 문제가 생긴다. 반면 북한군은 ‘武力(무력)통일’의 꿈을 품고 항상 공격적이다. 한국군은 자유통일을 뒷받침하는 武力(무력)이라는 自覺(자각)과 先制(선제)공격도 감행할 수 있다는 각오를 가져야 북한군을 누를 수 있는 '위엄성'을 갖추게 될 것이다.


成人의 15%, 500만 명이 6𑦽의 元兇을 모른다!


한국군은 先制(선제)공격 개념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敵(적)의 지휘부를 집중 타격하는 ‘참수작전’ 을 위한 신무기 개발에 돈을 쓰고, 첨단 NCW(Network-Centric Warfare) 戰力(전력)도 갖추어야 한다.
NCW는, 敵陣(적진)에 대한 실시간 정보와 敵(적)의 지휘부와 신경계통을 同時(동시)병렬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신무기 체제의 결합을 의미한다. 敵의 戰略重心(전략중심)거점(Center of Gravity)을 수백, 수천 개 選定(선정)하여 놓았다가 開戰(개전) 즉시 미사일, 전투기, 유도폭탄 등으로 동시다발적 공격을 감행하면 순간적으로 敵(적)의 지휘체제가 마비된다. 이 효과는 핵무기를 쓴 것에 버금 간다고 한다. 지휘체제가 마비된 군대는, 머리가 잘려나간 뒤의 몸통으로 변한다.
권태영 박사는 이런 공세적 방어체제를 구축하곤 이 사실을 김정일 정권에 대하여도 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재자는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챙기는 자들이므로 전쟁을 企圖(기도)하다간 敗家亡身(패가망신)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전쟁을 포기한다는 논리에서다.
이런 공세적, 예방적 防禦戰略(방어전략)은 國家(국가)지도부의 意志(의지) 없이는 군인의 손만으로써 만들 수 없다. 文民優位(문민우위)의 군 통제가 시행되는 한국에선 민간인 대통령의 國防(국방)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先制(선제)공격 개념을 세우려면 북한노동당정권을 민족반역 집단으로 규정할 수 있어야 한다. 헌법은 이미 그렇게 규정하고 있으니 국가 지도층이 이 헌법을 신념화할 수 있어야 과감한 戰略(전략)이 만들어질 수 있다.
韓美(한미)연합사가 2012년에 해체된다면 북한군의 기습의도를 파악한 후 한국군 단독으로 선제공격을 결단해야 하는데, 이 경우에도 미군이 增援軍(증원군)을 보내줄 것이냐의 여부가 애매하다. 韓美연합사 체제하에선 自衛的(자위적) 선제공격을 韓美 수뇌부가 공동으로 결정하므로 미군의 증원은 자동적으로 보장된다.
한국이 자유통일과 一流(일류)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보복력과 응징력을 갖춘 공세적 국가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민족사에 축적된 노예근성을 정리하고, 어린 민주주의를 보호, 육성하고, 국가기강을 세우며 강대국 사이에서 국가생존을 보장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누리는 평화, 자유, 번영은 공짜심리와 결합되면 국민정신을 타락시키는 毒(독)이 된다. 아직도 북한정권을 상대로 전쟁 중인 나라인데도 19세 이상 成人(성인)의 약15%, 인구로는 약500만 명이 6𑦽전쟁을 누가 일으켰는지 모른다는 국가보훈처의 여론조사가 최근 발표되었다. 투표권을 가지고, 군대에도 가고, 취직도 하고, 영어도 잘하고, 아름답고 건장한 20대에선 21%가 김일성이 6𑦽남침전쟁의 元兇(원흉)이란 사실을 모른다고 한다. 해가 동쪽에서 뜨는 줄을 모르는 것보다 더 위험한 사태이다.


‘6𑦽남침 否定罪’와 ‘유태인학살 否定罪’


이런 可恐(가공)할 상황에 대하여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국가 정통성과 正體性(정체성), 그리고 역사적 진실을 수호해야 할 사람인데, 주로 연설을 통하여 그렇게 한다.
지난 9월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면서 6𑦽 전쟁 때 유엔군이 우리를 구해준 데 대하여 감사하였으나 북한군이 南侵(남침)하여 일어난 전쟁이란 설명을 고의로 누락시켰다. 善(선)만 이야기하고 惡(악)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UN이 지켜낸 나라입니다. 건국한 지 2년 만에 일어난 6·25 전쟁에는 UN 16개국의 젊은이들이 참전했습니다”라고만 했다.
벤자민 네탄야후 이스라엘 수상은 그 다음날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면서 나치에 의한 유태인 학살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한 이란의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나치의 유태인 학살 계획 관련 문서를 들고 나와 연설하였다. 이런 요지의 말도 하였다.
"어제 이 演壇(연단)에서 유태인 학살을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연설을 하였습니다. 그에게 항의하는 의미로서 이 자리에 오지 않았던 사람과 연설도중 퇴장한 분들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여러분들은 도덕적 분별력을 지키기 위하여 행동하였고 여러분들의 조국을 명예롭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태인 학살을 부정하는 연설을 한 자에게 귀를 빌려주신 분들에게 우리 국민들, 유태인들, 그리고 교양 있는 모든 분들을 대신하여 묻습니다. 여러분들은 부끄럼을 모릅니까, 예의를 모릅니까?"
무례한 연설인 것 같지만 自國(자국)의 명예를 지키기 위하여는 지도자가 그렇게 공세적으로 행동해야 국민과 국군을 늘 깨어 있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李 대통령은 작년 8월15일 建國(건국) 60주년 기념식 연설에선 오늘의 이 멋진 나라를 만든 主役(주역)들을 거명하면서 감사를 표하였는데, 유독 建國(건국)세대와 李承晩(이승만)의 이름을 뺐다. 2000년 6월25일, 남침 50주년 기념사에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南侵(남침)의 책임자로 김일성을 擧名(거명)하지 않고 스탈린과 分斷(분단), 日帝(일제), 그리고 개혁에 실패한 조상들에게 남침의 책임을 씌웠다.
지난 10여 년 간 한국의 대통령들은 북한정권의 민족 반역적 범죄행위를 공개석상에서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 사실을 강조하는 것은 김정일에게 무슨 不敬(불경)을 저지르는 것이란 인상을 국민들에게 심어 주었다. 이 시기 전교조의 反대한민국적 현대사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에서 21% 가량이 6𑦽 남침전쟁의 원인제공자를 모르게 된 것이다.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은 내년 6𑦽 전쟁 60주년 기념사업회 위원장으로 李洪九(이홍구) 전 총리를 임명하였다. 그는 국가기관이 유럽에서 활동중인 북한공작 조직의 수뇌부로 보아온 尹伊桑(윤이상)의 추모 사업회 회장을 지낸 이다. 한 인격체가 김일성에 충성을 바친 자와 김일성의 남침 피해자를 동시에 기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른바 중도실용 정신이라면, 우리가 지금 누리는 이 자유와 번영은 自主(자주)국방의지를 좀먹는 독이 될 것이다.
유럽의 13개 국가들-독일, 프랑스, 체코, 오스트리아, 폴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은 '유태인학살否定罪(부정죄)를 형법에 두고 있다. 나치에 의한 유태인 학살을 부인하거나, 나치를 옹호하거나, 학살의 규모를 축소하는 공개발언, 집필 등을 한 자에 대하여는 최고 징역 5년까지 살리도록 규정했다. 피해당사자인 이스라엘은 유태인 학살과 反인류적 만행을 부정하는 것뿐 아니라 인정하더라도 축소 표현을 하는 자도 처벌하도록 하였다. 나치에 의하여 희생된 유태인이 600만 명이 아니라 60만 명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쓰면 감옥에 간다는 이야기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것이 표현의 자유에 위배된다고 주장하였으나 유엔 인권위원회, 유럽 인권위원회는 이런 주장을 배척하였다.
김일성-김정일의 反(반)인류적 범죄에 의하여 700만 명(한국전쟁으로 300만, 대기근으로 300만, 강제수용소에서 100만)이 희생되었으니 우리도 刑法(형법)에 '북한정권에 의한 학살 및 反인류적 행위를 부정하는 罪(죄)'를 신설할 만하다. 그렇게 되면 김일성의 6𑦽 남침, 북한정권의 강제수용소 실태, 공개처형, 납치, 아웅산 테러,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등을 부정하는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가르치는 자들을 감옥에 보낼 수 있다. 자유를 파괴하는 자유를 저지하는 이런 법률이 언론과 양심의 자유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것은 인권 선진국 유럽의 경우가 증명하고 있다. 우선 대통령 이하 공직자들이 6𑦽를 이야기할 때는 반드시 ‘6𑦽 남침전쟁’이란 용어를 쓰도록 강제할 필요가 있겠다.


尙武정신과 自主국방의 재발견


대한민국이 북한정권과 從北세력으로부터 얻어맞고도 보복과 응징을 하지 못하는 守勢的 국가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런 현상엔 오랜 역사적 배경이 있다. 신라가 對唐決戰(대당결전)으로 삼국통일을 완수하여 한반도를 한민족의 생존공간으로 확보한 것이 서기 676년, 그 뒤 1333년 동안 한민족은 단 한번도 外國(외국)을 치는 전쟁을 결심한 적이 없다. 거란(遼), 後金(여진족), 몽골, 일본, 그리고 중공군으로부터 침략을 당했어도 한번도 보복을 한 적이 없다. 좋게 말하면 평화를 좋아하는 민족이고 나쁘게 말하면 사대주의와 노예근성이다. 스탈린과 毛澤東(모택동) 등 外勢(외세)를 빌어 同族(동족)을 친 김일성의 민족반역적 행위는 이런 노예근성의 변태적 표현일 것이다.
建國(건국) 후 북한정권을 상대로 생존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强軍(강군)을 건설한 한국인들은 실종되었던 尙武(상무)정신과 自主(자주)국방 정신을 재발견하였다. 李承晩(이승만) 대통령이 굴욕적 휴전을 막기 위하여 단독 北進(북진)을 주장하더니 이 말이 엄포만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하여 반공포로를 석방한 뒤 “내 책임하에 명령했다. 엄숙한 主權(주권)의 발동이었다”고 선언한 것은 비록 나라는 가난하였지만 국가 지도부는 공세적 國格(국격)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은 李(이) 대통령의 富國强兵(부국강병) 노선을 자주국방 노선으로 格上(격상)시켰다. 1968년 1𑦹 사태 이후 예비군을 만들고 방위산업을 건설하면서 내건 구호-“한 손에 총 들고, 한 손엔 망치 들고,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운다”는 구호와 “미친 개에겐 몽둥이가 약이다”는 박정희의 발언은 당시 국가지도부의 높은 정신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청년 이승만은 29세 때 쓴 ‘독립정신’에서 자유를 富國强兵(부국강병)의 動力(동력)으로 보았다.
<부디 깊이 생각하고, 고립 부리지 말고, 모든 사람들이 힘껏 일하고 공부하여 성공할 수 있도록 자유의 길을 열어놓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에게 스스로 활력이 생기고, 관습이 빠르게 변하여 나라 전체에도 활력이 생겨서 몇 십 년 후에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를 존중하는 것은 나라를 세우는 근본이다>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은 이승만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나라를 세워서 한민족에게 선물한 이 자유가 기능할 수 있도록 하려면 3自를 더 보태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自助(자조)정신-自立(자립)경제-自主(자주)국방이 그것이다.
<자주국방이란 것은 이렇게 비유해서 얘기를 하고 싶다. 가령 자기 집에 불이 났다. 이랬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 우선 그 집 식구들이 일차적으로 전부 총동원해서 불을 꺼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는 동안에 이웃 사람들이 쫓아와서 도와주고 물도 퍼 다가 주고, 소방대가 쫓아와서 지원을 해 준다. 그런데 자기 집에 불이 났는데, 그 집 식구들이 끌 생각은 안 하고 이웃 사람들이 도와주는 것을 기다리고 앉았다면, 소방대가 와서 기분이 나빠서 불을 안 꺼줄 것이다. 왜 자기 집에 불이 났는데 멍청하게 앉아 있는가? 자기 집에 난 불은 일차적으로 그 집 식구들을 총동원해 가지고 있는 힘을 다해서 꺼야 한다> (1972년 1월11일 기자회견에서)


민주와 평화가 자유와 自主를 망가뜨리는 毒


이승만, 박정희 두 사람은 자유를 정치적으로만 해석하지 않았다. 인간이 자유를 누리고 자유를 지키려 할 때 뿜어내는 엄청난 에너지와 생산성을 이해한 사람들이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풍요는 그런 생명의 자유의 活力(활력)이 만들어낸 것이다. 문제는 풍요가 가져온 민주와 평화가 공짜심리와 만나면서 한국 현대사가 모처럼 재발견해낸 尙武(상무)정신과 自主(자주)국방의 정신을 망가뜨리는 毒(독)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건국-호국-근대화의 과정에서 상무정신이 發揚(발양)되면서 공세적 국가로 변신하던 한국은 민주화의 과정에 진입하면서 다시 守勢的(수세적)으로 원위치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화 투쟁을 주도한 이들은 反軍的 성향이 강한 지식인 계층이었다. 이들은 이 나라의 모든 문제점을 군사문화에 돌렸다. 1993년에 집권한 金泳三(김영삼) 정부의 反軍(반군) 캠페인은 김대중, 노무현 좌파정부하에선 확대재생산되었다. 샐러리맨 체질로 변질된 장교단은 좌파정권에 영합하여 韓美(한미)연합사 해체, 휴전선의 對北(대북)방송 중단과 같은 利敵(이적)행위를 스스로 결정하였다. 이런 정책에 항의하여 사표를 낸 장교가 한 사람도 없었다. 국군이 국군의 손에 의하여 상처 받고 허약해졌다.
북한군이 휴전선 북방의 황강댐을 無斷(무단)방류하여 임진강변에서 놀던 한국인 6명이 죽었는데도 신임 국방장관은 국회 청문회에서 “북한측 방류가 의도된 水攻(수공)인지 알 수 없다”고 북한측의 입장을 변호하기에 급급하였다.
미군은 6𑦽 남침전쟁 때 아무런 조약상의 의무가 없음에도 연150만 명의 미군을 보내 그 10%인 15만 명이 죽고 다쳤다. 李明博(이명박) 정부는 영국이 9000명, 독일이 4200명, 이탈리아가 3800명, 호주도 1200명을 파병한 아프가니스탄에 크로티아 수준의 300명을 보내려 한다.
좌파정권이 만든 국가기관인 민주화보상위원회는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싸우고 희생된 사람들보다 자유를 파괴하기 위하여 싸운 공산주의자들을 더 많은 돈으로 보상하였다. 한국의 민주화는 민주와 평화의 이름으로 尙武정신과 自主국방 의지를 폄하하였다. 민주화 운동에 편승한 좌파들은 민족의 이름으로 민족반역 집단을 감싸고, 김정일 정권에 대한 보수진영의 정당한 대응까지 戰爭狂的 행동으로 몰고 있다. 민주, 민족, 평화가 자유, 자주, 愛國(애국)을 죽이고 있다. 그 결과는 ‘수비형 국가’로의 回歸(회귀)이다.
한국은 아직도 전쟁중인 나라이다. 전반전에서 북한과 한국은 1-1로 비겨 하프 타임을 맞았다. 이 하프 타임이 너무 길다. 한국인들은 평화만 짝사랑하면 후반전을 치르지 않고도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한국군은 6𑦽 남침 이전에 이미 북한군 및 빨치산과 싸우다가 8824명의 戰死者(전사자)를 냈다. 전쟁중에 15만2279명이 전사하였다. 월남전에서 4770명이 죽었다. 休戰(휴전) 이후 북한군의 도발로 4712명이 전사하였다. 휴전 이후 전사자는 지금 미군이 이라크 전쟁에서 죽은 숫자와 비슷하다. 좌익들은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한반도엔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였으니 冷戰的(냉전적) 시각을 버려야 한다고 외친다. 이런 선동에 영향을 받은 이명박 대통령도 생존의 논리인 ‘반공노선’을 낡은 것이라 여기고 중도노선을 천명하였다.

잘 사는 것이 오히려 재앙

최근 국군 부대에 가보니 사병들은 다른 부대의 사병들을 ‘아저씨’라고 부르고 있었다. 군 지휘부는 銃器(총기) 사고를 막는다고 초병들에게도 실탄을 지급하지 않고 몽둥이 같은 총만 들고 있도록 한다. 내무반에선 총들을 사슬로 묶어놓고는 열쇠를 가진 두 사병이 합쳐야 풀 수 있도록 해놓았다. 이런 부대가 기습을 받으면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하다. 이스라엘은 사병이 휴가를 갈 때도 실탄을 휴대한다. 스위스는 예비군들이 총과 실탄을 집에 보관하도록 한다. 두 나라에서 銃器(총기) 사고는 거의 없다. 軍紀(군기)를 엄정하게 하여 총기 사고를 막을 생각을 하지 않고 실탄 지급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한 한국군의 모습은 늘 一戰不辭(일전불사)의 자세를 취하여야 할 휴전중의 군대가 아니다.
富國(부국)이 가난한 敵(적)을 마주하고도 決戰(결전)의지가 결여되면 어떻게 되는가를 잘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가 있다. 13세기 칭기즈칸의 야만적 몽골 기마軍團(군단)이 文明(문명)세계를 정복하였을 때 몽골인구는 약 100만 명이었다고 한다. 이들의 지배를 받은 중국, 이란 등 文明圈(문명권)의 인구는 1억 명을 넘었다. 一當百(일당백)이란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문명이 체제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중국 역사상 경제, 문화적으로 가장 부유하였던 왕조는 서기 10~13세기의 宋(송)이다. 인구가 늘어 1억을 돌파하였다. 이 宋은 거란(遼)과 여진(金)의 침략을 받아 결국 망하고 양자강 남쪽으로 피난 가서 南宋(남송)을 세웠다. 거란과 여진족을 합쳐서 100만 명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宋은 130만 명의 군대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宋은 지폐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도입하고, 석탄을 사용하여 좋은 도자기를 만들었으며, 문학과 예술이 꽃피고, 생활수준도 획기적으로 향상되었다. 중국의 近世(근세)를 宋부터 잡기도 한다. 그런 宋이 인구수에서 100분의 1밖에 안 되는 거란과 금에 뜯어 먹히다가 쿠빌라이의 元에 망해버린 것은 경제와 문화 때문이 아니었다.
宋은 尙武(상무)정신과 自主국방 의지가 없었다. 과거시험을 채택한 결과 등용되는 지도층은 전쟁엔 無知(무지)하고 권력투쟁에는 능숙한 인간들이었다. 이들은 敵前(적전)분열을 되풀이하였다. 임금들은 예술적이었으나 優柔不斷(우유부단)하였다. 공정한 稅制(세제)와 징병제를 채택하려는 王安石(왕안석)의 개혁은 기득권층의 반발로 실패하였다.
한국은 이 宋을 닮아간다. 특히 敵에게 돈을 주고 평화를 사려는 점에서 그렇다. 宋은 遼, 金, 西夏(서하)가 침략하면 돈과 비단을 매년 바치기로 하고 휴전하였다. 김대중 정부가 시작한 對北(대북)퍼주기와 비슷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북한으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되는 약 100억 달러어치의 金品(금품)은 평화를 산 것처럼 보였지만 체제유지비를 대주어 정권을 강화해주더니 드디어 敵(적)에게 核무기를 선물하였다.
宋은 결국 信義(신의) 없는 외교로 망하였다. 宋은 金과 동맹, 遼를 멸한 다음엔 遼의 잔존세력과 합쳐 金을 치려는 음모를 꾸미다가 발각되어 金의 응징을 받아 망하였다(이때까지가 北宋). 한국은 경제, 문화, 예술 부문에서는 宋처럼 발전하였으나 오래 계속되는 평화와 번영에 취하여 自主정신과 尙武정신이 망가지고 있는 반면 북한政權(정권)은 遼 및 金과 같은 성격의 야윈 늑대이다. 대한민국이 宋과 같은 '살찐 돼지'가 되면 앞날이 어둡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2만 달러, 북한은 그 100분의 1인 약 200달러이다. 宋이 인구수에서 100분의 1밖에 안되는 북방민족에게 당하였듯이 한국이 경제력에서 100분의 1도 안되는 북한에 당한다면 그것은 경제력과 문화력이 부족해서가 아닐 것이다. 애국심과 正義感(정의감)과 鬪志(투지)가 부족해서일 것이다. 국민정신과 국가기강이 망가지면 잘 사는 것이 오히려 재앙이다.
전국시대 齊(제)나라의 명재상이자 동양적 실용주의 정치를 연 管仲(관중)은 요사이 한국에서 판을 치고 있는 평화至上(지상)주의를 예감한 듯 이를 兼愛(겸애)사상이라고 부르면서 비판했다.
<非戰論(비전론)이 판을 치면 아무리 견고한 요새가 있더라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兼愛사상(남이나 자신을 똑 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묵자의 사상)이 판을 치면 병사들은 戰意(전의)를 상실한다. 無爲長生(무위장생) 사상이 판을 치면 염치심이 없어진다. 민본사상이 판을 치면 군주의 명령은 지켜지지 않는다. 다수결주의가 판을 치면 賢者(현자)와 愚者(우자)의 구별이 없어진다. 拜金(배금)사상이 판을 치면 작위와 家門(가문)의 가치는 떨어진다. 정실만능 사상이 판을 치면 법률은 제 구실을 못한다. 아첨과 거짓이 판을 치면 간교한 인간이 득세한다>
평화至上주의와 웰빙주의(無爲長生 사상)가 판을 치는 한국에서 안보와 법치와 國家魂(국가혼)을 지켜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弱者가 선택한 전쟁


세계사엔 이상한 법칙 같은 게 있다. 南北(남북)대결에선 대체로 北軍(북군)이 이긴다는 점이다.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北軍이 이겼다. 월남의 南北 대결에서 북쪽의 월맹이 이겼다.
북예멘과 남예멘이 일단 합쳤다가 內戰(내전)이 일어나 北예멘이 南예멘을 물리치고 통일하였다. 중국 역사에선 대체로 북방에서 일어나거나 북방에서 밀고 내려온 세력이 남방 세력을 제압하고 王朝(왕조)를 세웠다. 독일에서도 북방의 프러시아가 남방의 바이에른 세력 등을 누르고 통일하였다. 프랑스에서도 북방의 파리 세력이 남방의 부르고뉴 公國(공국)을 누르고 통일하였다. 스페인에서도 북방의 기독교 세력이 남방의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통일하였다. 이탈리아도 북방에서 내려온 게르만족에 로마가 망하였다. 19세기의 이탈리아 통일도 북방 토리노 근방에 있던 세력이 주도하였다. 거의가 北軍이 이긴다. 예외는 新羅(신라)의 삼국통일, 그리고 영국과 일본이다.
南北대결에서 北軍이 이기는 공통된 이유가 있다. 북쪽은 춥고 남쪽은 따뜻하다. 북쪽은 상업이, 남쪽은 농업이 발전한다. 추운 곳에서 돈벌이를 하여 먹고 사는 이들은 강건하고 실용적이다. 남쪽에서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이들은 유순하다.
한반도의 南北대결에서 南軍(남군)이 이기려면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사람들처럼 강건한 투지를 갖춰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평화와 번영을 누리면서 鬪志를 잊지 않기란 매우 어렵다. 이것이 우리의 딜레머이다.
필자는 최근에 '羅唐戰爭史 硏究'(아세아문화사)란 책을 읽었다. '弱者가 선택한 전쟁'이란 副題(부제)가 인상적이었다. 弱者(약자)는 전쟁을 강요당하는 경우가 많지 스스로 전쟁을 결심하기 어렵다. 그런데 신라 지도부(文武王-金庾信 등)는 당시 세계최강대국이던 唐(당)을 기습하는 전쟁을 선택하였다. 著者(저자) 徐榮敎(서영교ˑ충남대 인문과학 연구소 연구원)씨는 <국제정세의 판을 읽고 唐과 전쟁을 결정했던 신라지배층의 결단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썼다.
唐과 연합하여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그 唐이 신라마저 屬國(속국)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온갖 모욕을 참아냈던 것은 신라 지배층이었다. 저자는 <자신을 숨기면서 기상의 변화를 기다리는 능력은 신라인들의 本性(본성)이었다>고 평하였다.
新羅에 의한 三國통일 과정은 唐의 입장에서 보면 한반도 평정 과정이었다. 唐은 신라와 손을 잡고 백제, 고구려를 멸한 후 그 新羅마저 屬國化(속국화)하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新羅는 서기 660년 백제를 멸망시킨 직후부터 唐의 이 戰略(전략)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러나 참을 수밖에 없었다.
당은 663년에 신라영토에 계림주대도독부를 설치하고 문무왕을 도독으로 임명하였다. 신라를 당의 한 州(주)로 본 것이다. 백제는 멸망하였으나 그 땅의 지배권을 唐이 행사하고 있었다. 664년, 唐은 4년 전에 끌고 갔던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을 데리고 와서 舊백제땅을 관할하는 웅진도독으로 임명하였다. 그 이듬해 唐은 문무왕에게 부여융과 같은 자격으로 형제의 盟約을 하도록 강요하였다. 문무왕은 이를 받아들였다.
서기 660년 사비성이 함락되었을 때 항복한 부여융은 뒤에 문무왕이 되는 金法敏(김법민) 앞에 끌려나왔다. 三國史記(삼국사기) 태종무열왕條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法敏은 융을 말 앞에 꿇리고 그 낯에 침을 뱉으며 꾸짖기를, "지난 날 너의 아비가 내 누이를 원통하게 죽이고 옥중에 묻어 나로 하여금 20년간 마음 아프고 머리를 앓게 하였으니, 오늘의 네 목숨은 나의 손에 있다"하니, 융은 땅에 엎드려 아무 말이 없었다>


가장 위대한 전쟁


당의 강요에 의하여 문무왕은 자신이 침을 뱉었던 그 부여융과 형제가 되어 사이 좋게 지내기로 약속하였던 것이다. 당은 신라와 舊백제를 같은 점령지로 간주한 셈이다. '羅唐戰爭史 硏究'에서 서영교씨는 <하지만 신라는 당에 책을 잡히지 않고 여기에 철저히 순응하였으며, 唐의 어떠한 모욕에도 인내하고 시간을 기다렸다>고 썼다.
<바람의 방향을 응시하던 신라인들은 폭풍이 西域(서역) 상공에 떠 있고, 토번이 그 폭풍의 눈이 되리라는 것을 직감하였다. 당에 순종적이었던 신라는 670년 3월 단숨에 태도를 돌변하였다. 당의 힘이 한반도에 미치지 못할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비로소 사정없이 덤벼들었던 것이다. 가장 힘 있고 노련한 세계제국 唐조차도 기만할 수 있는 신라의 인내의 탁월함은 무서울 정도이다>
670년 지금의 티벳에서 일어난 토번은 唐이 장악하고 있던 실크로드를 급습하였다. 唐은 大軍(대군)을 그쪽으로 보내야 했다. 신라는 이 틈을 타서 전쟁을 일으켰다.
저자 徐榮敎씨는 세계제국 唐과 전쟁을 치르고 살아남아 독립국가를 유지하였던 신라의 능력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랜 시련을 통하여 신라인들의 유전자로 양성된 결과라고 분석하였다.
신라는 초기엔 고구려의 보호를 받았다. 그 후 신라는 백제와 손을 잡고 고구려의 南進(남진) 정책에 對抗(대항)하였다. 118년간의 羅濟(나제)동맹 후 신라 진흥왕은 백제 聖王(성왕)과 연합, 고구려를 쳐서 漢江(한강) 상류지역을 차지하였다. 그 2년 뒤 신라는 태도를 표변하여 동맹국이던 백제가 점령하였던 한강 下流(하류)지역까지 먹어버렸다. 聖王(성왕)은 화가 나서 신라를 치려하였으나 역습을 받아 戰死(전사)하였다.
<결정적 순간에는 동맹국을 배반하고 등에 칼로 변신하는 것이 신라였다. 경주분지의 조그만 城邑(성읍)국가였던 신라가 이윽고 7세기 중반에 唐을 끌어들여 麗濟 兩國(여제양국)을 멸망시키고 한반도의 주인이 되었다. 이러한 괄목상대한 발전은 신라가 결정적인 순간에 얼마나 자기 변신을 대담하고 완전하게 해왔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對唐決戰(대당결전)으로 알려진 羅唐(나당)전쟁은 韓民族(한민족)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쟁이다. 이 전쟁은 신라지배층이 선택한 전쟁이다. 임진왜란이나 한국전쟁처럼 강요된 전쟁이 아니었다. 전쟁을 결심하고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民族은 생존할 자격을 갖게 된다. 이 전쟁은 민족의 운명을 놓고 세계최대 强國(강국)을 상대로 싸운 정면승부였다. 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신라는 國力(국력)을 총동원하였다. 군사력뿐 아니라 외교력, 정치력, 의지력, 그리고 하늘의 힘까지 빌리려고 하였다. 신라는 백제, 고구려 遺民(유민)들을 신라軍에 편입시켜 唐을 상대로 같이 싸웠다. 여기서 同族(동족)의식이 생기기 시작한다. 신라지배층은 진행중인 토번과 唐의 전쟁에 완급을 맞추어 전쟁의 强度(강도)를 조정하여갔다. 놀라운 自主性과 국제감각, 그리고 현실주의의 종합이었다. 신라가 이 전쟁에 승리한 덕분으로 우리는 지금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으로 살고 있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韓民族을 만들어내는 씨를 뿌렸다. 신라가 보여준 決鬪(결투)정신은 한민족의 無意識(무의식)에 남아 있고, 위기 때마다 나타난다.
우리의 유전자 속에는 분명히 이런 신라정신이 남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국가 지도층이 이 힘을 自覺(자각)하고 과감히 동원하느냐이다. 한국정부가 중국정부에 대하여 "당신들이 만약 한반도 통일을 방해한다면 우리는 신라의 對唐(대당)결전 자세를 취하겠다"고 하면 알아들을 것이다. 신라의 당돌함을 깊이 체험하였던 漢族(한족)은 그 뒤 한반도의 歷代(역대) 왕조와는 친선관계를 유지하였다. 신라통일 이후 漢族이 만든 중국 왕조는 한번도 한반도를 공격한 적이 없다. 신라의 對唐결전은 漢民族에게 韓民族에 대한 존경심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다가오는 통일기에 신라의 對唐(대당)결전 의지를 한국의 對中(대중)결전 의지로 전환하여 준비한다면 전쟁 없이도 자유통일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自虐史觀의 극복



한국은 地政學的(지정학적) 조건에 의하여 攻勢(공세)로 나아가야 생존할 수 있는 나라이다. 세계에서 가장 공세적인 북한정권과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吸引力(흡인력)이 큰 중국을 상대로 해야 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그런 나라가 수비 위주의 분위기로 흐르는 데는 自虐史觀(자학사관)이 한 몫을 하고 있다.

1. 新羅의 三國통일을 부정하면 韓民族의 탄생을 부정하게 된다. 三國통일에 의하여 신라, 백제, 고구려 사람들이 한 民族집단이 되어 한반도에서 오래 살다가 同族의식을 갖게 되었다(통일 이전엔 民族도, 同族의식도 없었다. 존재하지도 않은 민족주의를 기준으로 신라의 三國통일을 비난하는 것은 세종대왕에게 왜 민주주의를 하지 않았느냐고 욕하는 것과 같다).
2. 대한민국의 建國(건국)을 부정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祖國(조국)을 부정한다. 애국심이 생기지 않고 필연적으로 북한정권을 조국보다 더 좋아하는 반역자가 된다.
3. 신라의 三國통일과 대한민국의 建國을 모두 부정하면 自我(자아)부정이 된다. 韓民族의 일원으로서 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나를 스스로 폄하하게 된다. 이는 自虐사관이고, 정신적 自殺(자살) 행위이다.
4. 漢字(한자)를 부정하면 民族(민족)문화를 부정한다. 民族문화의 대부분이 漢字문화 속에서 꽃을 피웠고, 漢字의 매개로 이해할 수 있다. 民族魂(민족혼)이 담겨 있는 그릇이 漢字이다. 그 한자를 부정하면 無識者(무식자)가 된다. 무식자는 애국자가 될 수 없다.
5. 민족의 터전을 만든 신라의 삼국통일, 민족에게 자유를 선물한 대한민국 建國, 고급문화를 선물한 漢字 도입(語文一致를 이루게 한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과 함께)은 韓民族 역사상 길이 남을 쾌거이다. 민족사의 성취와 영광을 다 부정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존재의 근거, 자부심의 근거를 없애버리는 인간이 걷는 길은 노예의 길이다.
6. 新羅의 三國통일을 부정하는 고구려 정통론, 대한민국의 建國을 부정하는 북한정통론, 漢字를 부정하는 한글專用論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인데, 反민족적이고, 사대주의적이고, 反과학적이고, 미신적이고, 反지성적이고, 무식하고, 자기파멸적이다. 뿌리 뽑힌 존재로 만드는 것이, 인간과 국가를 가장 빨리 망치는 방법이다. 浮萍草(부평초) 같은 존재가 될 것인가, 느티나무 같은 존재가 될 것인가, 선택은 자유이다.
지난 5월 서울 水雲회관에서 열린 漢字교육추진총연합회 주최 강연회에서 趙淳(조순) 전 경제부총리는 "한글專用이 확산되어 反지성적 난장판을 만들고 있다"고 개탄하였다.
그는 "한글專用으로 얻은 것은 경박함이고 잃은 것은 문화이다"고 말하였다. 趙 박사는 "한글전용으로는 知性(지성)을 만들지 못한다. 知性이 없으면 文化를 만들 수 없다. 문화를 만들 수 없는 나라는 망한다"고 했다. 그는 한글전용으로는 책도 제대로 번역할 수 없게 되었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한글전용이 확산되면 인간의 생각과 사상과 행동이 유치해져 난장판의 文化밖에 만들지 못한다고 하였다.
趙 박사는 경제정책보다 더 중요한 것이 語文(어문)정책이라고 강조하였다.
"語文정책이 제대로 되어 文化를 창조할 능력을 갖추면 경제, 정치, 지성의 바탕을 갖추게 되므로 일시적으로 경제가 어려워져도 문제가 안 된다"
경제학자인 趙 박사가 경제보다 語文정책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이 語文정책을 바로 세운다면 다른 정책에서 실패하더라도 역사에 남을 사람이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중도실용 노선이 安保와 法治에 적용될 수 있는가?

공세적 국가가 되려면 대통령 이하 與黨(여당)과 공무원 집단이 항상 긴장하고 覺醒(각성)되어 있어야 한다. 특히 안보와 法治(법치) 부문에서 그래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中道(중도)실용 노선은 경제, 사회복지 정책엔 有效(유효)하나 法治(법치), 안보, 국방, 對北(대북)문제에 적용되면 문제가 생긴다. 법치와 안보는 敵(적)과 惡(악)을 상대로 하는 분야이므로 ‘좋은 게 좋다’식으로 흐르는 중도는 결국 敵(적)과 惡(악)을 편들거나 묵인하는 것이 된다. 정책에선 中道(중도)가 가능하나 도덕성과 國益(국익)이 걸린 문제에선 중도가 낄 수 없다. 李(이) 대통령이 중도실용 노선을 표방한 前後(전후)의 행적을 보면 뚜렷한 흐름이 보인다.
<국가 정통성 및 정체성과 관련된 부분에서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 우리와 交戰(교전)한 共産敵國(공산적국)의 胡志明(호지명) 묘소에 참배한 것, 형사피의자 신분에서 자살한 전 대통령을 국민장으로,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을 현직처럼 대우하여 國葬(국장)으로 특별 대우한 것. 그러면서도 近代化(근대화) 대통령과 건국 대통령을 무시-냉대하고 있는 것, 헌법을 위반한 6𑦳 선언의 폐기를 아직도 선언하지 않고 있으며, 북한정권의 對南공작 노선에 동조하는 강령을 가지고 행동하는 민노당이 違憲(위헌)정당임이 분명한데도 해산절차를 밟지 않는다. 정부가, 이 민노당의 母胎이며 정치노선을 같이하고 특히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민노총의 산하단체로 공무원 12만 명이 소속된 통합노조가 가입하기로 결의한 사태를 막지 못한 것은 민노당에 대한 헌법적 판단을 구하지 않았던 것이 한 이유이다. MBC의 총체적 방송법 위반, 전교조의 각종 법률위반, 과거사 위원회들의 反헌법적 활동에 대하여 지엽적 대응에 그칠 뿐 본질적인 법적 대응을 포기한 상태이다. 많은 공무원들은 대통령의 中道를 反헌법 세력에 대한 타협이나 양보 노선으로 이해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수호자여야 할 공무원 집단이 체제 수호를 꺼리고 주한미군 철수 같은 체제파괴적인 주장에 동조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中道 노선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보여준다.
이명박 정부는, 거의 1000만 명이 서명한 韓美연합사 해체 반대 운동을 무시하고 2012년 해체 계획을 밀고 나간다. 군 미필자를 핵심 要職에 집중적으로 起用한다. 무리한 군 복무기간 단축 계획을 수정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징병제 폐지나 減軍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재래식 군사력 감축을 별 생각 없이 북한에 제안하기도 하였다. 북한이 이산가족 면회장에 납북 어부를 끌고 나와 ‘동물원식 상봉 쇼’를 하도록 허용하는가 하면 그가 새로 내어놓은 北核(북핵)해결방안인 그랜드 바게인도 북한인권 문제를 외면하여 헌법적 가치가 실종되었다.>
中道 노선이 對北(대북)관계에도 적용된다면 핵폐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김정일이 거래에 의하여 核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死活(사활)을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위기로 몰릴 때만 核을 폐기할 것이고 그렇게 하려면 한국은 一戰不辭(일전불사)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法治와 安保 분야에 있어서도 沒가치적 개념인 中道노선을 추구하면 국민정신을 병들게 하여 체제수호를 어렵게 만들 것이다.

국가 상징물의 관리

어떤 나라의 國格을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 나라가 누구를 기리고 누구를 기리지 않는가, 즉 人物觀(인물관)을 보면 알 수 있다. 인물관은 역사관의 縮約(축약)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화폐도안을 살펴보니 공화국은 전부가 그 공화국을 건설하고 발전시킨 인물들을 화폐에 넣는다. 한국은 어떤가? 화폐 도안에 들어간 인물은 다섯 명인데, 모두가 조선조 사람들이다. 신사임당, 이퇴계, 이율곡, 세종대왕, 이순신. 신사임당과 이율곡은 母子(모자)이다. 母子를 다 넣을 만큼 조선조를 우대하니 외국인들은 조선조가 아직 살아 있다고 생각하거나 우리 화폐가 조선조부터 사용되었던 것이라고 착각할지도 모른다.
화폐발행은 主權(주권) 행사인데, 대한민국 정부가 발행하는 화폐에 대한민국 사람이 한 사람도 들어가 있지 않다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이다. 한국인은 조선의 백성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이승만, 박정희, 이병철 같은 한국 자본주의의 건설자들을 굳이 화폐도안에서 빼버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가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의 건설자들을 罪人視(죄인시)하는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세계가 칭송하는 한국의 현대사를 한국 정부와 사회지도층이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면 이런 나라는 아무리 잘 살아도 정신이 병들어 자살충동을 항상 느끼는 상태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광화문에 만들어진 광장에도 이순신과 세종대왕 동상뿐이다. 두 사람의 동상을 경복궁에 세우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왜 대한민국의 발전을 상징하는 공간에 건국 대통령의 동상이 없는가? 거리 이름, 공원 이름에도 세계가 우러러 보는 대한민국의 건설자들 이름이 붙지 않는다. 퇴계로, 율곡로 등 거의가 조선조 인물의 이름들이다. 김구 기념관은 있는데, 건국대통령과 근대화대통령 기념관은 보이지 않는다.
국가지도부 인사들이라고 할 만한 행정관료, 언론인, 법조인, 정치인, 기업인, 금융인, 사회단체 활동가, 문화 예술인, 종교인 중에서 각100명씩 1000명을 상대로 한 시사저널의 2년 전 여론조사는 한국의 지도층이 어떤 인물관과 역사관을 가졌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가장 자랑스런 인물 1위는 세종대왕으로서 28.2%의 지지를 받았다. 2위가 이순신 24.6%, 3위가 김구 24.3%, 박정희가 11.4%로서 4위였다. 이어서 반기문, 김대중, 광개토대왕, 박지성, 안창호, 정약용 順(순)이다. 10위권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몇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李承晩은 박찬호, 최경주보다 한참 뒤인 27등이다. 신라 삼국통일의 3대 主役인 金庾信, 태종무열왕(김춘추), 文武王은 아예 이름이 없다.
건국의 정당성에 확신을 갖지 못한 세대는 6𑦽 남침전쟁을 누가 일으켰는지 아예 관심 자체가 없을 것이다. 국가적 기억이 상실되면 彼我(피아) 식별기능이 마비되고 그런 나라는 敵의 파괴공작에 노출된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조차도 이런 것들을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위기를 위기라고 인식한 집단은 십중팔구 그 위기를 轉禍爲福(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든다. 국가지도부가,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가장 큰 위기가 있는 것이다.


국가지도부의 솔선수범 사례


정부와 국민이 헌법의 명령대로 자유통일을 국가목표로 인식하게 될 때만 한국은 책임 있는 지도부, 교양 있는 국민을 갖게 될 것이다. 사명감을 가진 나라가 苦難(고난)을 뚫고 목표를 달성해가는 과정은 역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다.
한국은 1980년대 말 군부엘리트의 퇴장 이후 國益(국익)을 수호하는 국가지도부가 실종된 상태이다. 군부엘리트를 대체한 민주투사들은 당파성과 명분론과 부패구조의 포로가 되어 한국 민주주의의 다음 과제인 法治(법치)확립에 실패하였다. 요사이 여론조사에서 군부엘리트의 대표 주자인 박정희가 늘 1위를 차지하는 것은 문민엘리트의 실패를 反證(반증)한다.
이 정부는 대통령과 총리가 다 군 복무를 하지 않았고, 그 아래 주요 직책에 군 미필자가 너무 많아 미필자가 우대를 받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국가지도부가 존경 받지 못하면 법치가 서지 않는다. 미국, 영국, 이스라엘, 베니스, 신라, 싱가포르, 독일 등의 국가엘리트가 보여준 率先垂範(솔선수범)의 사례와 오늘의 한국을 비교해보자.

ˑ서기 660년 황산벌 決戰(결전) 때 미리 가족을 죽이고 출전한 階伯(계백)의 백제군 5000결사대를 상대로 두 아들을 특공작전에 희생시킨 이는 金庾信(김유신) 아래 두 부사령관이었다. 김흠순(김유신의 동생)의 아들 반굴과 김품일의 아들 관창이 신라군의 사기진작용으로 희생되었다.
ˑ김유신은 아들 원술이 對唐(대당) 전쟁 石門(석문) 전투에서 패전하였을 때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오자 父子(부자)의 의를 끊었다. 김유신이 죽자 그 부인도 아들의 問喪(문상)을 허용하지 않았다.
ˑ신라처럼 1000년간 지속되었던 베니스의 10인 위원회는 국가원수 마리노 파리엘이 민중봉기를 조작, 國體(국체)를 공화정에서 군주제로 바꾸려는 음모를 하자 재판을 열고 참수형에 처하였다. 10인 위원회는 제노바와의 전쟁에서 베니스 군을 지휘하여 승리로 이끈 ‘救國(구국)의 영웅’ 칼를로 젠이 외국영주로부터 받은 돈을 국가에 보고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지자 징역 2년형에 공직영구 박탈을 선고하였다. 베니스는 공직자의 受賂(수뢰)에 대하여는 보통 사형으로 다스렸다.
ˑ지금 생애 두번째 수상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벤자민 네탄야후는 特攻(특공)부대 대위 출신이다. 그의 형 요나단 네탄야후는 팔레스타인 테러단에 의하여 우간다로 납치된 에어 프랑스 여객기에 탄 이스라엘 승객들을 구출하기 위한 엔테베 特攻(특공)작전의 지휘관이었다. 공수부대 출신인 그는 승객들을 살리고 자신은 戰死(전사)하였다. 동생 네탄야후는 5년간 특공부대에 근무한 뒤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MIT,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그가 수상이 될 수 있었던 데는 전사한 형의 蔭德(음덕)이 컸다. 형 요나단도 한때 하버드에서 공부하였으나 국내의 戰況(전황)이 나빠지자 특공부대에 복귀하려고 귀국하였다.
ˑ싱가포르에선 군대 복무 경험이 없는 사람은 공무원이 될 수 없다. 싱가포르는 국민皆兵制(개병제)이다. 18세가 되면 군대에 징집되는데, 연기가 되지 않는다. 重病者(중병자)가 아니면 모두 입대한다. 兵役(병역)특혜는 없다. 심지어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도 군대에 가야 한다. 훈련기간은 3개월이다. 체육선수에게 주어지는 특혜는 훈련기간의 단축이다.
ˑ독일은 통일후에도 징병제(복무기간 6개월)를 유지하고 있다. 군대만이 국가의 정체성을 이어가는 조직이라는 인식에서다.

미국 CIA 부장의 獨子, 한국전에 참전, 머리에 총상

?년 4월14일 밤 세계최대의 여객선인 타이타닉호가 처녀항해중 대서양에서 氷山과 충돌, 15일 이른 새벽에 침몰하였을 때 2223명이 타고 있었다. 31.8%인 706명만이 살아남고 1178명이 사망하였다. 여자승객의 74%, 어린이의 52%가 살아 남았는 데 반하여 남자승객의 20%만이 구조되었다. '여자와 어린이 우선(Women and children first)' 원칙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죽은 승객들은 영국과 미국의 부자 및 귀족들이었다.
ˑ주월미군사령관을 지낸 웨스터모어랜드 장군은 공수부대 사단장 시절 낙하 훈련을 하다가 强風(강풍)에 휘말려 7명이 죽는 사고를 겪었다. 그는 다음날에도 낙하훈련을 계속하기로 하였는데, 사병들을 대기시키고 하고 자신이 먼저 뛰어내려 강풍의 有無(유무)를 알아보았다. 着地(착지)한 뒤 강풍에 휘말려 겨우 살아난 그는 훈련을 취소시켰다.
ˑ알렌 덜레스는 2차 세계대전 때 스위스에 머물면서 정보공작을 지휘하였다. 그는 1947년 미국 CIA가 창설될 때 많은 도움을 주었고 1953년부터 9년간 CIA 부장직을 맡았다. 그의 동생 존 포스터 덜레스는 아이젠하워 대통령 아래서 국무장관으로 일하였다. 알렌 덜레스는 獨子(독자)를 두었는데 이름이 알렌 메시 덜레스 2세였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역사와 정치를 공부하면서 公職者(공직자)의 길을 준비하고 있던 중 6𑦽 남침전쟁이 터지자 해병대에 지원하여 장교로서 한국戰線에 배치되었다. 그는 최전방에서 싸웠다. 아버지는 아들을 후방에 근무하도록 해달라는 따위의 영향력을 전혀 행사하지 않았다. 그는 머리에 총상을 맞고 영구적인 정신장애자가 되었다. 프린스턴 대학은 1997년에 '알렌 메시 덜레스 51년 賞'을 제정하여 국가를 위하여 봉사한 학생들에게 주고 있다.
ˑ밴 플리트 미 8군 사령관의 아들은 공군조종사로 참전, 북한지역을 폭격하던 중 실종, 戰死처리되었다. 밴 플리트는 부하들에게 아들에 대한 수색이 度(도)를 넘지 않도록 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ˑ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 존 셀던 도드 아이젠하워도 장교로 한국전에 참전하였다. 아이젠하워가 195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을 때 아들은 한국전선의 미군 전투 대대에 배속된 소령이었다. 대통령 당선자는 한국戰線을 방문한 자리에서 지휘관에게 "내 아들이 포로가 되지 않도록 부탁한다"고 했다. 대통령의 아들이 敵軍의 포로가 되어 이용당하는 사태만은 막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이젠하워 소령은 사단본부 근무로 옮겼다.

행동하는 시민

우리의 국가지도부가 위에 사례로 든 수준까지 올라가지 않으면 자유통일과 일류국가 건설도 불가능할 것이다. 일류국가는 솔선수범하는 엘리트와 함께 행동하는 국민, 교양이 있는 국민, 예절과 법을 잘 지키는 국민들을 요구한다.
지난 9월 議會(의회)에서 연설하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에게 "거짓말이야!"라고 소리쳤던 공화당 조 윌슨 하원의원을 응징하기 위하여 민주당 지지자들이 윌슨의 라이벌인 같은 선거구의 민주당 롭 밀러 후보에게 정치후원금을 몰아주기 시작하였다. 1주일 사이에 수만 명의 지지자들이 100만 달러 이상을 보냈다. 내년 선거에서 윌슨을 낙선시키라는 응원이었다.
이에 자극 받은 공화당 성향의 지지자들은 暴言(폭언)한 윌슨 의원에게 헌금을 시작하여 1주일 사이 70만 달러를 넘겼다. 9월말 현재 통계에 따르면 윌슨 의원은 3/4분기(7~9월)에 270만 달러를 모금하였고, 롭 밀러 후보는 170만 달러를 거두었다. 두 사람이 합쳐서 440만 달러를 모은 것은 사우스 캘로라이나州의 신기록이라고 한다.
밀러 의원은 이라크 참전용사 출신인데 작년 하원의원 선거에서 윌슨에게 패배, 내년 선거에서 재도전할 예정이다. 이렇게 많은 모금이 이뤄진 것은 웹 사이트와 이 메일 등 인터넷을 이용한 모금 덕분인데다가 언론이 두 사람의 모금 경쟁을 보도하여 공화당 대 민주당의 대결 구도로 사태가 커졌기 때문이다.
미국 시민들은 불만과 찬성을 지갑으로 표현한다. "애국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손발과 지갑으로 하는 것입니다"라는 국민행동본부의 광과문안이 생각난다. 윌슨 의원에게 돈을 보낸 사람들 중 98%가 개인이었다고 한다.
친북좌익들의 발호에 불안해하는 이들은 많지만 친북좌익들과 싸우는 愛國(애국)단체에 후원금을 보내는 이들은 적다. 자본주의는 궁극적으로 돈의 힘으로 지켜내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주인공인 한국의 기업인들은 좌익 정권 때 親北세력에 어마어마한 돈을 바쳤지만 애국세력은 외면하였다.
한국의 國格(국격)을 떨어뜨리는 폭력 의원들에 대하여 해당 선거구의 유권자들이 항의, 압박, 응징하지 않는 한 국회 폭력은 계속될 것이다. "국회를 잘 때려 부수어주어 속이 다 시원하다"고 격려하는 유권자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나라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5년 대통령 單任制(단임제)의 장점이 있다. 再選(재선)이나 일시적 인기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國益(국익)을 위하여 渾身(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역사의 심판을 기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수비형, 패배주의적 국가에서 공세적 국가로 昇格(승격)해야 자유통일과 일류국가 건설이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데, 이 기간을 앞당길 수 있는 사람은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이다. 아래 정도의 일만 해도 국가 분위기가 많이 달라질 것이다.


1. 대통령은 가장 큰 국민교사이다. 연설할 때 헌법과 역사를 자주 인용한다.
2. 화폐도안에서 신사임당과 이율곡 중 한 사람을 빼고 이승만을 넣는다. 광화문 에 건국 대통령 기념관과 동상을 세운다.
3. 사형집행을 再開(재개)한다.
4. 아프가니스탄에 1개 연대 이상의 전투병력을 파병한다.
5. 내년 6𑦽남침전쟁 기념사업을 擧國的(거국적)으로 실시하여 젊은 세대의 머릿속에 확실한 기억을 심는다.
6. 6𑦽 참전 소년병 戰死者(전사자) 2400명을 기린다. 학도병 전사자가 가장 많은 학교를 기린다. 군산중(63명), 경북중(53명), 전주북중(52명), 경주중(48명), 서귀포 농업중-군산상업중(45명), 순창농림중(37명), 서울중(30명).
7. 북한이 불법억류중인 국군포로와 납북자를 데리고 오는 것을 대북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8. 부패, 반역혐의로 유죄확정판결을 받은 정치인에 대하여는 영구적으로 공직취임을 금지시킨다.
9. 군 미필자는 기피 여부에 관계없이 대통령과 대통령 유고시 군 통수권자가 되는 총리에 취임할 수 없도록 법제화한다.
10. 反국가언동 경력자는 공무원이 될 수 없도록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생명과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존중한다. 4𑦷의거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군의 죽음, 민주화의 계기를 만든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은 한 개인의 죽음이 역사를 바꾼 사례이다.
북한 노동당 정권은 “수령님을 옹호하는 총폭탄이 되자”라고 선동하여 2300만 인민을 자살폭탄으로 여긴다. 한국에선 한 사람의 억울한 죽음이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북한에선 300만의 죽음이 헛되다. 인간존중의 국가가 인간말살의 집단을 이기는 방법은 東西(동서)냉전에서 서방이 승리한 전략의 집행이다. 요약하면 군사력은 방패, 人權(인권)은 창이다.
군사력으로 敵의 침략을 저지하는 사이에 우리가 가진 장점인 진실, 正義, 자유, 돈, 사랑의 자원을 북한에 투입, 체제를 내부적으로 변화시켜 自滅(자멸)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헌법이 명령하는 ‘북한노동당 정권의 평화적 해체에 의한 자유통일’의 길이다. 이런 승리의 전략을 집행하려면 국가지도부의 死生觀(사생관)과 역사관이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이들을 교양 있는 국민들이 뒷받침할 때 대한민국은 ‘수비형 국가’에서 ‘공세적 국가’로 昇格(승격)할 것이다. 중도실용이 國格을 높이는 방도가 될 수 없는 이유이다.


[ 2009-11-19, 00: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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