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상대방)이 수령을 존칭어로 부르지 않을 때는?"

북한이 어용(御用)언론사 취재진 교육을 위해 발행한 ‘기자활동상식(2)' 공개.
본 방송이 지난달 PDF파일 형태로 단독입수한 <기자활동상식(2)> 자료. 기자(記者) 교육자료인지 기자(奇者. 기이할 奇) 교육자료인지 그야말로 ‘북한스러운’ 내용 일색이다. ⓒ자유북한방송
“Q.해외 인사와의 접촉에 있어서 언론인이 제일 첫째로 준수해야 할 수칙은?”

“A.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대성과 우리나라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을 선전하는데 기본을 둔다”

1994년 3월 제정된 한국기자협회 기자윤리강령을 아는 독자라면 상단의 질문에 “취재과정에서 항상 정당한 방법으로 정보를 취득하며 기록과 자료를 조작하지 않는다” 혹은 “어떠한 경우에도 취재원을 보호한다” 등의 대답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틀렸다. 질문 하단에 버젓이 쓰여져 있는 ‘정답 아닌 정답’은 쏟아지는 언론보도의 바다 속을 헤엄치는 우리에게 있어서 전혀 생소한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북한에서만은 아니다. <위대한 수령> <경애하는 장군님> 부분에서 아무리 둔한 독자라도 이 답변이 북한에서 나온 것임을 단번에 눈치 챌 것이다.

본 방송은 북한 관계당국이 시기 미상에 노동신문 등 어용(御用)언론사 취재진 교육을 위해 발행한 자료 ‘기자활동상식(2)’ 1편과 3~4편 전문을 PDF파일 형태로 지난달 단독입수했다.

1편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인류의 마음 속에 영원불멸할 것이다’로 의례히 독재자 찬양으로 운을 뗀 자료는 4편 ‘국제관계’가 특히 압권이다.

자료는 4편 첫 장 ‘대외활동에서 지켜야 할 일반적 원칙’에서 “외국대표단이나 적대국가 인물들과 접촉하고 대화할 때에는 다음과 같은 원칙적 문제들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고 처신해야 한다”며 소위 ‘원칙’을 열거했다.

자료는 원칙의 첫째로 “수령님(김일성)과 장군님(김정일)의 위대성과 우리나라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을 선전하는데 기본을 둔다”고 밝혔다.

자료는 “이를 위해 수령과 장군님의 업적을 주동적으로 능란하게 해설선전한다”며 “주체혁명 위업의 완성을 위해 억세게 싸워나가는 데에서 보람과 행복을 찾는 것이 우리 인민의 인생철학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려주어야 하고 수령의 절대적 권위와 위신을 백방으로 보장(관철)하는데 최대의 관심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대방(상대방)이 수령을 존칭어로 부르지 않거나 존엄성 없이 대하는 것을 스쳐지나가지 말고 존칭어를 붙여 정중하게 부르도록 제때에 일깨워주어야 한다”며 “장군님은 세계가 우러르고 만민이 칭송하는 21세기를 이끌 향도의 태양이므로 그이를 흠모하고 우러르는 것이 마땅하다는 점을 말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원칙으로는 “계급적 립장(입장)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며 “외국대표단이나 적대국가 인물 중에는 사회주의를 외면하거나 사회주의가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류의(유의)하면서 접촉과 대화를 그에 맞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우리 당의 로선(노선)과 정책, 우리식 사회주의를 철저히 옹호해야 한다”며 “이를 헐뜯으려는 도발적 발언에 대해 제때에 타격을 가하고 여기에서는 그 어떤 자비나 한 치의 양보도 사소한 타협도 절대로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인사례절(예절)을 잘 지키면서 친절하게, 겸손하고 점잖으면서도 의젓하고 당당하게 처신하는 한편 경각성을 높이면서도 우리의 안속(정신)을 차려야 한다”며 “대방이 우리 내부를 염탐하려고 할 때에는 그들의 속심을 알고 그에 맞게 대응해야 한다”고 기자 모두가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존재가 될 것을 적극 주문했다.

4편 첫 장 ‘대외활동에서 지켜야 할 일반적 원칙’에서의 압권은 “장군님이 베푸는 인민적 시책과 크나큰 배려에 의해 인민 모두가 먹고 입고 쓰고 살 걱정을 모르고 고르롭게(골고루) 잘 살면서 행복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잘 알려주어야 한다”는 대목이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에 의하면 북한에서는 90년대 중후반 약 300만 명의 주민이 아사(餓死)했다. 지금도 작년 화폐개혁으로 인해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며 국가인권위가 올해 1월 발표한 ‘북한 정치범수용소 실태조사’에 따르면 무려 20만명에 이르는 주민들이 정치범으로 갇혀 있다.

김정일의 처조카였던 故 이한영씨나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에 따르면 ‘장군님’은 이러한 참극이 빚어지는 와중에도 기쁨조를 곁들인 초호화 파티를 마음껏 즐겼다. 헤네시(Hennessy)는 김정일이 매년 35만 파운드(약 6억7500만원) 어치의 코냑을 수입하는 자사(自社) 최대의 단일고객이라고 지난해 밝힌 바 있다.

결국 북한 정권은 어떠한 사실관계를 확보해 보도함으로서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으로 일관된 체제 선전만을 언론에 적극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言論)의 정의가 매체를 통해 사실을 알리는 행위로 규정된다는 점에서 북한 언론은 이미 스스로 자격을 버린 셈이다.

자료는 기사 작성을 위한 참고 내용에서도 엉뚱함을 드러냈다. “199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해외교포 수는 120개 나라에 500만명”이라고 주장한 것. 통계청이 1993년 집계한 해외교포 인구가 494만3590명인 점을 감안할 때 남한의 교포인구까지 북한의 그것에 포함한 것이다. 이는 북한이 한반도 공산통일 의도를 항시 버리지 않고 있음을 나타낸다.

참고에서 인권 또한 언급했다. “인권을 무시하는 것은 사람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국제무대에서 인권문제는 일반적으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첨예한 대결문제로 취급되어 왔다”고 인권을 정치적 사안인 것처럼 규정했다.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권개선 촉구를 사회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한 자본주의 진영의 음모인 것처럼 포장한 것이다.

참고에서 다룬 국제질서도 마찬가지로 개발도상국에 대한 자본주의 진영의 식민지배 주장으로 채워졌다. 자료는 “새로운 국제 경제질서 수립을 위한 투쟁 그전까지의 국제 경제질서는 대부분 제2차 세계대전 후 미제(美帝)가 주동이 되어 자유경쟁과 무차별적 최혜국대우(MFN)의 원칙에서 만들어낸 세계를 빈부의 량극단(양극단)으로 갈라놓은 착취적이며 략탈(약탈)적인 것이었다”고 강변했다.

자료는 이 외에도 <미제와 그 추종자들은 유엔총회 제28차 회의에서 ‘두 개 조선’ 조작에 대한 결의안을 통과시켜 보려고 갖은 술책을 다했으나 조소와 비난만 받았다> <부르죠아(부르주아) 국가들은 여러 민족으로 이루어진 국가인 경우에도 소수민족에 대한 지배민족 부르죠아지(Bourgeoisie. 유산계급)의 착취와 략탈(약탈)을 보다 강화하기 위해 연방제 대신 단일제 형식을 리용(이용)한다> <미 중앙정보국 산하 10개 이상의 정보모략소굴에서 소비하는 년간(연간) 예산액은 약 180억 달러에 달하고 그 중 100억 달러 이상은 순수 다른 나라를 정복하기 위한 군사정변과 기타 비밀작전 수행에 탕진된다> 등의 주장을 담았다.

1편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인류의 마음속에 영원불멸할 것이다’는 민족 분단의 원흉인 김일성 신격화의 내용을 싣고 있으며 3편 ‘남조선 혁명과 조국통일문제’는 본질상 한반도 공산통일을 노리기 위한 주한미군 철수와 연방제국가 수립의 필요성을 담고 있다.

오주한 기자 ohjuha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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